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38화 (138/214)

제138화

“그날들을 축복해주기 위해 주는 선물이다.”

“대체 무슨…… 짓을.”

“이름 없는 저주를 걸었지.”

괜히 서쪽 관리자를 찾아갔으랴.

관리자가 건 저주는 무엇도 될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이었다.

이름이 없다는 건 그런 거였다.

예전에 폰투스가 기드온과 작당해서 걸었던, 질식사시키는 엑사마티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저 네 마력핵에 기대 기생하며, 그것을 동력 삼아 너를 갉아 먹을 터.”

“이름 없는…….”

“말하지 않았나. 멜러니 폰투스 너의 전부를 빼앗겠다고.”

저주의 시작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부터다.

그때부턴 몸에 난 털이란 털은 모조리 사라진다.

물론 치아도, 손톱과 발톱도 하나하나씩 덜렁거리며 뽑히게 된다.

그리고 이즈음.

누런 피고름이 구멍이란 구멍에서 줄줄 흘러나온다.

그 피고름에선 구더기가 인 시체에서만 나는 악취가 풍기고.

또한, 모든 살덩이가 가뭄이 극심한 땅처럼 쩍쩍 갈라지며 괴이한 소리를 동반한다.

괜스레 사람의 신경줄을 긁으며 짜증을 유발하는 소리가 계속 반복될 터.

“그리되면 더는 외모로 수작질을 부리지 못하겠지.”

뿐일까.

불에 타는 듯한 작열통을 겪으며 살도 함께 익어간다.

그 탓에 몸에선 늘 연기가 찔끔찔끔 새어 나온다.

이렇듯 마력을 끊임없이 태우니 어떻겠는가.

정작 숙주는 마력을 쓸 수가 없다.

마력을 사용할라치면 심장이 터지는 격통을 종일 겪을 테니, 써볼 엄두도 못 내겠지.

“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내가 좀 뒤끝이 길어서.”

“이 개자식!”

“지금 실컷 욕을 해둬. 점차 혀가 굳어가서 며칠 후면 말을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거였다.

“그리고 이 저주와 공생하는 한 넌 자살할 수도 없을 거다. 심장에 기생하는 이것은 제 숙주가 죽는 걸 용납하지 않거든.”

물론 누군가가 죽이려 들면 어쩔 수 없긴 하다.

이안은 느른한 듯 흉포하게 문양을 쓸어내렸다.

문양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저는 그런데, 폰투스는 아닌 모양인지 모가지를 벅벅 긁어댔다.

신경질적인 손길 한 번에 벌건 줄이 죽죽 그어졌다.

생살을 괴롭힌다고 저주가 떨어져 나갈까.

참 쓸데없는 짓 한다.

가만히 내버려 두며 이안은 아직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이어갔다.

“한 가지 더 말해주자면. 내 얘기를 그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을 거다.”

이안의 ‘ㅇ’자만 꺼내도 기절할 터이니.

이 제약은 말뿐 아니라 필담에도 적용이 된다.

적을 살려두면서 그만한 방비도 안 할까.

죽을 때까지 폰투스는 제가 아는 것들을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글자를 쓸 수 있는 팔이 멀쩡하면 사달이 날 수 있지.’

이안의 서늘한 눈길이 팔에 닿자 폰투스가 팔을 뒤로 감췄다.

하여튼 눈치가 빠르다.

“아아아아악!”

잽싸게 도망가려는 폰투스와 그것을 제지하며 팔을 꺾어버린 이안.

그는 폰투스의 손목에 바람을 내리그었다.

살가죽 안으로 스민 바람은 이내 힘줄과 뼈만을 조각조각 찢어냈다.

손목을 절단하지는 않았다.

손톱이 빠지고 살덩이가 갈라지는 걸 폰투스가 목격해야 하니까.

상대가 음미할 수 있는 것을 남겨둔 채 마무리는 확실히.

시작이 X 같아도 어느 때고 마무리가 완벽해야 뒤탈이 없다.

* * *

펑. 퍼어엉.

본관 앞마당의 하늘을 수놓는 폭죽이 끊임없이 터졌다.

폭죽은 만발했다가 사그라지면서 꽃이 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꽃비가 내렸다.

파라칸시스 시합이 끝났음을 알리는 축포의 꽃비가.

이안이 꽃비를 받으려 뻗은 손끝, 그 끄트머리에 학장이 있었다.

“에 또-. 다사다난했던 파라칸시스가 끝이 났어요.”

단상에 오른 학장은 휑한 정수리를 마구 문질렀다.

