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9화 (19/243)

19화 적음을 걱정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

와아아!

거대한 함성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고해의 점포에 몰려드는 소리였다.

“들어오지 마! 이 강도들아!”

“폐하도 우리를 탓하지 않으신다! 마음 놓고 털자!”

점포 안팎에서 삿대질과 욕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짝과 창문이 부서지고 폭도들이 밀려들었다. 조회에서 내려진 결정이 백성들을 폭도로 만든 것이다.

부수고 죽이면서 약탈해도 무죄라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고해 놈의 점포는 약탈해도 괜찮다!

-황제 폐하도 허락했단 말이다!

조직적인 움직임도, 통솔자도 필요 없었다.

고해의 재산은 누구라도 자유롭게 빼앗을 수 있다.

땀 흘려 장사하거나 농사짓지 않아도 일확천금을 가질 수 있다.

상대가 고해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해의 소유는 모두의 소유다.

“이 미친놈들아…! 악!”

점포 안팎에서 비명 소리와 피가 흘러넘쳤다.

온갖 흉기가 번쩍이며 서로 찌르고 베었다.

어떤 미친놈의 소행인지 몰라도, 어느 순간 불길까지 타올랐다.

그야말로 살인방화.

전형적인 도적놈들의 짓거리였다.

한순간.

“당장 멈춰라!”

폭도들은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송성의 관병들이 무장한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폭도들이 너도나도 소리쳤다.

“관병은 송성을 지켜야지 여기를 왜 와?!”

“온다고 우리가 겁낼 줄 아나 본데?!”

“신경 쓰지 마! 점포나 계속 털자고!”

황제가 윤허(?)한 마당에 관병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간덩이가 부은 나머지 겁도 상실하고야 만 것이다.

하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것을 양보할 자는 없었다.

처음에는 엄하게 진압하려던 관병들도 곧 포기하고야 말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상황은 우스꽝스럽게 돌아갔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부자나 될까 보다!”

관병 하나가 창을 내던지고 폭도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시발점으로 다른 관병들도 약탈에 동참했다.

어디 그들뿐인가?

소란을 듣고 달려온 관료나 귀족들까지 이 미치광이 도둑질에 참여했다.

우와!

약탈의 함성으로 인해 송성 전체가 폭발한 듯했다.

고해와 고한.

둘은 높은 누각에서 먼 곳의 도둑질을 지켜보았다.

함성에 비명, 싸우는 소리…… 거기에 큰불이 나면서 짙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고한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우리의 재산 피해가 너무 큰 것 같습니다.”

고해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내가 어디 손해 볼 사람이던가?”

고한도 웃으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점포들이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전부 잿더미가 되더라도 의부께서 마음먹으면 하루 사이에 점포를 전부 되찾아 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번창할 겁니다.”

문득, 고해는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세속의 재물이 다 무슨 소용이냐?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전부 쓸모없는 것들인데.”

그 와중에도 송성 사방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뭔가가 펑펑! 터지는 소리도 계속 이어졌다.

전쟁도 이보다는 못 할 것이다.

똑똑한 자들은 말을 사서 다른 성으로 달려갔다.

다른 성에 있는 백성들도 황제가 윤허(?)를 내렸다는 사실을 안다면 틀림없이 미쳐서 날뛸 것임이 분명했다.

그 성의 백성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가서 약탈해야만 하는 것이다.

“의부님, 저기 좀 보십시오. 사람까지 납치합니다.”

“음! 절제를 잃으면 짐승보다 못한 게 인간이지.”

고해와 고한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광란을 지켜보았다.

그때.

“보고드리겠습니다!”

아래에서 수하가 소리쳐왔다.

그걸 본 고한이 말했다.

“제가 듣고 오겠습니다.”

“음!”

고한은 급히 누각 아래로 내려갔다.

그동안 고해는 뒷짐을 진 채로 소란을 응시했다.

얼마쯤 지나 고한이 다시 누각으로 올라왔다.

“의부, 송성의 폭동이 주변 다른 성들까지 번졌다고 합니다.”

고해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작은 불씨 하나가 들판 전체를 태우지. 그것이 들불의 무서움이다. 그런데 아직은 부족해. 더 미쳐서 발광해야 한다. 이 약탈이 전국을 흔들고 저들의 최후 방어선까지 부숴버려야 한다. 철저히!”

* * *

송성에서 시작된 약탈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어느 한 성에서 약탈하다가 성이 차지 않으면 다른 성으로 이동했다.

