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력 없는 놈 치고 천재 아닌 놈 없다-196화 (196/214)

제196화

1시간 후.

이안은 클로에의 전담 하녀를 만나고 오는 길에 알란과 마주했다.

조금 다급해 보이는 걸음새였다.

“도련님, 클로에 님이 계신 곳을 파악했습니다.”

“어디 계셔?”

“렐리혼 연구소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거긴 일전에 교수님이 데려온 여자가 갇혀 있던 곳인데…….”

이안이 뭔가를 골몰하며 뒷말을 흐리자 알란이 말을 덧댔다.

“한데 도련님,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어떤.”

“클로에 님의 행방을 찾는 과정에서 살리카와 여러 번 마주쳤는데 말입니다. 저희가 이쪽저쪽 쑤시고 다녀도 그것들이 전혀 개의치 않고…… 아니지, 오히려 클로에 님의 행방을 흘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음.”

“대체 그것들 꿍꿍이가 뭔지.”

“일부러 그러는 거야.”

“예?”

의아함에 알란이 눈썹을 끌어올리자 이안이 바로 답했다.

“살리카 가주가 시켜서 낚시하는 중이라고.”

“대체 뭘 낚으려고…….”

말을 하는 도중 알란의 눈썹이 일자로 내려앉았다.

더 듣지 않아도 무엇일지 알 것 같았다.

그 탓에 알란의 동공이 자연스럽게 이안의 얼굴로 꽂혔다.

“설마.”

“어. 날 낚으려고 수작질하는 거지. 클로에 교수님을 미끼 삼아서.”

살리카 가주가 한 말을 떠올려보면 확실했다.

연구소에 덫을 깔아놓은 채 저를 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이로 보아…….

이미 반쯤은 확신하는 것 같았다.

제가 알을 얻었다는 것에 대해.

“때론 함정인 줄 알면서 걸려들어야 할 때가 있지.”

“도련님.”

“아버지께 전해줘. 잠깐 렐리혼 연구소에 다녀오겠다고. 그리고 원래 진행하려던 건은 예정대로 진행하시라고도.”

이안의 말이 끝나자 알란이 뒤에 있는 수하에게 속닥거렸다.

대충 ‘난 도련님 옆에 있을 테니 네가 말을 전해라.’ 뭐 그런 거였다.

그 사이 이안의 시선은 살리카 가주가 기거하는 곳에 머물렀다.

저 하나 잡자고 제 동생을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있는 살리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뭐.

정말이지 이 갈리는 작태였다.

이안은 인상을 구긴 채 즉각 렐리혼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는 상업지구에서 서쪽으로 한참 빠져야 나온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가죽 공방의 창고.

창고 안은 무두질을 마친 온갖 털들의 냄새가 고여 독특한 향취를 풍겼다.

시체 썩는 냄새 같기도 하고, 누린내 같기도 한.

코를 찡하게 하는 내부를 가로질러 이안 무리는 창고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으레 그렇듯 막다른 벽이 그들을 반겼다.

“도련님, 이 안쪽에서 스산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그 안이 실험실이니까. 살리카 그 작자가 사람의 생목숨을 제멋대로 칼질하는 곳.”

“한데 그냥 밀고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기이한 암호가 걸려있어서. 이런 암호는 잘못 건드리면 건물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데.”

알란이 난감해하자 이안은 가죽이 즐비한 진열대를 가리켰다.

그의 손이 끝나는 방향으로 호위대의 고개가 틀어졌다.

“암호를 푸는 거야 간단해.”

“…….”

“벨렘의 털, 긴 꼬리 늑대의 털, 뾰족귀 하피의 털, 북풍 예티의 털, 그걸 벽에 차례로 걸면 돼.”

이안은 능숙하게 벨렘의 털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다음 털도 차례차례 순서대로 벽에 걸었다.

거침없는 손길에 알란과 호위대의 입이 딱 벌어졌다.

머리 색만 아니라면 영락없이 살리카 쪽이라고 해도 무방할 동작이었다.

호위대의 눈길 따라 예티의 털이 치렁하게 걸린 찰나.

차강차강.

철끼리 부닥치는 소리가 이어지며 벽이 양 갈래로 쪼개졌다.

그 틈이 넓어질수록 처음에 느꼈던 스산함이 더 시리게 파고들었다.

매캐한 그을음의 냄새도 진해졌고.

“도련님,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이안이 암호 푸는 것을 멀뚱히 보고만 있던 때와 사뭇 달랐다.

알란은 호위답게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며 선두를 걸었다.

그 뒤에 이안이 자리하고 제 뒤를 호위대가 따랐다.

명백히 자신을 보호하려는 진영이었다.

하여튼.

임무만 나오면 꼭 이 진영이다.

