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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31화 (31/243)

31화 삼혼칠백(三魂七魄)

산골짜기에서 멀지 않은 곳.

수염을 기른 사내가 눈을 부릅뜨고 폭발이 일어난 산골짜기를 바라보았다.

부하 하나가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타주, 송청서 무리가 아무래도 고해의 수에 말려든 것 같습니다.”

수염을 기른 사내가 고개를 들어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고해, 이놈. 내가 너를 너무 얕보았구나.”

“타주. 송청서 무리가 별로 쓸모가 있지는 않긴 한데, 그래도 살려야 하지 않을까요?”

수염을 기른 사내가 눈을 가늘게 좁히고 말했다.

“일단은 그래야겠지.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대로 가치가 있으니.”

“예.”

* * *

하루가 지난 후, 길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들짐승에 의해 갉아 먹힌 곳이 나왔다.

전쟁의 흔적도 있어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 듯했다.

고선무가 그 광경을 보고 표정이 굳어져서 말했다.

“타주, 여기에 원주민이 모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해도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소유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 저 여기 알아요.”

“그래?”

소유가 한쪽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저 산, 저기 저 산을 알아요. 저 산을 넘으면 제가 머물렀던 약초원이 있어요. 무곡이란 곳이에요.”

“가자.”

고해 일행은 그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머지않아 일행은 산꼭대기에 올라 산 뒤편을 바라보았다.

지나온 곳처럼 새카맣게 타버린 골짜기가 보였다.

붕괴된 작은 건물이 소유가 말한 약초원인 것 같은데, 이미 초토화되어 있었다.

소유가 놀란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가 맞는데…… 전부 타버렸군요.”

진천산이 둘러보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약탈당한 모양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고선무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타주, 여기의 시체들 말입니다. 소유가 말하기를 여기서 천 명이 살았다고 했는데, 어찌 한 구의 시체도 보이지 않는 걸까요?”

“그렇군.”

고해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소유가 말했다.

“은공, 다른 장소가 하나 더 있어요. 아마 거기에 있는 것은 갖고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래?”

“그곳은 샘물인데, 골짜기의 주인만이 마실 수 있고, 일 년에 딱 한 번만 마실 수 있어요. 그런데 듣기로는 한 입만 마셔도 실력이 는다고 했어요.”

소유의 말에 진천산의 눈이 커졌다.

“설마 영천? 여기에 영천이 있단 말이야?”

고해가 기이하게 여기며 물었다.

“영천이 무엇인데 그러나?”

진천산이 흥분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영천은 자연적으로 생긴 곳인데, 수많은 영기가 샘에 모여 그 물에서 목욕을 하면 몸이 영기를 받아들여 수련을 도울 뿐만 아니라, 성질이 온화해 몸에 어떤 부작용도 남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고해가 소유에게 물었다

“영천은 어디에 있느냐?”

“저 궁의 뒤, 은밀한 곳에 있어요. 제가 은공을 모실게요.”

소유는 은공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는지 몹시 기뻐했다.

고해 일행은 계곡으로 들어갔다.

시꺼먼 골짜기는 온통 폐허가 되었는데, 가장 큰 궁도 반은 무너져 있었다.

“타주, 보십시오.”

고선무가 갑자기 안색이 변해 말했다.

부서진 궁궐 내부에 몇백 구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하나같이 모두 새까맣게 탄 상태였다.

그런데 시체가 모두 한곳에 모아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진천산의 눈이 커졌다.

“시체를 전부 여기에 모아 놓은 것인가?”

고해의 시선도 굳어졌다.

그는 주위를 경계하며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타주, 산 위에서 봤을 때 골짜기에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선무가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 말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이 시체들을 거두어들였단 말인가?”

진천산이 의아해하며 대꾸했다.

고해는 눈썹을 찡그린 채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 다음 말했다.

“일단 영천으로 가보자.”

“예.”

폐허가 된 궁궐을 돌아가니 구석진 곳에 감쪽같이 숨겨진 동굴이 있었다.

수풀이 동굴의 입구를 막아서 외부인은 발견하기가 힘들 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초목이 옮겨져 있었고, 바닥에도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소유가 그 동굴을 가리켰다.

“여기예요.”

고해와 고선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동굴을 바라보았다.