다른 과정은 필요하지 않았다.

불씨 하나만 있으면 모든 성에서 기름통처럼 터지듯 폭동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온 백성이 도둑으로 변하고 말았다.

불과 며칠 사이 송국 전부가 혼란에 빠졌다.

나흘째 되던 날, 국경 지역의 변성에 폭동이 발생했다.

변성이 불길에 타오르는 동안 약탈이 자행되었다.

고선무는 화포를 입은 중년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노기를 가득 품고 말했다.

“왕 성주, 지금 뭐 하는 거요? 이렇게 혼란한 시기에 수습은 고사하고 오히려 하인을 보내 약탈하라고 시키다니!”

성주가 차를 마시며 멋쩍게 웃었다.

“허허. 대원수는 생각이 너무 많구려. 이건 폐하의 명이오. 게다가 내가 사람을 보내지 않아도 이미 많은 백성들이 소매를 걷고 나서서 약탈해 간단 말입니다.”

“그게 지금 말이라고……!”

고선무는 노성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요. 뭔가 크게 잘못되었소. 황성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폐하가 어찌 백성들에게 강도가 되라고 장려하실 수 있단 말이오? 이건 나라가 망하는 길입니다!”

성주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약탈당한 곳은 고해의 점포들이었소. 어차피 그놈은 우리 송국의 철천지원수가 아니오? 그런 놈의 사업을 관료와 백성이 한마음 되어 망치고 있을 뿐이오. 그런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신지?”

차를 한 입 마시며 그는 말을 이었다.

“대원수는 이번에 오만 병력을 다시 모으셨다고 하던데? 그 군사들마저 고해의 점포에서 약탈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소. 대원수는 군사나 조련하시지 뭐 하러 여기 오셨소?”

고선무는 핏대가 솟는 기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군법으로 단칼에 성주 놈의 수급을 베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나라가 전쟁 중이고, 게다가 황제의 윤허(?)를 받은 약탈이라고 하니 일단 참을 수밖에 없었다.

고선무는 화를 꾹 억누르며 말했다.

“군기가 해이해진 병사는 군법으로 처리될 거요. 어쨌든, 성주!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저 연기가 안 보이시오? 백성들이 미쳐 날뛰고 있소. 이건 고해의 음모에 놀아나는 꼴이란 말이오!”

성주도 목소리를 높였다.

“아, 그만 됐소! 대원수는 간섭할 권리가 없소이다. 팔십만 대군이 일패도지하고 승리가 그대 손에서 물거품이 되어버렸는데, 폐하가 엄벌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뭣이?!”

“사람이 감사할 줄도 알아야지, 사사건건 이렇게 폐하와 맞서면 어쩌겠다는 말이오? 설마 다른 대신들이 그대보다 못할까? 여기는 그대의 군영이 아니라 변성이오! 내 말이 곧 법이외다!”

“당신……!”

고선무가 눈을 치켜뜨며 벌떡 일어났다.

성주도 지지 않고 오히려 냉랭히 말했다.

“너무 바빠서 대원수를 배웅하지 못할 것 같소! 누구 없느냐?! 대원수께서 나가신다!”

“흥!”

고선무는 싸늘하게 코웃음 치며 몸을 돌려 나갔다.

문 앞까지 갔을 때, 한 집사가 뛰어 들어오며 말했다.

“성주님!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점포 하나만을 털었는데 은 이천 냥밖에 챙기지 못했습니다!”

왕 성주가 탁자를 내리치며 후회했다.

“이런! 너무 우유부단했어! 더 일찍 갔어야 했어!”

고선무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앞으로 이 나라의 운명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토한 고선무는 밖으로 나갔다.

* * *

송성.

온 나라가 혼돈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매는 느낌이랄까?

황실과 조정의 걱정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단 하루 동안 전국에 있는 고해의 모든 점포가 털렸다.

이렇게 빨리 약탈이 벌어질 줄은 누구도 몰랐다.

황제 이하 대신들도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었다.

‘약탈을 무죄로 결정한 것은 틀린 오판이 아닐까?’

모두가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침에 열린 조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이틀이 지났다.

송성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다.

그제야 대신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날 조회에서 태자가 가장 먼저 웃으며 말했다.

