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36화 (36/243)

36화 얼룡흉위(孼龍凶威)

“시간 없어! 천도가 고 타주를 죽이려고 해”

“고해! 시간 없어! 몽태가 하던 대로 올려! 얼른!”

“얼른 해!”

밑에 있는 사람들이 걱정하며 소리쳤다.

“은공님, 얼른요! 얼른!!”

소유도 초조한 듯 말했다.

바둑판에서는 심장을 찌를 듯한 날카로운 기운이 흘렀다.

하지만 고해는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다.

손을 뻗은 그가 흑돌을 두었다.

착!

슥!

천도의 살의(殺意)가 천천히 바둑판으로 향했다.

“뭐지? 저건 몽 타주님의 방식이 아니잖아?”

“잘못 둔 거 아니야?”

모두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일품당 사람들 속에서 보호를 받고 있던 몽태도 슬며시 두 눈을 떴다.

“고해가 올린 자리는 구오, 구오지존 자리야.”

착!

백돌도 올려졌다.

천도생사국의 새로운 결전이 시작되었다.

고해는 아무런 고민도 없이 흑돌 하나를 또 올렸다.

“타주님이 왜 자리를 바꿨지? 왜 몽태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거지?”

진천산이 의아한 듯 말하자, 옆에 있던 고선무가 고개를 저었다.

“반드시 실패하는 방법인데, 굳이 똑같이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몽태가 패하긴 했으나 예전부터 사람을 놀래키는 성과를 보지 않았나? 혹시라도…….”

“혹시는 없습니다. 지면 진 거지요. 타주는 절대 한 번 사용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고선무가 확신하며 말했다.

하지만 진천산은 아직도 고해의 실력을 믿지 못했다.

“이건 관기 노인이 남긴 잔국인데, 타주께서 이길 수 있을까?”

“제가 보기엔 가능합니다.”

진천산은 마치 혼이 나간 사람을 보듯 고선무를 바라보았다.

고해나 고선무나 하여간 담 하나는 컸다.

* * *

무유곡 밖은 수천 마리의 야수들이 사방을 지키고 있고, 먹구름이 무유곡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무유곡에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도망칠 수 없으리라.

흑의를 입은 사람들이 산봉우리 주변에 서 있는데, 먹구름 중간에 물기들이 모여 하나의 큰 거울을 만들었다.

그 거울 면은 골짜기 안의 광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비추었다.

흑의를 입은 사람들은 벌벌 떨고 있는 수련자들의 모습과 고해가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구공자는 두 눈을 깜박이면서 혈기가 충만한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구공자님, 장로님들께서 그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흑의인이 구공자를 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구공자는 냉랭하게 웃었다.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할 수 있단 말이지? 흥! 일찍 잡았으면 그렇게 많은 보물도 잃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구공자님, 이는 각주님께서 당부하셨던 일입니다.”

“흥! 당부만 했을 뿐 명령은 하지 않았잖아? 그리고 각주는 이미 죽었다. 나였으면 저들을 죽이고도 남았어.”

그 말을 듣고 공손하던 흑의인의 태도가 변했다.

“구공자님, 자중하시지요. 각주님의 당부가 바로 명령입니다. 우리 혁천각 사람들은 전부 같은 마음입니다. 각주님께서 돌아가셨다 하나 구공자님께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응? 저 늙은이들도 나를 상관하지 않는데, 감히 네가 나를?”

구공자는 흑의인을 째려보았다.

흑의인이 한발 물러섰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장로님들께서 저들을 혼내주라는 말은 각주의 당부를 어기라는 말이 아니라, 구공자님께서 구궁기진(九宫棋陳)을 넘으셨기에 구공자님 마음대로 행동하셔도 괜찮다는 말씀입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구궁기진까지 넘었는데,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해?”

“구궁기진을 넘기는 어려우나, 장로님들 중에서도 구궁기진을 넘으신 분이 계십니다. 다만 여러 장로님들께서는 각주의 명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손대려 하지 않을 뿐입니다. 신중하게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흥!”

코웃음을 친 구공자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대진 운은 백돌에 있는 듯 보였고, 고해가 흑돌을 올리고 있었다.

