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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24화 (24/243)

24화 일품당(一品堂), 용완청(龍婉淸)

고해는 가볍게 목례했다.

“감사합니다, 당주.”

용완청이 유년대사를 보면서 물었다.

“대사, 고해에게 어떤 등급을 주는 것이 좋을까?”

유년대사는 깜짝 놀라 돌리던 염주를 멈추고 말았다.

고해를 보며 망설이던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품당에는 금목수화토 다섯 곳의 타(舵)가 있습니다. 고해가 당주의 말씀만 듣겠다고 하니 수타가 좋겠습니다. 마침 딱 알맞게 수타 자리도 비어 있군요.”

사람들의 놀란 웅성거림이 흘러나왔다.

청하종주는 고해가 부러운 나머지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용완청에게 말했다.

“당주, 그건 불가합니다. 물론 고해의 능력이 대단하지만 들어오자마자 수타를 주는 건 다소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습니다. 일품당의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떠한지요?”

송갑종주도 동감했다.

“옳은 지적입니다. 당주, 세 번은 생각해 보시지요. 선천경을 금방 넘은 자가 어찌 타주 자리를 책임진단 말입니까? 게다가 일품당의 많은 형제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잠깐 생각하던 용완청도 조금 지나친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녀가 유년대사를 보았다.

“대사는 왜 수타를 추천했지?”

유년대사가 황급히 대답했다.

“제가 추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고해의 실력으로 수타 자리는 언감생심이지요. 그러나 일품당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를 엿보고 있습니다. 당주, 이왕에 말이 나왔으니 제가 한마디만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해봐.”

“일품당을 맡으신 후부터 당주의 언행에 과장된 부분이 많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자들 중 몇몇은 호시탐탐 당주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뿐인가요? 외부에서도 당주가 일품당을 망쳐버리기를 은근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용완청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그 말은 조금 지나치지 않나?”

유년대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군자는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주도 언행의 진중함을 아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이제 고해가 당주의 말씀만 듣기로 했으니 두 종류의 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타왕, 다음은 저와 같은 객경(客卿)입니다. 결정은 당주께 맡깁니다.”

용완청은 불만에 찬 표정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고해를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윽고 용완청은 결정을 내렸다.

“고해는 오늘부터 일품당의 수타주를 맡도록 해. 이건 그대의 영패이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 것이며, 앞으로 내 말만 따르도록.”

용완청은 보라색 영패를 내밀었다.

고해는 잠깐 영패를 살펴보았다.

수타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방금 전의 대화를 들은 이상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서 고해는 영패를 받아 쥐었다.

영패 표면에 물방울 형태가 음각되어 있었다.

용완청이 말했다.

“그 위에 피를 떨궈.”

고해는 바늘로 손을 찌르고 영패에 피를 묻혔다.

영패가 웅! 소리를 내며 움직이더니 고해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영패는 마치 고해와 한 몸으로 연결된 된 듯 몸속에서 십 장 크기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공간 안에는 열 개의 보라색 영석과 죽통이 함께 존재했다.

“이건?”

고해가 놀라자 용완청이 엄숙히 말했다.

“이제부터 그대가 일품당의 수타주야. 나를 실망시키지 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하종주는 아직도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제 고해는 수타주가 되었으며 그의 지위 역시 존중해야만 했다.

청하종주는 짐짓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리오, 수타주! 수타주가 우리 청하종에 들어왔으면 싶었으나 이제 기회는 사라진 것 같소. 수타주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소만, 너무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이 몸이 성심껏 도와드리겠소.”

고해도 정중하게 답례했다.

“종주께서 도와준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순간, 옆에 있던 고선무가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당주, 제가 고 타주를 모시면 안 되겠습니까?”

용완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정녕 그것이 소망인가?”

“저는 고 타주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아, 원한다면 그렇게 해. 아직 그대를 어디로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되었네.”

뜻밖의 상황에 고해 역시 웃으면서 말했다.

“고 원수가 나와 함께한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겠소?”

