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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9화 (9/243)

9화 심도검영 2

도망자로 인한 문제는 해결되자, 병사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고 모든 것이 정상대로 되었다.

고선무도 송태자와 함께 장막으로 돌아갔다.

고선무는 직접 서신을 써서 인장을 찍었다.

송태자도 인장을 찍으면서 한숨을 지었다.

그는 감탄 반 걱정 반을 함께 담아 말했다.

“대원수가 병사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들의 분노를 고해에게 돌린 건 참으로 절묘했소. 이제 병사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 하지만 아바마마께 부탁해서 귀족들을 엄벌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겠소?”

고선무가 심각한 투로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이미 고해의 능력을 보시지 않았습니까? 고해는 천 리 밖에 앉아서 우리 군심을 어지럽혔습니다. 고해는 이미 출전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방심했습니다. 사전에 막지 못했다면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을 겁니다.”

그 말에 송태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음! 그렇게 안 좋은 상황이었습니까?”

고선무는 사뭇 괴이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좋은 상황이었냐고요? 하하! 전하, 고해를 얕보지 마십시오. 군심이 무너지면 제아무리 팔십만 대군이라도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그럼 송국도 위태로워질 겁니다. 언제라도 멸망할 수 있지요.”

송태자의 안색이 급변했다.

태자의 얼굴을 주시하며 고선무가 또 말했다.

“전하께선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송국의 금수강산, 그리고 스스로 죽을 길을 만드는 귀족들. 그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시렵니까? 제가 일부러 과장해서 전하를 놀라게 하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송태자의 눈꺼풀이 벌떡벌떡 뛰었다.

듣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고선무의 말.

더구나 그 말을 한 당사자는 천하의 군신이라 불리는 절세 명장이다.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은 송태자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안심하시오. 내가 아바마마께 서신 하나를 더 쓸 거요.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다해서 대원수에게 협조하겠소.”

* * *

보름 후, 송국의 수도 송성.

고해와 고한은 관리가 막 붙여 놓은 방문(榜文)을 보았다.

방문을 죽 훑은 고한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고선무의 행동도 빠르군요. 이렇게 빨리 위기를 해결하다니요.”

그럼에도 고해는 담담했다.

“고선무는 능력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송왕을 설득해서 병사의 식솔을 해친 자들를 참수하게 하다니. 심지어 병사들이 집으로 서신을 보낼 수 있게 했다지? 하하하.”

고한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합니다. 그럼, 송국 병사들의 식솔이 당분간 사라지도록 만드는 일을 계속하실 겁니까? 그 일로 인해 송국 병사들이 의부님을 싫어하는 것 같은데요.”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나를 미워해? 뭐, 나야 원하는 바지. 송국 병사들의 식솔이 계속 사라지게 해. 그들은 나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송국 귀족들을 의심할 거다. 나를 미워하면 어때? 나를 미워하는 건 망국의 근원임을 머잖아 알게 될 거다.”

“하지만 송국의 군심은 이미 안정되었잖습니까?”

고해는 방문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후후! 섣부른 판단이다. 우리는 이미 괴질의 씨앗을 심었느니라. 이제 시작이지.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악순환에 들어가게 될 거야. 고선무도 이번 판은 풀 수 없을 것이다.”

* * *

상성의 고선무 군영.

지금 중심 천막 안에 몇 사람이 함께 자리해 있었다.

송태자와 고선무는 차를 마시고, 임충은 공손히 시립했다.

송태자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지금 병사들의 사기는 어떠하냐?”

임충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대원수의 적절한 대처로 사기가 올랐습니다. 그런 한편, 고해를 무척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식솔들과 서신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어 기뻐하고 있으며 차츰 군기를 되찾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단기간에 삼 관 안의 성지를 빼앗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고선무가 차를 마시면서 물었다.

“상인들은?”

임충이 조곤조곤 대답했다.

“이제 함부로 설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조용해졌습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고선무는 눈가를 좁히며 말했다.

“고해가 사람을 이용하는 방법은 알고도 막기 힘들다. 잘 지켜봐라. 상인들이 군병들과 접촉 못 하게 잘 감시하고, 거역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처리하도록 해라.”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만…….”

