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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40화 (40/243)

40화 흑돌을 깨우다

“괜찮네. 나는 이제 혁천각에 가서 장로님을 만나야 하네. 다들 조심하게나.”

“감사합니다, 대사님!”

진천산이 흥분해서 꾸벅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고해는 여전히 영생대사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대사님, 저희 일행과 직접적인 교감도 없었는데 어찌 이렇게 도와주시는 것입니까? 이렇게 귀중한 물건까지 저희한테 주시다니요?”

영생대사가 소유를 보면서 말했다.

“고 타주의 소행 하나하나에 감명받았네. 아마 같은 길을 걷은 사람이 아닐까 싶었지.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한 명만으로도 충분한 데 말이야. 하하하.”

고해는 의심의 눈초리로 영생대사를 보았으나, 이내 머리를 끄덕거렸다.

영생대사는 고해를 보며 잠시 침묵한 다음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고 타주에게서 익숙한 느낌이 드는군.”

“네?”

고해가 의아한 듯 말했다.

“내 생각엔, 고 타주와 접촉한 사람일 것 같네. 그 사람의 기운이 느껴져.”

영생대사가 기억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제가 접촉했던 사람이오?”

고해는 그게 누군지 무척 궁금했다.

“나의 느낌이긴 하지만 틀리지는 않을 걸게. 이번에는 시간이 없으니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또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 그때 가면 고 타주, 자네한테 부탁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성의껏 돕겠습니다.”

영생대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두 손을 모았다.

“인연이면 또 보겠지.”

“조심히 가십시오!”

고해 일행은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영생대사는 빠른 속도로 사람들 눈에서 사라졌다.

남은 사람들은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고선무는 다른 사람이 동굴을 발견할까 봐 얼른 동굴 입구를 덮었다.

기다렸다는 듯 진천산이 고선무를 재촉했다.

“고선무, 금색 바둑알을 얻었잖아. 운수가 나오는지 한번 해봐. 얼른.”

고선무는 고개를 젓고 고해를 바라보았다.

진천산이 이마를 찌푸렸다.

“응? 왜 그러나?”

고해가 말했다.

“금색 바둑알로 운수를 부르면 소리가 너무 커서 안 된다. 우리 모두 바둑알을 찾으면 그때 해보자.”

“아, 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진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산, 얼른 해보세. 두 번째 금색 바둑알을 얻어야지.”

고해가 미소를 지으며 진천산을 재촉했다.

“네!”

조급해진 진천산이 바로 가부좌로 앉아 원형 옥판을 만졌다.

위이잉!

원형 옥판에서 백색광이 나오며 진천산을 비추었다.

“타주님, 조금 전에 저도 이런 반응이었습니까?”

고선무가 물어보았다.

고해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맞아, 정신이 저 전술도로 끌려가는 것 같아. 고선무, 뭔가 불편하지는 않았어?”

고선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딱히 없었습니다. 마치 꿈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바둑을 두는 것만 같았습니다. 자유도 잃은 느낌이라 별로 좋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삼 일 후,

쿵쿵!

땅이 흔들리자, 진천산이 일어났다.

“하하하, 드디어 금색 바둑알을 얻었네!”

진천산이 흥분해서 말했다.

고해가 물었다.

“고선무가 꿈에서 본 것과 같던가?”

진천산이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어떤 노인과 바둑을 두었던 것 같습니다.”

고해도 앉아서 원형 옥판에 손을 올렸다.

역시나 백색광이 나오면서 고해를 비추었다.

고해는 정신이 점점 몽롱해지면서 한순간에 정신을 잃었다.

그때, 고해의 미간 공간에 있는 흑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고해가 깼다.

정신을 차린 고해는 자신의 미간 공간에 하나의 환생체가 있다는 걸 느꼈다.

환생체 옆에는 고해가 이전 세상에서 가져온 흑돌이 있었고, 그 흑돌이 움직이면서 고해를 깨웠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도 정신을 잃고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고해는 소름이 끼쳤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미심 공간은 흑돌이 군림하고 있고, 그 아래에는 십만 개의 바둑판과 십만 판의 잔국이 놓여 있었다.

어디선가 밀려온 운해가 어느 순간 고해의 미심을 뒤덮었다.

그런데 그 운해 속에 백발노인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백발노인은 눈앞에 있는데도 너무 희미해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노인의 앞에는 바둑판이 하나 놓여 있는데, 가로세로 스물여덟 개 선으로 된 이상한 바둑판이었다.

“앉게. 자네의 바둑 실력을 봐야겠네.”

백발노인이 고해를 보며 말했다.

고해도 인사를 올렸다.

“저는 고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앉게. 자네의 바둑 실력을 봐야겠네.”

“앉게. 자네의 바둑 실력을 봐야겠네.”

“앉게. 자네의 바둑 실력을 봐야겠네.”

백발노인은 고해의 말은 듣지 않고 기계적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고해는 두 눈을 깜박였다. 노인은 영체(靈體)가 아니라 누군가가 안배해 놓은 꼭두각시인 듯했다.

만약 꿈을 꾸는 게 아니라면, 이 노인과 바둑을 두어야 할 것만 같았다.

고해는 두말없이 백발노인과 마주 앉았다.

백발노인이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나와 바둑 한 판을 두면 이 금색 바둑알은 자네 거네.”

고해는 묵묵히 눈앞에 있는 노인을 응시했다.

여전히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사람을 초대해서 바둑을 두다니. 왜?

고선무는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로세로 스물여덟 줄이 있는 바둑판이라니.

바둑판을 본 고해는 이번 대국이 천도생사국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해도 가로세로 열아홉 줄이 넘는 바둑판에서 바둑을 둔 적이 있었다. 때문에 이런 바둑판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고해는 뭔가 이상한 듯했으나 일단 흑돌을 집었다.