그들 때문인지, 아니면 연구소란 장소 때문인지.

지난 생의 어느 날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상념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뒤엉킨 과거와 현재의 편린을 걷다 보니 금방이었다.

경계심 어렸던 걸음이 어느샌가 연구소의 중심부에 당도해 있었다.

* * *

“이게 무슨…….”

알란과 호위대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처참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좁디좁아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우리 같은 공간.

살점과 체액이 뒤엉켜 우둘투둘한 창살과 오줌 지린내가 강하게 올라오는 바닥.

짐승의 발자국처럼 찍힌 핏자국이 흙처럼 굳어진 벽.

그야말로 기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실험실이란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방치됐다는 건 그 쓸모가 다했다는 얘기였다.

그를 증명하듯.

축 늘어진 채 탁해진 동공에선 생명의 징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진즉 숨이 끊겨버린 자들도 있었다.

산 자를 찾기 힘든 철창들을 지나고 나자 그때에야 클로에 교수가 보였다.

“교수님!”

이안은 기절한 클로에의 상태를 재빠르게 확인했다.

의식만 잃었을 뿐 다행히 크게 상한 곳은 없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며 이안은 클로에의 팔을 살살 흔들어 의식을 깨웠다.

“교수님, 클로에 교수님.”

수십 번을 부른 후에야 클로에의 눈꺼풀이 떨려왔다.

파들파들 떨리는 속눈썹이 들어 올려지고 드러난 멍한 동공.

“……이안?”

“정신이 드십니까.”

“네가 여길 어떻게…….”

벌떡 상체를 일으키던 클로에는 사슬이 당겨지면서 뒤로 팍 고꾸라졌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깨달았기 때문일까.

목과 발에 채워진 쇠고랑을 확인하자마자 그녀가 씨근덕거렸다.

“살리카 이 개새끼가!”

창자를 뽑아다 가지치기라도 해야 이 분이 풀리지.

아니지, 거기를 썰어다가 잘근잘근 다져버려야 이 속이 풀리지.

클로에가 필터를 거치지 않은 욕지기를 마구 쏟아냈다.

약에 취한 중에도 교수님의 입담이 돌아온 걸 보니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일단 빠져나가야 합니다, 교수님.”

클로에에게 물러나라 말한 뒤 이안은 철창을 사정없이 부서트렸다.

대지의 기운에 가루가 되어버린 창살.

그 가루를 으깨듯 밟으며 이안은 쇠고랑마저 끊어냈다.

순간.

키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이안의 손등을 타고 흘러들었다.

그 감각이 무언지 깨닫기도 전.

입구 쪽에서 번개가 치듯 된 폭발음이 들려왔다.

콰아앙!

그와 동시에 연구소가 심하게 흔들렸다.

진동의 여파가 어찌나 거센지, 사방에서 뜯겨나간 돌멩이들이 우수수 낙하했다.

대중없이 추락하던 돌들은 핏자국이 굳은 바닥에 푹푹 박혔다.

“도련님을 보호해라!”

알란의 명에 호위대는 날렵하게 이안을 에워싼 채 보호막을 생성했다.

얇은 막이 이제 막 단단해지려던 찰나.

콰과과광!

찢길 듯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 폭발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도련님!”

* * *

열띤 회의를 하다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

수행원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과 후계자에 관한 자랑을 은근히 늘어놓았다.

노상 똑같은 풍경이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다만 이번만은 다른 점이 있긴 했다.

이럴 때마다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던 뷔트시겐이 참전했다는 것.

“초대 황제의 현신이라고들 하지요.”

대회의장을 낙낙하게 메우는 우쭐거림.

그 속에 묻어있는 기분 좋음이 살리카 가주의 귓가를 쿡쿡 찔러왔다.

자못 거슬렸지만, 원체 낭창해서 무시도 되지 않았다.

눈썹을 꿈틀한 살리카는 목소리의 주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뷔트시겐 가주의 꼬리인 칼브란이었다.

칼브란은 시선의 포화 속에 외알 안경을 우아하게 추켜올렸다.

“누가 그런 영광스러운 수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내 도련님 말고.”

“아무렴. 우리 도련님이나 되니 세간에서 그리들 부르는 게지.”

칼브란의 팔불출에 살포시 숟가락을 얻는 건 1장로였다.

1장로는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며 자랑을 이어나갔다.

“보시게. 벌써 에르그 3성을 이루지 않았나.”

“중요한 건 마력핵을 얻은 지 고작 반년이 조금 넘었다는 것이지요.”

“허허. 이 노부가 가장 중요한 것을 그만 깜빡했군.”

“한데 1장로님, 참으로 다행이지 않습니까.”

“무엇이?”

