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47화 (147/214)

제147화

“만년 꼴찌도 왔으니 이제 식사를 시작할까.”

협회장이 손가락 끝으로 와인 잔을 산뜻하게 두드렸다.

그 즉시.

나이프가 접시의 표면을 긁는 소음만이 응접실을 가득 메웠다.

무척 조용한 식사였다.

수뇌부가 모였으니 협회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갈 법도 한데.

입을 열었다가는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다들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아오, 숨 막혀.’

애거쉬는 비어드 호그를 나이프로 찍으며 한숨을 잘게 내쉬었다.

얘기를 못 하는 것도 못 하는 거지만.

‘이 맛있는 뒷다리를 손으로 잡고 뜯지 못하다니.’

아쉬움에 몸부림 친 애거쉬는 흘끗 협회장을 곁눈질했다.

협회장은 그림처럼 우아하게 나이프로 고기를 찢고 있었다.

예의의 교본이랄 수 있을 만큼 태도가 완벽하지 않은가.

보고 있자면 마냥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저 완벽함은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런데도 꼰대들은 협회장을 따라 하라고 온갖 식사 규칙을 만들어 냈다.

식사 내내 곧은 자세를 유지해라.

나이프와 식기의 닿는 면적을 줄여 최대한 소음을 줄여라.

쩝쩝 소리를 내지 마라.

상대를 불쾌하게 하니 입안의 내용물이 다 보이는 대화는 삼가라.

이런 식의 딱딱한 규칙이 얼마나 많은지.

그 탓에 식사 자리가 최후의 만찬 같은 분위기가 된 지 오래였다.

아니, 여기가 무슨 귀족가냐고.

솔직히 귀족가도 이보다는 자유분방할 것 같았다.

애거쉬는 자신과 정말 맞지 않는다며 성의 없는 나이프질을 했다.

더 먹었다간 체할 것 같았다.

그래서 깨작거리고 있는데.

“애거쉬.”

“크헉!”

그걸 또 언제 본 건지 협회장이 그를 불렀다.

예고 없는 부름에 고기 조각이 목구멍에 걸려버렸다.

애거쉬는 눈물이 핑 돌아 가슴팍을 치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얼마나 거침없이 들이부었는지 물이 반 이상은 턱으로 흘러내렸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모양새에 협회장이 웃음기 어린 말문을 열었다.

“애거쉬, 물 마시는 것처럼 성질대로 편하게 먹어. 독극물 먹는 것처럼 그러지 말고.”

“그냥 참을랍니다. 성질대로 하면 입은 편한데 그때부턴 귀가 괴로워져서요.”

“아아. 우리 원로들이 좀 깐깐하긴 하지.”

협회장이 재미있다는 듯이 눈꼬리를 접으며 고개를 모로 꺾었다.

덩달아 결 좋은 머리카락도 한쪽으로 몰렸다.

순간.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오른편 머리칼에 온전하게 고였다.

‘빛을 받은 표면이 오색 같다.’

협회장의 머리 색은 매번 애거쉬에게 비슷한 감상을 남기곤 했다.

빨간색인데…… 빨갛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색이라고.

콕 집을 수 없지만 뭔가 묘했다.

홀린 듯 머리카락을 보고 있는데, 그를 향해 협회장이 모양 좋은 입술을 열었다.

“그렇다고 애거쉬 네가 규칙을 잘 지키는…….”

일순 협회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 왔다.

말석에 앉은 애거쉬의 눈에도 보일 정도로 큰 떨림이었다.

“걸핏하면 잔소리를 못 듣겠다고 들이박아서…… 더 잔소리가 심해…… 나야 구경하는…….”

갈수록 협회장의 말 떨림이 심해졌다.

본인도 뭔가 이상하다 느꼈는지 머리를 연신 흔들어 댔다.

협회장이 보이는 이상 징후에 다들 괜찮냐 물으며 엉거주춤 엉덩이를 뗐다.

아무래도 상태를 살펴봐야겠다 싶었는지.

“협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협회장과 가장 가깝던 날렵한 몸피의 남자가 제일 먼저 일어섰다.

스물 후반의 남자는 24시간 협회장과 붙어 있는 최측근이었다.

친밀한 만큼 근심이 클 수밖에 없어 걸음이 무척 재빨랐다.

다가오는 남자에게 협회장이 괜찮다며 손을 들어 보인 찰나.

“컥…… 커흐흑!”

그 손마저 맥없이 떨궈지더니, 협회장이 시커먼 피를 토해 냈다.

웅덩이를 이루는 피가 그을린 새털 뭉치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미처 누가 뭘 할 새도 없었다.

