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고마, 고맙습니다. 도련님.”
“…….”
촌장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의 뒤로 배웅을 나온 마을 사람들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안이 아니었으면 폭사 당해 죽었을 것이다.
감사 인사를 전하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이안과 아이들은 나아갔다.
생전 처음 존경이 담긴 배웅을 받게 된 탓일까.
올리브의 얼굴이 자꾸 괴상하게 찌그러졌다.
우쭐거림에 실실거림, 점잔을 떨어야 한다는 강박까지.
표정 관리를 해보려다 실패한 몰골이 아주 볼만했다.
이러는 게 비단 올리브뿐이랴.
호위대의 표정도 거의 비슷했다.
다만 나이와 경험의 숙련도가 만든 무표정이 올리브 같은 꼴은 면하게 했을 뿐.
멋지게 잘 나아가다가…….
“꾸에엑.”
올리브가 화살에 꿰뚫린 멧돼지처럼 비명을 토해냈다.
달랑달랑.
마을을 벗어날 유일한 수단, 낡은 수레가 그들을 반겼기 때문이다.
‘어서 와, 이번이 두 번째지?’
라고 말하는 수레는 어째 저번보다 연결된 줄이 더 얇아진 것도 같았다.
급격히 시들시들해진 올리브의 옆.
이안은 올리브의 변화에 피식 웃다가 돌연 얼굴을 굳혔다.
끼기긱.
수레를 지탱하는 낡은 줄에서 나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려서였다.
‘……이건?!’
기이이익. 끼긱.
이안의 추측에 확신을 주듯 기괴한 소리가 다시 한번 밀려 들어왔다.
에룹티오?
진즉에 그것들을 제거하고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끝내지 않았던가.
레브가 알아낸 정보로 재확인하는 작업까지 마쳤는데…….
[이안! 소리 들었느냐?]
이안뿐 아니라 녹스 역시 대번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소리가 약간 달랐지만 분명 그것이었다.
[나랑 너, 호위대까지 여러 번 확인했는데 어떻게?]
녹스의 의문을 비웃으려는 듯 또다시 쇳소리가 났다.
“……빌어먹을.”
이안은 제가 동요하면 주변이 더 소란스러워질까 봐 격해짐을 내리눌렀다.
혼란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마을 특성상 관리자를 제외하곤 주민 전부가 마력을 운용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어느 때보다 침착해야 할 때라 이안은 촌장에게만 들리도록 나지막이 속삭였다.
“좀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아직 제거되지 못한 폭탄이 있는 듯합니다.”
“예?!”
“서두르지 말고 최대한 차근차근 워프 게이트까지 대피하십시오.”
이안의 가라앉은 낯빛에 촌장은 생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폭탄에 관한 얘기는 일단 하지 마십시오.”
“예. 잘 얼버무려 주민들을 인솔하겠습니다.”
촌장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연신 이마를 훔치는 촌장의 곁.
레브가 촌장을 진정시키려고 그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며 물의 기운을 흘렸다.
“이안,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게. 넌 네 일을 해.”
듬직한 레브에게 동조하듯 올리브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와 동시에.
“저희는 그것을 찾겠습니다.”
리오와 호위대가 눈치껏 제 할 일을 빠르게 찾아갔다.
더 설명할 것도, 말을 나눌 것도 없었다.
지체할 때가 아니라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발길을 옮겼다.
소리가 저 먼 곳에서 메아리치듯 웅웅 거리며 나고 있었다.
마을의 깊숙한 곳에서.
“폭탄을 소리로 찾는 건 오래 걸리는데.”
중얼거린 이안은 자신의 왼쪽 눈을 문질렀다.
* * *
오쿨루스의 결.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것이면 폭탄을 신속하게 찾을 수 있다.
이안은 망설이지 않고 오쿨루스의 결을 시전했다.
츠즛.
눈 위로 그려지는 미밀 나무 모양의 진.
이후 공간이 선으로 구성되며 무수한 정보를 쏟아냈다.
소리, 냄새, 형태, 감정 등등.
공간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이안의 머릿속에 범람했다.
통상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양에도 머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다.
뿐일까.
“지난번보다 쏟아지는 정보를 구별하는 게 더 쉬워졌다.”
[네놈이 성장했으니까. 감당할 수 있는 연산의 양이 많아진 것이다.]
“그럼 3분을 더 알뜰히 쓸 수 있겠네.”
이안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러는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을 자세히 탐색했다.
따로인 듯 보여도 오랜 세월을 거치면 어떤 장소는 하나의 덩이가 된다.
흔히 장소가 주는 느낌이라는 건 그리 만들어진다.