임충이 얼굴을 찡그리고 말끝을 끌었다.

임충이 말을 흐리자 고선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왜?”

또 무슨 사달이 발생한 것인가?

고해가 적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고선무는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임충은 고선무가 태자를 보고 있었다.

태자도 눈치를 채고 짐짓 웃으면서 물었다.

“왜? 내가 자리를 피해줘야 하는가?”

“아닙니다, 전하. 대원수께서는 아시겠지만 고해가 일부 병사의 가족들을 끌고 간 뒤 민심이 흉흉합니다. 대원수께서 폐하께 요청한 덕분에 병사들도 안정을 찾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비슷한 납치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고선무가 의아해하며 물어보았다.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끌려간 자들을 찾고 있지 않느냐? 이미 알고 있는 일인데 뭐가 문제인가?”

임충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람은…… 황태손입니다.”

“뭣이?!”

안색이 급변한 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황태손?

문제가 된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

아들은 수도 송성에서 멀리 있는데, 어떻게 고해의 마수에 걸려들 수 있단 말인가?

고선무도 놀라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는 일반 관료나 귀족이었는데, 이번에는 황태손이라고? 고해가 송곳니를 갈고 있군.”

고선무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송태자가 붉어진 얼굴로 급히 물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냐?”

임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송성에서 온 소식에 따르면, 최근 열다섯 건의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전부 황태손께서 저지른 일이라고 합니다.”

“이 무슨 터무니없는…….”

“황태손께서 미인에 환장하셔서 송성에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그 일과 관련된 병사들이 지금 앞쪽 천막에서 무릎 꿇고 대원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태자는 분개하면서 소리쳤다.

“고해, 그 미친놈이 감히 내 아들한테 죄를 뒤집어씌워?!”

임충이 흐린 낯빛으로 태자를 보며 말했다.

“수하들이 조사를 해봤더니, 서신을 받은 사람은 모두 열다섯 명으로 친족들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중 실종된 사람은 열세 명으로, 고해가 아직은 미친 듯 살인하지 않는다고 추론했습니다.”

송태자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이상하군. 고해가 병사들의 식솔을 죽이고 내 아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이 그놈한테는 더 유리할 텐데?”

듣고 있던 고선무가 언짢은 투로 중얼거렸다.

“안 좋아, 안 좋아.”

“왜 그러신가?”

태자가 묻자 고선무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고해의 계략은 너무 음흉합니다. 고해는 우리 병사들의 가족을 데려가서 병사들의 원한과 증오를 사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에게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고해는 병사들의 식솔을 죽이지 않고 있지요. 결국 병사들은 식솔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을 텐데, 그러다 보면 고해에 대한 원한이 줄어듭니다. 결국 제가 병사들의 화를 가라앉힌 게 아니라, 병사들이 스스로 참고 있는 게 되지요.”

고선무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갔다.

“만약 병사들의 화가 다시 폭발한다면, 그때는 저도 속수무책입니다. 참으로 무섭군요. 그렇게 이중삼중으로 상상도 못 할 음모를 꾸밀 줄이야. 이제는 고해가 어떤 계책을 쓸지 감조차 잡기 힘듭니다. 설마……?!”

말을 하면서 점점 변하던 고선무의 표정이 돌연 굳어버렸다.

송태자는 가슴에 이는 냉기를 억누르며 물었다.

“모반 획책……?!”

고선무는 대답하지 않고 임충에게 물었다.

“병사 중 열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의 식솔은 누구에게 당한 것인지 알아냈느냐?”

임충은 태자의 눈치를 보더니 고개 숙여 말했다.

“황태손, 송정서입니다.”

송태자는 펄쩍 뛰었다.

“뭐라고?!”

임충이 태자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황태손께서 신분을 믿고 송성의 양가 부녀자들을 수없이 해쳐왔다는 사실은 전하께서도 아시잖습니까? 송진 두 나라가 전쟁을 하기 전에도, 전하께서 직접 송성의 관료들을 설득해 태손이 한 일을 덮지 않으셨습니까?”

태자가 탁상을 쾅! 내리치며 고개 돌렸다.

