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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35화 (35/243)

35화 스스로 만든 재앙은 살아날 수 없다

쫘악!

순간, 구름을 뚫고 뻗어내린 한 줄기 빛이 고해의 몸을 비추었다.

선택받은 자는 고해였다.

“이 자식아! 얼른 올라가! 안 그러면 너도 곧 죽어!”

누군가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송청서! 겁도 없이 타주를 죽음으로 내몰아?”

진천산이 눈을 부릅뜨고 다그쳤다.

송청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죽든, 고해가 죽든, 어차피 둘 중 한 명은 죽어! 흥! 고해! 운명이라고 생각해라! 내 실력은 몽타주보다는 못하지만 삼십 년 동안 다른 사람과 바둑을 두지 않은 너보다는 강할 거다! 그냥 죽어!”

고해가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송청서, 나는 이미 너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었다.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천천히 바둑판 앞으로 걸어갔다.

“흥! 삼십 년 동안 바둑을 두지도 않았으면서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송청서가 냉랭히 말하며 조소를 지었다.

* * *

선천잔국계 외부.

백운호에서는 용완청과 유년대사가 대국을 두고 있었다.

“아니지, 대사. 고해가 삼십 년 동안이나 바둑을 두지 않았다고 했는데, 고해가 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고해 실력이 그렇게 대단해?”

용완청이 투덜거리듯 말하자, 유년대사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이기고 싶지 않을 뿐이지요.”

“그럼 나를 속인 거야?”

“그것도 아닙니다. 다만 당주께서 고해의 말을 다르게 이해했을 뿐입니다.”

“응? 무슨 말이야?”

“삼십 년 동안 다른 사람과 바둑을 두지 않았다고 했을 뿐, 삼십 년 동안 바둑을 두지 않았다고는 안 했습니다.”

“그게 뭐가 다르지?”

용완청은 유년대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유년대사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엄연히 다르지요.”

* * *

송청서는 바둑판 앞에서 마치 죽은 고해를 보듯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어쩌면 좋아요?”

소유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천산도 불안했으나, 고선무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고해가 바둑판 앞으로 걸어가자, 사람들은 역귀를 피하듯 뒤로 물러섰다.

“일품당 수타주. 끝났어, 이제!”

“삼십 년이나 다른 사람과 바둑을 두지 않았으면 무조건 지겠네.”

“송청서도 참 지독한 사람이야!”

수련자들이 낮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고해는 그들을 지나 바둑판 앞으로 갔다.

먹구름이 드리워진 순간, 고해는 머리 위에 흉악한 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며 아무 때나 자신을 쪼아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백색광이 피부를 파고들어 와 단전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고해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사람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다.

“고해! 나를 탓하지 마라! 다 자업자득이야!”

송청서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해는 냉담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규칙에 따라 상대로 지목받은 자가 흑돌을 먼저 올린다.

바둑판은 깨끗했고, 바둑통에 있는 바둑돌은 두 사람이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고해는 식지와 중지로 흑돌 하나를 바둑판에 올렸다.

송청서는 승기를 잡았으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때, 고해가 흑돌 하나를 두었다.

착!

그가 흑돌을 놓자, 거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원? 첫수를 천원에 두었어.”

“천원은 바둑판의 가장 가운데잖아? 일반적으로 첫수는 놓지 않는 자리 아니야?”

“첫 돌부터 버리는 건가?”

“미친 거 아니야? 한 번의 기회를 이렇게 버린다고?”

수많은 수련자들이 깜짝 놀랐다. 먼저 두는 사람이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때문이다.

진천산도 초조해졌다.

“타주가 삼십 년 동안 바둑을 두지 않은 것이 확실해. 어떻게 처음부터 천원을 두지?”

소유가 물었다.

“천원을 두면 져요?”

“하아!”

진천산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지만 고선무는 여전히 태연했다.

“아직 판단하기는 일러.”

반면, 송청서는 미친 듯이 기뻐했다.

역시 고해가 바둑을 두지 못한 것이 확실해!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버리다니!

