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운수(云兽)
“더 빨리! 야수들이 오기 전에 저놈을 죽여야 해!”
“저 사람이 아무리 강해도 선천경에 불과해! 우리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살고 싶은 놈들은 전부 나와!!”
한 무리의 수련자들이 미친 듯이 구공자를 향해 달려갔다.
수많은 수련자가 달려오는 것을 본 구공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주변에 있던 흑의인들이 구공자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쌌다.
사방에서 야수들이 밀려왔다. 맨 앞에 있던 야수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수련자들을 막아섰다.
으르렁!
“죽어라!”
콰광! 끼기긱!
맨 앞에 있던 수련자가 야수와 싸우기 시작했다. 칼과 발톱이 부딪치면서 주변에 엄청난 먼지를 일으켰다.
뒤에 있던 수련자들은 한 시의 지체도 없이 산으로 달려갔다.
그 어떤 지휘나 명령도 필요 없었다.
수련자 모두가 구공자를 죽이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돌진하면 살고 후퇴하면 죽는다!
천도생사국의 공포를 경험한 이들은 불타오르는 삶의 열망으로 산봉우리를 향해 달려갔다.
쿠구궁! 콰과과광!
전투가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야수들의 피가 뿌려지며 역겨운 피비린내가 났다.
부상을 입은 수련자들도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무서워하지 않고 계속 돌격하는 것뿐이었다.
쉬지 않고 달린 수련자들은 구공자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흑의를 입은 자들은 백 명 남짓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달려오는 수련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련자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흑의를 입은 자들은 칼을 들고 초조한 표정으로 구공자를 바라보았다.
구공자는 눈매를 파르르 떨면서, 무유곡에 있는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움직이지 않은 채 구공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고선무와, 진천산, 그리고 소유가 있었다.
“타주님, 저희 이제 갈까요?”
고선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진천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간다고? 왜? 고선무, 무슨 말인가? 타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나? 저 사람이 죽으면 우리 모두 살 수 있다고. 이천 명의 사람이 있는데 진다는 게 가능해?”
고해는 고선무의 말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은 채 한숨을 길게 쉬었다.
“뭔가 잘못됐어.”
“예?”
고선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빠져나가긴 틀린 것 같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른 한쪽에서는 몽태가 상처를 감싸고 일품당 제자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몽태가 몸을 일으키더니 부하들에게 말했다.
“얼른 가자! 지금이 기회야! 혼란한 틈을 타서 지금 빠져나가야 해!”
“예!”
일품당 제자들은 몽태를 들고 뒤쪽으로 도망쳤다.
한편, 맨 앞에서 달리던 수련자는 점점 더 구공자와 가까워졌다. 그는 흉악한 얼굴로 구공자를 공격했다.
수많은 수련자가 몰려오자 구공자도 도망갈 곳이 없었다.
“죽어라!”
맨 앞에 있던 수련자가 소리쳤다.
구공자는 냉랭한 웃음을 짓더니, 오른손 식지와 중지로 금색의 바둑돌을 집어 들었다.
“의통천지, 응형(凝形)!”
쿵!
맨 앞에 섰던 수련자가 거대한 힘에 날아갔다.
바로 그때, 구공자의 주변에서 무수한 운기가 감돌더니 산골짜기 주변으로 흩어졌다.
천도생사국에서 나온 먹구름보다 훨씬 더 컸다. 순식간에 흰 구름을 뒤덮더니 마치 구름바다처럼 지면과 붙어 있는 것 같았다.
“흥!”
도망가던 일품당 사람들은 안개에 뒤덮여서 앞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구공자가 있는 곳에서 공포스러운 기운이 뿜어졌다.
“저건 뭐지?”
진천산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거대한 꼬리 하나가 쿵쾅거리면서 수련자들을 쓸어내고 있었다.
콰와왕!
순간, 수십 명의 수련자가 날아갔다.
뒤에서 따라가던 수련자들은 그대로 멈춰 서서 벌벌 떨며 산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산봉우리는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그 구름 사이로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 얼룡처럼 산봉우리를 휘감고 있었다.
구름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것은 몸체가 삼백 장 크기의 뱀이었고, 머리가 아홉 개나 있었다.
아홉 개의 뱀 대가리는 전부 흉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장 중간에 있는 뱀의 머리 위에는 구공자의 몸이 절반쯤 들어가 있었는데,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금색 바둑돌을 뱀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마치 그 바둑돌로 뱀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홉 개의 뱀 대가리가 흉악한 표정으로 무서운 기세를 내뿜더니, 회오리바람을 만들어서 수련자들을 향해 밀어냈다.
휘이이이잉!
사람들이 폭풍우에 휩쓸렸다.
“아악!”
“으아악!”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산 밑으로 떨어졌다.
저 멀리까지 도망쳤던 일품당 수련자들도 순식간에 폭풍우에 휩쓸렸다.
스스스스.
뱀이 몸체를 움직여서 빠른 속도로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흉악하고 무서운 기세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향해 밀려갔다.
사람들은 고해 주변에 모여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거야? 선천경만 가능한 거 아니었어?”
“이건 무슨 괴물이야?”
그때 몽태가 말했다.
“운수(云獸)다! 손에 있는 금색 바둑알이 운수야.”
“뭐라구요?”
사람들이 몽태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누군가가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 선천잔국계에서의 규칙은 무한한 대국이야. 여기에 수많은 금색 바둑돌이 숨겨져 있지. 금색 바둑알을 찾기만 하면 각자의 힘으로 천지와 소통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운수를 모아 방어하기도 해. 저기 보이는 운수가 바로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야.”