“부황, 이제 조용해진 것 같습니다. 약간의 소란은 있었지만, 이렇게 민심이 하나 되어 고해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신들도 하나둘 태자를 비호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고해의 음모는 더 이상 소용이 없을 것이옵니다. 민심이 하나가 되어 고해를 무너뜨렸사옵니다!”

“폐하, 고해의 음모조차 우리 백성의 일치단결한 성난 민심 앞에서는 무기력해진 것 같습니다.”

황제는 내심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일말의 꺼림칙함이 있었다.

과연 그게 뭘까?

황제는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 * *

송성의 어느 주점.

고해와 고한이 주점 한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우리 고부 점포를 약탈해 간 자들이 너무 조용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고한의 말에 고해가 웃음을 지었다.

“이 나라 백성의 사고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어. 전부 우리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게지.”

“예?”

“여기 술꾼들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거라.”

주점에는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손가 쌍놈 새끼가 금불 하나를 먼저 낚아채 갔어. 퉷!”

“하하, 남 탓하지 마. 자네가 늦은 거잖아?”

“늦기는 무슨! 늦잠을 잤을 뿐인데, 내가 갔을 땐 이미 은원보(銀元寶)밖에 없더구만.”

“그걸로 만족해. 나는 하나도 못 건졌어.”

“손이 빠르면 얻고, 늦으면 못 얻는 거지.”

“내 듣기로, 누군가는 한 번에 은자 몇만 냥을 얻었다더군.”

“캐! 몇만 냥이라……. 그런 게 진짜 횡재지.”

조용히 듣고 있던 고한이 혀를 내둘렀다.

“더 많이 훔치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는데요?”

고해도 혀를 차며 대꾸했다.

“백성은 적은 걸 걱정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걸 걱정한다. 재산이 서로 똑같으면 분쟁이 생기지 않지만, 차이가 나면 심적으로 울화가 치미는 법이다.”

고해는 술을 따르며 계속 말했다.

“처음에는 우발적으로 고송은포를 털었지만, 돈맛을 보고는 다른 점포까지 털기 시작하면서 모두 도적놈이 되어 버린 것이야. 이런 꼴로 백성이 도적이 되면 송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고한이 감탄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럼, 이제 또 가서 민심을 더욱 흔들라고 지시할까요?”

고해가 손을 저었다.

“아니. 좀 더 기다리자. 민심이 좀 더 끓어올라야 한다. 서로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서 불평등이 극대화되어야 해. 이제 폭도가 아닌 백성들도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 * *

송국 백성의 광기는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이었다.

이미 저마다의 마음속에서는 도둑 근성으로 부글부글 들끓고 있었다.

서로를 질시하는 가운데 탐욕이 눈덩이처럼 커져 가고 있었다.

백성들은 이제 고해의 점포가 아닌 곳마저 탐을 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그 맛을 아는 법.

이미 도둑질로 짭짤한 재미를 본 그들의 눈에는 남의 돈과 물품도 자기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송국의 망조(亡兆)는 그렇게 찾아들고 있었다.

다음 날, 송성.

날이 밝아 올 무렵 시끄러운 소리가 성안에서 울렸다.

“날강도 놈들아! 고부의 점포도 모자라서 이제 옥부를 노리느냐?! 우리 조부님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옥여의는 안 된다, 이놈들아! 그건 절대 안 된단 말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 목청이 하도 커서 근방의 모든 백성이 잠을 깼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건 옥부 주인장 목소리 같은데?”

옆에 누웠던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얼른 가서 손 씨보다 더 많이 가져와요! 이번에도 옥여의를 챙기지 못하면 당신하고도 끝이야!”

남자는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달려갔다.

콰당!

집집마다 문이 부서져라 활짝 열렸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도둑질에 동참했다.

“와! 옥부다!”

“옥부를 털자!”

폭도로 변모한 백성들이 함성을 질러댔다.

이후의 경과는 지난번과 똑같았다.

싸움과 약탈.

이런 날벼락을 맞은 건 비단 옥부만이 아니었다.

똑같은 상황이 송성 곳곳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날이 밝기도 전에 연기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 * *

고부 안쪽.

고해와 고한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의부, 송성에 숨겨온 우리 점포가 여섯 곳밖에 없습니다. 그 정도로 백성들의 탐욕을 유발시켜 도둑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고한은 사뭇 걱정스러운 어조였다.

고해는 찻잔을 들며 말했다.

“여섯 곳이면 충분해. 도둑 근성이 발동한 이상에는 말이지. 후후.”

고해는 미소와 함께 차를 훌훌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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