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선천경(先天經) 2
버럭 소리친 청하종주는 고해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영기를 최대한 모으고 조절해서 몸에 주입시켰는데, 일 할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물 새듯 흘러나가다니!”
그가 청하종의 형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모여 봐라. 흘러나온 영기를 고해의 몸속으로 다시 불어넣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청하종의 형제들이 고해를 둘러쌌다.
“법(法)!”
“들어가라!”
“하아!”
청하종 형제들이 기합을 토하며 함께 손을 내밀었다.
일순, 거대한 힘이 솟아났다.
곧 사방의 천지영기들이 고해의 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르릉!
알 수 없는 뇌성이 들려왔다.
고해의 몸은 심하게 떨렸다.
비록 많은 영기가 여전히 빠져나갔지만, 전보다 훨씬 많은 영기가 자리 잡았다.
영기가 단전으로 들어가게 되면 단전에 있는 진기는 마치 수많은 벌레처럼 변한다.
이 벌레들이 천지영기를 삼키고, 벌레 한 마리가 충분한 영기를 먹게 되면 두 마리로 분리된다.
단전의 진기는 급격히 쌓여갔다.
그리고 더 거세게 용솟음쳤다.
그러나 아직도 극치에 도달하려면 부족하다.
청하종주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썩은 나무로 무엇을 하란 말인가!”
청하종 제자들은 놀란 얼굴로 고해를 노려보았다.
한 개의 원영경(元嬰境)과 열 개의 금단경(金丹境)이 힘을 합쳤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는 것이다.
체질이 극약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어느덧 반 시진이 지났다.
그런데도 고해의 몸은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청하종주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용을 써도 소용없으니 청하종주 역시 힘겨웠다.
그는 내심 욕을 퍼부었다.
‘젠장! 처음부터 동의하지 말았어야 했어!’
더 이상 해봤자 헛될 뿐이다.
막 손을 떼려는 순간.
흑의 여인이 정원으로 들어왔다.
“벌써 시작했어?”
여인은 다가오면서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그녀가 나타난 이상 청하종주는 손을 뗄 수 없었다.
청하종주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고해의 몸은 정말 이상했다.
아무리 기를 써도 전부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다.
유년대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원영경 하나에 금단경 열 개로 기운을 북돋는데도 뚫지 못한단 말인가?”
흑의 여인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후천경은 어떻게 수련한 거지?”
그때, 청하종주가 소리쳤다.
“아직 부족해! 영석(靈石)을 움직여라!”
청하종 제자들이 지시대로 움직였다.
그들은 신비롭게 빛나는 주먹 크기의 돌을 꺼냈다.
“들어가라!”
돌이 번쩍! 빛을 발했다.
한 줄기 신비한 빛의 기류가 고해의 몸으로 들어갔다.
고해의 몸이 또다시 크게 들썩였다.
그 모습에 유년대사는 고개를 내둘렀다.
“저런 막강한 기운에도 멀쩡하군요. 역시 외공으로 수련한 자는 남다릅니다.”
흑의 여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청하종주가 이를 악물며 지시했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영석을 최대한 활용해라.”
“예!”
대답한 제자들은 기운을 최대로 집중시켰다.
용솟음친 영기들이 고해의 몸속으로 밀려들어 갔다.
고해의 단전에 쌓인 보라색 진기들이 짙은 색을 띠기 시작했다.
어지러이 흩어지던 진기들이 곧 흐름을 바로잡았다.
진기는 오른쪽 방향으로 회오리치듯 돌았다.
고해는 눈을 감고서도 변화를 감지했다.
“색이 발현되고 있습니까?”
흥분한 듯한 그의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석들이 전부 하얀 가루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청하종의 제자 하나가 말했다.
“돌 안에 있는 영기들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영석 하나를 열 번 넘게 쓴단 말입니다. 이 사람의 체질은 너무 엉망입니다.”
청하종주가 꾸짖듯 소리쳤다.
“입 다물고 계속해! 반드시 선천경을 돌파해야 한다!”
이제 그도 악에 받친 상태였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제자들은 새로운 영석을 꺼내 고해에게 기운을 불어넣었다.
