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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42화 (142/214)

제142화

황궁으로 쏠린 이안의 관심을 잡아채려는 걸까.

일순 사무소 앞마당에 고함이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아 글쎄, 내가 먼저 왔으니 내 차지라니까!”

째진 외침에 이안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 남자를 둘러싸고 세 명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셋에게 포위된 남자는 위아래가 펑퍼짐한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다.

이국적인 차림새로 보아 여행객인 듯했다.

설마 이방인을 괴롭히는 건가 했는데.

“내가 액면가는 젊어도 안내자 생활만 10년이우.”

이안이 지레짐작했던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세 명 모두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안내’ 어쩌고 열변을 토하는 걸 보면.

“그러니 이 거미줄 같은 수도는 내 손바닥 안이란 말이지.”

“어디서 핏덩이가 유세는. 하! 10년? 난 자그마치 30년일세, 30년.”

“10년이고, 30년이고. 여기처럼 복잡한 길을 안내하면서 양심 있게 웃돈을 받지 않는 안내자는 나뿐이지요.”

자기들끼리 입씨름해봐야 결론이 안 나겠다 싶은 건지.

염소수염의 남자가 양손을 간사하게 비비며 여행객을 공략했다.

“나리, 여기는 100년을 산 사람도 길을 잃고 맙니다. 그러니 제가 성실히 안내를…….”

“아니, 이 작자가 상도덕이 없네. 어? 어디서 새치기를.”

“아이고, 귀족 나리. 저것들은 상관치 마십시오. 어서 저랑 같이 가시지요.”

서로 ‘자기를 뽑아달라.’ 호소하는 자들, 그들은 소위 안내자라고 불리는 둑스였다.

대지 정령 둑스.

겉모습만 보면 인간과 다를 바 없으나 생김만은 몹시 특이한 정령.

이안의 시선이 자연스레 둑스의 얼굴로 향했다.

개성 넘치게 한데 몰린 눈코입과 툭 튀어나온 주둥이.

이마 양쪽에 달린 작고 동그란 귀.

대강 봐도 두더지가 절로 연상되는 외양이었다.

그들에게 흥미가 돋아서 이안 일행은 고정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안, 사무소 앞이라 그런지 안내 정령이 많다.”

“바글바글하다.”

“거의 여행객 수만큼 있는 것 같은데?”

“많을 수밖에 없지. 저들이 없으면 수도를 돌아다니기가 어려우니까.”

“하긴. 황제가 바뀔 때마다 지형이 완전히 바뀌니까 아무래도.”

때마다 지형을 바꾸는 것.

이는 황가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무엇으로부터의 보호?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4대 가문으로부터였다.

4대 가문.

황제의 지배하에 놓여 있으나, 독자적인 지배 체제를 갖춘 공신가.

제국의 동서남북에 포진해 수도를 에워싸고 있는 대 귀족가.

지리적 위치와 강력한 군권.

이만으로도 황가로선 충분히 4대 가문을 견제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주기마다 지형을 바꾸는 거지.’

예컨대.

원래 서쪽에 있던 상업지구가 동남쪽으로 이동한다든가.

지대가 낮았던 곳이 언덕이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 탓에 평생을 수도에 산 사람도 가끔은 제집 앞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다소 황당하지만 사실이었다.

수도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둑스를 대동하는 까닭.

“아이고, 보는 눈이 높으십시다. 최선을 다해 모십지요.”

실랑이에는 승자가 있기 마련.

보아하니 염소수염을 가진 남자가 승기를 차지한 듯했다.

득의만만한 염소수염과 끌려가는 여행객.

둘은 지붕 없는 마차인 랜도를 타고 사무소를 유유히 떠났다.

여행객을 두고 벌이는 둑스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과 신경전.

그게 재미있는지 레브의 푸른 동공이 반질반질하게 광이 났다.

그간 몸을 사리느라 수도는 오랜만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다들 진짜 열정이 넘친다.”

“아무래도 자부심이 있겠지. 탐색 기술을 가진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거기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직업이라 명예롭기도 하고.”

“명예에 돈까지 얹었지. 모험가 협회에서도 지원을 빵빵하게 해주니.”

세금 면제, 주거지 제공, 마차 무상 지원, 성과급 지급, 수도의 모든 시설 반값 이용 등.

둑스에게는 어마어마한 혜택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만큼 제약도 많다.

반드시 모험가 협회에 등록을 마치고 활동할 것.

