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탐후
* * *
작은 개울가 주변에 작은 천막이 하나 있었다.
고해는 출발하기 전 영패의 작은 공간에 많은 물건들을 넣어왔는데, 거기에서 약을 찾아 인두사신에게 발라주었다.
“제 은인이십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뱀 여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감격해서 말했다.
고해는 그녀의 몸을 살펴보고는 탄식하며 말했다.
“하아, 참으로 딱하군. 푹 쉬어라.”
“네.”
여인은 그 와중에도 몹시 지쳤는지 눈을 감고 잠들었다.
고해는 천막을 나왔다.
천막 밖을 지키는 이는 고선무 하나뿐이었다.
“타주, 진천산과 송청서는 지형을 살펴보기 위해 나갔습니다. 저녁쯤엔 돌아올 겁니다.”
고선무의 말에 고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선무가 머뭇머뭇하며 고해에게 말했다.
“타주…… 송청서가 뭔가 다른 속내를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혹…….”
“나도 아네. 하지만 그 역시 수타의 제자 아닌가. 나는 그에게 기회를 줄 수밖에 없어. 그가 고집을 부리겠다면,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지.”
“……예.”
고선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 *
지금 송청서가 함께 있는 자는 수염을 기른 사내였다.
“토타주님,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토타주님께서 그 자리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송청서는 수염을 기른 사내에게 공손히 말했다.
수염을 기른 사내가 송청서를 보며 말했다.
“송갑종의 종주가 네게 고해를 죽이라고 명했겠지?”
“그렇습니다. 한데 왠지 모르게 자꾸 꺼려지게 되어…….”
송청서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토타주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문제인가? 송갑종의 제자를 모아 죽이면 되지.”
“예?”
“종주가 말하지 않았던가? 수타주의 자리 말일세. 어쩌면 자네를 위해 남겨뒀던 자리일 수도 있네.”
“제가…… 수타주를……. 말도 안 됩니다.”
“그가 틀림없이 이 약속에 대해 말한 적이 있을 것이네. 송갑종이 전력으로 우리를 도운 것은 바로 그 수타주 자리 때문이었으니. 자네가 일품당에 들어왔으니 그 자리는 자네를 위해 남겨둔 자리겠지. 자네도 알지 않는가? 일품당 본부에서 조책을 등록하게 되면 지주는 어떤 것을 얻게 되는지?”
수염을 기른 사내는 송청서를 보며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송청서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스스로 잘 생각해 보게. 나야 손해 볼 일이 없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되겠군. 기억하게, 난 자네를 찾아온 일이 없는 걸세.”
말을 하는 와중에 토타주는 숲 쪽으로 발걸음을 움직여 이내 사라졌다.
송청서는 그 자리에 홀로 남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는 동안 그의 안색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 * *
해 질 무렵, 선천잔국계의 한 개울가.
고해와 고선무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먼 곳에서부터 풀 소리가 드문드문하게 들리더니 이윽고 진천산이 나타났다.
“진 선배, 돌아오셨습니까? 해가 거의 다 졌습니다.”
고선무가 웃으며 반겼다.
하지만 고해의 눈썹은 치켜 올라간 상태였다.
고해 앞에 도착한 진천산이 말했다.
“타주, 알아보니 북쪽에서도 전투의 봉화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싸움이 있었던 것을 보니, 분명 그쪽에 원주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해의 눈빛이 번뜩였다.
“북쪽? 준비해라, 바로 북쪽으로 갈 것이다.”
“예? 하지만 타주, 북쪽에서 전투가 있었다면 그쪽의 보물 따위는 벌써 빼앗기고 난 다음일 것입니다. 지금 가봐야 뭐가 남아 있기나 하겠습니까?”
“우리의 목적은 이 소세계의 보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는 것이다. 원주민이 많은 곳이면 미생인을 찾기가 쉬울 거다.”
“아! 알겠습니다.”
진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고선무가 물었다.
“타주, 바로 채비해 떠납니까? 송청서를 기다리지 않고요?”
“송청서?”
고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변절자다.”
“예?”