고해는 흑돌을 들고 난관을 파헤쳐 나가려 했다.

그의 정신이 점점 더 바둑판에 집중되었다.

‘관기 노인, 역시 명불허전이구나.’

고해는 바둑을 두면서 감탄했다.

긴장의 눈빛은 사라지고 기쁨과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삼십 년 동안 상대를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 천도생사국에서 대국 상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송청서와의 대국은 그야말로 고양이 쥐 잡기 식으로 재미가 없었다.

흑돌을 올릴 때마다 빛은 고해를 비추었다.

고해는 마치 몸속의 진기와 빛이 하나로 연결되고, 또 바둑판과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고해는 먹구름 속에서 한 백발노인과 바둑을 두고 있었다.

착! 착! 착!

고해가 스무 번째 흑돌을 두었으나, 그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돌을 잡지 못했다.

“역시 고 타주가 몽 타주보다 못하네. 몽타주가 열여덟 번째 수에서 관기 노인의 바둑 하나를 잡았는데, 고 타주는 지금 스무 번째 바둑에서도 잡지를 못하고 있으니…….”

“고 타주가 몽 타주의 방법을 사용했어야 했어!”

“하아! 고 타주 끝나면 우리 차례인가?”

“난 죽고 싶지 않아!”

고해의 바둑을 두는 수가 많아질 때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의 긴장감도 더해 갔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포심과 절망감이 교차했다.

고해는 계속해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십육 번째 바둑돌을 놓자,

착!

“백돌이 잡혔다! 백돌이 잡혔다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눈빛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했다.

스윽!

천도 한 자루가 하늘에서 고해를 향해 날아왔다.

고해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몸속에 있는 진기가 저절로 움직였다.

‘윽!’

진용선천공은 용 모양의 진기를 형성하더니, 이내 큰 입을 벌리면서 날아오는 칼을 삼키려 했다.

순간, 일장 크기의 용이 천도를 삼켰다.

용의 크기가 순식간에 이장으로 커졌다. 몸체 주변은 마치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칼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고해의 진기가 몽태보다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결국은 끝까지 삼켜버렸다.

크아앙!

용이 하늘과 먹구름을 보면서 포효했다.

“이건……?”

구공자가 눈을 좁혔다.

산골짜기에 있던 몽태도 사색이 되었다.

“연환계? 이번 판은……?”

착!

착!

백돌이 올려지고, 이어서 흑돌이 올려졌다.

순간, 백돌 하나가 또 잡혔다.

진용이 또 칼을 삼켰다.

착! 착!

“이번에도? 연속 몇 번 째야? 벌써 세 번째네! 고 타주가 한 번에 하나씩 잡고 있어!”

“몽 타주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씩 잡았는데, 고해는 한 번에 하나씩 잡는군.”

“봐봐! 고 타주가 또 잡았어!”

백돌과 흑돌이 놓이면서 진용이 천도를 삼키는 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모든 사람들이 바둑판에 정신을 집중했다.

진용이 연속으로 천도 열 개를 삼켜버린 후에야 조금 느슨해졌다.

고해의 머리 위에 있는 진용은 어느덧 백 장 크기로 커진 상태였다. 칼을 얼마나 많이 삼켰는지 진용의 형태에도 변화가 생겼다.

진용의 몸체에 있는 비늘 조각은 날카로운 천도 모양의 비늘처럼 세워져 있었다. 더 이상 평범한 진용의 모습이 아니라, 몸에 천도가 달려 있는 괴물 모양의 얼룡(孽龍) 같았다.

흉악하게 생긴 얼룡은 고해의 머리 위에서 맴돌며 무서운 기세를 내뿜었다.

그런 사나운 기운은 모든 사람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사람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몽태의 진용은 육십 장까지 커졌으나, 고해의 얼룡은 백 장 가까이 커져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아직 대국은 끝나지 않았고, 얼룡의 몸체도 점점 더 커졌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희망의 횃불이 불타올랐다. 모두가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해를 바라보았다.

크아아앙!

진용이 또 한 번 포효했다.

“더 커졌어! 정말 무서운 기를 내뿜는구나!”