하여 찾아야 할 것은 이질감을 주는 무엇이다.
사자 무리에 토끼가 하나 있는 것 같은 그런 이질감.
섞이지 못하고 튀는 것을 찾는 것이라 오감을 모두 예리하게 벼렸다.
안쪽으로, 마을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다 보니 이안은 어느새 마을의 끄트머리에 도달했다.
“……없다.”
[그러게. 분명 소리가 이쪽에서 났는데.]
벌써 3분이 지나가는데 폭탄을 찾지 못했다.
따지고 들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바람의 선을 접어서 이동이 빨랐던 거였다.
아니었으면 마을 중반도 오지 못하고 오쿨루스의 결이 끝났을 것이다.
……어쩌지?
이안의 낯빛이 굳어가던 그때였다.
기이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그의 귓가를 긁어내렸다.
또다.
이번 역시 빗물이 번지는 것처럼 파동이 구불구불 퍼져왔다.
“아무래도 이거, 소리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술식이 걸려있구나.]
이러면 폭탄을 찾기가 더 힘들 터.
이안은 점차 흐려지는 진과 녹스를 번갈아 보며 어금니를 악다물었다.
오쿨루스의 결의 지속시간을 넘기면 안 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이안은 흐려져 가는 진에 마력을 불어넣어 강제 유지를 택했다.
츠슷.
도로 오쿨루스의 결이 활성화되며 공간의 선들이 진해졌다.
대신 눈알이 으깨져 버릴 것처럼 쑤셔왔다.
[이안 너!]
“폭탄부터 찾아야지.”
[이놈아, 그러다 큰일 난단 말이다.]
“…….”
[자칫하면 시력 상실에, 아니지, 그건 양반이지. 정신이상까지 올 수도 있다고!]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하아. 저 염병할 고집불통.]
녹스의 욕설을 등에 달고 이안은 다시금 마을 초입을 향해 내달렸다.
통증은 무시했다.
기술을 강제하고 있는 터라 시야 역시 자꾸 흐려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급한 건 폭탄을 찾는 거니까.
시간이 갈수록 흐림에 불투명한 막이 덧씌워지더니, 기어이 눈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툭. 투둑.
실핏줄 하나하나가 끊어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났다.
급기야 머릿속까지 광광 울리며 사물들도 뭉그러져 보였다.
이러다가 뇌수가 터져버리겠다 싶던 찰나.
마을 초입에서 움직거리는 검붉은 덩어리를 발견했다.
“찾았……다.”
누가 살리카가 만든 물건 아니랄까 봐 저 혼자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참 역겨운 물결이다.
핏물을 닦은 이안은 폭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폭탄은…….
“아실리.”
“…….”
“그 토끼 인형 좀 볼 수 있을까?”
아이가 꽉 끌어안고 있는 인형 안에 있었다.
피범벅인 이안의 얼굴에 움찔한 아이는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아비가 준 선물이니 선뜻 내주기 싫은 거겠지.
아이는 짧게 고민하다 이내 가져가라는 것처럼 머뭇머뭇 인형을 내밀었다.
“조심히 보고 돌려줄게.”
인형은 무척이나 정교하게 제작된 수공예품이었다.
짙은 벨벳 사파이어를 깎아 만든 청색 눈동자.
멋들어진 웨이스트 코트에 금사가 수놓아진 옷차림.
비색 수정 코끼리의 뿔을 깎아 만든 지팡이.
소품 하나하나가 인형사의 혼을 갈아 넣은 듯 완벽했다.
그리고 이 완벽함에 정점을 찍는 건, 소품에 흐드러지게 박혀있는 보라색 반짝이였다.
‘정령 가루가 장식인 양 발라져 있군.’
정령이 소멸할 때 남겨지는 정령 가루.
이는 어떤 술식이나 결계 등에 섞어 사용하면 그 효과가 다섯 배가량 증폭된다.
한마디로 소리를 교란하는 술식이 새겨진 폭탄을 정령 가루가 감춰주고 있었던 것.
이러니 여태껏 알아차리지 못했지.
이안은 뿌예지는 시야를 무시하며 토끼 인형으로 손을 뻗었다.
* * *
“쓸모없는 호위대 놈들! 도련님을 어떻게 보필했길래. 쯔읏.”
칼브란이 외알 안경을 거칠게 올리며 말을 짓씹었다.
아마 호위대가 옆에 있었으면 그들을 잘근잘근 씹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기세가 사나웠다.
치통을 앓는 사자 같았지만 정작 이안은 덤덤했다.
저러는 것이 벌써 닷새째니까.