애지중지하던 물미역이 흐트러져도 상관치 않는 거친 손길이었다.

그도 그럴게.

이번 파라칸시스는 모의 전투라기보다 그냥 전쟁이었다.

첫째 날은 폭발에, 둘째 날은 오르기온이라니.

허옇게 질린 학장은 건조하게 서 있는 이안을 쳐다보았다.

한숨이 절반인 시선.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있는 이안을 향한 시름, 이에도 이안은 태평했다.

애초 소란들이 저와 무관하다는 것처럼.

이안의 두꺼운 낯짝에 학장은 거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올해, 아니지 학장 생활 15년 차.

그날들을 통틀어 이번 학기만큼 요란했던 적이 또 있었던가.

없었다.

아마 단언컨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할 정도로 소란했지만 따지고 들면 이안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일부러 문제를 일으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아니지.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문제를 키우는 방식도, 해결하는 방식도 어찌나 교묘한지.

여간해선 일 터지기 전까지 이안이 하는 행동을 눈치채기가 어려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깊이 매몰되던 차, 뒤에서 ‘학장님?’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서서 뭐하냐는 의문형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학장은 슬쩍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클로에 교수.

그녀가 입 모양만으로 어서 식을 진행하라고 전달해 왔다.

“아…….”

폐막식이 한창인데 이런저런 것들을 따지고 있을 때던가.

다시 정면을 본 학장은 본분이나 다하자며 한숨을 몰아내듯 목청을 높였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아름다운 경쟁을 한…… 크흠. 어쨌든 최선을 다한 학생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학장이 요란하게 손뼉을 치자 교수진들도 따라 박수를 보냈다.

수고했다는 의미를 담아서.

힘찬 소리에 학생들 역시 열렬하게 호응했다.

솔직히 3일간의 시합에 지쳤고, 폭풍처럼 몰아친 사건들에 정신이 없었다.

대개가 쉬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끝난 건 끝난 거였다.

후련해하는 학생들.

그들을 지켜보며 학장은 잠시간 시끌벅적함을 내버려 두었다.

시원섭섭함을 충분히 털어낼 수 있도록.

학장은 학생들의 활기가 줄어들자 다시금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자, 더는 지체하지 않겠습니다. 모두가 고대하는 마지막 식순이군요. 시합의 승패를 가려야겠지요.”

틈을 두지 않고 학장은 곧바로 결과를 발표했다.

“흠흠. 아주 놀라운 결과군요. 이번 파라칸시스 시합의 우승 반은 C반입니다. 축하합니다.”

“와아아아!”

“얘들아, 축하한다!”

교수진 모두가 축하의 말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가장 목청이 큰 건 역시 클로에 교수였다.

그녀는 자랑스럽다는 눈빛을 C반 전체에게 쏘아 보냈다.

무차별적인 눈빛 공격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이제야 해냈다는 실감이 난 것이다.

언제나 클로에의 염려만 샀는데, 이번은 아니라서 거한 우쭐거림이 생겨난달까.

결국, 아이들은 들뜸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가 즐거운 흐름 사이.

학장은 조용히 단상 끄트머리에 서 있던 에이프릴에게 손짓했다.

레기나가 필요한 식순이라 부르는 거였다.

“이제 우승에 지대한 공헌을 한 10인을 발표하겠어요. 이들은 보상으로 불의 가시를 받게 됩니다.”

일순, 부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마력량을 상승시켜주는 영약이니 반응이 격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단계 성장할 기회를 얻는 거니까.

“불의 가시는 축복의 의미를 담아 레기나가 나눠줄 것입니다.”

“우어어어어.”

“자, 호명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도록. 이안 뷔트시겐.”

학장의 부름에 이안은 곧장 단상으로 직진했다.

그의 뒤를 밀듯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우리 대장’이라고 연호를 해댔다.

익살스러운 오두방정이 줄기차게 잇따랐다.

얼마나 부산스러운지 학장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레브 아르데슈, 올리브 필로스, 오스틴 나루스, 에드 바이에른…….”

* * *

어느새 다시 밤이었다.

하현달이 내려앉은 기숙사가 유난하게 고요했다.

그제부터 오늘 낮까지 있었던 일이 꿈이었나 싶을 만큼.

“불의 가시.”

이안은 좌선한 뒤 손바닥 위에 놓인 불의 가시를 굴려보았다.

살갗에 닿는 부분이 뜨뜻했다.

불의 가시란 이름답게 뭉근한 열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흡사 자글자글 타는 숯불 같달까.