진천산과 고선무의 낯빛이 일순간 변했다.
진천산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고선무는 달랐다. 그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타주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미 타주께선 두 번이나 경고했지 않습니까? 송갑종의 제자가 바로 근처에 있으니 소식을 얻기도 매우 편했겠지요.”
진천산이 망연자실해 물었다.
“잠깐, 어떤 경고를 두 번이나 했다는 말입니까? 송청서가 변절했다니, 무슨 뜻입니까?”
고해는 더 말하지 않고 서둘러 사방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인두사신을 담요로 감싸 안고 두 사람을 보았다.
“되었다. 가자.”
“예.”
고선무는 순순히 고해의 말을 따랐지만, 진천산은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잠깐만요. 송청서가 그저 열심히 탐색을 하느라 늦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가 어떻게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단 말입니까?”
고해는 어떤 설명도 하지 않은 채 담요 속의 뱀 여인을 안은 채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진 선배, 괜히 얽힐 필요 없어요. 설령 타주가 잘못 판단했다고 한들, 최소한 우리 사람은 안전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고선무가 웃으며 말했다.
진천산의 얼굴빛이 괴이해졌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산속을 빠르게 누볐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두 시진 후, 그들이 떠난 개울가에 인기척이 접근했다.
바스락, 바스락.
풀을 밟는 큰 소리와 함께 사십 명의 송갑종 제자들이 칼을 뽑은 채 그곳에 나타났다.
인상을 찌푸린 송청서는 그들의 우두머리였다.
“여기가 맞나? 사람은? 이렇게 빨리 도망을 가다니.”
송청서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이 비록 늦게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설마 고해 일행이 없을 거라고는 송청서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찾아라, 찾아서 내 앞에 데려와라. 땅을 석 자 파는 한이 있어도 찾아야 한다.”
송청서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명을 내렸다.
“예.”
* * *
다음 날 아침.
고해, 진천산, 고선무는 숲속의 작은 호숫가에 이르러 휴식을 취했다.
“타주, 타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행방은 금방 들키고 말 겁니다.”
진천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지?”
“송갑종은 추종술에 능합니다. 물론 아주 대단한 술법도 아니고, 그저 옛사람들의 경험에 지나지 않기는 합니다만, 풀이 꺾인 흔적이나 발자국, 땅의 이상을 봅니다. 송갑종의 제자들이 우리를 찾으려 한다면 그중에 틀림없이 추적술을 배운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추종술?”
고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고선무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타주, 사실이라면 위험합니다.”
고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될 것 없다. 내가 한번 해보지.”
“해보다니요? 뭘, 어떻게 해본단 말씀이십니까?”
진천산이 눈을 크게 떴다.
고선무도 눈빛을 반짝이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전방에 있는 사람을 조사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후방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낸단 말인가?
마치 고선무의 마음을 안다는 듯, 고해가 빙긋이 웃으며 손을 뒤집어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영패의 작은 공간에서 꺼낸 작은 주머니가 있었다.
“고선무, 이 주머니 안에 있는 것들을 열 몫으로 나누어 뿌려라. 여기, 저기, 저기…… 열 군데에.”
고해는 고선무에게 방향을 일러주었다.
“예.”
고선무는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진천산은 의아한 표정이었고, 잠에서 깨어난 뱀 여인 또한 궁금함이 가득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선무가 주머니 안에 든 뭔가를 손가락으로 집어 든 채 의아해하며 물었다.
“타주, 이것은 무엇입니까? 좁쌀인가요?”
고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말한 대로 해.”
고선무는 고해가 명령한 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작은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좁쌀이 곧 열 군데로 흩어졌다.
“그다음은요?”
진천산이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물었다.
“가자.”
고해가 뱀 여인을 안아 들며 웃었다.
“…….”
고선무는 땅에 뿌려진 좁쌀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고해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뱀 여인이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가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다. 다 나으면 떠날 수 있게 보내주지.”
“네? 저, 저는…… 갈 곳이 없어요. 은공과 함께 가면 안 되나요?”
그녀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갈 곳이 없다니. 부모는 어디 있지?”
