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모험가 협회장의 죽음을 막기 위해 들른 상업지구 초입.
이안은 눈길이 닿지 않은 후미진 곳에서 눈알을 도르르 굴렸다.
보는 사람이 없나 재차 확인하는 거였다.
신중하게 살핀 뒤 입안에 있는 외향 변형 알약을 까득 깨물었다.
“끄읏.”
그러자마자 바위에 깔린 것 같은 압박감이 훅 치고 들어왔다.
아주 짧게 훅.
스치듯이 들이닥친 고통이 가신 후, 이안의 외향은 몰라보게 바뀌었다.
작달막한 키에 배불뚝이 몸매, 좁쌀만 한 눈과 얇은 입술.
평범하기 그지없는 중년 남자였다.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서 마주쳐도 금세 잊어버릴 법한.
“이 모습으로 스치면 칼브란도 몰라보겠는데?”
이안은 작고 뭉툭한 제 손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았다.
낯설었다.
통통해서 뼈마디가 보이지 않으니 더 그랬다.
“진짜 남의 손 같다.”
적응 안 되는 손에 그가 흠뻑 빠진 사이, 옆에서 녹스가 서두르자며 옷깃을 잡아당겼다.
녀석 말마따나 슬슬 출발해야 할 때였다.
더 지체하다간 적절한 때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하니 이안은 바닥에 놓아둔 럼주를 집어 들었다.
이 술이야말로 변신에 마침표를 찍어 줄 비장의 수임은 말해 뭐하랴.
이안은 망설이지 않고 럼주를 옷이 젖을 때까지 쏟아부었다.
고주망태로 위장하기 위한 것.
“어때?”
[오호? 진짜 낯설구나. 옆에서 다 지켜봤는데도 너 아닌 것 같다.]
“그럼 됐네. 이제 모험가 협회까지 가볼까.”
[그러니까 이안, 오늘은 협회장의 죽음에 관한 뭐 하나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냐?]
“어. 나도 그 죽음은 소문으로만 접했던지라 우선은.”
확인이 먼저였다.
협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그것에 관한.
이안은 흐리멍덩한 눈깔을 한 채 비틀대며 길드 거리를 걸었다.
유난히 시끄럽고 걸핏하면 멱살잡이가 오가는 거리.
원체 거친 곳이라 그런지 이른 오후인데도 술 냄새가 거나하게 풍겼다.
이 판국에 누가 주정뱅이에게 관심을 주랴.
술꾼이 길바닥에 널린 돌멩이처럼 많아 이안은 모두의 관심 밖이었다.
다행히 저는 그런데, 저 앞쪽에 있는 고양이 수인의 사정은 다른 듯했다.
“오우, 죽이는데?”
수인을 본 용병들이 휘파람을 불며 추파를 던져댔다.
동서고금 미인의 주변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더구나 고양이 수인은 바다 엘프와 아름다움으로 견주는 종족이지 않던가.
거리가 들썩거리는 건 당연했다.
“낄낄. 나랑 찐하게 한잔? 아니면 화끈한 밤도 좋고.”
원색적인 추파에 고양이 수인이 다가오는 용병을 째려보며 힘껏 밀쳤다.
거칠게 흔들리는 꼬리로 보아 상당히 불쾌한 듯했다.
수인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용병은 멀어지는 뒤태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감히 날 차? 얼음 장미의 작부보다 못생긴 주제에!”
씩씩대는 용병과 그를 보며 야유하고 킬킬대는 구경꾼들.
이놈이나 저놈이나 하는 짓이 똑같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안은 그들을 일별하고 묵묵히 나아갔다.
거리 안으로, 더 안으로.
계속 가다 보니 어느새 모험가 협회에 다다라 있었다.
협회원이 모은 금화는 죄다 건물에 쏟아붓는 모양이다.
건물의 외관이 굉장히 웅장하고 화려했다.
협회의 상징인 독수리가 새겨진 철제 대문조차도.
‘이래서 협회장이 어느 귀족의 사생아란 소문이 돌지.’
외관의 치장만 보면 그런 말이 나돌 법했다.
독수리의 눈에 박힌 보석만 해도 값이 얼마던가.
무려 수백 골드에 달한다.
이안은 독수리를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철제 대문을 유유히 지나쳤다.
그가 가야 할 곳은 협회 안쪽이 아닌 측면이었기 때문.
그는 협회의 일원인 양 매끄럽게 모퉁이를 돌았다.
그 즉시 눈에 든 건 골목 전체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4륜 짐 마차였다.
식료품 상자를 한가득 실은 마차.
마차에선 먹거리 풍성한 상자들이 짐꾼들에 의해 속속 바닥으로 내려지고 있었다.
‘제때 맞춰왔군.’
차곡차곡 쌓이는 상자와 분주히 움직이는 짐꾼들.
