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65화 (165/214)

제165화

플로나 마을에서 돌아온 그 날 저녁.

이안은 개인적인 보고를 겸해 아버지를 만나러 집무실로 향했다.

“흐음.”

[일도 잘 해결됐는데 어째 그런 표정인고.]

“아, 뭐 좀 생각하느라.”

[무얼?]

“살리카 가주의 사냥개 라이라프스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이번에 그놈이 오지 않았구나.]

“그게 지난 생이랑 다른 점이지. 우리로서는 다행인 점이고.”

[그땐 그놈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학살을 주도했으니.]

겨우 주민의 2할만 살아남았다.

필사적으로 아이들과 부녀자를 지켜낸 치안대 덕에.

종가에서 세 시간 걸리는 거리를 단 20분 만에 주파한 히루푸스 덕에.

하나 그 20분은 4대 원소를 다루는 라이라프스가 한 마을을 궤멸시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기실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수밖에 없는 어느 촌구석이라면 이해한다.

하지만 플로나 마을은 아니었다.

아케랑코의 최대 생산지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치안대인데 어디 보통이었겠는가.

대개가 카르디아 1성의 강자들이었다.

거름망을 지고 가는 농부도 카르디아 1성, 농부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할머니도 카르디아 1성.

발에 채는 게 카르디아 1성인데 라이라프스에게는 한 입 거리일 뿐이었다.

한 입 거리.

‘이번에 막지 못했다면 예전처럼 그리되었겠지.’

눈썹을 까닥거린 이안은 묘한 눈길로 꼬마 녹스를 내려다보았다.

은빛 정수리가 유난하게 탐스러운 수호자 녹스.

가만 보면 수많은 일의 변수는 결국 수호자란 존재로 귀결된다.

녀석을 가졌느냐 아니냐로 일의 성공 여부가 극명하게 갈리니까.

“플로나 마을 일에 사냥개가 투입되지 않은 게 아마 그 때문이겠지?”

[성취가 시원찮아서일 게다. 가짜 알을 먹었으니 뭐. 등급도 진즉부터 에르그에서 멈췄을 터.]

“원래는 이쯤부터 4대 원소를 자유자재로 다루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살리카 가주가 그거 시험해보겠다고 겸사겸사 사냥개를 보낸 거였거든.”

[하! 시험 삼아? 사람 목숨을 놓고…….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것들.]

고작 그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해보려고.

그 힘을 능히 쓰면 슬슬 다음 계획을 진행하려고.

고작 그런 이유로 살리카 가주는 생목숨을 무참히도 도륙했었다.

“사냥개가 혹여 온다면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하나 싶었는데…….”

살리카 가주가 저지르는 모든 악행의 시작과 끝에 맞닿아 있는 인물.

라이라프스 살리카.

그는 괴물이 만들어낸 괴물이었다.

그리고 녹스 말마따나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인간임이 틀림없었다.

증오에 증오를 덧대도 제가 품은 것들이 과하다 말할 수 없는 놈.

한데…….

그런데도 궁금하긴 했다.

염병 천병하게 창아리 없단 생각이 들면서도 알고 싶긴 했다.

현재 그 작자는 무엇을 하고 어떤 상태로 있는지.

* * *

다음날, 뷔트시겐 저 제5 연무장.

이안은 평소와 다른 연무장의 분위기를 찬찬히 살폈다.

긴장감?

그것 하나로 퉁 쳐버리기에는 더 복합적인 무엇이 있었다.

고양감과 들뜸이 함께 버무려져 생도들의 주변을 떠돌았으니까.

저러는 이유야 명확했다.

‘사령관들.’

각 군의 사령관들이 단상에 일렬로 서 있었다.

생도들에게는 거의 우상과 같은 존재들.

그들이 같은 공간에 있으니 생도들로서는 들뜰 수밖에.

말하자면 이런 거다.

녹스가 존경해마지 않는 빨간 책의 저자를 만난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하여 생도들 모두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볼이 불그죽죽했다.

반면.

‘사령관들은 하나같이 무표정이군.’

웃으면 누가 구박이라도 하나 싶게 딱딱했다.

아마도 날이 날인지라 그러는 것일 터.

생도들의 사기 고취를 위해 매년 행해지는 전통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첫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어린싹을 사령관들이 직접 격려하는 전통 말이다.

“임무를 수행하느라 고생 많았다.”

단상의 제일 앞쪽에 서 있던 교관 알란이 여느 때처럼 입을 뗐다.

그는 딱히 들뜨는 구석이 없이 차분했다.

“제군들이 올린 보고서는 사령관들에게 잘 전달되었다. 제군들을 평가한 플로나 마을 주민들의 보고서도 함께.”

“…….”

“그것과 여러 가지를 종합해 첫 임무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생도에게 황금 가지를 수여하겠다.”

생도들에게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황금 가지는 일생에 단 한 번만 얻을 수 있기에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나.