“좋아! 더 커져라! 더! 더!”

“더 커져! 더! 더!”

모든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소리쳤다.

소유 역시 뱀 모양의 몸체를 일으켜 고해를 위해 기도했다.

진천선과 고선무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잡은 바둑알 수가 많아질수록 얼룡의 몸체는 더 커졌고, 어느덧 이백 장 크기에 다다랐다.

크아아아앙!

얼룡의 포효는 먹구름을 지나 골짜기 밖에 있는 사람들의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으으으윽윽!”

골짜기 밖에 있던 수천 마리의 야수들이 땅바닥으로 뻗었다.

그들은 얼룡의 기세에 눌려서 땅바닥에 축 늘어졌다. 심지어 일부 야수들은 놀라서 도망쳤다.

“구공자님, 큰일입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흑의인이 구공자에게 물었다.

“구공자님, 저 사람이 천도생사국을 풀려나 봅니다. 어떡할까요? 이대로 놔둘까요?”

구공자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천도생사국을 푼다고? 흥! 이렇게 된 이상 전부 죽여야지! 천도절살진(天刀絶殺陳)!”

구공자가 손을 휘저으면서 진영을 조종했다.

쿠르르르릉!

먹구름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순간, 한 줄기 빛이 솟구치더니 먹구름 속에서 수많은 칼이 나타났다.

무유곡에 있던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경악해서 소리쳤다.

“뭐야! 큰일이다! 하늘 봐봐!”

“저렇게 많은 칼이 한번에 나타나다니! 어떡하지?”

“고 타주가 이겼는데, 왜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거야?”

“이놈들아! 말의 앞뒤가 다르잖아!!”

“나 죽고 싶지 않아! 살려줘!”

사람들은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진천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소유도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고선무와 몽태도 고해의 바둑판을 예의주시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해가 바둑을 두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천도를 삼켜버린 얼룡도 점점 더 켜져서 눈까지 시뻘게졌다.

“죽어라!”

먹구름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구궁!

순간, 날카로운 칼이 고해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얼룡이 아니라 고해를 죽이려는 것 같았다.

스윽!

칼끝이 찰나 간에 허공을 가로지르며 고해의 바로 앞까지 날아들었다.

크와왁!

얼룡이 포효하면서 맞받아쳤다.

쾅!

굉음이 울리더니, 천도가 부러지며 허공에서 사라졌다.

“뭐, 뭐지?”

구공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렇게 쉽게 막다니?”

흑의인도 놀라서 말했다.

“이미 이백 개의 천도를 삼킨 얼룡이 삼백 장 크기로 변했습니다!”

구공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눈을 부라렸다.

“흥! 천도 하나를 막고 호들갑은?! 나한테는 열 자루, 백 자루, 천 자루의 천도가 있다! 어디 한번 막아 봐라!”

고해의 머리 위에서 또다시 먹구름이 세차게 요동쳤다.

먹구름에서 백 자루의 칼이 모습을 드러내며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는 결기로 날아들었다.

수많은 수련자들은 벌벌 떨었다. 그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이었다.

백 자루의 천도는 곧장 고해를 향해 날아갔다.

크와와왕!

얼룡이 앞을 막아섰다.

고해도 이번에는 놀란 듯 손에 들고 있던 흑돌을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룡이 흉악한 얼굴로 하늘을 향해 포효하면서 날아드는 백 자루의 칼을 맞이하고 있었다.

고해는 눈웃음을 치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이제야 나를 죽일 생각이 든 거냐? 너무 늦은 거 아닌가?!”

그 순간, 손에 있던 흑돌이 바둑판의 천원(天元)에 떨어졌다.

탕!

바둑돌을 놓을 때마다 얼룡에게 끝없는 힘을 주는 것 같았다.

크와와와와왕!

얼룡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얼룡 주변의 예기가 폭발하면서 세찬 바람이 불었다.

주변의 수련자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얼룡은 고해의 머리 위에서만 울부짖은 것이 아니었다.

포효한 얼룡은 백 자루의 천도를 향해 날아가며 천도생사국 대진을 그대로 쓸어버렸다.

크와와와와와와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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