단전 속에서 보라색 진기가 점점 더 빠르게 회전했다.
회전하면 할수록 더 많은 공간이 만들어져 새로운 진기를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고해는 온 일념을 다해 새로운 진기를 받아들였다.
‘부족해! 아직 부족하다!’
진기의 유통을 조절하면서도 마음은 다급해져 왔다.
청하종주는 이미 두 번째 영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내 그는 또다시 세 번째 영석을 꺼내야만 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많은 영석을 사용했는지 발밑에 가루가 수북했다.
청하종주는 급격히 지쳐가고 있었다.
수십 개의 영석을 사용했으나 아직도 돌파하지 못했다.
이런 꼴이 다 뭐란 말인가?
어찌 이런일이 있을 수가 있나?
청하종 제자 하나가 말했다.
“저는 영석을 다 썼습니다.”
청하종주는 한 손을 떼고 소매에서 영석 한 줌을 꺼냈다.
그는 영석을 나눠주면서 계속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영석의 기운을 계속 주입해도 소용이 없었다.
청하종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송갑종주가 비아냥대듯 말했다.
“이건 그냥 영석만 낭비하는 것 아닌가?”
유년대사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유년대사가 재빨리 설명을 보탰다.
“고해의 단전이 편식을 하는 것 같소. 영기에는 다양한 진기가 존재하는데, 고해의 단전은 그중에서 제일 맛있는 진기만 쪽쪽 빨아서 먹는 것이오.”
여인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진기가 편식을 한다고?”
“소승도 단지 추측만 할 뿐입니다.”
영기들은 계속해서 고해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청하종주의 안색은 노랗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느냐는 얼굴이다.
영석 백 개를 사용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하종주가 매우 당혹해하며 말했다.
“당주, 영석이 부족합니다.”
흑의 여인이 고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도와줘.”
열한 명의 청의인이 각각 하나씩의 보라색 석돌을 들고 왔다.
청하종주의 눈이 번쩍거렸다.
“상품 영석?”
청의인들이 상품 영석을 건넸다.
그들이 보낸 기운이 청하종 사람들의 기운과 합쳐졌고, 고해의 몸으로 다시 주입되기 시작했다.
과연, 이번에는 뭔가가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진기가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
회오리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마치 하늘을 뚫을 것만 같았다.
고해는 몸이 또다시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눈을 감은 채 계속 집중했다.
콰광!
거대한 천둥소리가 진동했다.
휘돌던 기운이 하나로 뭉쳤다.
그것은 보라색 액체를 형성했다.
일순, 강력한 반탄력이 모든 사람들을 튕겨냈다.
청의인들과 청하종 사람들은 일제히 손을 떼며 물러났다.
상품 영석은 이미 가루로 화한 상태였다.
청하종주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해를 주시했다.
“이, 이것이 바로 후천경……?”
고해의 주변에서 보라색 빛의 기류가 휘돌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의 모공으로부터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를 본 유년대사가 탄성을 흘렸다.
“드디어 성공했군!”
그때 고해의 마음이 녹아든 보라색 액체가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보라색 액체가 모든 진기를 호령하고 통제하는 대장인 듯했다.
“응기성원(凝氣成元)! 선천경!!”
그 순간 고해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 * *
송성, 객잔 방 안.
목욕통에서 수십 번을 씻고서야 비로소 몸에 묻은 때를 씻어낼 수 있었다.
고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을 한 점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삼십 살 전성기 때로 돌아간 것 같군.”
고해가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얼굴의 주름살도 사라졌다.
머리 색깔도 전부 흑발로 변했다.
각이 진 근육은 조각상을 보는 듯 완벽했고, 고동색 피부는 야성적인 생기가 흘러넘쳤다.
고해의 육신은 완전히 젊음을 되찾았다.
하지만 눈동자는 여전히 담수처럼 맑았다.
“선천경 일단계를 드디어 완성했구나. 선아! 너를 위한 복수가 한발 더 가까워졌다.”
지금 이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거울에 비친 고해의 얼굴은 음침해 보였다.
그것도 잠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고해는 옷을 입고 방문을 열었다.