“고 선생, 아니, 고 타주. 이제부터 저를 소고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고 타주와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별말씀을 다 하시오.”

용완청이 말했다.

“이렇게 된 바에야 우리 삼 일 뒤에 출발하도록 하지. 삼 일 동안 정리할 시간을 주겠어.”

고해가 머리를 숙였다.

“당주님의 그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후 고해가 주청을 나가고 고선무가 그 뒤를 따랐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자리를 파하고 흩어졌다.

주청에는 용완청과 유년대사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용완청은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방금 전 자신의 경솔함이 신경 쓰인 것이다.

“당주, 고해를 받아들인 것을 후회하십니까?”

유년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용완청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약속했으니 지켜야지. 다만, 내가 고해를 감당할 수 없을까 봐 걱정이네.”

유년대사는 심오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외부인이 보기에 우리 일품당은 화목합니다. 당주께서 승계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었으나, 내부 문제는 충분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해가 지금 비록 약하긴 하나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동감이야.”

“어쩌면, 고해가 일품당을 지킬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아예 그놈들과 한번 싸우게 해보는 건 어떨까요? 결과가 좋으면 장차 그가 당주를 도와 일품당을 바로 세우는 데 중임을 맡을지도 모릅니다. 무량수불.”

유년대사가 합장하며 말을 끝냈다.

* * *

송성, 어느 작은 장원.

송황제와 송태자는 무릎을 꿇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 송갑종주와 어떤 청년 하나가 앉아 있었다.

황제가 원통하게 말했다.

“종주, 태조부님! 제가 무능하여 나라를 잃었습니다.”

태자도 이를 갈며 말을 보탰다.

“모든 게 고해 때문입니다!”

송갑종주는 굳은 얼굴로 침묵했다.

이런 그를 대신해 옆에 있던 청년, 송청서가 말했다.

“이제 나를 태조부라고 부르지 마라. 나는 너희 같은 자손을 둔 적이 없다.”

황제는 곧바로 절을 했다.

“태조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차갑게 노려보던 청년은 이내 한숨 쉬며 말했다.

“그만 됐다. 나라를 잃은 건 비통하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제부터 앞날을 생각해라.”

그런 다음 송청서는 송갑종주에게 공손히 말했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저희 고손이 종문을 망신시켰습니다.”

송갑종주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됐다. 이미 끝난 일을 어떡하겠느냐?”

그러더니 황제와 황태자를 꾸짖었다.

“너희 두 녀석들 보거라! 이제 군왕 노릇도 할 수 없으니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신분을 숨기고 살아라! 그래도 재산이 많으니 잘 먹고 잘 사는 건 별 지장 없을 것이다.”

송청서가 두 고손을 대신해 고개 숙였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송갑종주는 혀를 차며 탄식했다.

“고해는 정말 능력자다. 일품당에 들어오자마자 타주가 되었어.”

송청서가 잠깐 놀랐다가 곧 웃으며 말했다.

“놈은 이제 겨우 선천경 일단계입니다. 조금 좋은 머리로 음모만 꾸밀 줄 아는 놈이지요. 그래 봤자 진짜 실력자들 앞에서는 비웃음거리만 될 뿐입니다. 이제 두고 보면 알겠지요.”

송갑종주는 황제 부자에게 말했다.

“너희는 먼저 나가 있거라.”

황제와 태자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나갔다.

송청서가 뭔가 눈치채고 넌지시 물었다.

“스승님,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송갑종주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용완청이 이번에 천도해로 오는 목적은, 이백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선천잔국계(先天殘局界) 때문이다. 너도 그들과 함께 선천잔국계에 들어가서 기회를 보다가…… 적절한 시점에 고해를 죽여 버려라.”

송청서는 흠칫했다.

송갑종주가 싸늘히 내뱉었다.

“놈은 없어져야 해. 수타주 자리는 예전부터 주인이 따로 있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타주들이 약속한 일이지.”

그는 송청서를 노려보면서 강조했다.