고해가 놀라 물었다.
“저는 부모가 없습니다. 저는 팔 년 전 부화하던 순간부터 부모를 본 일이 없었고, 부화하자마자 이곳의 사람들에게 잡혀 종노릇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매일 저를 괴롭히고 죽이려고 했어요. 흑흑흑.”
뱀 여인이 울며 대답했다.
“뭐?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고해가 놀라 말했다.
진천산도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그럴 리가. 어떻게 팔 년 만에 뱀 요괴가 될 수 있지? 수련으로 인두를 갖게 된 건가?”
“저, 저도 모르겠어요. 저는 부화할 때부터 이랬어요, 계속 쭉 이런 머리였어요. 은공을 따라가면 안 될까요? 폐 끼치지 않을게요. 저는 약초를 키울 수 있으니, 이후에 약초밭을 관리하는 일을 도울 수도 있어요.”
뱀 여인이 간곡히 말했다.
고해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먼저 요양부터 하렴. 다 나은 다음 다시 이야기하자.”
“감사합니다.”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이름이 무엇이지?”
뱀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냥 저를 시종이나 뱀 요괴, 작은 짐승 같은 걸로 불렀어요, 저는…….”
“이름이 없으면 안 되지. 이름을 지어주겠다. ‘소유’가 어떨까?”
고해가 웃으며 말하자, 뱀 여인은 무척 기뻐했다.
“좋아요. 저는 지금부터 소유예요. 이름을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우 여덟 살이라니. 어쩐지 어린애 같은 얼굴이었다.
그때 고해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물었다.
“맞아, 이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은데……. 당시 소세계의 원주민들이 너를 데리고 외지인들을 잡으러 갔다가 잡혀서 모두 자살했다고. 그들의 성격이 그렇게까지 강직한가?”
이는 고해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잡혔다고 자살을 하다니.
소유 말고는 다른 누구도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인가?
소유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들은 죽어도 사실 별 상관없어요. 왜냐하면, 곧 환생할 거니까요.”
“뭐?”
“제가 들은 바로는, 여기 사람들은 죽음을 상관하지 않아요. 새 아기가 태어나기만 하면 바로 환생을 하고,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경우에는 스스로 자살을 하기도 해요. 물론 대장로와 같은 사람들이 허가를 해줘야만 자살할 수 있다고 해요. 그렇지 않은 경우엔 그 전생의 기억을 봉쇄해 버리죠.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걸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고요.”
진천산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죽은 사람들은 혼이 떠나지 않고 다시 이 소세계로 환생한다는 말이냐?”
고해도 놀란 표정이었다.
“전생의 기억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
소유가 설명했다.
“대장로에게는 ‘삼생석’이라는 것이 있어서 전생의 기억을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어릴 때부터 수련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죠. 어릴 때부터 수련을 시작하니 속도도 빨랐고요. 물론, 삼생석으로 전생의 기억을 막을 수도 있고요.”
진천산은 진심으로 경탄했다.
“허! 그렇군! 어쩐지 여기 원주민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더라니.”
고선무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는 외부인들이 많이 들어왔었다고 하던데, 그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지?”
“외부인들이 죽으면 그 혼백 또한 나가지 못하고 여기서 환생을 해요. 하지만 더 이상 성인으로 환생하는 것이 아닌, 우리와 같은 돼지, 소, 양과 같은 동물로 환생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전생의 기억도 찾을 수 없어요.”
고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대장로인지 뭔지 하는 자가 그들이 적이었기 때문에 삼생석으로 기억을 찾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
“아마 그럴 거예요. 더군다나 예전의 주인님께 들은 이야기로는, 출입구가 닫히는 일 년만 참고 견디면 외부인들이 아무리 재주가 있다고 한들 천벌을 받아 모두 죽게 될 거라고 했어요.”
고해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선천잔국계…… 아주 무서운 진법이구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들은 상당히 먼 곳까지 움직였다.
세 시진이 지나서는 산 중턱에 도착했다.
“타주, 저기 좀 보십시오!”
고선무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