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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33화 (33/243)

33화 천도생사국(天刀生死局)

산골짜기 밖에 있는 한 산봉우리 위에서는 홍의를 입은 구공자가 냉소를 지으며 울부짖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구공자,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총 이천육백여 명입니다!”

“그럼 됐다.”

구공자는 냉담하게 웃으며 몸을 숙이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위를 올려다보던 몽태와 눈이 마주쳤다.

“누구냐 넌? 혁천각 제자냐? 우리 일에 손대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몽태의 그 말에 구공자가 냉랭하게 말했다.

“손을 안 대? 흥! 전부 너희들의 자업자득이다! 먼저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 것은 너희들이야.”

우오오오!

카오오오!

수많은 괴물들이 동시에 울부짖으며 밑에 있는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무엇이냐? 선천잔국계에는 이런 규칙이…….”

“규칙을 따지지 마라! 너희들의 우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그런다! 왜? 내가 살길을 내주지 않았다는 말도 하지 마라! 이건 혁천각 주인이 남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잔국도다. 너희들이 이 잔국도를 풀면 살 것이고, 풀지 못하면 전부 죽게 될 것이다!”

구공자가 차가운 말투로 말하고는 소매를 걷었다.

스윽!

구공자의 소매에서 어두운 안개가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무유곡을 뒤덮었다. 마치 먹구름이 하늘 전체를 뒤덮은 듯했다.

먹구름 위에서 한 줄기의 빛이 내려왔다. 어두운 밤하늘의 작은 별빛처럼 느껴졌다.

“관기 노인이 남긴 잔국이라고?”

몽태가 중얼거렸다.

산골짜기 밑에 있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

“관기 노인이 남긴 잔국이라니. 그걸 어떻게 풀어?”

“이건 무슨 진법이지? 아무래도 여기서 죽을 것 같아!”

여기저기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공자가 그들을 비아냥거렸다.

“내가 말했지. 이건 혁천각 각주가 만든 것이라고! 폴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 그동안 이곳에서 무유곡 주민들을 학살하며 즐겁게 노래까지 부르지 않았더냐? 너희도 어디 한번 그때의 절망을 느껴봐라!”

“나와 상관없는 일이야! 내가 죽인 거 아니야!”

“나도 안 죽였어! 살려줘!!”

“여기를 바로 떠날게! 살려줘! 한 번만!”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그때였다.

쾅!

먹구름 사이에서 거대한 책상 같은 물건이 산골짜기 중앙에 떨어졌다.

스윽!

책상 위에는 거대한 바둑판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많은 바둑돌이 하나의 잔국을 형성했다.

먹구름 속에서 별빛이 반짝이더니 모든 바둑돌을 비추었다.

바둑돌 하나하나가 마치 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몽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무슨 잔국이냐?”

먹구름 사이로 구공자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천도생사국!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다! 준비됐지? 하하하하!”

“도망쳐!”

한 수련자가 공포에 질린 채 먹구름을 뚫고 도망치려고 했다.

쏴악!

순간, 칼 소리가 들리더니 칼끝이 모든 사람들의 머리로 향했다.

그 칼은 먹구름 속에 있는 흰색 빛줄기처럼 날카로워 보였다,

하얀색 빛은 백 장 길이의 거대한 칼이었다.

칼끝이 허공을 가로지르더니, 이내 도망치는 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으헉!”

경악한 남자는 장검을 꺼내 맞받아치려고 했다.

하지만 거대한 칼은 도망치던 남자를 관통하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마법에 걸린 듯 움직이지도 않고 그 남자를 지켜보았다.

쓰윽!

도망치던 남자의 몸이 두 동강 나면서 쓰러졌다.

피분수가 사방으로 뿜어지며 일대를 붉게 물들였다.

“으헉!”

“으악!”

수련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한 사람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서 죽는 모습이 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같이 도망칩시다! 같이 도망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 소리쳤다.

“하!”

먹구름 사이에서 구공자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천도생사국에는 아직도 구천삼백이십사 개의 천도가 있다. 믿지 못하겠으면 한번 나서봐라.”

사람들의 숫자는 이천 명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구천 개 넘는 칼이 있다고?

먹구름을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먹구름 사이의 수많은 칼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이라도 움직이면 죽을지도 몰랐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흑흑흑! 여기서 떠나게 해주십시오!”

“저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마음 약한 수련자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구천 자루가 넘는 칼이 머리 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몽태의 표정도 굳어졌다.

송청서는 절망감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 * *

무유곡, 영천동굴.

펑!

고선무의 몸에서 가벼운 소리가 나더니, 한 줄기 물결 무늬가 고선무의 몸에서 주변으로 흩어졌다.

“선천경 제이단계를 돌파했어!”

고선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조용하게 수련 중이었다. 고선무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또다시 영기를 흡수했다.

고해가 있는 연못은 파란색을 띤 수성 영기가 가장 많았다.

몸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수성 영기가 끊임없이 소유의 몸속으로 들어가 소유의 몸을 치료해 주었다.

소유는 고해의 어깨를 감싼 채 편안한 자세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성 영기를 만끽했다.

고해의 주변에도 여전히 보라색 영기가 돌고 있었다.

영모의 기운이 빠르게 고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단 한 번의 끊어짐도 없이 계속해서 고해의 몸에 흡수되었다.

한 시진이 지나고, 두 시진, 세 시진…….

그렇게 네 시진 후, 고해는 지난번 청하종주가 영석으로 자신을 도와주었을 때보다 더 많은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을 알았다.

우웅-!

고해의 단전에서 용명(龍鳴)이 울렸다.

처음에는 한 방울이던 진원이 아홉 방울로 늘어났다.

쿵!