반면 진천산은 그 동굴을 보고 서둘렀다.

“가시죠?”

고선무가 그를 막았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누군가 먼저 들어갔습니다.”

“사람이 있다고?”

진천산의 안색도 바뀌어 경계하는 빛을 띠었다.

그때 동굴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타불.”

소리는 꽤 컸다.

하지만 고해 일행은 불경 소리를 듣는 것처럼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다.

곧 법복을 입은 늙은 승려가 천천히 동굴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자비로움이 가득했다.

그의 손에는 시체가 한 구씩 들려 있었는데, 그 시체는 죽은 지 오래된 듯 보였다.

“고 타주셨군요.”

늙은 승려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해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사께서는 저를 아십니까?”

노승이 고해의 품에 안긴 소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는 좋은 삶을 위한 덕이 있고, 고 타주는 전혀 상관도 없는 작은 뱀을 위해 권선징악을 몸소 실천하시지 않았습니까? 소승이 어찌 모를 수 있겠습니까?”

고선무와 진천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소세계에 막 입성한 그날, 사람들이 소유를 둘러싸고 죽이려 할 때, 노승이 거기에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고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히 대사의 법명을 여쭙고자 합니다.”

“소승 ‘남색 옷’이라 합니다.”

“영생대사를 뵙습니다. 여기의 시체들은 대사께서 한데 모아두신 것입니까?”

영생대사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맞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마지막 두 구의 시체도 입관하여 장사 지내 주려고 합니다.”

고해는 고개를 끄덕여 노승의 말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영생은 느릿느릿 궁으로 걸어가 두 구의 시체를 궁 안에 내려놓았다.

“타주.”

진천산이 동굴을 보며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고해는 고개를 가로저어서 진천산의 조급한 마음을 눌렀다.

그때였다.

노승이 손바닥을 뒤집더니 선장을 꺼내 땅에 꽂는 것이 보였다.

쾅!

선장이 굉음을 내며 땅에 박혔다.

순간, 선장으로부터 금빛이 솟구치더니 곧 사방의 대지를 뒤덮었다.

우르르릉.

놀랍게도, 시체가 놓인 궁전이 천천히 땅 아래로 가라앉았다.

사방의 땅이 굽이치며 중심을 향하더니, 천천히 궁궐을 뒤덮어서 거대한 하나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 광경을 보고 진천산이 놀라 소리쳤다.

“저럴 수가! 저 승려는 대체 누구지? 저것이 무슨 법보인데……?”

고해가 진천산을 돌아보았다.

“왜 그러는가?”

“타주, 이 소세계는 선천경으로 압축된 곳인데, 선천경을 선장으로……. 설령 청하종주라 해도 못 할 일입니다.”

고선무가 진천산에게 물었다.

“그 말은 저 승려의 수련 정도가 청하종주보다 더 높다는 겁니까?”

진천산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모두 편히 쉬십시오. 아미타불.”

영생대사가 선장을 내려놓고 합장했다.

휘이이잉.

갑자기 맑은 바람이 한바탕 몰아쳤다.

고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사님,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영생대사는 고개를 돌려 고해를 바라보았다.

“저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묘를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대사님, 여기 사람들은 죽고 나면 환생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신경 쓰지 않는데, 대사님은 어찌 신경을 쓰십니까?”

영생대사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개의치 않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들이 이해했을 때는 이미 전부 늦었지요.”

“무슨 말씀인지, 스님의 설명을 들었으면 합니다만.”

“시주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빈승은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서 있는 팔백삼십일 개의 영혼이 빈승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있군요. 이들이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소승의 공덕이지요.”

영생대사가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고해가 경이로운 마음으로 거대한 무덤을 바라보았다.

“팔백삼십일개의 영혼요? 여기에 말입니까?”

“사람에게 삼혼칠백(三魂七魄)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예, 삼혼칠백이란 말은 자주 들었지요.”

“삼혼이라 함은 천혼, 지혼, 인혼이니, 사람이 죽고 나면 삼혼이 흩어져 천혼은 하늘로 돌아가는데, 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하늘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혼은 저승으로 가는데, 결국은 환생하게 되는 것이지요.”

“아, 그럼 인혼은……?”

