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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30화 (30/243)

30화 공분

고해, 소유, 진천산 모두 고산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은 이전에 휴식을 취했던 숲속의 작은 호수가 있던 곳이었다.

수림이 우거져 있어서 호수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허나 보이는 것도 있었다.

호수 주변에 작은 새 떼가 무엇에 놀란 듯 날아오르는 모습이었다.

희한하게도 새 떼들은 멀리 날아가지 않고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참새들인가? 오, 다른 새들도 있는데?”

진천산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사람 수가 적지 않은 것 같군.”

고해가 두 눈을 가늘게 뜬 채 말했다.

고선무가 그를 보며 말했다.

“타주님, 아까 뿌려둔 좁쌀 말입니다. 작은 새들을 유인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까?”

고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왜 그랬을 것 같으냐?”

고선무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송청서 무리가 오면 필경 새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사방팔방에 곡식을 뿌려놓았으니 보통 사람이나 짐승이 새를 쫓는다면 한둘만 흩어졌을 것이고요. 하지만, 열 군데에서 새가 모두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그 무리가 산발적으로 여기저기를 뒤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맞다. 그리고 새가 계속 헤매는 것은 곡식을 포기하지 못해 저 무리가 떠나길 기다리는 것이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헤매던 새가 다시 떠나왔던 방향으로 날아내렸다.

진천산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누군가 뒤에서 우리를 잡으려 하고 있군요.”

고선무는 한 수 더 배웠으므로, 바로 고해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타주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고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 곳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진천산이 긴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송갑종의 제자가 우리를 수색한 것일까요? 우리는 겨우 선천경의 능력뿐인데, 적수가 많다면, 우리는…….”

“타주,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고선무가 묻고는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송청서가 사람을 끌고 와 우리를 죽일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분명 죽을 각오도 되어 있다는 말이겠지.”

* * *

송청서는 사십 명의 송갑종 제자들과 함께 공터에 멈춰 섰다.

맨 앞에서 수색하던 제자가 보따리에서 반짝이는 파란색의 분말을 꺼냈다.

“후우.”

가루를 바닥에 뿌리자 파란빛이 땅으로 퍼져 반짝였다.

그런데 한쪽에서 파란빛의 흔적이 없는 세 쌍의 발자국이 나타났다.

“사숙, 사기분을 뿌려서 그들의 종적을 찾아냈습니다. 이 세 쌍의 발자국은 이곳을 밟은 지 몇 시진 되지 않아 아직 생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기분이 빛을 잃은 것은 그들이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이니, 더는 도망가기 힘들 겁니다.”

송청서는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도망가? 어디로 도망가는지 보자. 그들은 겨우 셋이고, 우린 마흔 명이야. 나중에 그들을 잡게 되면 쓸데없는 말 할 것 없이 그냥 바로 죽여 버려라.”

“사숙, 그들을 꼭 죽여야만 합니까?”

“흥. 이건 종주의 명령이다. 방천룡의 복수를 해야지. 누구든 고해를 죽이면 종주께 말해 ‘충금단’을 받도록 해주고, 다른 사람들은 한 사람당 스무 개의 영석을 받도록 해주겠다.”

송갑종 제자들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예, 사숙! 그들은 단 한 명도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그 뱀 요괴도요.”

그때 송갑종 제자 중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숙,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의 행방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이지?”

“조금 전 호수 주변에서 좁쌀 한 무더기와 그걸 먹으려고 날아든 작은 새 떼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다다르니 새들은 바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지요. 이전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점점 이상합니다. 왜 이런 곳에 좁쌀이 있죠?”

송청서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런! 노출됐구나. 쫓아라, 어서 쫓아!”

“예!”

송갑종 제자들은 재빨리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고해는 고선무로 하여금 큰 구덩이를 파게 했다.

“타주, 구덩이는 왜 파는 겁니까? 송청서를 여기에 빠뜨리기라도 하려는 겁니까? 그러기에는 너무 얕은 것 아닙니까?”

진천산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의 손에는 영패의 작은 공간에서 꺼낸 관이 있었다.

“음?”

진천산, 고선무 모두 멍한 얼굴이었다.

관을 이용해 송청서의 무리를 상대한다고?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고해는 매우 조심스럽게 관을 구덩이 안에 넣고 뚜껑을 열었다.

고선무가 관 안을 보고 말했다.

“아, 그건…… 숯, 초석, 유황. 순도가 높은 물건들이군요.”

고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도화선을 꺼내 관 안의 숯, 초석, 유황과 연결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흙으로 묻었다.

마지막엔 부싯돌 한 조각을 끌어올린 선의 한쪽에 놓고, 그 옆에 널빤지 하나를 놓아 앞에 꽂은 뒤 부싯돌과 함께 기대어 두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흙으로 덮어 두니 마치 비어 있는 나무 묘비를 세워둔 무덤처럼 보였다.

“이것 뭡니까?”

고선무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해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다시 손을 작은 공간에 넣어 붓과 먹을 꺼냈다.

그러고는 먹물을 묻힌 붓으로 묘비에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송청서, 본 타주는 네가 더 이상 따라오지 말고 되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지키지 않을 경우,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옆에 있던 진천산이 눈을 크게 뜬 채 물었다.

“이, 이걸로 끝입니까? 이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진천산은 말을 하며 그것을 만져보려고 했다.