“몽 타주님. 그럼 어떡하면 좋습니까?”
사람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몽태는 고개를 저었다.
“금색 바둑알을 찾은 다른 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상대할 방법이 없어!”
“예?”
사람들은 겁에 질려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아아악!
머리 아홉 개가 달린 뱀이 울부짖었다.
“너희들, 도망갈 수 없다고 했잖아!”
가장 큰 뱀 대가리 위에 있던 구공자가 사악하게 웃었다.
그 순간, 거대한 뱀의 꼬리가 이천여 명의 수련자들을 향해 다가왔다.
운수의 힘은 더없이 강했다. 뱀의 꼬리가 한 번씩 흔들릴 때마다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조금 전의 얼룡보다 더 흉악하게 느껴졌다.
“으악!”
“나 살고 싶다고!”
모든 사람들이 벌벌 떨고 있는데, 뒤에서 삼십 장 크기의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더니 뱀의 꼬리를 내리쳤다.
뱀의 꼬리가 손바닥에 맞았다.
쿵!
거대한 굉음과 함께 땅까지 흔들렸다.
“누구야?”
구공자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아미타불. 구공자! 관용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가지시오! 관기 노인은 신의 무쌍했노라! 더 이상 혁천각의 위엄을 그대의 손으로 망치지 마시오!”
거대한 파란색 투명한 손바닥이 사람들 뒤로 거둬졌다.
모두가 고개를 돌리자, 가사를 걸친 승려가 서 있었다.
한 손에 선장을 들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예를 취했다.
“영생대사님!”
소유가 반색했다. 진천산은 다른 이유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금색 바둑돌을 사용하지 않고도 저렇게 거대한 힘을 쓸 수 있다니.”
뱀 대가리 위에 있던 구공자의 표정이 변했다.
“영생대사?”
고해는 영생대사를 바라보았다.
대사님이셨어?
“영생대사님, 선천잔국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구공자가 말했다.
영생대사가 미소를 지었다.
“관기 노인께서 한 가지 당부를 하셨네. 아마 장로님들 손에 있겠지. 나도 그 일 때문에 왔네. 구공자, 혁천각의 위엄을 위해 사람들을 전부 죽일 생각인가?”
구공자는 영생대사를 보면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 있는 수련자들을 보니 마음은 편치 않았으나 화를 식히는 수밖에 없었다.
“흥!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라!”
구공자가 금색 바둑알을 손바닥에 넣자, 머리가 아홉 개가 달린 뱀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주변의 운기들도 전부 흩어지면서 사방이 환해졌다.
“영생대사님, 인사 올립니다.”
멀리에 있던 흑의인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영생대사도 머리를 끄덕거렸다.
“돌아가서 장로님들께 빈승이 곧 도착한다고 전하거라.”
“예.”
“가자!”
구공자가 냉랭하게 말하더니, 야수 무리와 함께 떠나갈 준비를 했다.
“잠깐!”
사람들 속에서 고해가 소리쳤다.
“뭐지?”
구공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멈춰 섰다.
모두가 고해만을 보고 있었다. 한창 즐거워하던 사람들도 고해의 한 마디에 또다시 불안감이 들었다.
“혁천각 제자님들, 저는 일품당 고해입니다. 저는 선천잔국계에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찾으려고 왔습니다. 선천잔국계가 망망해서 바닷가에서 바늘 찾기와도 같습니다. 혹시 이 사람을 알고 계시면 좀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고해의 말에 구공자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깜박거렸다.
“뭐?”
“그 사람의 이름은 ‘미생인’입니다. 만약 그 사람에 대해 알고 계시면 일품당 당주께서 찾고 계신다고 전해주십시오. 선천잔국계가 닫히는 마지막 한 달에 출구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혁천각의 제자들은 모른다는 눈치였다.
그런데 구공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생인?”
고해가 얼굴에 화색을 띠며 물었다.
“응? 알고 있습니까?”
“하하하하하, 그래, 내가 알지. 그런데 내가 왜 알려줘야 하지? 한 번 찾아봐!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가자! 하하하하하!”
구공자가 크게 웃었다.
혁천각의 제자, 야수들이 구공자를 따라 멀어졌다.
고해는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드디어…… 감을 잡았어.”
* * *
수련자들이 탈출하는 것을 본 영생대사는 감격스러워했다. 영생대사는 수련자들의 고마움에 상냥한 미소로 답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고 타주님!”
주변의 수련자들은 영생대사뿐만 아니라 고해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함께 이겨냈잖습니까. 하하, 그리고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고 타주님,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하겠습니다!”
“이번에 고 타주님과 영생대사님 덕분에 살았는데, 저에게 맡겨주세요!”
“고 타주님, 무슨 일인가요? 말씀하세요! 제가 반드시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치며 서로 하겠다고 나섰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선천잔국계에서 ‘미생인’이라는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그에 대해 알게 되면 꼭 좀 저에게 알려주길 바랍니다. 마지막 한 달에 출구에서 기다리겠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 만약 ‘미생인’이 거부하더라도 저에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고해의 부탁이 그렇게 간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 타주님, 제가 종 내에 들어가서 유의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 타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바로 스승님을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련자들의 말에 고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드디어 더 많은 사람들이 미생인을 찾기 시작했다.
혼자서 찾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람들은 한동안 인사를 나눈 후 뿔뿔이 흩어졌다.
비록 한차례의 위기는 지나갔으나, 수련자들은 구공자가 또 나타날까 봐 항상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그제야 고해는 몽태에게 인사를 건넸다.
“몽 타주님, 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