“인혼은 시체가 있는 곳에 남아 시체를 지키지요. 좋은 영기가 있는 곳에 묻히게 되면 후손의 운이 좋게 되고, 불운과 오기가 모이는 땅에 묻히게 되면 후손 또한 불운을 온몸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대사님, 삼혼칠백이 함께 환생하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 고해는 환생을 하게 되면 삼혼칠백이 한데 환생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죽으면 혼비백산한다고 하지요. 고 타주께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음, 죽으면 그냥 혼비백산하는 것 아닙니까?”

“삼혼이 음(陰)이고, 칠백이 양(陽)인데, 칠백은 신체의 것이라 신체가 없어지면 백(魄)이 흩어집니다. 삼혼의 천지인(天地人) 중 지혼은 환생할 수 있으나, 인혼은 부모에게서 온 것이라 후세로 이어지고, 천혼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 죽어서는 하늘로 돌아갑니다.”

영생대사의 설명에 고해의 표정이 변했다.

“그렇다면 환생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전생의 지혼만 같은 것일 뿐, 이혼칠백은 이미 모두 새로운 것이니 환생했다 한들 완전한 자신이 아니겠군요.”

영생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유가 영생대사와 고해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제야 대장로가 왜 자살하여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지 알겠어. 전생의 기억은 단지 지혼의 기억일 뿐으로, 죽으면 없어져 버리는구나. 모든 사람은 단지 하나일 뿐, 둘일 수 없는 것을.”

그때 고해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사님, 혹시…… 죽은 여인 하나를 되살려 주실 수 있습니까?”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나,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칠백이야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삼혼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인혼은 계속 무덤 옆을 지키고 있으니 쉽지요. 허나 지혼은 이미 환생해버렸을 겁니다. 그리고 천혼은 이미 하늘로 갔는데, 어찌하늘에 있는 영혼을 빼앗아올 수 있겠습니까? 관기 노인도 사랑했던 이의 천혼을 하늘로부터 빼앗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결국은 그 역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고해는 영생대사의 설명을 듣고 한동안 침묵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몇 번이나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다.

그런데 고선무가 물었다.

“대사님, 인혼은 시체 곁을 계속 지킵니까?”

영생대사는 무덤 한쪽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인혼은 가장 연약하기 때문에 기탁할 곳이 없으면 곧 사라지게 됩니다. 그나마 장사를 지내 무덤이 생기면 오래 머물 수 있지요.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어서 어느 날 이유도 모른 채 촛불처럼 꺼지기도 합니다.”

고해의 안색이 일변했다.

“인혼 또한 사라진다고요?”

“기회와 인연을 보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요. 하늘은 좋은 삶의 덕을 갖고 있지만, 하늘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영생대사의 말을 들은 고해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정중히 예를 올렸다.

“대사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 * *

선천잔국계, 산꼭대기.

홍의(紅衣)를 입은 청년이 저 멀리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홍의 청년은 외모가 출중했는데, 눈에서 요사한 악의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다.

흑의(黑衣)를 입은 남자가 홍의를 입은 청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말했다.

“구공자님, 이번에 들어온 침입자들이 극악무도한 짓을 벌이고 있습니다. 오는 길 내내 불을 붙이고, 중간 출구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제지했다는 이유로 전부 죽여버렸습니다. 얼마 전에는 무유곡에 있는 물건들을 약탈해 갔고, 그것도 모자라서 전부 불에 태워버렸습니다.”

홍의를 입은 구공자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침입자들이 지나치게 도를 넘는군. 흥! 저들이 상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나서지. 어차피 얼마 후면 천원도를 떠날 몸이니 책임을 물으려야 물을 수도 없을 것이야.”

“구공자님이 직접 나선다고요?”

흑의를 입은 남자가 눈을 반짝였다.

“무유곡은 천여 명의 사람들이 살던 곳인데 하루아침에 전부 살해되다니. 흥! 이렇게 된 이상 저들을 전부 무유곡에서 쫓아버릴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가 놈들을 친다. 이번에는 노들이 절망할 것이야.”

흑의를 입은 남자는 흥분을 금치 못했다.

“구공자님이 직접 나선다면 저들의 살길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요괴 퇴치부대에 알리거라! 북방으로 들어오는 침입자들을 전부 무유곡에 몰아넣으라고 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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