“멈춰!”

고해가 별안간 고함을 질렀다.

진천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예?”

고해는 고개를 저을 뿐, 해명하지 않았다.

“고선무, 사방에 좁쌀을 뿌려놓고 가자.”

“예.”

두 시진 후, 고해 일행은 또 다른 산 중턱에 도착했다.

“은공, 보세요. 새들이 날아올랐어요. 그들이 저 산골짜기까지 따라왔어요.”

소유가 놀라 소리쳤다.

“오?”

고해 일행은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 쪽을 바라보니 사방에서 새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온 건가?”

고선무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고선무는 고해가 무엇을 해놓고 왔는지 몰랐으나, 틀림없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일 거라 생각했다.

반면 진천산은 그저 의아하기만 했다.

‘그들이 쫓아오는데,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그게 그들을 놀라게라도 할 것인가?’

그 시각.

송갑종의 제자 하나가 흥분하여 말했다.

“사숙, 보십시오. 사방에 좁쌀이 아주 많습니다. 고해 일행이 뿌려둔 게 분명합니다. 그들이 이쪽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송청서가 냉랭한 표정으로 조소를 지었다.

“새 떼가 자기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보지? 흥! 순진하군. 여기까지 온 이상, 어쨌든 죽게 되어 있어!”

“사숙, 빨리 추격하시지요!”

제자들이 송청서를 재촉했다.

고해를 제일 먼저 죽인 사람에게 송갑종의 영단인 충금단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많은 제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앞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숙! 여기 묘가 있습니다. 음? 고해가 사숙에게 세운 묘입니다!”

“뭐?”

송청서는 눈을 치켜뜨며 달려갔다.

송갑종 제자들도 그 주변을 둘러쌌다. 호기심이 동한 얼굴이었다.

[송청서, 본 타주는 네가 더 이상 따라오지 말고 되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지키지 않을 경우, 이곳이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묘비의 글씨를 읽은 이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고해가 미치기라도 했나? 겨우 빈 무덤 하나로 우릴 겁주려고?”

제자 하나가 비웃으며 말했다.

“감히 사숙을 저주하다니.”

송갑종 제자들은 일제히 고해를 비웃었다.

하지만 묘비의 글자를 본 송청서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타주? 타주라고? 너 주제에?”

송청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묘비로 걸어가서 한 손으로 묘비를 후려쳤다.

퍽!

송청서를 저주하던 묘비가 큰 소리와 함께 박살 났다.

그러데 묘비가 부서진 순간, 바닥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나더니 부싯돌에 불꽃이 일었다.

멀리 떨어진 산 중턱.

“타주, 그 관 안에 들은 것 말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고선무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소유 역시 궁금한 듯 고해를 바라보았다.

“맞아요. 은공, 관 안의 유황, 초석, 숯은 도대체 뭐에 쓰는 건가요?”

고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화약이다.”

진천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별것 아닌 재료들을 섞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화약? 그건 어떻게 쓰는 겁니까?”

“폭발할 수 있지.”

“폭발요?”

진천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때였다.

콰아앙!

천지를 진동시키는 커다란 굉음이 산골짜기로부터 들려왔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진천산은 대지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산골짜기를 바라보니, 진흙은 하늘로 튀고 연기와 먼지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흙더미와 화염이 솟구치고, 송갑종의 제자들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온 하늘에 절단된 사지와 불꽃이 섞인 진흙이 사방팔방에 날아다녔다.

진천산은 멍해졌다.

그의 등에 식은땀이 맺혔다.

‘내가 그때 만지려고 했는데…….’

송갑종 제자들의 사지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진천산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고선무의 눈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끔찍한 폭발이군요.”

고해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군.”

“예?”

소유가 놀라 물었다.

“선천경은 공기를 이용해 몸을 보호할 수 있는데, 저들은 너무 긴장을 풀고 있었던 탓에 미처 자신을 방어하지 못했어. 하긴 숲속에서 무언가 폭발할 것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지.”

고해는 연기가 자욱한 산골짜기를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만 가자.”

“예.”

고선무는 먼 곳에서 화려하게 터진 폭발을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았다.

고해는 그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진천산은 고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삼키며 뒤를 따랐다.

* * *

폭발이 일어난 산골짜기.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하늘을 가득 채웠던 절단된 사지가 땅으로 떨어졌다.

송청서의 몸도 순식간에 새카맣게 탔다.

하지만 그가 밟고 있던 바닥이 튼튼했기에 송청서는 그 폭발 중에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엄청난 폭발의 충격으로 전신의 뼈 곳곳이 골절되었고, 오장육부가 부서졌다.

또한 폭발 당시 관에 붙어 있던 수많은 쇳조각들이 날아와 몸을 찢어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푸헉! 커커컥!”

불길 속에서 송청서는 피를 토했다. 그러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초토화된 산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으아아아.”

“사, 살려줘요!”

“사, 사숙! 죽기 싫습니다! 살려주세요!”

살아남은 제자들이 사방에서 울부짖었다.

그나마 소리를 낼 수 있는 이들은 채 열 명도 되지 않았고, 그들 역시 대부분 손발이 잘려 나간 상태였다.

송청서는 안색이 해쓱하게 질린 채 겨우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데려온 송갑종 제자들은 대부분 죽거나 불구가 된 이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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