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영모(靈母)
* * *
선천잔국계, 한 숲속.
송청서는 치료를 받은 후 몸이 많이 회복됐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으나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송갑종의 제자들은 거의 죽고, 얼마 남지 않은 제자들은 불구가 된 상태였다.
송청서는 부상을 입은 제자들을 보면서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고해를 극렬하게 증오했다.
“감사합니다. 몽 타주님.”
송청서가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송청서 앞에는 곱슬곱슬한 수염을 기른 일품당 토타주와 그의 제자들이 서 있었다.
일품당 토타주 몽태가 말했다.
“됐네. 송청서, 앞으로 일품당에서 자주 보게 될 거야. 이번에 이런 참사를 당해서 마음이 편치 못하군. 새로운 수타주가 자신의 부하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송청사가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게요, 제가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저에게 함정을 놓다니. 고해의 손에서 오늘은 겨우 벗어났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저를 죽이려고 할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고해를 죽여야지요. 고해가 살아 있으면 불안해서 살아갈 수 없을 겁니다.”
그 말에 몽태는 미소를 지었다.
“수타주가 좀 지나치긴 했어.”
릴리릴리리.
그때 숲에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몽태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뭐지?”
몽태 뒤에 있던 부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피리 소리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타주! 얼른 도망가십시오!”
정탐하러 갔던 한 부하가 돌아와 소리쳤다.
“아악!”
그때 비명이 들렸다.
부하 하나가 마치 폭탄처럼 그들 쪽으로 날아왔다.
쿵!
멀지 않은 곳에서 한 거대한 괴물이 한 발로 그를 짓밟아버렸다.
송청서는 그 괴물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
“요랑?”
거대한 늑대가 이를 갈며 그 남자를 밟고 있었다.
거대한 늑대는 빨간 두 눈을 끔뻑이며 험상궂은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타주! 살려주십시오!”
밑에 깔린 자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몽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칼을 꺼내 들고 달려갔다.
“미친놈! 어딜 감히!”
콰우우!
요랑이 울부짖자, 입에서 구 모양의 물체가 튀어나와 날아들었다.
쩡!
몽태의 칼이 구 모양 물체와 부딪치면서 두 동강이 났다.
바로 그때, 몽태의 부하들이 칼을 들고 달려와 늑대의 발에 걸린 동료를 구해내려 했다.
“미친놈아! 저리 가!”
그때, 풀숲에서 또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늑대 형상의 괴물이었다.
쿠과광!
몽태의 부하 일부가 튕겨 날아갔다.
송청서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뭐, 뭐야, 이거?”
쿠구구궁.
점점 더 많은 요랑들이 달려왔다.
요랑의 숫자가 어느덧 삼십 마리나 되었다.
먼저 달려온 요랑은 큰 입을 벌리더니, 발밑에 있는 사람을 한입에 삼켜버렸다.
“아아악! 타주! 살려주십시오!”
꽈직!
또다시 요랑에 의해 부하의 몸 절반이 뜯겨나갔다.
릴리리리리!
피리 소리와 함께 요랑이 증가하더니 금세 오십 마리가 되었다.
몽태 주변에는 열 명 남짓한 부하들밖에 없었으나, 요랑의 숫자는 점점 더 증가했다.
몽태 혼자서는 아무리 싸워도 역부족이었다.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
“가자! 얼른 여기를 빠져나간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바닥에 쓰러진 송갑종의 부상당한 제자들이 애원했다.
송청서는 착잡한 눈빛으로 제자들을 보았지만, 이내 머리를 돌리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곳에서 도망쳤다.
늑대들이 도망치는 자들을 뒤쫓았다.
“으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제발……! 크아악!”
송갑종 제자들은 절망해서 소리쳤지만 돌아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달리는 늑대 뒤쪽에는 거대한 두 마리의 늑대가 있었다.
그 늑대들의 등에는 흑의를 입은 사람이 각각 서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피리를 불면서 늑대들을 조종했다.
흑의를 입은 자 하나가 말했다.
“구공자님께서 저들을 전부 무유곡으로 몰아넣으라 하셨습니다. 저들에게 절망을 느끼게 한 다음 죽여버릴 생각인 것 같습니다.”