“하하하하! 고해, 나는 시간을 끌고 싶다. 너무 참패하지만 마라.”

삼십 초를 다 쓴 송청서는 백돌을 올렸다.

착!

백돌을 올리자, 아직 시간이 남은 고해가 흑돌을 집었다.

그리고 시간이 다 흐르기도 전에 흑돌을 올려놓았다.

착!

“뭐지?”

송청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밑에 있던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커졌다.

“시간을 끌어야지. 왜 저렇게 빨리 놓는 거야?”

“고해! 천천히 해! 천천히 하라고!”

“천천히 해! 그래야 살아남을 희망이 있어!”

사람들이 초조한 듯 말했다.

그러나 고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송청서는 모든 시간을 다 쓰고 나서야 바둑을 두었다.

착!

착!

고해가 바둑을 두는 속도는 아까보다 더 빨랐다.

“고해! 죽고 싶은 거야?”

송청서가 분노해서 고해를 노려보았다.

고해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죽든 살든 네가 관여할 바는 아니다.”

“왜 시간을 다 쓰지 않는 것이야? 이렇게 빨리 두는 목적이 뭐야?”

“내가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지? 시간 됐다. 얼른 둬라.”

고해가 냉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

송청서가 눈을 부릅뜨고는 바로 백돌 하나를 두었다.

착!

착!

고해는 아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빠른 속도로 바둑을 두었다.

“너! 흥! 죽게 되면 내 탓 하지 마라!”

송청서가 빨개진 눈으로 말했다.

송청서는 여전히 모든 시간을 전부 쓰고 나서야 바둑을 두었다.

그러나 고해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흑돌을 놓았다.

고해가 흑돌을 빨리 둘수록 주변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흑백돌 백 개를 착수했다.

사람들은 고해가 죽고 싶은 마음에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돌을 올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 번째 돌을 올렸음에도 고해는 단 하나의 흑돌도 잃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삼십 년 동안 바둑을 두지 않았다면서?’

송청서는 점점 더 안절부절못했다.

딱!

백오십 번째의 돌을 착수했다.

송청서는 막연함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고해가 자신의 돌을 잡지는 못했으나, 송청서 역시 고해의 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송청서는 바둑을 두면 둘수록 이 바둑이 이해가 안 갔다.

처음부터 아무렇게나 두는 것 같았던 고해였는데, 지금은 백돌이 흑돌한테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럴 순 없어! 고해가 나를 이길 수는 없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백 번째 돌이 올려졌다.

고해의 차례다.

이번에는 고해도 급하게 올리지 않고 송청서를 바라보았다.

송청서는 바둑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송청서는 고해의 흑돌을 볼 틈도 없이 바둑판을 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주먹까지 꽉 움켜쥐었다.

고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흑돌 하나를 천천히 두었다.

착!

그 돌은 첫 번째 천원에 올린 돌과 연결되었다.

천원에 올린 돌과 마지막 돌이 순식간에 천라지망(天羅地網)을 치더니 백돌을 포위했다.

백돌이 잡힌 것이다.

펑!

순간 육십사 개의 백돌이 잡히면서 사라졌다.

“뭐야? 이게 뭐지? 아니, 어떻게……?”

송청서가 화들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 전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는데 갑자기 백돌이 잡혔다.

그것도 한 번에 육십사 개를.

이건 도룡의 문제가 아니다.

설마 도삼용(屠三龙)?

“흑돌 승!”

먹구름 속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흑돌이 이겼다고? 흑돌이? 백돌이 죽는 거야? 송청서가 죽는 거야?

송청서는 온몸에서 땀을 줄줄 흘렸다.

“아니야! 너는 절대 나를 못 이겨! 삼십 년 동안 바둑을 두지 않은 사람이 나를 이긴다고? 반칙이야! 이건 반칙이라고!”

송청서는 고해를 보며 악을 썼다.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과 바둑을 두지 않았을 뿐, 삼십 년 동안 바둑을 두지 않았던 건 아니다.”

“무슨 말이야?”