즉, 이안이 아라투스 마을에서 돌아온 뒤부터 쭉 저 상태라는 얘기였다.
“그 몹쓸 폭탄을 찾느라 내 도련님 눈이…….”
칼브란은 뒷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현재 이안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낸 순간 영영 그리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제 소견으로는 당분간…… 그러니까 한 일주일 정도는 앞이 보이지 않으실 겁니다. 그것도 최대한 안정을 취하셔야 회복되는 거지 어쩌면…….>
주치의가 다 죽어가는 얼굴로 그리 말했었다.
그 진단을 받자마자 어찌나 억장이 무너지던지.
살리카 가주의 악행을 증명할 증인이고 자시고, 그놈들 머리통을 당장에 뽑아버리고 싶었다.
에휴.
칼브란은 이안의 배를 덮은 침대 시트를 꼼꼼히 눌러 찬 공기가 들지 않게 했다.
“도련님, 어디 불편한 곳이 생기시면 이 칼브란에게는 말해주셔야 합니다.”
“닷새째 그 소리를 천 번은 듣는 것 같다.”
“천 번이 아니라 수십만 번이라도 할 것입니다. 도련님의 눈이 되어드리는 동안은.”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증상 일시적인 거라잖아.”
“……예. 가주님께서도 눈에 좋다는 건 백방으로 찾고 계시니 금세 회복하실 수 있을 겁니다.”
칼브란이 재차 침대 시트를 정리했다.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갈한 침대였으니까.
부산을 떠는 칼브란의 움직임을 쫓다가 이안은 제 눈가, 아니 붕대를 문질렀다.
오쿨루스의 결로 인한 부상.
이것은 가뜩이나 극성인 칼브란의 극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잠깐 외출하는 몇 시간을 빼곤 온종일 제게 딱 붙어있었으니까.
자지도, 쉬지도 않고.
“칼브란.”
“예, 도련님. 뭐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있지.”
“말씀만 하십시오, 뭐든 제가 다…….”
“붕어 똥 같은 칼브란과 좀 선선한 거리를 유지하는 거?”
“……이 늙은이가 귀찮아지신 겁니까. 많이, 섭섭해지려 합니다.”
이제 마흔 줄이면서 늙긴.
이안은 서운해하는 칼브란의 손등을 두드렸다.
눈이 안 보이니 뼈대가 굵고 커다란 손의 형태가 더 잘 느껴졌다.
어릴 적 곧잘 넘어지던 저를 굳건히 잡아주던 그 손이.
“나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자니까 그렇지. 그러다 칼브란까지 골병 나겠다.”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조금이라도 눈 좀 붙이고 와.”
“정말로 괜찮…….”
“얼른.”
이안의 성화에 칼브란은 마지못해 미적대며 일어섰다.
어디 팔려가는 모양새로 그러더니 뭔가가 생각난 모양이다.
갑자기 눈매를 날카롭게 다듬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도련님, 잠시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잠시 말고 푹 쉬다 와.”
이안은 뒤돌아 나가는 칼브란의 발걸음에 귀를 기울였다.
휴식은 개뿔.
영락없이 먹잇감을 잡으러 가는 사냥꾼의 보폭이었다.
보아하니 또 눈에 좋다는 뭔가를 구하러 가는 것 같다.
사흘 전에는 검은발톱키네러스를 잡아 왔었다.
키네러스는 마수 중에서도 몸집이 유달리 크고 사나운 종이다.
특히 발톱에 독이 묻어 있어 그 발톱에 살갗이 긁히면 즉사한다.
그 위험한 것을.
<이놈이 눈에 좋다 하더군요. 구워드릴 테니 다 드셔야 합니다.>
칼브란이 왕창 사냥해오는 바람에 사흘 내내 새구이를 먹었더랬다.
눈에 좋다고 하면 빙하 저 깊숙한 곳까지 다녀올 태세였다.
말린다고 저 인사가 제 말을 들을 리가.
이안이 못 말린다는 표정을 선하게 짓고 있는데.
[너 하나로 인해 집안이 아주 미쳐 돌아간다.]
녹스가 제 은발을 쓸어 넘기며 말을 걸어왔다.
[네 아비와 칼브란은 맨날 보신용 마수를 구하러 다니지, 총주방장은 눈에 좋은 요리만 만들어 대지, 바닥 미끄러우면 도련님이 넘어진다고 사용인들은 마른 걸레질을 미친 듯이 해대지. 아이고오.]
장탄식이 길었다.
살다 살다 이런 것들은 처음 본다는 기막힘이 숨에 알알이 얽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