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5화 (15/243)

15화 전장에서 군심을 잃다

목이 잘려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태자 역시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태자는 고해, 고선무, 임충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아들을 죽이는 일에 동참했던 모든 사람을 당장 죽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하늘이 아들을 돌려준다면 삼십 년을 덜 살아도 좋으리라.

그런데…… 갑자기 송정서가 나타났다!

태자는 지금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하물며 송정서의 죽음에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고선무의 경악은 말할 것도 없었다.

태자는 급히 뛰어갔다.

“얘야! 네가 살아 있었구나!”

송정서가 울면서 말했다.

“아버지! 하마터면 산적들 손에 죽을 뻔했습니다. 빨리 가서 잡아주세요. 놈들이 저를 죽이려 했단 말입니다!”

고선무와 임충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로 송정서 그놈이었다.

분명 목이 잘리는 걸 봤는데…… 귀신이 되어 돌아왔다면 어찌어찌 믿겠지만, 백주 대낮에 저리도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난 놈이 귀신일 리는 만무하다.

고선무와 임충은 현기증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병사들이었다.

대원수와 임충이 죽었다고 장담한 자가 여기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병사들의 시선은 고선무와 임충에게로 향했다.

하나같이 배신감에 찬 시선.

병사들의 믿음은 이미 떠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황태손의 출현으로 고선무의 위엄은 한순간에 추락했다.

그를 향한 팔십만 대군의 시선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태자의 얼굴은 희비로 뒤섞여 그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임충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고선무는 그저 이를 악물고 있을 뿐이었다.

황태손이 고선무를 향해 다가왔다.

고선무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 그대는…….”

송정서가 씩씩거리며 말했다.

“알면서 왜 그러시오?! 뒤에서 산적들이 쫓아오고 있소. 얼른 명을 내려 놈들을 죽이라고 하시오! 내 자칫 황태손의 몸으로 아버지를 뵙지 못하고 산적 손에 죽을 뻔했소!”

태자가 송정서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물었다.

“네가 송성에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찌 된 것이냐?”

송정서는 여전히 흥분한 채 말했다.

“아버지께서 보낸 대원수가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나를 다른 죄수와 바꿔치기한 겁니다. 그래서 나도 연극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대원수가 알려드리지 않았나 보군요. 하하하!”

그 순간 군영에서 병사들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고선무가 송정서를 살리려고 연극을 했다…….

병사들은 속은 것이다.

모두를 속여도 전장에서 함께 싸운 자신들만은 속이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하! 그러니까 말이죠…….”

송정서는 계속 지껄여댔다.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병사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는 사실은 송정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병사들의 분노는 지옥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이를 갈았다.

‘고해의 음모? 송정서의 죽음? 가짜 서신? 이기고 무사히 귀향?! ……속았어! 전부 거짓말이었어!! 놈들은 어차피 같은 한패였어! 우릴 철저히 농락했다고! 이제 우리 편은 없어……. 우리 자신만이 우리 편이야!’

이것이 지금 병사들의 공통된 심정이었다.

눈치 빠른 태자가 다급히 송정서를 만류했다.

“입 다물어라!”

태자는 병사들의 원한과 분노를 느꼈다.

병사들이 당장 창끝을 돌려 공격을 하더라도 무리는 아닐 것이었다.

그때, 병사 중 한 사람이 창을 내던지며 외쳤다.

“집에 가겠다! 직접 확인해야겠어!”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도 집에 가야겠어!”

“송가 놈들을 위해서 싸울 이유가 없어!”

팔십만 대군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임충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피를 토하듯 고선무를 향해 말했다.

“대원수! 이것이 정녕 어찌 된 노릇입니까?! 저 임충이 대원수를 위해 목숨 걸고 충성한 이유는 오직 대원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대원수는 제 삶 그 자체와 같다고 생각했단 말입니다!”

격동을 느낀 고선무는 얼굴이 떨려왔다.

임충의 통렬한 외침은 계속 날아들었다.

“그날, 열다섯 명의 병사 식솔에게 닥친 비보를 접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하지만 대원수는 황태손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저더러 열다섯 병사를 적절히 입막음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대군이 제 갈 길 찾아 흩어지는 와중에도 아직 상당수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에는 임충이 언급한 열다섯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원래 이들은 고선무를 도와 다른 대군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침묵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말을 달리 할 수 있겠는가?

대원수가 자기들을 입막음 했다?

다시 말해 여의치 않으면 죽이라고 명령했을 것이라고 그들은 이해했다.

고선무를 향한 그들의 눈빛은 허망함 그 자체였다.

고선무는 견디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임충, 그 입을 다물어라!”

하지만 임충은 울면서 말했다.

“왜 입을 다물라 하십니까?! 지금 제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지 않습니까?! 죽은 송정서가 왜 여기에 나타날 수 있습니까?! 저의 소접을 위해서 복수해 주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으흑!!”

고선무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송정서를 구한 건 내가 아니다! 고해가 구한 거야! 임충! 침착하게 다시 생각해 봐라! 이 또한 고해 그놈의 음모다!”

빠르다. 빨라도 너무나 빨랐다.

왜 자신은 고해의 음모보다 빠르지 못할까?

고해! 밥 먹을 시간, 쉬는 시간조차 주지 않는구나!

고선무는 괴로웠다.

고해의 음모!

너무 빠르고 정밀하게 가슴을 찔러왔다.

놈의 음모가 아니면 무엇으로도 자신을 이리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이제 누구도 자신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죽은 송정서가 저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온 마당에 누가 자신을 믿겠는가.

임충은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그만! 되지도 않는 그놈의 음모 타령 그만하십시오!”

임충은 눈앞에 있는 고선무가 원수처럼 보였다.

그런데 송정서란 놈이 눈치도 없이 지껄였다.