‘저걸 받으면 수료식 때 각 군의 선택을 모두 받는다는 설까지 있어 더 특별해졌지.’

따지고 들자면 근거가 전혀 없는 말도 아니었다.

이날 황금 가지를 받은 자들은 모조리 설대로 되었으니까.

한 명도 빠짐없이 말이다.

알란은 술렁거림에 ‘조용’이라는 말을 내뱉곤 말을 이어갔다.

“호명하는 생도는 단상으로 올라오도록.”

괜히 뜸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지 그가 곧장 이름을 불렀다.

“이안 뷔트시겐 그리고 레브 아르데슈.”

그 즉시 연무장에 있는 모든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시선의 폭격에도 그저 이안은 덤덤하게 단상으로 올라섰다.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특유의 무미건조함과 느릿한 발걸음.

여유로운 태도를 선보이며 사령관 앞에 선 이안은 정중히 묵례했다.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더군.”

그런 이안을 보며 제일 왼편에 있는 중년 남자가 흡족함을 드러냈다.

검은 늑대라 불리는 기사단의 사령관.

그는 처진 눈꼬리로 인해 순하게 보이는 미중년이었다.

외모만 놓고 보자면 무던해 보이나.

‘실제로는 생각이 많고 무척이나 신중한 자이지.’

기사단 사령관은 신중한 만큼 꽤 강박적인 면이 있었다.

작전이 수립되는 날이면 그걸 뜯어보고 또 뜯어보고.

수백, 수천 번을 훑어본 후에야 작전지를 손에서 놓았다.

그 탓에 작전에 참여한 이안 역시도 수시로 날밤을 까야만 했었다.

“앞으로를 기대하겠다.”

사령관이 이안에게 황금 가지를 건네며 짤막하게 덧붙였다.

그의 마지막 말 때문일까.

손바닥에 놓인 황금 가지가 조금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를 지나친 이안은 옆으로 이동해 다음 사령관을 만났다.

‘늑대의 그림자라 불리는 정보부.’

늑대가 하울링 하는 문양을 상징으로 쓰는 곳.

정보부의 사령관은 날렵하고 늘씬한 40대 후반의 미인이었다.

그녀는 성정이 평소 조용조용한데, 술만 들어가면 제2의 인격이 튀어나왔다.

마치 광견병 걸린 개가 된달까.

표현 그대로였다.

그녀는 꽐라가 되면 뷔트시겐 저 어느 구역에 자리 잡고선 은신을 한 채 지나가는 사람을 물었다.

진짜 물었다.

그렇게 기절시킨 사람을 산처럼 쌓아놓는 술주정은 정말.

그러니 어떻겠는가.

그녀가 술을 입에만 가져다 대도 다들 줄행랑부터 친다.

수하든, 친구든, 그냥 어쩌다 한 공간에 있게 된 이들이든.

“제법 잘 해냈더군.”

정보부 사령관은 점잖은 폼새로 이안에게 황금 가지를 건넸다.

단지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그녀의 삼백안 때문인가.

어쩐지 발끝이 서늘해지는 것 같았다.

마주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왠지 발밑까지 꺼지는 느낌이라 이안은 얼른 걸음을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히루푸스라고 불리는 공중 부대.’

월등히 실력이 뛰어나고 소수 정예로 구성된 군.

히루푸스의 사령관은 50대 후반의 남자로 얼굴에 두건을 칭칭 감고 있었다.

체격이 건장하다는 것 빼고는 아는 정보가 전무했다.

그와는 접점이 별로 없어 딱히 기억이랄 게 없었으니까.

히루푸스는 오직 가주의 명만을 듣고 움직이기 때문.

“지휘를 함에 있어 거침이 없더구나. 그건 너의 장점이다.”

“아, 감사합니다.”

“지휘권자가 확신이 없으면 그것을 알아챈 병사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이지.”

“…….”

“장점은 갈고 닦아야 네가 휘두를 수 있는 예리한 무기가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것.”

히루푸스의 사령관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황금 가지가 두 개 놓여있었다.

“표면적으로 뷔트시겐의 군은 셋이지만 본디 하나를 더 셈해야 한다.”

“친위대.”

“맞다. 그들 또한 너에게 황금 가지를 보냈다.”

친위대 것까지 더해지며 이안이 받은 황금 가지는 총 네 개가 되었다.

사령관들의 격려가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다.

주어진 차례가 끝이 났으니 이제 자신의 순서라고 생각한 걸까.

알란이 뿌듯한 표정을 하곤 이안에게 다가왔다.

“도련님,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교관님.”

이안은 공적인 자리임을 감안해 경어를 썼다.

그의 존대에 알란이 순간 멈칫했다.

어떻게 응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

잠깐 그러더니 그는 교관으로서의 면모를 내보이며 이안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것.”

“아.”

“마지막 황금 가지입니다. 모든 군의 통솔자인 총사령관님이 주시는 것이지요.”

