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심도검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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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성의 송군 병영.
많은 사람이 거대한 광장에 모였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었다.
송군 수십 명이 포박된 채 무릎 꿇은 게 보였다.
모든 시선이 정남방에 있는 대원수 고선무를 주목했다.
그 한쪽에는 송태자도 있었다.
포박된 병사들이 아우성, 아니 절규했다.
“그만 풀어줘! 집에 돌아가고 싶다!”
“나는 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웠는데, 그 탐관오리가 내 가족을 죽였다! 나를 풀어달라! 가서 복수하고야 말 것이다!”
“내 식솔들이 다 죽었다! 전부 불에 타죽었어! 우리 부모님 유골이라도 찾으러 가야 돼!”
저마다 충혈된 눈으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고선무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사람들을 응시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초조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이내 고선무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임충, 잘 물어봤나?”
임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도망간 자들 모두 잡아왔습니다. 또한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각 성의 상인들이 오면서 불길한 소식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어떤 지역의 귀족이 병사들의 식솔을 죽였는데, 그중 몇몇이 탈출해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저들은 소식을 듣고 집에 가려다가 붙잡힌 자들입니다.”
“몇 명이야?”
“벌써 삼십 개 집안이 당했습니다.”
고선무가 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고해의 음모가 이미 시작된 건가? 우리 송군의 마음을 어지럽히려고? 흥!”
그 말을 들은 송태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고해의 음모라고?’
송태자가 내심 중얼거리는 사이 고선무가 싸늘하게 물었다.
“어찌 된 것인가? 누가 소문을 퍼뜨리는 거지?”
임충이 말했다.
“상인들입니다. 상인의 시종들 중 각 성의 심부름꾼이나 병사의 가족도 끼어 있었습니다. 은밀히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재수 없는 소식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흔들려 도망치다 잡힌 것입니다.”
송태자의 눈이 커졌다.
“흥! 돈 벌어먹으려고 위해 별짓 다 하는군. 그깟 놈들이 감히 병사의 마음을 어지럽혀? 그놈들 죽여 버리겠어!”
이런 송태자를 고선무가 뜯어말렸다.
“그만 고정하시지요.”
“왜요? 설마 상인 놈들을 편들려는 거요?”
송태자의 말에 고선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지금 병사들의 표정을 보십시오. 고해의 음모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멈추기에는 늦었습니다.”
송태자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굳은 표정의 병사들.
뜻밖에도 그들은 도망치다 잡힌 자들을 동정하는 듯 보였다.
본래 전장에서 겁을 먹고 도망치면 뒤에 남은 병사들은 자연히 도망자를 미워하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병사들의 눈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리가 전장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건가?
부모와 아내, 자식들이 더 좋은 삶을 누리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는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고 있는데, 탐관오리는 멋대로 탈선해도 괜찮단 말인가!
우리 부모를 해치고, 아내를 능욕하고, 자식을 죽여도?!
식솔이 당하면 누구라도 화를 품지 않을 수 없으리라.
도망자?
무슨 개뿔 같은 소리냐?!
이런 미친 상황에 창칼 버리고 전선을 이탈하는 것도 당연하다.
왜냐고?
나라도 도망갈 테니까!
이유는 더 있다.
너희가 말하는 소위 도망자들은 전장에서 생사를 같이한 형제와 같은 사람들 아닌가 말이다.
그들은 가족이 죽은 걸 알고 유골이나마 거두려고 했을 뿐이다.
아마 지금쯤 우리 아내, 자식, 부모도 저 친구들의 식솔처럼 고통 속에서 시달리고 있지 않겠는가?
부모, 아내, 자식도 제대로 보호할 수 마당에 무슨 놈의 나라를 위해 싸워?!
상인들이 나쁘다고?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그들이 나쁘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것은 또 몰라도, 그들은 우리를 위해 후방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럼, 대원수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고선무를 바라보았다.
모두는 공정한 판결만을 기다렸다.
도망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장에서 몸부림치는 모두를 위해서.
송태자는 병사들을 보고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고선무는 태자의 속내를 짐작하고 싸늘히 말했다.