착!

바둑판의 중간인 천원 자리에 흑돌을 올렸다.

노인이 백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착!

바둑판에 백돌이 올려졌다.

쿵!

순간, 주변의 구름이 고해를 뒤덮었다. 어떤 신비한 힘이 고해의 정신 속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구름이 고해의 몸을 지나가자. 한 편의 잔국도가 운무 형태로 만들어져 나왔다.

“뭐지?”

고해는 눈을 번쩍 떴다.

잠깐 사이에 열여덟 편의 잔국도가 고해의 심신에서 운무 형태로 빠져나왔다.

자신의 정신 속에서 바둑 수를 복제한 건가?

고해는 맞은편에 있는 백발노인을 응시했다.

“어서 두어라.”

백발노인이 말했다.

고해는 바둑을 두지 않고 노인을 응시했다.

열여덟 편의 잔국이 백발노인의 뒤에 펼쳐졌다.

고해의 눈이 커졌다.

“저에게 바둑 수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저의 바둑 실력을 엿보려는 것이었군요.”

백발노인은 고해의 말을 듣지 못한 듯 같은 말만 반복했다.

“어서 두어라.”

고해는 백발노인을 응시하면서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제가 몽롱한 상태에서 당신과 바둑을 두면 당신은 저의 잔국도를 복제해 가겠지요. 저 말고도 고선무와 진천산의 잔국도도 복제해 갔을 겁니다. 이렇게 복제하면 당신한테 어떤 도움이 되지요?”

고해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백발노인은 기계적으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어서 두어라.”

고해는 쓴웃음을 지으며 백발노인을 응시했다.

그는 백발노인이 더 이상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을뿐더러, 대국을 통해 자신의 수를 빼앗아가려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관기 노인이 남겼다는 법보란 말인가?

외부인이 법보를 약탈하면 이렇게 몽환적인 곳에 들어와 바둑을 두면서 자신의 수를 읽히는 건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어서 두어라.”

백발노인이 계속 재촉했다.

그러나 고해는 이미 깨어 있었기에 그런 재촉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고해는 바둑판을 보면서 냉랭하게 웃었다.

“가로세로가 스물여덟 개 선이라……. 나도 지금까지 두어본 적이 없지만, 어디 한번 두어봅시다. 관기 노인, 당신이 남긴 이 꼭두각시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봐야겠습니다.”

착!

흑돌 하나가 올려졌다.

착!

백돌 하나가 올려졌다.

순간, 운무가 고해의 심신을 지나가면서 고해가 지구에서 두었던 잔국도를 끊임없이 복제했다.

이십팔 편, 삼십 편, 오십 편, 팔십 편…….

두 사람은 쉬지도 않고 바둑을 두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해가 뚫어지게 바둑판을 응시했다.

이번 대국은 전과 달리 고해도 수확이 있었다.

‘흐음…….’

외부에서는 고선무와 진천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해의 손은 원형 옥판에 올려져 있었다. 아직도 꿈속에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꿈속에서는 정신이 멀쩡했다.

바둑을 두고 또 두고, 또 두고…….

백발노인과 고해는 끊임없이 바둑을 두었다.

백발노인의 뒤에는 수많은 잔국도가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복제되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관기전 내부.

어둠침침한 곳에 장로들이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것 좀 보세요!”

사람들은 관기 노인의 관 위에 떠 있는 바둑판을 응시했다.

백돌 이백한 알, 흑돌 백육십여 알. 그중 흑돌 하나가 빠르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대장로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 흑돌, 아마도 어떤 고수의 수를 복제하고 있나 보군.”

“저건 ‘구오지위’ 아닙니까? 구오지위에 있는 흑돌이 백돌로 변하지 않을까요?”

“설마요, 흑돌이 백돌로 변하려면 긴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고수를 만났다고 해도 구오지위를 전부 채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빛이 점점 더 밝아지고 있습니다.”

장로들은 의견이 분분한 채 구오지위에 있는 흑돌을 응시했다.

그 시각, 무유곡에서는 고해와 백발노인이 치열하게 대국 중이었다.

두 사람은 쉬지도 않고 빠르게 바둑을 두었다.

두 사람이 바둑을 두면 둘수록 백발노인의 뒤에도 잔국도가 쌓여갔다.

고해의 잔국도는 만 편이나 복제되었는데도 아직 끝이 보이지 않고 끝없이 만들어졌다.

“아직 십만 편의 잔국도가 남아 있습니다. 계속하시죠, 관기 노인이 남겨놓은 꼭두각시님. 어디까지 가나 한번 해봅시다.”

고해가 냉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관기전.

열여덟 명의 장로들은 구오지위에 있는 흑돌을 응시했다.

“대장로님, 벌써 절반 정도가 백돌로 변했습니다. 이번에 고수를 만났나 봅니다.”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럿이 힘을 합친 건 아닐까요?”

“이번에는 이상할 정도로 너무 빠릅니다.”

대장로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이건 좋은 일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유곡에서는 여전히 대국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난 후, 백발노인의 뒤에 벌써 이만 편이 넘는 잔국도가 쌓였다.

그러나 이번에 복제한 잔국도는 선명하지 않고 희미하게 보였다. 아마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고해는 눈이 빠지도록 바둑판을 주시했다.

두 사람의 대국은 점점 더 치열해졌다.

외부에서는 고해가 원형 옥판을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원형 옥판에서 빨간색 빛이 흘러나왔다.

“어? 왜 빨간색 빛이 나오지요?”

소유가 물어보았다.

진천산과 고선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했을 땐 빨간빛이 없었는데…….”

“원형 옥판이 왜 점점 더 뜨거워지지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소유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공님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고선무도 불안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고해를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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