피리를 불던 자가 냉랭히 답했다.
“나도 알고 있네. 놈들은 절망감을 느끼며 죽어가게 될 거네.”
* * *
무유곡에 있던 고해는 영생대사에게 삼혼칠백을 가르쳐 줄 것을 청했다.
영생대사는 고해에 대한 인상이 좋았기에 아는 바를 전부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소유를 보며 말했다.
“이 작은 뱀이 예전에는 여기서 살았다고? 자네들은 확실히 영천 때문에 왔구만.”
“그렇습니다.”
“그럼 다 같이 들어가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이 역시 관기 노인이 만든 것이야.”
진천산이 그 말에 놀라서 물었다.
“예? 영천은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 아닙니까?”
영생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불가능하겠지만, 관기 노인은 가능했다네.”
영생대사는 고해 일행을 이끌고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은 매우 길었다.
일행은 한참 들어간 후에야 동굴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대청만 한 크기의 공간이 있었다.
사방 벽에는 야광주들이 알알이 박혀 있어서 내부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동굴은 밀폐되었고, 출구는 하나밖에 없었다.
중앙에는 원형 모양의 연못이 세 개나 있었다.
연못 안에는 자갈이 가득 차 있었고, 연못의 물은 푸른빛을 띠었다.
진천산은 연못 가장자리에 손을 대고 환하게 웃었다.
“역시 영천이네요”
소유가 연못을 보며 말했다.
“은공님, 이 연못은 일 년에 한 번씩 파란색 빛을 뿜어냅니다. 그런데 곡주(谷主)가 물에 몸을 한 번 담그고 나면 파란색 빛이 사라져요.”
진천산이 말했다.
“그건 영기가 이미 몸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지.”
영생대사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파란색 빛이 영기라고? 그것도 일 년에 한 번 영기를 발산한단 말이지? 허어, 관기 노인은 정말 많은 수를 생각하면서 바둑을 두는 사람이었어. 이 샘물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다니…….”
“네?”
“고 타주, 한번 실험해 보지 그러나?”
영생대사가 웃으면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소유를 내려놓고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고해는 가부좌를 하고 진용선천궁을 운기했다.
후우우웅.
고해는 물속에 함유되어 있던 거대한 영기가 자신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속도는 공기에서 영기를 끌어들이던 속도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몸속으로 스며든 영기는 돌고 돌아서 단전으로 모여들었다.
“어? 은공님의 피부에서 보라색 빛이 나와요.”
고해를 바라보던 소유가 말했다.
진천산도 그걸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물에서 나오는 영기가 아닌가? 왜 보라색이지요?”
고해의 피부에 떠오른 보라색 광채가 몸속으로 들어갔는데도 연못에 있는 파란색 광채가 점점 더 짙어졌다.
“엇?”
영생대사가 신기한 듯 고해를 보았다.
“대사님, 왜 그러십니까?”
고해가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영생대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보라색이라니. 이건 영모 아닌가?”
“영모요?”
모든 사람들이 대사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영기를 영모라고 불렀네, 영모는 물과 섞이면 수성 영기로 되어 백 배, 천 배로 희석되네, 그리고 흙과 만나면 또 다른 영기로 변했지. 그런데 자네는 왜 영모만 흡수하지? 도대체 그게 무슨 공법인가?”
고해는 잠시 생각해 보고는, 힘들었던 지난날의 수련 과정을 전부 영생대사에게 알려주었다.
“외공을 익혔다고?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자네가 흡수하는 영기는 다른 사람의 백분지 일에 불과해. 심지어 선천경을 돌파할 때에도 그렇게 많은 영석을 사용했다니 놀랍구먼. 자네의 몸이 원시적인 영기만 흡수하는 원인은, 아무래도 자네가 외공을 수련했기 때문인 것 같군. 최초의 진기는 살을 압축해서 만든 가장 깨끗한 영모인데, 앞으로도 이런 영모만 흡수하겠구만.”
영생대사는 뭔가를 깨달은 듯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고해를 응시했다.