“선천잔국계 밖에 우리 선천경 제자들이 모여 있을 거다. 내 영패를 들고 가면 그들이 너의 말만 따를 것이니, 반드시 그곳에서 고해를 제거해야 한다.”

송청서가 흉악스럽게 웃으면서 답했다.

“예, 스승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 * *

송성, 고한의 장원 고부(古府).

고한이 흥분한 표정으로 고해의 주변을 맴돌았다.

“의부, 정말 많이 젊어지셨습니다.”

고해가 웃으며 자리에 앉자, 고한이 바로 차를 따랐다.

고해는 보라색 영패를 꺼내 손에 들었다.

윙!

순간, 책상에 여섯 개의 상품 영석과 죽통이 나타났다.

“이 여섯 개의 상품 영석은 너와 고진이 세 개씩 가져라. 내가 없는 동안 최대한 빨리 선천경을 수련해야 한다.”

고한이 두 손을 맞잡고 고개 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의부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이 죽통을 살펴봤다. 진용선천공(眞龍先天功)이라는 선천경의 공법에 관한 책이더군. 일품당의 책이니 얼른 필사한 다음 바로 외워라. 너 하나, 고진 하나. 내가 없는 동안에도 선천경 공법을 꾸준히 수련해야 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고한이 벌게진 얼굴로 대답했다.

눈앞의 공법을 익히면 자신 역시 의부와 같은 신비한 힘을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문득, 고해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아까 주청을 나오면서 청하종주가 내게 선물을 주더구나.”

“어떤 선물인지요?”

“내가 고부를 일시 떠나는 일을 걱정했더니 호뢰관 이북지역을 전부 우리 고부에 넘겨주었다.”

고해의 말에 고한의 눈이 놀라서 커졌다.

“네? 그건 진국 영토의 사분지 일 아닙니까?”

“후후! 사분지 일이 많은가? 우리가 진국 영토 사분지 삼을 되찾아 주었다. 어디 그뿐이냐? 송국 강토 전부를 진국에 주었잖느냐? 아마 너에게는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겠지. 하지만 수련하는 자들에게 그런 세속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고한이 쑥스러운 듯 말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생각이 짧은 건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이지. 멀리 보면 생각이 짧아질 수가 없어. 어쨌든 나는 종문(宗門)이 평범한 범인(凡人)을 어떻게 쓸모 있게 만드는지 좀 더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가기 전에 몇 가지 일을 맡기도록 하마.”

“말씀하십시오.”

“호뢰관 내에 있는 열 개 성지도 관리를 잘해야 한다. 내가 준 지도를 따라 다시 건설해라. 돈 나가는 것을 아까워 마라. 돈은 쓸수록 유동자금이 생겨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호뢰관을 제대로 건설하면, 오국이 동시에 공격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난공불락의 요지가 될 것이다.”

“예, 의부.”

“오국의 인재들을 모아라. 재능 있는 자는 무조건 끌어안아라.”

고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고씨 점포에도 수많은 인재들이 있잖습니까?”

“아직 많이 부족해. 우리가 맞서야 하는 상대는 일개 범인들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고, 그 어떤 재능이 있든 전부 모아 둬라. 우리 고부에 쓸모가 있는 자는 충성도에 따라 최고의 약재와 공법을 상으로 줘라.”

“예!”

고해가 말을 이어갈수록 고한의 표정은 숙연해졌다.

“우리의 진짜 상대는 수많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천하(天下)다. 기억해 둬라. 충성심이 첫째이고, 그다음이 재능이다. 이번 일은 상당히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게야.”

고한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내 솔직히 말하마. 너는 성격을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없는 동안 혹시라도 고진과 분쟁이 생기면 고진의 말을 따르도록 해라. 알겠느냐?”

전에 없이 엄숙한 말이었다.

“예? 예…….”

고한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 얼굴에 억울하다는 표정이 묻어났다.

고해는 내심 미안했지만 그래도 내색하지 않았다.

이번에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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