“태자, 보셨습니까? 이제 시작입니다. ‘상인들’을 죽이면 병사들이 소식을 알 수 있는 통로를 막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하면 탐관오리들과 같은 편이 되겠지요. 저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웠는데, 그런 저들의 부모, 아내, 자식을 탐관오리가 죽였다지 않습니까.”
섬뜩해진 송태자가 주저하듯 말했다.
“……이, 이게 고해의 계책이라고? 설마, 그가 우리 송군 내부에서 정변을 일으키려고 획책하는 것이오?”
고선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음모가 틀림없습니다. 전에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는데 어찌 이리도 갑작스레 많은 소식이 흘러들어 왔겠습니까? 삼십 개 집안이 멸족되었다? 누구도 이런 바보짓은 안 합니다. 전쟁 중인 상황에 후방의 탐관오리가 병사의 식솔을 살해하다니. 실로 터무니없는 헛소리가 아닙니까?”
송태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으음. 고해의 계책이 정말 무섭구려. 그나마 대원수가 일찍 발견하여 다행이지, 내가 그 상인들을 죽이고 소식을 막았으면 고해가 또 어떤 수작을 부렸을지 모르거늘.”
고선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오?”
송태자의 근심 어린 질문에 고선무가 엄숙히 말했다.
“이미 고해의 농간 때문에 군심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소식을 통하게 하십시오. 남은 문제는 제가 천천히 풀어보겠습니다.”
마침내 송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선무가 일어나서 크게 소리쳤다.
“모두 들어라! 전쟁 기간에 병사의 집안과 그 식솔을 모욕한 자가 있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사람에게 수십 배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이게 나 고선무의 약속이다! 그대들은 나를 믿고 따르라!”
병사들 사이에서 잠시 웅성거림이 번졌다.
하지만 고선무의 약속은 효과가 있었다.
상당수 병사들의 기색이 다소 풀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의심이라는 이름의 악마가 병사들 마음에 심어진 마당이었다.
그들은 고선무가 이 일을 어찌 처리하는지 끝까지 지켜보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도망자들의 고통에 찬 절규가 이어졌다.
“약속? 뭘로 약속해? 출전하기 전에 내 딸은 두 살밖에 안 되었어! 내 다리를 안고 나를 불렀어! 그런 딸이 탐관오리 놈들에게 밟혀 죽었단 말이야! 내 딸이!!”
“우리 어머니는 나와 동생을 고생스럽게 키우셨어. 매일 돈 벌려고 바느질을 하셨지. 너무 많이 해서 눈도 어두워지셨어! 나는 전공을 세워 포상받으면 어머니를 잘 모시려고 했지. 그런데 현(縣)의 도련님이란 놈이 우리 땅을 탐내서 눈먼 어머니를 태워 죽였어! 아아, 어머니! 이 아들의 불효를 용서하소서!”
“출정하기 전에 막 장가갔어. 아내는 나더러 전장에 가지 말라고 했지.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어. 내가 전선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있을 때, 현에 있는 포리(暴吏)가 아내의 미색을 탐해서 납치해 갔어! 내가 지금 누굴 위해 싸우고 있는 거지?!”
듣고 있던 사람들 상당수가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송태자는 위험한 분위기에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그는 일이 더 크게 벌어지기 전에 병사들을 몰아내려 했다.
그런데 고선무가 태자를 막았다.
“잠깐! 그만두시지요.”
송태자는 풀이 죽은 채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에도 도망자들은 계속 저마다의 사연을 분출해 냈다.
고선무는 도망자들의 사연을 모두 듣고자 했다.
장장 두 시진이 흘러서야 도망자들의 사연이 끝났다.
고선무는 이맛살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광장의 모든 사람들은 고선무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문득, 고선무는 손가락을 내밀어서 삼십 명을 양쪽으로 나누었다.
한쪽은 네 명, 한쪽은 이십육 명으로 나누어졌다.
고선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희들 이야기는 모두 잘 들었다.”