“대사님, 저와 같은 체질이 좋습니까, 아니면 나쁩니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 나쁜 점은 수련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야. 수련 중에 곤경에 처하기도 할 것이고. 영모는 워낙 적어서 백 개의 영기 중 영모 하나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래도 좋은 점은, 자네의 기초가 그 누구보다 탄탄하다는 거야. 용완청 외할아버지가 왜 힘든 길을 선택했는지 이제야 알겠네.”
“예? 누구요?”
고해는 본인과 같은 길을 걸은 사람이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일품당 당주의 아버지네.”
“예? 용완청의 아버지 말입니까?”
고해의 말에 영생대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용완청? 일품당 당주가 용완청의 어머니 아닌가? 용완청 외할아버지가 외공을 수련했는데, 어찌 용완청이 당주가 되었단 말인가?”
“아마도 당주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듯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미생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혹시 들어보셨는지요?”
“음?”
영생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대사님, 알고 계십니까?”
“들어본 적은 있으나, 그 사람도 선천잔국계에 있는 건 몰랐네. 그러니 어디에 있는지 나도 모른다고 할 수 있지. 그 사람…… 하아, 자네가 직접 만나보게나. 쉬운 사람은 아닐세.”
말을 마친 영생대사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저었다.
“예.”
이후로도 고해는 연못에서 영모의 기를 끌어들였다.
마치 연못의 바닥에서 지하의 샘물로 통하는 통로가 있는 것처럼 영기의 기운이 밀려들었다.
고해가 영모를 흡수할수록 점점 더 많은 수성 영기가 움직이면서 연못이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고 타주, 나도 연못에 들어가서 명상을 할 테니, 눈뜨기 전까지 나를 방해하지 말게나.”
영생대사가 그리 말하자, 고해는 머리를 끄덕였다.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생대사가 손바닥을 뒤집자, 손에 있던 선장이 갑자기 사라졌다.
천천히 연못으로 들어간 그는 합장을 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머리만 물 밖에 내놓은 그는 눈을 살짝 감은 채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진천산과 고선무가 연못 하나씩 사용하고, 나와 소유가 하나씩 사용해서 영기로 상처난 곳을 치료하자.”
고해가 말했다.
“예, 타주님.”
진천산이 곧바로 대답하고 영천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고해가 갑자기 그를 막았다.
“잠깐!”
“예?”
“둘이 나가서 동굴 입구부터 숨겨라.”
그제야 고해가 막은 뜻을 알고 진천산이 미소를 지었다.
“예,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습니다.”
두 사람은 동굴 입구로 가서 발자국을 전부 지웠다. 그러고는 바싹 마른 나뭇가지로 동굴의 입구를 막아 남들이 쉽게 발견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고는 영천으로 돌아왔다.
고해와 영생대사, 고선무, 진천산은 연못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했다.
소유도 수성 영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고해 옆에서 헤엄치며 파란색 영기를 열심히 모았다.
동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조용하게 연못이 주는 선물을 만끽했다.
* * *
동굴 밖 무유곡에 비명이 메아리쳤다.
“으악! 살려줘! 괴물이 쫓아온다!”
“빨리 뛰어! 빨리!”
“으아아악!”
늑대 괴물들은 선천잔국계 북쪽에 난입한 외래인들을 전부 무유곡으로 몰아넣었다.
“몽 타주님 같이 가시지요!”
송청서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쿵! 쿵! 쿵!
오십여 마리의 요랑이 계속해서 쫓아왔다.
“으헉!”
송청서가 발을 헛디디면서 계곡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몽태는 일품당 부하들과 함께 산골짜기 중턱에 멈춰 서서 쫓아오는 괴물들을 공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쿵! 쿵! 쿵!
주변에서는 괴물들의 소리만 들려왔다.
무유곡 여기저기서 늑대 괴물, 표범 괴물, 뱀 괴물, 호랑이 괴물 등 다양한 괴물들이 잡아먹을 듯한 얼굴로 포효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무슨 괴물이 이렇게 많아?”
“살려주세요! 저는 이곳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선천잔국계를 떠나겠습니다. 나가게 해주십시오!”
으르렁대는 괴물 뒤에서 흑의를 입은 자가 피리를 불며 서서히 얼굴을 내밀었다.
그 아름다운 피리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는 절망의 소리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