“임충, 네놈은 정말 천박하구나! 대원수한테 이 무슨 방자한 짓거리냐? 대원수, 내가 도착하면 임충이란 놈을 없앤다면서요? 이제 임충도 쓸모없어졌으니 죽여 없애시지요!”

아, 실로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었다.

마침내 임충이 괴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크악! 고선무! 송정서! 개 같은 너희 두 놈!”

임충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며 이를 갈았다.

놀란 송정서가 후다닥 몇 걸음 물러섰다.

“고선무! 네놈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던 내가 저주스럽구나! 먼저 네놈을 죽이고, 그다음 송정서를 죽여 소접의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

그는 칼을 들고 고선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임충의 수하들도 칼을 빼들며 살기등등하게 외쳤다.

“죽이자!”

이에 맞서 고선무의 수하들도 창검을 들었다.

“대원수를 지켜!”

그때부터 완벽한 혼돈이었다.

파벌은 셋으로 갈라졌다.

고선무를 죽이려는 자, 고선무를 보호하려는 자, 태자를 보호하려는 자.

심지어 송정서를 보호하는 자까지 있었다.

팔십만 송군은 개미 떼처럼 흩어져 버렸다.

* * *

송군 진영이 난장판으로 화하던 그때!

오만여 군사가 호뢰관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를 지휘하는 자는 다름이 아닌 새로운 진국 황제, 진양의였다.

진천산이 진양의 옆에서 말을 몰아가며 말했다.

“양의, 방금 전 피어오른 연기는 군사가 말한 신호 같다. 너는 오만 군사에 명해 공격하도록 하면 되는데, 왜 친히 나섰느냐?”

진황 진양의가 대답했다.

“태조부(太祖父)님이 계시니 저는 걱정 없습니다. 대장이 군사들에게 힘을 실어주라 해서 직접 나섰습니다. 부황이 그러셨습니다. 고해의 말만 따르라고요. 그러니 따라야지요.”

대답을 듣고도 진천산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네가 직접 나선 건 너무 위험해. 고해의 말이면 모두 괜찮은 거냐? 오만 군사로 어찌 팔십만 대군을 친다는 것인지……. 고선무도 진영에 있을 텐데, 우리가 목숨 바치러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저는 부황을 믿습니다.”

“그래. 너는 내가 지켜주마. 네 아버지처럼 나와 멀어지면 절대 안 된다. 그때 가서는 나도 너를 지켜주지 못하니까.”

진천산의 말에 진양의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진국의 병사들은 듣거라! 봤느냐?! 송국의 침략자들은 악독해서 너희가 투항해도 죽일 것이다! 살아남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그러니 저마다 목숨 걸고 싸워라!”

그때, 한 장수가 병사들에게 우렁차게 소리쳤다.

“너희 부모와 처자가 노예로 끌려가게 만들겠는가?! 놈들은 너희 가족뿐만 아니라 재산과 땅도 전부 빼앗아갈 것이다! 말하라! 너희는 눈앞에 닥친 참화를 그냥 앉아서 맞이할 것이냐?!”

병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결코 아닙니다!!”

결사의 전의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높은 사기를 확인한 진양의가 큰 소리로 외쳤다.

“거창한 명분을 위해 싸우라 말하지 않겠노라!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거라! 이 목숨으로 우리 스스로의 화평을 지켜내자! 져도 죽고, 항복해도 죽는다! 그러니 끝까지 싸워라! 송군 놈들을 모두…… 죽이자!!”

오만 군사가 일제히 화답했다.

“죽이자!”

진군은 산길을 지나 송군 진영 앞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이르기 전, 오만 진군은 송군이 서로 싸우면서 살상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놀란 진천산이 말했다.

“설마 잘못 온 건 아니겠지? 저게 팔십만 송군의 모습이라고?”

진양의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소리쳤다.

“자! 나를 따라 돌격하라!”

순간, 하늘이 무너질 듯한 함성이 일어났다.

“우와아아!”

오만 군사가 물밀듯 송군 진영을 급습했다.

송군의 누군가가 절박하게 부르짖었다.

“습격! 습격이다! 적이 습격해 온다!”

그렇지만 송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로 싸우고 죽이면서 약탈하고 훔쳤다.

그리고 도주했다.

전투의 양상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겨우 오만 군사가 팔십만 군사를 핍박하고 있었다.

쫓는 자들의 창검과 말발굽 아래 쫓기는 자들은 추풍낙엽처럼 우르르 쓰러져 갔다.

송군의 병사들이 보이는 족족 진군은 그들을 죽였다.

비록 전쟁에서 싸워 본 경험조차 없었지만 진군은 스스로가 살기 위해 적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러면서 진군들은 한 가지 공통된 생각을 했다.

‘송군도 결코 천하무적이 아니다!’

고진은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응시했다.

십 리 떨어진 이곳까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진은 연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소리쳤다.

“밖에 누구 없느냐? 안으로 들어와라.”

“예!”

몇몇 휘하 장수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서신을 띄워라! 우리 진국 각 지역 모든 곳에 군신 고선무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지금 즉시 전해라! 팔십만 송군이 뿔뿔이 흩어졌고, 고선무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다고 해라!”

“예! 군사!”

“송의 패잔병들은 마을로 도망칠 것이다! 각 점포에 전하여 우리 백성이 패잔병을 죽이도록 독려하라 일러라! 송군 하나를 죽이면 금을 줄 것이며, 열을 죽이면 작위를 내린다고 해라!”

“존명!”

“육십만 우리 진군을 죽인 놈들이다! 이제 원한을 풀고 복수할 시간이다! 송국이 빼앗아간 지역을 공략해 다시 찾아오라! 공을 많이 세울수록 그에 합당한 큰 상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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