도망자를 죽 훑으면서 그는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자, 이제 모두 내 말을 잘 들어봐라! 이쪽 이십육 명은 어떤 소식을 들었지? 가족이 잡혔다고? 누군가가 가족을 몰래 죽였다고? 죽었는데 시신을 보지 못했다고?”
고선무의 눈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소식을 전해온 사람은 너희 친척이지? 그런데 그들은 너희 식솔을 누군가가 살해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지. 안 그런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소리쳤다.
“그건……!”
“내 동생은 거짓말하지 않소!”
“내 사촌도 속임수를 모르오!”
잠시 지나자 소란이 멈추었다.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고선무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너희 친인척이 속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속은 거라면?”
그 말에 여러 곳에서 우, 하는 고함 소리가 흘러나왔다.
고선무가 다시 말했다.
“이상하지 않나? 전에는 이처럼 흉한 소식이 한꺼번에 쏟아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느 누군가의 수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번에는 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고선무는 엄숙하게 말했다.
“자! 그럼 이것이 누가 꾸민 짓인지 알려주겠다. 이 모든 것은…… 육국수부 고해가 한 짓이다! 고해는 우리 군대에서 반란이 일어나게끔 획책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불신에 찬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럴 리가…….”
“우리가 왜 당신을 믿어야 하오?”
그러나 도망자 스물여섯 명의 안색도 좋지는 않았다.
불신의 반응을 보이면서도 스스로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이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듯했다.
고선무는 상황에 못을 박듯 단호하게 강조했다.
“날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이건 알아 둬라! 시신을 직접 보기 전에는 희망을 버리지 마라! 나는 지금 바로 폐하께 청할 것이다! 각 지방 관청에 사람을 파견하여 너희 식솔의 신병을 전력을 다해 찾을 것이다!”
한 도망자의 눈길에 희망이 떠올랐다.
“……찾을 수 있겠습니까?”
고선무는 분명히 확언했다.
“집집마다 찾아야지! 땅을 세 자 깊이로 파서라도 찾을 것이다. 정말 지방 탐관오리들이 한 짓이면, 내가 폐하께 청을 올려서 너희 식솔을 해친 그놈들을 무조건 참수할 것이다!”
도망자들이 무릎을 꿇고 울면서 말했다.
“대원수께 감사드립니다!”
고선무는 눈이 충혈된 도망자들을 바라보았다.
도망자 중 한 명이 말했다.
“대원수,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눈먼 어머니를 집 안에서 태워 죽인 것을 내 동생이 직접 보았어요. 범인은 현 지사(知事)의 아들놈입니다. 아아, 어머니!”
고선무가 엄숙하게 말했다.
“너희 네 명이 들은 소식은 진짜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 누구든 너희들이 피를 흘린 만큼 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다. 현 지사의 아들놈이라고? 흥! 너희 집에 해를 끼칠 때 동참했던 놈들까지 전부 처형될 것이다!”
“대원수!”
도망자 네 명은 실로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들을 향해 고선무가 다시 한번 약속했다.
“형은 너희가 직접 집행하게 해주마!”
네 명은 감격하여 계속 절을 올렸다.
평생 복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원수가 직접 복수를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선무는 깊은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태자. 제가 당장 폐하께 글을 올리겠습니다. 고해의 계책을 꺾으려면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해야만 합니다. 태자께서도 부디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분위기를 보고 있던 송태자가 흔쾌히 대답했다.
“좋소! 당연히 도와드리겠소.”
고선무는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나 고선무가 약속하겠다! 오늘부터 편지를 보낼 수 있게 허락할 것이다! 단, 군사기밀은 언급하지 마라.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떠나갈 듯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원수!”
“우와아아!”
뒤로 돌아선 고선무는 욕을 내뱉었다.
“망할 놈의 고해!”
임충이 물었다.
“그 상인들은 어떻게 할까요?”
고선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해의 작전은 이미 시작되었어. 내가 방심한 거지. 상인들은 그냥 놔두어라. 다만, 이제부터 항상 감시하도록. 그리고 위로하러 병영에 오는 자들은 조용히 오라고 전해라. 폭죽과 불꽃놀이는 일절 못하게 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군율로써 처리해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