아홉 방울의 진원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땅콩 크기의 진원 방울로 변했다.

고해의 몸에서 거대한 힘이 나오자 연못에 있던 물들이 솟구쳤다.

“방울이 구슬로 변했구나, 이게 선천경 제이단계인가?”

고해의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시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계속해서 수성 영기를 받아들였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소유의 상처들이 전부 회복되었다.

소유는 영기를 받아들이는 한편 멀뚱멀뚱 고해를 보았다.

고해를 보고 있던 소유는 어느 순간 얼굴이 빨개지면서 달콤하게 웃었다.

또 하루 후,

고해는 단전에 있던 한 방울의 진원이 아홉 방울이 되고, 이 아홉 방물이 한데 모여 진원 구슬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금만 더하면 선천경 제삼단계로 넘어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스윽!

용 모양의 진기가 돌며 거대한 힘이 발생하더니, 단번에 제삼단계로 넘어갔다.

고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고해를 보고 있던 소유가 놀라서 눈을 피했다.

“영기가 없어졌어?”

고해는 물을 내려다보았다.

연못에는 더 이상 파란색 빛도, 보라색 빛도 없었다.

“네? 네. 없어진 것 같아요.”

소유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옆에 있던 고선무와 진천산도 살며시 눈을 떴다.

두 사람은 물의 색깔을 보고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아쉽네요,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됐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영생대사님은 아직도 안 일어나셨어요?”

소유가 궁금한 듯 물었다.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영생대사를 살펴보았다. 마치 바닥에 달라붙은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진천산이 고해를 보며 물었다.

“타주, 대사님을 깨울까요?”

“아니, 대사가 깨우지 말라고 했다.”

고해가 머리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때 소유가 말했다.

“저……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울부짖음 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중간중간 끊어졌다 이어졌다 계속 들립니다.”

“뭐?”

고해 일행 모두가 똑같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 * *

고해는 영천동굴에서 밖으로 나왔다.

산골짜기에 있던 어느 누구도 고해 일행을 발견하지 못했다.

산굴 입구를 잘 덮은 후, 그들은 반대편에 있는 큰 무덤을 지나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때 고선무가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보면서 말했다.

“이 무서운 기운은 뭐지요? 먹구름 사이에 날카로운 칼이라도 있는 것 같군요.”

진천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 진법이라고? 무유곡이 진법으로 뒤덮였단 말이야? 도대체 이게 무슨 진법이야?”

고해는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비치는 빛이 어두운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반짝거렸다.

저 멀리에서는 가장 밝은 두 줄기의 빛이 거대한 두 물체를 비추고 있었다.

중간에는 책상 하나가 있었는데, 주변에 있는 이천여 명의 사람들이 그 책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놀랍게도 책상 밑에 몇백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는 전부 두 조각으로 갈라졌고, 오장육부가 파열되어 있었다.

바닥을 흥건히 적신 피는 오싹함을 느끼게 했다.

이천여 명의 사람들은 그 시체들을 보면서 벌벌 떨었다.

일부 여자 수련자들은 흐느껴 울며 마음속 공포감을 달랬다.

고해는 그 사람들 속에서 송청서를 발견했다.

송청서도 불안한 눈빛으로 거대한 책상을 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바둑판이 있었고, 밝은 빛이 바둑돌 하나하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두 개의 빛줄기는 바둑을 두는 두 사람을 비추었다.

“저들이 뭐 하고 있나요?”

소유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몽태를 발견한 진천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일품당 토타주 몽태 아닙니까?”

“몽태?”

고해는 진천산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곱슬곱슬한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바둑판 한쪽에 앉아 백돌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고해는 유년대사가 떠나기 전에 남긴 의미심장한 말을 떠올렸다.

흑돌을 두는 사람은 하얀 옷을 입은 남자였다.

남자는 바둑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당황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방금 전까지 해도 내가 이기고 있었어!”

몽태가 길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승부가 난 것 같군.”

탁!

몽태가 백돌 하나를 바둑판 위에 놓았다.

쿵!

바둑판에 있는 흑돌이 전부 포위당해서 잡혔다.

차악!

순간 흑돌이 사라지면서 승부가 났다.

“백돌 승!”

먹구름 속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몽태! 이럴 수는 없어! 네가 나를 속인 거야! 죽여버릴 것이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펄쩍 뛰고는,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몽태 역시 장검으로 응수했다.

백의 남자는 흉악한 얼굴로 다시 달려들었다.

그때 먹구름 사이에서 칼 소리가 들렸다.

스윽!

백 장 길이의 거대한 칼이 백의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허공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에 고해의 고막이 터질 듯했다.

칼은 빠르고 정확하게 백의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백의 남자는 몽태와 싸울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날카로운 칼을 맞이해야 했다.

그 남자의 표정은 흉악하면서도 겁에 질려 있었다.

“이럴 순 없어!”

절망의 울부짖음과 함께 장검이 하늘을 찔렀다.

퍽!

남자의 능력으로는 검의 사나운 기운을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비명 소리와 함께 남자는 두 동강이 났다.

순간 그 남자의 오장육부도 사방으로 튀었다.

“아아악!”

주변에서 겁에 질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저건……?”

진천산은 식은땀을 흘렸다.

대국에서 지면 칼에 찔려 죽는다고?

고해, 고선무, 소유의 표정도 달라졌다.

주변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바둑판 위에 기이한 변화가 생기더니, 바둑이 잔국으로 변해버렸다.

“또 이 잔국이야? 천도생사국?”

“대국에 뽑혀서 거절하면 죽고! 삼십 초 동안 바둑을 두지 않아도 죽고! 져도 죽어! 이를 어쩌면 좋아? 흑흑흑.”

“나 살고 싶어!”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고해는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죽음의 대국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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