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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37화 (37/243)

37화 파진(破陣)

* * *

얼룡이 날아가는 기세가 얼마나 거센지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듯했다.

골짜기 밖에 있던 야수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흑의를 입은 자들은 얼룡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공포에 젖은 눈으로 구공자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이건?”

구공자가 눈을 부릅떴다.

“흥! 내가 준 먹잇감으로 켜졌으면서 감히 나한테 반항을 해?”

그가 손을 한 번 휘젓자, 백 자루의 천도가 하나로 뭉쳐서 날아오는 얼룡을 향해 마주쳐 갔다.

수련자들은 얼룡의 기에 밀려나 바닥에 엎드렸지만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을 불끈 쥐면서 무한한 기대의 눈빛으로 얼룡을 바라보았다.

한편, 고해가 천원에 흑돌을 놓은 후 바둑판의 형세가 돌변했다.

백돌들이 하나둘씩 빠르게 잡혔다.

쿵!

백 자루의 천도가 얼룡과 부딪쳤다.

골짜기 밖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조금 전 충돌한 곳에서 나타난 하얀 빛을 쳐다보았다.

산골짜기는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도 폭발한 곳을 응시했다.

크와와와와왕!

다시 용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콰과과광!

수많은 천도가 산산조각 나서 사방에 뿌려졌다.

얼룡이 입을 벌려 서른 자루의 천도를 삼켰다. 천도는 얼룡의 사나움을 막지 못했다.

크와와와와와왕!

얼룡이 울부짖으면서 먹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뭐야? 얼룡이 또 돌진하잖아?”

수련자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고선무와 몽태가 바둑판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둑판에 있던 백돌이 전부 흑돌에게 잡히면서 결국 흑의 승리로 돌아갔다.

“말도 안 돼! 얼룡이 어떻게 사(死)의 기운을 가진 천도를 삼켜? 천도절살진! 얼룡을 눌러버려라!”

먹구름 사이로 구공자의 악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해가 몸을 털고 일어나면서 하늘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늦었습니다. 당신이 천도생사국을 통제하기에는 늦어버렸습니다.”

쿠구구궁!

얼룡이 먹구름 사이로 들어가 굉음을 내면서 돌았다.

얼룡이 지나가는 곳마다 먹구름이 옅어졌다.

구공자는 얼룡을 죽이려고 빠르게 천도를 조종했다.

그러나 얼룡은 먹구름을 없애는 햇빛이라도 된 것처럼 조금도 개의치 않고 먹구름을 제거했다.

콰르릉!

용의 꼬리와 천도가 부딪치며 먹구름이 흩어졌다.

먹구름 사이로 한줄기 햇빛이 보였다.

그 와중에도 얼룡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천도를 하나씩 부수고, 입을 벌려서 미친 듯이 천도의 잔재를 삼켰다.

천도가 백 장 가까이 길어졌다.

그러나 얼룡은 이미 사백 장으로 커져서 얼룡이 가는 곳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듯했다.

산골짜기 밖에 있던 야수들이 모두 줄행랑쳤다.

일부 기운은 산골짜기 밖으로 퍼져서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바둑판에 있는 사람을 전부 죽이거라!”

구공자가 흉악한 표정으로 진영을 지휘했다.

천도의 힘으로는 얼룡을 제거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때, 진영이 구공자의 손에서 벗어난 듯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천도는 대진이 파괴됨에 따라 자동으로 폭파되었다.

콰과과과광!

얼용이 한번 움직일 때마다 천도와 먹구름이 깨졌다.

그리고 끝내, 산봉우리가 폭발했다.

콰아아앙!

먹구름이 완전히 흩어지면서 햇빛이 무유곡을 환하게 비추었다.

살아남은 수련자들은 폭풍우에 이리저리 넘어졌으면서도 승리의 희열을 만끽했다.

“고 타주 만세!!”

“고 타주 만세!”

수련자들이 환호했다.

일부 수련자들은 안도의 눈물까지 흘렸다.

쿠구궁! 쩌저적!

고해가 있던 바둑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늘에 있던 얼룡이 진을 파괴하면서 천도생사국도 철저히 부서졌다.

먹구름이 걷히자, 공중에 떠 있는 투명한 수정 모양의 바둑판이 보였다.