어디로 옮기든 거취를 꼬박꼬박 보고할 것.

불시검문에 순순히 응할 것.

지도를 제작하지 말 것.

몇 가지 제약 중 마지막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이었다.

만일 수도에 관한 지도를 만들다가 발각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서 사형에 처해 진다.

이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한 가지.

수도의 방비가 상상보다 예민하고 살벌하다는 것이다.

“근데…….”

이안 일행에게는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둑스가 다가오지 않았다.

딱 봐도 웃돈을 줄 것 같은 부유함이 넘치는데 말이다.

이에 레브가 이안의 팔을 장난스럽게 제 팔로 툭툭 쳤다.

“역시 이안 너 때문에 안 오네.”

“그러게. 해치지 않는데 말이야.”

“저들 입장에서 대귀족은 부담스럽지. 만약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모가지가 달아날 수 있으니까.”

그건 대귀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둑스가 암살이나 납치에 가담할지도 모를 가능성 때문.

하여 4대 가문은 자체적으로 둑스를 두고 있다.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서로가 거리 두기를 하는 격.

“흐음.”

이안은 주변을 둘러보던 시선을 앞마당 너머로 옮겼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오고 있나 보려는 것.

“도련님.”

때마침 더는 기다릴 필요 없다는 듯 칼브란이 나타나 그를 불렀다.

한껏 밝은 어조에 비해 딱딱하게 굳은 입가.

마차에서 내리는 칼브란의 안색이 그닥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잠깐 사이 무슨 일이 생겼나?

이안은 칼브란의 얼굴을 뜯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련님, 제가 먼저 가서 준비를 마쳐놓겠습니다.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이로 유추해 보건대.

저를 기다리게 만든 것이 못내 성에 안 찼을 수도 있다.

모시는 분을 기다리게 하는 1초는 준비를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그리 말하는 칼브란이니까.

이안은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기민하게 다가오는 칼브란에게 말했다.

“표정이 안 좋네.”

“아, 도련님들을 모실 둑스를 차출해 오는 것까진 별문제 없었는데…….”

뭘 떠올리는지 칼브란의 굳은 입가가 더 딱딱해졌다.

“방금 황실에서 긴급 발표를 하는 통에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긴급 발표?”

“예. 수도의 지형을 바꾸겠다고 공표가 났습니다. 일주일 뒤에 시행한다더군요.”

“황제가 바뀐 것도 아닌데…….”

수도의 지형이 마지막으로 바뀐 건 50여 년 전이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바꾸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몇 가지 예외가 있긴 하지만.

“전쟁 같은 큰일이 터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이런 식의 발표라니.”

이안이 이맛살을 찌푸리자 칼브란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땅이 꺼지겠다 싶을 만치 숨이 무거웠다.

“당장 수도가 뒤숭숭해질 테니 도련님의 안전이 걱정됩니다.”

“승급 시험만 치르면 금방 떠날 건데 뭐.”

“하루를 머물더라도 도련님이 안전하고 즐거워야지요.”

“사고가 안전한 곳에서는 안 터지나. 너무 걱정하지 마.”

이안은 칼브란의 염려를 덜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당장 떠날 것도 아니지 않던가.

내일 제국이 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 아니지, 승급 시험은 봐야 한다.

목표가 확실해서 이안은 레브와 올리브를 돌아보았다.

“일단 정령사 협회 지부로 가자. 승급 시험부터 보게.”

“그러자. 분위기가 어수선할 땐 미적거릴 필요 없지.”

레브는 서두르는 게 좋겠다며 4륜 마차인 코치에 올라탔다.

아주 잽쌌다.

그걸 보더니 경쟁 심리라도 생긴 걸까.

올리브 역시 후다닥 마차를 탄 뒤 양손을 심하게 흔들었다.

레브와는 다른 마차였다.

“캬캬캬. 다 죽었으. 이 몸이 발리올 시험장을 초토화하고 오마.”

“그래, 콧대 확 눌러주고 와라.”

“그럼 시험 끝나고 이따 11번 가에서 보자.”

각자 시험 장소가 달라 이동진 사무소 입구에서 찢어졌다.

각 가문을 관리하는 협회의 지부가 따로 있기 때문.

뷔트시겐은 협회 거리의 동쪽, 루하흐는 서쪽, 그리고 발리올은 북쪽에 있다.