몸속의 피를 다 뺄 생각인지 연거푸 피를 쏟던 협회장이 앞으로 꼬꾸라져 버렸다.

쿠당탕.

그가 식탁에 처박힌 반동으로 식탁 위의 식기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협회장님!”

모두가 벌떡 일어나서 우르르 협회장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걸음에 깨진 접시와 그 조각이 박힌 비어드 호그가 채였다.

구두가 더러워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무슨…….

현실 같지 않은 황망한 광경에 애거쉬는 망연자실해졌다.

걷잡을 수 없는 혼란 때문일까, 어지러운 상황 때문일까.

갑작스레 그의 뇌리로 과거의 한 단편이 기어들어 왔다.

<너, 귀하디귀한 무지개 정령과 결속한 놈 맞지?>

뒷골목과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남자가 그에게 말을 붙였다.

혀끝을 구르는 말투가 어찌나 따뜻하고 상냥하던지.

건달들에게 작신작신 쥐어 터진 것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

오물 냄새나는 곳도 한순간에 벽난로 타는 응접실로 바꾸는 남자.

그런 사람이 협회장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 모험가 협회에 몸담은 지도 어느덧 11년이 되었고.

“…….”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화사할 것만 같던 협회장의 안색이 새파랬다.

곧 죽어 버릴 것처럼.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애거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두 눈만 끔벅거렸다.

점멸하는 시야 속.

모든 것이 얼룩덜룩한 와중 묘한 장면이 애거쉬의 눈을 찔러 왔다.

고양이 수인이…… 웃었다?

아주 찰나지만 입가에 머문 비소를 애거쉬는 똑똑히 목격했다.

* * *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협회장.

그를 덮고 있는 시트는 단 한 번도 들썩거리지 않았다.

죽음이 치렁하게 드리운 자리.

그 자리를 에워싸고 있는 건 오롯한 고요뿐이었다.

저벅.

찰나, 고요함을 깨려는 듯 누군가가 협회장에게 다가가 마른 손을 뻗었다.

그 손길이 촉매제가 된 것일까.

번쩍 눈을 뜬 협회장이 불청객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정작 죽을 뻔한 건 저인데…….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앳된 얼굴이 더 창백하고 푸르딩딩했다.

가뜩이나 낮은 조도로 인해 음영까지 지니 어딘가 기묘해 보이기도 했다.

협회장은 그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 불청객의 이름을 불렀다.

“이안 뷔트시겐.”

“깨셨습니까, 협회장님.”

“진즉 일어났습니다. 하나 아직 조금 멍하군요.”

“각혈을 유발하는 약을 먹어서 그럴 겁니다. 당분간은 몸을 정양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겠지요.”

“그나저나 조금 놀랐습니다.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연기가 어찌나 실감 나던지.”

“남을 속여야 하는 건데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확인했습니까. 그대가 죽어 가는 순간을 음미하던 자를.”

“……씁쓸해지는군요. 믿었던 자의 이면을 보고 나니까.”

“배신이라는 게 그렇지요. 하는 놈은 멀쩡한데, 당한 놈은 억울하고 분해지는 묘한 힘이 있어요.”

“많이 당해 본 말투이십니다.”

“뭐 세상 살다 보면 그런 일 없겠습니까. 뒤통수에 당하기도 하고, 내가 치기도 하는 거지요.”

마치 10년지기라도 된 양 매끄럽게 이어지던 대화.

대화의 후미에 이안과 협회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침묵은 껄끄럽지 않았다.

각자가 품은 생각들이 어지러이 난무할 뿐.

이안은 몸을 일으킨 협회장이 침대 등받이에 기대는 동안 그 움직임을 따라갔다.

호흡이 고르지 않고 거칠었다.

실제 몸이 아프기보다 상황이 주는 피곤함 때문에 그럴 것이다.

‘괜히 연극을 꾸민 게 아니었으니.’

비어드 호그가 문제를 일으키도록 루베오의 눈물을 고기에 섞을 자.

그게 가능한 이는 협회원들뿐이었다.

외부에서 공수해 온 음식이라 한 번 더 검수를 마치고 먹기 때문.

‘배신자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면 솎아내기 어렵지. 그래서 연극을 했던 거고.’

시간이 주는 익숙함이란 게 그렇다.

오히려 누군가를 잘 알게 되는 것 같아도 더 모르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눈에 익다.’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익숙해지면 누군가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해도 쉬이 넘어가게 된다.

의심보다는 믿고 싶으니까 마음이 저를 속이는 것이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억지로 납득을 하면서.