구공자가 수정 바둑판을 조종하여 얼룡을 공격했다.

“놈을 잡아라!”

얼룡은 흉악한 얼굴로 칼 모양의 비늘을 세우더니, 모든 것을 깨버리겠다는 듯 수정 바둑판을 향해 돌진했다.

크와와와와와왕!

고해는 그 수정 바둑판이 천도생사국의 모든 것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수정 바둑판은 구공자 대진의 전부였다.

쾅!

쿠구구궁!

하늘을 터트릴 듯한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앙-!

엄청난 크기의 산봉우리가 충격으로 무너졌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야수들이 무너진 바위에 깔렸다.

얼룡과 수정 바둑판이 충돌하며 굉음이 터져 나왔고, 이런 충돌은 세 번 숨을 쉴 동안 지속되었다.

차라랑!

마치 수정이 깨지는 듯 맑은 소리가 들렸다.

흑의인과 구공자에게는 불신의 소리였으나, 산골짜기에 있는 수련자들에게는 승리의 북소리처럼 들렸다.

“깼어? 정말 깨진 거야?”

“고 타주가 이겼어?”

“살았어! 살았다고!”

“고 타주님, 만세!”

“고 타주님, 만세!”

환호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고개를 든 사람들은, 하늘에서 수정 바둑판이 산산조각 나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얼룡도 많이 힘들어했다.

온 힘을 다해 마지막 한 방을 막았기에 얼룡도 몸체가 부서지고 머리 부분만 남았다.

용의 머리는 보라색 기운을 내뿜으면서 고해를 향해 다가왔다.

후우웅!

한 덩어리의 보라색 기운이 한순간에 고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스스스스.

강렬한 진기가 단전으로 들어가서 빠르게 응집되더니, 이내 진원으로 환원되었다.

땅콩 아홉 알 크기의 진원주가 다시 합쳐지더니 이내 더 큰 구슬이 되었다.

“선천경, 삼단계?”

고해가 눈을 깜박거렸다.

영천동굴에서 영모의 기운을 얻고도 삼단계에 이르기엔 부족했었다. 그런데 진기를 사용해서 천도를 삼켜버린 결과 삼단계에 이르렀다.

그 진기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었다.

잠시 후, 고해는 삼단계조차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뒷심이 부족해서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을 뿐이었다.

그러나 고해에게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선천경 삼단계다.

이단계에 올라선 지 얼마나 됐다고!

고해도 기쁜 표정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바둑판을 돌아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천도생사국. 이렇게 대단한 수를 만든 관기 노인과 바둑을 두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내가 미리 수를 두어서 요행수로 겨우 이기긴 했다만. 관기 노인, 지금도 살아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고해는 바둑판을 보며 아쉬워했다.

팔백 년 전에 죽은 관기 노인이 살아 있다면 정말 멋진 바둑을 둘 수 있을 텐데…….

“은공님, 이겼어요! 이겼다구요!”

소유가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타주님, 애쓰셨습니다!”

고선무와 진천산이 흥분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 타주님, 감사드립니다.”

주변의 수련자들이 환호했다.

일품당 제자들에 둘러싸여 보호를 받던 몽태는 질투심이 담긴 냉랭한 눈빛으로 고해를 노려보았다.

그때 잿더미에 깔린 야수들이 하나둘씩 일어섰다.

야수들도 전부 선천경에 이르렀기에 강렬한 힘으로 금세 빠져나왔다.

주변의 산봉우리가 깨졌으나 여전히 많은 산봉우리가 남아 있었다.

한 산봉우리에서 흑의를 입은 사람들이 구공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저 사람이 천도생사국을 깨버렸습니다.”

“구공자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구공자는 살기 충만한 눈빛으로 고해를 노려보기만 했다.

릴리리리리리!

흑의를 입은 자가 피리를 불면서 야수들을 불러 모았다.

얼룡의 위세가 꺾이니 야수들도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나둘씩 이를 갈며 고해를 노려보았다.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당장 돌진할 것처럼.

수련자들은 하나둘씩 고해 옆에 자리했다. 한편으로는 주변의 야수들을 보면서 떨었다.

그러나 이내 칼을 빼들고 야수들을 마주했다.

고해가 천도생사국을 파훼한 이후 사람들은 고해를 정신적 지주처럼 생각하고 고해의 지시를 따르려고 했다.