방문 입구에는 진천산과 진양의가 서 있었다.
둘은 몰라보게 달라진 고해를 보며 경이를 느꼈다.
진양의가 말했다.
고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고맙다. 그래, 송성은 확실히 접수했느냐?”
진양의가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물론입니다. 오직 백부님 덕이었습니다.”
진천산이 웃으며 말했다.
“당주께서 주청에서 기다리고 있네.”
세 사람은 주청으로 나란히 들어섰다.
흑의 여인과 유년대사는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구석진 자리 한쪽에는 고선무가 보였다.
이내 사람들의 시선이 고해를 향했다.
청하종주는 더 이상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즐겁기는커녕 원망의 눈빛마저 보였다.
고해 때문에 기진맥진하고 귀한 영석마저 무수히 소모했기 때문이다.
고해가 여인을 향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선인.”
여인이 살짝 웃었다.
“난 선인도 아닌데 왜 고마워하는 거지?”
“당주님이 아니었으면 예전의 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겁니다.”
고해가 말하고는 심호흡을 했다.
청하종주는 내내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자신이 받아야 할 감사를 당주가 대신 받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청하종주는 공을 독차지할 생각이 없었다.
확실히 당주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당주는 그의 상전이었다.
여인이 말했다.
“뭐, 굳이 내게 감사하다니까 나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그대 때문에 우리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어. 그러니 지금 바로 우리와 함께 가줘야만 하겠어.”
“어디를 간다는 말씀입니까?”
고해가 의아해하자 여인은 주청을 휘 훑으며 말했다.
“그대와 겨루었던 고선무, 그리고 청하종의 진천산, 송갑종의 송청서. 그대들 모두 우리 일품당 사람이야. 내가 당주이니 앞으로 내 말을 따르도록.”
고해는 통 영문을 알 수 없어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청하종주가 말했다.
“당주가 자네를 선택했는데 감사드리지 않고 뭐 하는 짓인가?”
비로소 고해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왜 굳이 저를…….”
송갑종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렇게 까탈스러울 필요는 없네. 남들은 일품당에 들어오지 못해 안달일세.”
고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학문이 얕고, 보고 들은 것이 적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선인님들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요.”
그는 선인의 경지에 오른 자들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여인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아, 먹칠 걱정은 마. 수련이 좀 부족하긴 해도, 머리가 좋으니 그걸로 충분해. 천도해, 청하종문도 우리 일품당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 우리 일품당은 각 방면의 고수들만 선택해.”
고해는 의아한 얼굴로 청하종주를 바라보았다.
청하종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당주님 눈에 들었네. 내가 비록 자네를 선천경에 들도록 하는 약속을 지켰지만, 그런 내 실력도 일품당에 비하면 별것 아니네. 고해, 당주께서 눈여겨보고 있으니 열심히 해보게.”
고선무도 웃으면서 말을 보탰다.
“고 선생, 뭐가 고민이십니까?”
그는 고해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눈앞에 두고 고민하다니.
고해는 주청에 있는 사람들을 죽 훑었다.
청하종과 송갑종의 제자들도 질시의 눈빛을 보내오고, 옆에 있던 진천산은 얼른 승낙하라고 눈치를 주고 있다.
여인 뒤에 있는 스님은 염주를 잡고 경문을 읽는 듯했다.
고해가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당주. 만약 제가 일품당에 들어가게 되면 어떤 구속을 받고 어떤 금기를 지켜야 하는지요?”
사람들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일개 평범한 사람 주제에 당주의 눈에 들어 선택받았는데, 감히 주제도 모르고 당주에게 조건을 내밀고 있지 않은가.
정작 여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구속이라…… 그런 게 굳이 있다면, 일품당을 배신하지 않으면 된다, 아마 그 정도? 그냥 내 말만 따르면 돼. 해가 될 건 없으니까 괜히 이것저것 골치 아프게 따지지 마.”
그 말에 고해가 미소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미 큰 은혜를 입은 마당이니 저는 당주님의 말씀만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여인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거참 좋네. 잘하면 특권도 주지. 내 이름은 용완청! 잘 기억해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