“카르디아 승급 시험이 6월에 있는 것 말입니다.”

“오오?”

“솔직히 다른 분들이 기 죽을까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6월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도련님의 등급이 카르디아 1성이었을 테니까요.”

칼브란은 얼 그레이로 성대를 촉촉이 적셨다.

아직 할 말이 많은데 목구멍이 말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곤란했다.

홍차로 충분히 예열한 후 칼브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요즘 도련님을 보고 있으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껄껄껄. 자네도 그러한가. 나도 그러하이.”

1장로와 칼브란은 죽이 잘 맞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너무 잘 맞아 요란스러웠다.

그들의 수다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인 것을 보면 그러했다.

강제적 침묵이었다.

아무리 잘나도 이안의 성취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였으니까.

둘의 자랑질에 다른 수행원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질투조차 하지 못했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취를 두고 질투를 보태봐야 졸렬해 보일 뿐이란 걸 알아서였다.

하여 수행원들 모두 어색한 표정만 짓고 있는데.

“크하하핫. 이안 그놈이 난 놈은 난 놈이지.”

발리올 가주가 끼어들었다.

그는 근손실을 우려해 울끈불끈한 팔을 뒤로 당겼다 펴며 입을 놀렸다.

“토굴에서 같이 수련을 해 봤는데 말이야. 기술의 이해력과 응용력이 괴물 수준이더라고.”

“오. 가주님도 그것을 느끼셨습니까.”

발리올 가주의 말에 첨언을 단 건 칼브란이었다.

도련님을 칭찬하는 일이라면 그게 슬라임이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넉살을 갖춘.

칼브란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주절거렸다.

“지겹게 하는 말이지만 우리 도련님은 천재에 만재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요.”

열변을 토하는 칼브란과 맞장구치는 발리올 가주, 그리고 추임새를 맛깔나게 넣는 1장로까지.

참 꼴값이었다.

자신들이 자랑스러워 마지않는 그놈의 성취, 그 성취가 어디서 온 줄조차 모르는 무지렁이들.

보면 볼수록 저들의 무식한 행태가 참으로 우스웠다.

훔친 것을 제 것인 양 움켜쥔 새끼 늑대도 마찬가지였고.

‘정말 그것이 불을 운용할 줄은.’

어제 용암에서 느껴지던 마력의 기운은 분명 그놈 것이었다.

바람이 불을 다루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수호자를 얻었다는 증거 말이다.

가주의 입가가 짙게 비틀린 그때였다.

콰과광 하는 굉음과 함께 대회의장의 건물이 거세게 흔들렸다.

얼마나 드센지 집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슨 일이냐 묻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집사장이 황급히 뛰어왔다.

집사장의 걸음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가주님, 렐리혼 연구소가 폭발했습니다.”

“렐리혼이?”

가주의 음색이 슬쩍 높아지자 집사장이 움찔했다.

“예. 그리고 원체 폭발의 규모가 커서 생존자가 한 명도 없다고 합니다.”

“흐음. 정말로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는가.”

“……예.”

집사장의 답을 들은 살리카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제 계획이 성공했으니 아니 그럴까.

천지를 뒤흔든 폭발은 클로에를 미끼로 한 낚시가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클로에의 사슬이 발화장치였으니까.

새끼 늑대가 알의 주인인 것을 확인한 이상 기필코 죽여야만 했다.

그놈이 살리카에 있을 때.

찰나 안광을 번득인 살리카는 뷔트시겐 가주를 응시했다.

새끼를 잃은 아비의 표정을 낱낱이 음미해보고 싶었다.

그 마음을 투영한 듯 마침 그쪽에서도 하인이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가주님, 건물이 무너지며 그곳에 계셨던 도련님이…….”

“도련님이? 도련님이 어찌 되셨다고?”

칼브란이 장소도 잊은 채 새되게 외쳤다.

그의 목청만큼이나 뷔트시겐 것들의 표정 또한 한순간에 경악으로 바뀌었다.

그 광경을 느긋이 감상하고 있는데, 살리카의 귓전으로 시종장의 머뭇거림이 들려왔다.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달싹임이었다.

“한데 가주님 렐리혼뿐 아니라…… 키리움 연구소도 폭파되었습니다.”

키리움?

대체 이 무슨 말 뼈다귀 같은 소리인지.

제 지시는 클로에를 렐리혼 연구소에 묶어두고 이안을 유인한 다음 그 연구소를 폭파해 둘을 죽여버리란 거였다.

한데 그것과 아무 상관 없는 키리움이 왜.

모든 연구소의 처음이자 몇백 년의 실험 자료가 가득한 그곳이 어쩌자고.

제가 들은 소리가 맞나 싶어 살리카 가주의 눈꼬리가 있는 대로 치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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