***

이안은 단상 앞을 서성이는 이들에게 눈길을 두었다.

하얀 후드를 둘러쓴 채로 유령처럼 움직이는 아홉 명.

……정령사 협회원들이었다.

바로 저들이 중급 시험의 감독관이었다.

아홉 중 맨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자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안 뷔트시겐, 중급 시험을 치르겠습니까.”

“예.”

총감독관은 몇 번이나 되물었다.

시험 치르러 온 사람한테 뭘 자꾸 확인하는 건지.

설마 포기하길 바라서 그러나.

이안의 냉한 눈빛에 총감독관은 더 묻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시험은 총 3단계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는 등급 측정으로 기본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것입니다.”

등급 측정.

마력량, 교감력, 지배력 같은 것을 수치화하는 것이다.

에르그부터는 정령의 능력치까지 합산해서 평균값을 도출해 낸다.

둘의 능력치가 균등하지 않으면 평균값이 낮아지기 마련.

하여 이 단계에서 떨어지는 자들도 종종 있다.

기본 측정 이후는 이론 시험이다.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

“이 둘을 모두 통과해야만 실기를 볼 수 있습니다.”

총감독관은 이안을 직시하며 틈 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잠깐 숨을 쉬는 그 몇 초도 용납하지 못하는 깐깐함이 입매에 그득했다.

“물론 등급 시험에는 제한 시간이 없습니다. 다만, 남들보다 빨리 끝낸다면 가산점이 붙고 기록으로 남겨…….”

거의 혼자 10분을 떠들었나.

긴 설명을 끝낸 총감독관이 이안에게 앞으로 나오란 신호를 보냈다.

그런 뒤 얼린 생선만큼 딱딱하게 시작을 알렸다.

“지금부터 등급 측정을 하겠습니다.”

* * *

이안이 단상으로 올라오는 동안.

“준비해라.”

총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협회원들이 양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와 동시에 단상 전체를 덮고 있던 술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Ÿ’모양의 글자들이 손을 잡듯 일렬로 늘어서 꾸물대길 한참.

웅 소리와 함께 석상이 우뚝 솟아났다.

쿠궁.

눈을 감고 있는 여신상과 신상의 양 손바닥에 놓인 정령.

등급 측정 도구인 마아트였다.

천장까지 닿은 마아트는 두 달 전에 본 것보다 족히 세 배는 컸다.

“정령과 함께 들어가십시오.”

협회원이 여신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딱딱한 표면이라 도저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부닥치기만 해도 뼈가 부서질 것 같은 느낌?

이에도 이안은 개의치 않고 사냥개와 함께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 즉시.

쑤욱.

먹잇감을 기다린 식충 식물처럼 공간이 둘을 삽시간에 빨아들였다.

그저 새하얗기만 한 공간.

신상 안쪽은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았다.

“이 안에 있으면 여신이 내 근원을 꿰뚫는다던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뭔가 측정되고 있나 아리송할 정도로 변화가 없다.

서 있나, 앉아있나, 심지어 누워있어도 어떤 영향도 없었다.

지나치게 잠잠한 탓에 되레 바깥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무슨 얘기하나 들어 볼까.”

이안은 바람의 속삭임을 야금야금 흘려보냈다.

“여신상의 세 번째 눈이 또!”

“마아트가 말하길 계속 측정 불가라고……. 도대체 이안 뷔트시겐의 잠재력은 얼마나 된다는 겁니까.”

“그것보다 저 가운데 심안은 왜 계속 돌고 있는 거지?”

“눈뿐만이 아닙니다. 손바닥 위에 있는 두 마아트는 왜 저러는 겁니까.”

“마아트가 춤을 춘다, 라.”

“이런 광경은 듣도 보도 못했는데.”

바깥쪽이 시끌시끌했다.

소란이 가시질 않다가 짧게 몇 초 침묵이 흘렀다.

입단속을 하는 건지, 뭘 하는 건지.

조용한 담합 후 총감독관의 목소리가 여신상 안의 공간을 때렸다.

“나오십시오.”

덤덤한 울림에 이안은 신상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단박에 장소가 바뀌며 마주하게 된 광경.

호들갑 떨던 협회원들이 시치미를 똑 떼고 근엄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실로 흔들림 없는 정자세가 아닐 수 없었다.

하여튼 의뭉도 잘 떤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이번만은 티가 많이 났다.

동공의 잔물결이 멈추지를 않았으니까.

“크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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