고선무는 불편한 얼굴로 물었다.

“임충, 황태손의 소행이 확실한가?”

“예. 서신을 보낸 자는 그들의 의형제로,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 직접 장면을 목격했고, 식솔들의 시신도 직접 봤다고 합니다. 여기, 그 친구들의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임충이 서신을 꺼내 탁상에 놓았다.

털썩.

태자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넋두리했다.

“이놈의 자식! 떠나기 전에 사고 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거늘. 오는 길에도 부인한테 서신을 써서 단속 잘하라고 했거늘…… 그런 일을 또 저지르다니…….”

태자는 괴로워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선무는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그들의 의형제가 보낸 소식이라고 했느냐? 그들이 과연 믿을 만한가? 혹시 고해한테 매수된 자들은 아니고? 우정의 깊이는 지나온 세월로 보는 것이 아니라, 팔아넘길 패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렸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 말을 들은 태자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래! 편지를 보낸 사람이 매수되었을 수도 있잖아?’

그가 염두를 굴리는 동안 임충이 대답했다.

“제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병사들이 진영 밖에서 무릎 꿇고 대원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병사들의 식솔을 모욕한 자들을 벌하고, 황태손을 즉결에 처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임충의 말이 끝나자마자 태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어떻게 벌하라는 것이냐?!”

임충이 태자를 보면서 말했다.

“전하, 아룁기 황송하옵니다만…… 황태손은 이미 숱한 전력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나마 전하께서 직접 황태손을 단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사람조차 없지 않습니까? 전하가 아니시면 어느 누구도 황태손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태자는 한 손으로 자기 이마를 감쌌다.

버티기 힘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임충은 강직하게 자기 할 말을 했다.

“정말 고해에게 매수당했다면, 고해가 놀라운 일을 한 거겠지요. 서찰을 보낸 자가 깨끗하다고 확신은 못 하지만, 구 할 이상은 확실합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시신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태자의 땅이 꺼질 듯 한숨만 내쉴 따름이었다.

“내 아들 짓임이 구 할 이상은 확실하다라…….”

임충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강하게 말했다.

“군법에 따라 황태손을 즉결에 처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고선무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황태손이 죽으면 안 돼!”

태자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고선무를 바라보았다.

임충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대원수.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선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제야 알겠어! 만약 황태손을 죽이면 내일은 태사가 와서 죄를 묻을 것이고, 모레는 승상이 와서 죄를 묻을 것이다. 그때는 병사들도 전부 동요하여 전쟁도 못 해보고 이 나라가 멸망할 상황에 놓일 것이다!”

태자와 임충은 서로 놀란 시선을 교차했다.

고선무가 불을 뿜는 듯한 눈으로 말했다.

“고해의 음모귀계가 실로 철두철미하구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군사를 모두 집결하여 지금 바로 호뢰관을 칠 것이다! 위험이 있더라도 최대한 빨리 끝을 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고해를 막지 못할 것이다!”

임충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할까요? 병사들이 지금도 밖에서 무릎 꿇고 있습니다.”

태자도 고선무를 보며 일종의 기대감을 품었다.

지금은 송진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전장의 군율은 극히 엄하므로 만약 황태손 송정서를 정말로 즉결에 처하려 한다면 자신이 비록 태자라고 하더라도 막을 수 없으리라.

황제도 있고, 또 선종까지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고선무가 송정서를 살리려 하고 있었다.

태자가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임충이 다시 말했다.

“대원수, 그럼 전쟁을 핑계로 흉악범을 두둔하는 셈 아닌지요?”

“그게 아니다. 현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고선무는 대답을 하다 말고 태자를 바라보았다.

“태자 전하, 명을 내려 속히 군사를 모으시지요. 팔십만 대군을 총집결시켜 즉시 호뢰관을 칠 것입니다. 호뢰관만 빼앗으면 고해도 더 이상 음모를 꾸미지 못할 것입니다.”

태자는 고선무의 마음이 변할까 봐 서둘러 대답했다.

“알겠소!”

임충이 굳은 얼굴을 하고 고선무에게 물었다.

“그럼 송정서는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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