이로 인해서이리라.

영약을 섭취하면 불에 대한 저항력이 올라간다.

웬만한 고열에 면역인 살리카들 수준에 못 미치긴 하지만.

아무튼, 저항력에 마력량까지 상승시켜주니 불의 가시는 꽤 괜찮은 물건이었다.

물론 이안에게는 한 가지 효과 때문에 더 가치가 있고.

드디어.

“불의 통로를 뚫는다.”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인 일의 종착지에 다다랐다.

그래선지 쉽사리 먹지 못하고 상념만 길어졌다.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싱숭생숭?

그것도 맞는데, 뭔가 마음이 설명할 수 없이 복잡했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생각들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그러는 동안 밤은 홀로 깊어져 갔다.

이안은 들이치는 달빛이 줄어들고 있는 창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후우. 생각만 또 길어지네.”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봐서 무엇하랴.

우선해야 할 것은 현재였다.

깊게 심호흡한 이안은 불의 가시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영약은 아몬드 크기라 딱히 삼키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호기심이 일어 어금니로 깨물어 보았다.

으깨진 불의 가시가 침과 섞이며 홧홧한 불맛이 혓바닥에 느껴졌다.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하나.

버석한 나무껍질을 불에 태운 맛이라고 해야 하나.

무튼 오묘한 맛이었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고들 하는데 쓴맛은 전혀 나지 않았다.

“으음. 아직 별 반응이 없네.”

다소 오묘한 맛의 영약은 식도를 타고 넘어가도 얌전했다.

극적인 변화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열 덩어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력회로 곳곳을 돌아다닌다는 느낌만 났다.

굳이 힘겹게 애쓰지 않아도 영약의 기운이 자유롭게 유영했다.

해야 할 일을 아는 병사 같달까.

똘똘하고 따뜻한 병사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마력회로를 전부 덥혔을 무렵.

[불의 기운이 느껴지누?]

이안의 기운을 살피던 녹스가 조심스레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만하면 말을 걸어도 되겠다 싶으면서도 방해가 될까 봐 극도로 목소리가 작았다.

“……아.”

신중한 음색에 이안은 눈을 뜨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이가 있었다.

여덟 살가량?

영롱한 오색 눈에 긴 쌍꺼풀, 말랑말랑한 젖살에 빨간 입술.

인형 같은 외모에 더해진 은발.

아이는 미의 대명사인 바다 엘프보다 더 아름다웠다.

“진짜 꼬마가 됐네.”

[예쁘지. 이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좀 봐라. 아주 비단이다.]

“적응이 안 된다.”

[푸흘흘. 무작스럽게 네 눈을 홀리지 않누?]

홀리긴 했다.

이 모습을 직접 마주하고 보니, 예전과 더 비교돼서 자꾸 시선이 갔다.

“생각보다 많이?”

[네가 이 모습을 엄청 흡족해 하는 것 같으니 내 자주자주 취해주마.]

녹스가 헤실거리며 빗으로 마구 은발을 빗어 내렸다.

보아하니 수북한 머리털이 성에 차는 모양이다.

역시.

자아도취가 심한 녹스라도 밋밋한 물덩이 형태보다 인간형이 더 좋은 것이다.

빗고, 빗고 또 빗고.

저러다 학장처럼 대머리가 되겠다 싶을 즈음.

[그나저나 정말 아무 반응이 없어?]

“딱히.”

[불의 통로가 뚫렸으면 변화가 일어나야 할 터인데.]

녹스가 애지중지하는 빗으로 이안의 심장을 가리켰다.

그 순간.

“크읏.”

심장이 달궈진 솥에 들어간 것처럼 펄펄 끓어올랐다.

잘 삶아지고 있는 칠면조가 된 듯한 느낌.

한순간에 확 열이 나며 땀이란 땀이 몽땅 빠져나왔다.

그러더니 또 느닷없이 한순간에 푹 가라앉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열이 식었다.

정말이지 제멋대로였다.

오락가락하길 수십 분, 뭔가 심장을 조이는 찡한 감각이 치받혔다.

“마력핵에…….”

마력핵에서 열기가 쉼 없이 맴돌았다.

그와 동시에 심장을 도는 고리 하나가 더 느껴졌다.

불의 고리였다.

“진짜 불의 고리가 생겼어.”

그것은 바람의 고리와 서로 연결되며 차랑차랑 맑은소리를 냈다.

듣기 좋은 소리가 명확하게 이안에게 들려왔다.

귀가 아니라 전신에 울리는 감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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