중간에 둘러싸인 고해는 고개를 들어 산봉우리에 서 있는 구공자를 올려다보았다.

“일품당 고해입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내가 누군지는 몰라도 된다! 네가 각주님의 천도생사국을 없애버렸어! 네가 각주님의 물건을 망쳤단 말이다!”

구공자가 냉랭한 표정으로 고해를 보며 말했다.

“누군지 알 필요 없다고? 하! 좋아! 나도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천도생사국이 부서진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다! 너의 그 거만함 때문에!”

“거만함? 하하하, 아직도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가만둘 것 같아?”

구공자는 이를 갈며 고해를 노려보았다.

“네가 한 입으로 두말했잖아!”

“네가 약속을 안 지켰어!”

주변에서 분노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해도 조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를 여기에 남겨두고 싶다고? 내가 말했잖아! 너무 거만하다고!”

“거만해?”

구공자가 냉랭하게 웃었다.

주변의 야수들이 으르렁댔다. 구공자가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쏜살같이 달려가서 수련자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고해 주변의 수련자들은 겁에 질렸다. 애초부터 야수들에게 쫓겨서 이곳까지 왔는데, 저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이 사천 마리의 야수들이 너희들을 이곳으로 몰아넣었다. 아직도 사천 마리의 야수가 이렇게 남아 있는데, 너희들은 무엇으로 싸우겠다는 말이냐? 아직도 조금 전의 얼룡이 있다고 생각해? 조금 전의 얼룡은 천도생사국의 칼을 삼켜서 강해졌을 뿐이야!”

구공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고 타주님, 이제 어떡합니까?”

“고 타주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모두가 초조한 표정이지만, 고해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사람 머릿수가 야수들보다 적긴 한데, 우리가 왜 저기에 있는 야수들과 싸워야 하느냐?”

고해가 냉랭한 웃음을 지었다.

“예?”

모두가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구공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는 저 사람이 보입니까?”

사람들은 고해가 짚은 구공자를 바라보았다.

“우린 야수들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야수들을 적으로 보지 마세요! 우리의 적은 딱 한 사람! 저기 위에 있는 저놈입니다! 여러분, 선천잔국계에서는 선천경만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이천여 명의 선천경이 있고, 저기는 단 하나의 선천경뿐입니다! 이래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까?”

“네?”

사람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맞아! 야수들이 저 사람의 말만 들으니, 저 사람이 죽으면 명령할 사람이 없잖아!”

“저 사람이 죽으면 야수들도 흩어지겠네?”

“우리 이천 명이 한 사람만 죽이면 돼!”

조금 전까지 벌벌 떨던 수련자들은 눈을 번쩍 뜨더니 눈시울까지 붉히며 구공자를 응시했다.

구공자를 죽이기만 하면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어!

저지당할 수도 있으나, 이천 명이 한 사람과 싸운다면 승리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리고 이긴다면, 살아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무기를 빼 들고 구공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구공자의 안색도 급변했다.

고해가 한 발 앞으로 나서서 구공자를 향해 말했다.

“조금 전의 대국에서 관기 노인의 바둑 기풍을 볼 수 있었다. 공명정대한 사람 같아 보이던데, 혁천각은 관기 노인의 유지를 계승하고 있지 않은가? 설마 이번에도 말을 바꾸지는 않겠지?”

구공자는 입술을 깨물고 고해를 노려보았다.

고해를 차가운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천도생사국까지 잃었으면 야수들과 부하들을 데리고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수련자들이 너의 목을 따게 될 것이야! 너를 죽이지 않으면 이들이 죽게 될 것이고, 너를 죽이면 이들이 살게 될 테니까!”

구공자는 입가에 흉악한 웃음을 지으며 명령을 내렸다.

“감히 나를 협박해? 이놈! 어디서 감히! 저들을 찢어버리거라!”

크아앙! 우오오오!

야수들이 울부짖으며 무유곡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다.

고해가 그 모습을 보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억해라! 내 이름은 고해다!”

고해가 몸을 돌리자, 무수히 많은 수련자들이 칼을 들고 구공자를 향해 달려갔다.

“죽여버리자! 죽여라! 안 그러면 우리가 죽는다!”

맨 앞에 있던 수련자가 높이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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