이안은 짐꾼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저 식료품 상자 중 하나.
딱 하나가 표적이라 이안의 동공이 쉴 새 없이 움직거렸다.
‘……저거.’
뭔가를 발견한 이안은 즉각 마차로 다가갔다.
술에 절은 몸이 도통 말을 안 듣는다는 듯 휘청거리며.
“……어이쿠야.”
그리고 실수를 가장해 바닥에 쌓인 식료품 상자 위로 넘어졌다.
우당탕.
상자들과 함께 그는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사람이 넘어졌는데.
“눈깔을 어디다 뜨고 다녀? 에잇. 식료품들이라 더러워지면 공짜로 바꿔줘야 하는데.”
짐꾼은 넘어진 상자만 걱정했다.
배 속에 넣을 생선보다 가치가 못한 신세였다.
“흐흐. 미, 미안하외다. 내가 차이는 바람에 술을…… 우욱.”
이안이 상자에 토악질을 해대자, 짐꾼이 흰 눈을 뜨며 삿대질했다.
재수 옴 붙었다는 손짓이었다.
“아씨. 지금 뭐 하는 거야! 저리 안 꺼져!”
그의 행동에 짜증이 난 짐꾼은 욕설을 퍼부었다.
찰진 욕을 한 귀로 흘리면서 이안은 설탕 포대로 스리슬쩍 손을 뻗었다.
아주 작게 X자 표시가 되어 있는 포대였다.
“꺼지라니까!”
“거 넘어진 사람한테 괜찮냐……는 말은 하지 못…… 우우욱.”
“아씨. 재수가 없으려니까. 웬 미친 새끼가 진짜.”
“말이 좀 심하시구만. 우욱.”
이안이 재차 토악질하려 하자 짐꾼이 그의 옆구리를 후려 차 밀어냈다.
“썅. 배상하라는 소리 안 할 테니까 꺼져, 이 새끼야!”
“흐흐. 그렇다면야.”
옆구리를 문지른 이안은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반색하는 게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만을 기다린 사람 같았다.
“수고하슈.”
이안은 짐꾼에게 피식 웃어 보인 뒤 빨간 코를 문지르며 소란에서 멀어졌다.
결단코 서두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이질감 없이 거리에 녹아 어둠 속으로 사라진 얼마 후.
부스럭.
어느 구석진 골목에 다다른 이안은 품에 있는 것을 조심히 꺼내 들었다.
설탕 포대 안에 있었던 무엇.
……하얀 가루였다.
[이것이냐? 모험가 협회의 장을 죽이는 게?]
* * *
주정뱅이 연기를 실감 나게 한, 세 시간 후.
이안은 멀쩡한 꼴로 이국적인 건축물을 올려다보았다.
지붕의 꼬리가 유려하게 휘어진 형태.
히에로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건축 구조였다.
‘동방 출신인 주인장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들었으니.’
향신료 상인이었던 그가 살던 곳의 건축물은 다 저렇다고 했다.
아마 그 때문인 것 같다.
주인장이 이곳에서 연인을 만난 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곳이 저런 형태인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어떤 목적을 가졌든 누구나 신비롭다는 생각부터 할 특이한 건축물.
‘호그의 휘파람.’
제국에서 최고라 칭해지는 요리 전문점이다.
숙식을 겸하는 여타의 여관과 다르게 오직 비어드 호그만 전문으로 파는.
“히야, 진짜로 여길 와보네.”
감격스럽다는 듯 이안의 옆구리를 발랄한 목소리가 쿡 하고 찔렀다.
올리브였다.
녀석은 깨방정 떨던 평소보다 더 격양되어 있었다.
“이안 너한테 처음 말을 들었을 땐 이걸 내가 먹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다 같이 와보자고 했으니까.”
히오나스 호수에서 막 수련을 시작했을 당시 약속했었다.
언젠가 호그의 휘파람에 가보자고.
그래서 수도 나들이의 첫 회동 장소로 여기를 택한 것이다.
이안 일행이 꼼짝 않고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이.
“뷔트시겐 공자님.”
입구 쪽에서 마흔 초반의 남자가 날렵하게 걸어 나왔다.
꼬리에 하인 셋과 심상치 않은 기색의 호위 둘을 달고서 말이다.
등장하는 모양새가 비범한 것이 딱 봐도 주인장인 게 티가 났다.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상의 음식점을 운영하는 류흐노라고 합니다.”
“하하. 호그의 휘파람의 주인장다운 인사군.”
“제가 겸양을 떨면 재수 없다고들 욕하니, 차라리 잘난 척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잘난 척, 할 만하지. 음식의 맛을 극찬하며 황제께서도 이곳에 오신 적 있으시니.”
“귀한 걸음은 두고두고 새길 영광이었지요. 하여 더욱 정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척 기대되는군. 비어드 호그의 맛이 어떨지.”