고해는 웃기만 할 뿐 굳이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세상에! 한 번에 도삼용(屠三龍)?”

“첫 번째 돌이 버리는 돌이 아니었어? 이런 우연이 있을까?”

“우연이 아니고 도삼용이야! 도삼용 바둑을 본 적 있어?”

주변 사람들도 송청서와 마찬가지로 경악했다.

그들도 바둑판을 주시했으나 이렇게 무시무시한 수가 대기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반전이었다.

사람들 뒤에 있던 몽태도 그 놀라운 한 수를 보고 경악했다.

“한 번에 도삼용? 평범한 나라에서 온 고해가? 아! 이제야 알겠어! 삼십 년 동안 다른 사람과 바둑을 두지 않은 이유가 설마 상대가 없어서?”

몽태는 굳은 표정으로 바둑판에 있는 고해를 바라보았다.

“은공님이 이기셨어요! 이겼어요!”

소유가 흥분해서 말했다.

“대단해! 삼십 년 동안 다른 사람과 바둑을 둔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어떻게 이렇게 대단할 수가 있지?”

진천산이 놀라며 말했다.

고선무가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타주의 실력이 워낙 월등해서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중에도 없다고?”

진천산이 입을 벌렸다.

송청서도 고해의 말뜻을 알아챘다.

삼십 년 동안 다른 사람과 바둑을 두지 않은 이유는 너무 강한 나머지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날 속였어!”

송청서가 고해를 보며 소리 질렀다.

촤악!

먹구름이 휘몰아치더니 천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송청서를 향해 움직였다.

마치 당장이라도 송청서의 몸을 두 동강 낼 것만 같았다.

“나 죽기 싫어! 다 거짓말이야! 고해! 네가 죽어야 해!”

송청서는 미친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 고해를 내리치려고 했다. 그의 손에서 대량의 진기가 흘러나왔다.

“조심해요, 은공!”

“타주!

소유와 진천산이 소리쳤다.

고해가 몸을 일으키면서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친 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했을 텐데?”

고해가 왼발로 땅을 두드리니 강한 바람이 불었고, 오른발을 살짝 움직이니 온몸의 근육이 한순간에 팽팽해졌다.

몸속에 있던 엄청난 진기가 용 모양 형태로 피어났다.

“하아아!”

고해가 일성을 내질렀다.

순간, 온몸의 힘이 전부 오른쪽 주먹으로 쏠리는 듯했다.

고해의 오른 주먹에서 용명이 울리더니, 용의 머리에 엄청난 양의 진기가 뭉쳤다.

고해는 그 상태로, 날아오는 송청서의 습격을 맞받아쳤다.

쾅-!

굉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리고 엄청난 양의 먼지가 일어났다.

푸허헉!

송청서가 피를 토하면서 날아가 바둑판 아래로 떨어졌다.

“뭐, 뭐지?”

일품당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고해는 바둑판 위에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자신한테 당해서 나가떨어진 송청서를 내려다보았다.

“송청서가 다치긴 했어도 선천경 사단계까지 간 사람인데, 고해에게 한 방에 무너지다니. 고해의 힘이 전보다 더 강해진 건가?”

몽태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바둑판에서 나가떨어진 송청서가 고통을 호소하기도 전, 하늘에서 천도가 송청서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아, 안 돼! 안 돼!”

송청서는 절망하며 소리쳤다.

퍽!

파육음과 함께 송청서의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때까지도 송청서의 마지막 비명 소리는 산골짜기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스스로 만든 재앙은 살아날 수 없다!

사람들은 그제야 송청서가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곧 산골짜기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모두가 바둑판에 있는 고해만 지켜보았다.

이유는 승자와 함께 이 천도생사국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해는 송청서의 죽음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을 보면서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고해가 하늘을 보고 있는 사이, 바둑판에 변화가 생겼다. 조금 전의 대국이 흩어지고 새로운 잔국이 등장했다.

고해는 여전히 흑돌을 집어 들었다.

순간, 먹구름에서 천도가 나타나더니 고해를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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