“가주님의…….”

“예, 그분께서 제게 이것을 보내며 ‘첫 영광이 바래지 않기를.’이라는 말을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

최종적으로 이안 손에 쥐어진 황금 가지는 다섯 개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게가 그의 손아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로 인해 동상처럼 가만히 서서 황금 가지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와아아아아! 역시 우리 대장!”

“진짜 멋지다, 이안!”

아이들이 목청을 높여 환호하며 축하를 보내 왔다.

질시 하나 없는 오롯하게 기쁨만 담긴 순수한 인사.

이점이 흥미를 끌었는지 사령관들이 묘한 눈길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 * *

복작복작하던 연무장을 쓸어내듯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이안은 끝까지 남아 있다가 단상에 앉아 있는 알란에게 다가갔다.

생도들의 상태를 열심히 기록 중인지 그의 깃펜이 바삐 굴러갔다.

둥글게 말린 깃펜을 잠시 보다 이안이 조심스레 알란을 불렀다.

“알란.”

“아직 안 가셨습니까. 이제 점심이라 누구보다 먼저 가실 줄 알았는데.”

“아, 점심보다 중요한 게 있어서.”

“예?”

“그대에게 줄 게 있거든.”

“저에게 말입니까?”

“응.”

즉답한 이안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가볍게 날려 보냈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무엇.

그것은 무사히 알란의 손에 안착했다.

얼떨결에 받은 알란은 제 손안에 들어온 것을 확인해 보았다.

“……황금 가지.”

이것을 왜 저에게?

알란은 의아함을 품은 채 이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훈풍이 돌고 있으나 평이한 낯에선 뭔가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어찌하여…….”

“말했잖아. 증명해 보이겠다고.”

“증명 말입니까.”

알란이 그 단어를 곱씹으며 반문하자 이안은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황금 가지가 그 시작이야. 그대들에게 꽃길을 깔아주겠다는 것에 대한 시작.”

“도련님…….”

“난 그대들에게 약속했고, 그것을 지키는 건 나의 의무니까.”

“하지만 제가 어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일생에 한 번뿐인 영광인 이것을요.”

알란이 선뜻 받겠다고 하지 않자 이안은 숨김없이 속내를 끄집어냈다.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받아.”

“하나…….”

“정히 못 받겠으면 그렇게 생각해. 내가 부담을 지우는 거라고.”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수지 타산이 안 맞지 않습니까.”

“안 맞으니까 부담이지. 난 앞으로 열 배, 백 배로 계속 부담스럽게 할 거야.”

“그리 받았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겠습니다.”

“탈이 나도 넘치게 받아.”

이안은 단단한 표정을 하고는 황금 가지를 매만지는 알란을 직시했다.

복잡미묘하긴 해도 저를 보는 알란의 눈빛만은 늘 올곧았다.

지난 생과 똑같이.

‘알란과 호위대는 언제나 그랬지.’

예언자 시절, 저를 보는 시선들은 대개가 비슷했다.

반편이 적자에 대한 동정.

사람을 잡아먹는 예언자에 대한 껄끄러움, 혹은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을 보는 불편함.

오장육부를 헤집는 시선들 속에서 알란과 호위대는 한결같았다.

그저 자신들이 모시는 주군.

그저 딱 그렇게만 그를 바라보았더랬다.

그래서였다.

최후의 최후까지 몰려도 이안은 저 자신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란 보호막이 하나둘 깨지는 상황에서도 사람다움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러니 이것은 명확하게 수지타산이 맞는 셈법이었다.

황금 가지를 보며 이안은 재차 다짐하듯이 입을 열었다.

“배 터지도록 넘치게 받고 다시 한번 날 따라와.”

“다시 한번…….”

“알란 유피테르, 그대의 죽음까지 영광이 될 수 있게 해줄게.”

희미한 열감까지 느껴지는 음색이었다.

이안의 다짐이 얼마나 뜨거운지 절절히 알 수 있는.

때때로 이안의 말들이나 행동이 알란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를 몇십 년 아는 사람처럼 살갑게 대하니까.

하지만 그 친근함이 단 한 번도 기분 나빴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우월감을 주었으면 주었지.

“이안 도련님.”

“어?”

“설령 도련님을 따르는 길이 초라한들. 아니 죽음까지 비참하다 해도.”

알란은 제가 가장 아끼는 번개 정령을 소환했다.

삼색 고양이가 나타나자 그는 녀석이 제 발치에 딱 붙도록 했다.

고양이는 알란이 원하는 대로 의젓하게 앞발을 모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안다는 것처럼.

양순한 고양이를 쓰다듬은 후 알란은 이안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정령과 함께 누군가에게 허리를 숙이는 것.

이는 정령사가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예였다.

“저는 언제까지고 이안 뷔트시겐, 당신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제 한 점 숨이 사멸하는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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