그러다 보면 균열이 일어날 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때도 있다.

이안은 그 부분에 관해선 제가 언급할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간섭해야 할 선은 명확했다.

‘하지만 화근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또 협회장의 목숨을 노리면 그땐.’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꼴을 보려고 발바닥에 종기 나도록 뛰어다녔겠는가.

콧대에 주름을 만든 이안은 숨쉬기만 하는 협회장에게 서두를 뗐다.

“배신자는 어찌할 요량입니까?”

“그것이…….”

협회장의 음색은 형편없이 갈라져 쇳소리를 냈다.

“그녀를…… 세실을 암시장에서 샀습니다.”

“아.”

“고양이 수인은 단독 행동을 하는 일족이라 범죄자들의 표적이 되기 쉽지 않습니까. 세실 역시 그런 경우였지요.”

“만일 무리를 이뤘다면 도움을 청할 수 있었겠으나.”

“그들은 제 개인 영역을 중시해서, 웬만한 친분이 아니면 집이 어딘지도 알려 주지 않는 종족이 아닙니까.”

“해서 고양이 수인이 사라져도 주변에서 모르는 경우가 왕왕 생기지요.”

“후우. 암시장에서 빼내 부족함 없이 돌봐준 것 같은데…….”

“그게 배신하지 않을 까닭이 될 순 없지요.”

이안은 다소 메마르게 협회장을 보며 고양이 수인을 겹쳐 보았다.

인간 경매로 팔릴 뻔한 그녀.

수인을 구해 낸 것, 이게 협회장이 사람을 발탁하는 방식이다.

협회장은 제 주변을 채울 때 부족함이 많은 자 중에서 고른다.

무슨 말이냐.

밧줄 다섯 개를 가진 자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가 있다.

그럼 협회장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에게 저 스스로 밧줄이 되어 준다.

그 줄 하나에 매달려 다른 것을 보지 못하도록.

일종의 구원을 통해 길들이고 복종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방식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사심이 섞인 구원이라도 누군가에게 기회가 된다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다만.

‘구원이 무조건 맹목성이 되는 건 아니지.’

배고픈 자에게 빵을 내밀었다고 고맙단 인사를 받으리란 보장이 없다.

도움을 줬다고 그 도움이 무조건 되돌아오는 건 아니란 거다.

호의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제각각이기 때문.

이안이 상념에 잠긴 사이 협회장이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다소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하려는 거였다.

그의 엉성한 손길이 마뜩찮은 것인지, 침대맡에 정물화처럼 서 있던 스물 후반의 남자가 움직였다.

남자의 손길에 금세 협회장의 산발한 머리카락은 깔끔해졌다.

“아,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 경황이 없어 인사가 늦었군요.”

협회장은 고개를 정중하게 숙여 보였다.

아니지. 정중하다 못해 이마가 침대 시트에 닿을 정도였다.

그게 또 마음에 안 드나 보다.

협회장 곁에 딱 붙어 있던 남자의 미간이 옅게 구겨졌다.

그런 남자에게 눈짓을 보낸 협회장이 이안을 향해 사근사근한 어조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일이었을 텐데.”

협회장의 인사에 담긴 정중함.

그것을 한동안 말없이 보던 이안은 별거 아니라는 양손을 내저었다.

“서로 돕고 사는 거지요.”

“그렇지만 도움만 받고…….”

“언젠가 내가 협회장님의 도움을 받을 날이 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

채무가 발생한 시점부터 호의는 빚이 된다.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부채감이 생기면 뭔가를 해 줄 수밖에 없으니까.

협회장은 반들반들한 미소를 내보였다.

“그럼 빚으로 달아 두겠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제가 필요하면 말해 주세요.”

“언제든지요?”

“예. 아무 때고, 설령 10년 후라도.”

“흠. 그렇다면…….”

이안은 이때를 위해 밑밥을 깔았다는 양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더는 빼지 않겠습니다. 실은 말입니다. 그 도움, 지금 필요합니다.”

“지금이요?”

“예. 협회장님만이 해 주실 수 있는 일이라서요.”

“하하. 두 번 묻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뭐가 됐든 목숨 빚을 졌으니 성심껏 돕겠습니다.”

협회장이 하얀 턱을 쓸며 흔쾌히 허락했다.

성긴 문지름에 눈길을 둔 이안이 그의 말꼬리를 덥석 잡았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그분께 저를 소개해 주시길 청하겠습니다.”

“……그분?”

“지고한 자리에 앉아 있는 분 말입니다.”

“지고한 자리라면…….”

“황제 폐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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