이안은 수려한 주인장을 힐끗 본 후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과거에 몇 번 접점이 있었던 인연.
무척 짧은 인연이 좋게 기억되는 건 아마도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와 이곳에 온 적 있으니까.
이안의 분위기가 부드러우니 주인장 또한 진한 웃음을 베어 물었다.
상대의 기분에 맞추는 주인장의 태도가 능숙했다.
“그럼 5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곳은 특별한 분들을 위한…….”
“3층. 3층이 적당하겠군.”
“그곳은 모험가 협회나 귀족가 길드에 소속된 분들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하여 공자님의 격에 맞지 않습니다.”
“그곳에 자리를 마련해주게.”
“아…….”
주인장은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이안의 의중을 파악해 보려는 동작이었다.
무릇 장사치의 기본은 사람을 읽는 것이지 않던가.
어린 도련님의 심중이 무미건조하고 깊어도 헤아려 봐야 한다.
그것이 그가 여태껏 살아남은 방법이었으니까.
머리를 굴리던 주인장은 이안의 속내를 조심스레 유추해 보았다.
아마도 정보나 동태 파악이 목적인 듯싶다.
그게 목적이라면 3층보다 적당한 장소는 없다.
비어드 호그에 오는 자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었으니까.
모험가 협회든 길드든 간부급들이었고, 그들이 쏟는 정보는 꽤 쓸 만하다.
저 역시 정보를 주로 3층에서 모으지 않던가.
주인장은 감탄을 담아 이안에게 속살거리듯 말을 건넸다.
“마침 적당한 자리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모시겠습니다.”
* * *
이안은 앉자마자 만족의 미소를 내보였다.
자리가 몹시도 마음에 들었다.
참으로 교묘하지 않은가.
구석져서 상대의 시선은 피하는 한편, 3층 구석구석을 볼 수 있는 자리.
주인장이 안내해 준 곳이 딱 그러했다.
‘굳이 힘들이지 않아도 전체를 살필 수 있겠군.’
왠지 훔훔해진 이안은 여유롭게 탁자로 시선을 내렸다.
도자기에 담긴 상차림이 단출했다.
토마토, 오이, 양파를 주재료로 만티아 오일에 페타 치즈 한 덩이를 올린 호리아티키 샐러드.
갈색 껍질이 바싹바싹한 돼지 뒷다리 구이.
두 가지뿐이었지만 충분했다.
‘충분하지. 이걸…… 정식 손님으로 돈 내고 먹는데.’
어릴 적 말고도 호그의 휘파람이 만든 비어드 호그를 먹은 적이 있다.
배가 고파 쓰레기통을 뒤지던 떠돌이 시절에.
<손님이 먹다 남긴 거긴 한데 굶는 것보다 낫겠지.>
꾀죄죄한 그를 보고 주방장이 다가와 비어드 호그를 내준 적이 있었다.
살점이 듬성듬성 남은 고기가 어찌나 맛있던지.
게걸스럽게 뼈까지 쪽쪽 빨아먹는 그의 모습을 주방장은 안쓰럽게 바라보았었다.
동정 어린 눈빛은 흐릿한 기억이 되지 못하고 이안의 뇌리에 남겨졌다.
마치 낙인처럼.
‘그때보다 더 맛있으려나.’
이안은 상념을 털며 비어드 호그를 집어 들었다.
그 뒤 묵직한 뒷다리를 뜯으며 살점 하나하나를 분석하듯 음미했다.
시장이 반찬이던 그때보다…… 더 맛있었다.
내 돈 내고 먹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화 같은 거랄까.
입술 끝을 올린 이안은 말문을 닫고 본격적으로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가 말이 없는 반동 탓인지.
“우오오. 이거 지이이이인짜 맛있다!”
대신하듯 올리브의 호들갑이 요란하게 자리를 채웠다.
녀석은 한시도 쉬지 않고 턱을 움직거리며 돼지 뒷자리를 씹어 삼켰다.
복스럽게 잘 먹는다.
“레브가 왜 호그의 휘파람, 호그의 휘파람 했는지 알겠다야.”
“야,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했다고.”
“그랬는데? 맨날 비어드 호그를 먹을 때마다 귀에 딱지가 얹게 말했으면서.”
“하여튼 과장은.”
“캬캬. 과장은 제2의 나야. 그냥 받아들여.”
뭘 얘기할 땐 목청 큰 놈이 이긴다지 않던가.
올리브의 능청에 레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너 잘나셨수.”
“그걸 이제 아셨어? 내가 누구 친군데.”
올리브는 눈알을 굴려 레브와 이안을 번갈아 보았다.
‘내 친구가 너희다’라는 자랑스러움이 그득 배인 눈빛.
똘망똘망한 그 눈빛이 잠시 잠깐 잘 굴러가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빛이 꺼졌다.
이안과 레브 사이의 빈자리를 본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