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초부하(超負荷)
관기전 내부.
위이잉!
구오지위에 있던 흑돌이 완전히 하얀색으로 변했다.
“하하하하, 또 하나가 백돌이 되었습니다. 잘됐네요!”
“이번에 수확이 많은데요? 하하하!”
“항상 이 정도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희열을 띠고 있을 때, 대장로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뭔가 이상해.”
“예? 뭐가 이상하다 말씀이십니까?”
모두가 대장로를 바라보았다.
대장로가 의아한 듯 말했다.
“구오지위의 흑돌이 하얀색으로 변하긴 했으나 아직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아? 그러네요, 지금도 색이 밝아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대장로는 이마를 찌푸렸다.
“도대체 누구를 만난 거야?”
무유곡.
고해의 바둑을 두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고해는 오랜만에 통쾌함마저 느꼈다.
그의 정신에서 나온 잔국도는 복제되어 어느덧 삼만 편이나 되었고, 백발노인도 슬슬 한계에 도달하는 듯했다.
초반에는 짙은 구름이 들어와서 복제해 갔으나 지금은 옅은 구름이 오기고, 백발노인의 몸도 점점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고해는 쉬지 않고 바둑돌을 올리면서 백발노인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착! 착! 착!
장시간의 대국에도 불구하고 고해는 바둑돌을 올릴 때마다 힘이 넘쳐났다.
사만 편의 잔국도가 복제되었을 때, 고해가 드디어 웃었다.
“이 흑돌 하나로 드디어 승부가 나겠군요, 아쉽지만 제가 이겼습니다!”
고해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하며 바둑돌을 힘차게 놓았다.
딱!
백발노인이 흠칫하더니 또 엄청난 양의 잔국도가 복제되었다.
백발노인의 자세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착!
백돌이 올려지고 대국은 계속 진행되었다.
“승부가 이제 제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만하시지요. 당신이 관기 노인이 아니라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라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이번에도 올리면 지금까지 복제한 잔국도가 파괴되면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고해가 백발노인을 향해 말하며 바둑돌을 놓았다.
탕!
착!
백돌이 올려졌다.
외부에서는 고해가 누르고 있던 원형 옥판에 금기 가기 시작했다.
빠지직.
진천산이 경악해서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이게 뭐야? 관기 노인이 만든 법보가……? 영생대사님이 이건 전술도라고 하셨잖아! 근데 왜 금이 가지?”
빠지지지직!
원형 옥판에 점점 더 많은 금이 생기면서 곧 깨질 것만 같았다.
고선무, 소유, 진천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같은 시각, 관기전 내부.
열여덟 명의 장로들도 구오지위에 있는 백돌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 백돌은 점점 더 밝아지더니 마치 등불처럼 환해졌다.
“대장로님, 이제 어떡합니까? 이 바둑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나설 수도 없고, 도대체 누구길래 이런 수를 두고 있는 것입니까?”
“이 바둑알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과부하 현상 같습니다. 이를 어떡합니까?”
대장로가 소리쳤다.
“멈춰! 이제 됐다!”
장로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바둑을 바라보았다. 백돌의 밝기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펑!
구오지위에 있던 바둑알이 깨져서 사방으로 튀었다.
퍼어억!
열여덟 명의 장로들이 벌떡 일어나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깨졌어! 바둑판이 깨졌어!”
“어떻게 이럴 수가?”
“이제 어떡합니까?”
장로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둑판에 있던 삼백육십일 알의 바둑에서 한 알이 깨졌다. 그것도 과부하 때문에.
“큰일 났다!”
대장로가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착!
백발노인이 마지막 백돌을 올렸을 때, 과부하가 걸리며 바둑알이 터졌다.
쿵! 콰과광!
백발노인의 뒤에 있던 사만여 편의 잔국도 역시 일제히 터졌다.
회오리바람이 그 잔국도를 쓸어 담더니 곧바로 고해의 미간 사이로 들어갔다.
그때, 고해의 손이 올려진 원형 옥판도 터져버렸다.
“왜, 왜 이러죠?”
소유가 놀라서 소리쳤다.
“이, 이건 관기 노인이 만든 법보인데, 왜 터져버렸지?”
“쿵!”
파편 조각이 사방으로 튀어서 사라졌다.
그런데 그 조각들이 세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했다.
“그 조각들이 제 몸속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소유가 말했다.
고선무도 자신의 양손을 보고 있었다. 조금 전, 조각이 손바닥으로 들어갔다가 손등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때 소유가 물었다.
“냄새 맡았어요?”
고선무와 진천산은 소유를 바라보았다.
“무슨 냄새?”
“향긋한 냄새요, 좀 특별한 냄새요!”
“응?”
고선무와 진천산은 서로 마주 보면서 아무 냄새도 안 난다는 반응을 보였다.
소유는 고해 쪽으로 가더니, 고해 주변을 서성이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마 조금 전 그 조각 냄새 같아요, 은공님 몸에서 심하게 나고 있어요.”
고해 주변을 서성이던 소유가 천천히 고해의 미간 쪽으로 코를 가져갔다.
“여기요, 여기서 나는 향이 제일 강해요.”
“타주님의 미간?”
“소유야, 타주님을 방해하지 마렴, 아직 안 일어나셨어!”
고선무가 말했다.
“예!”
소유는 고해를 방해할까 봐 곧바로 물러섰다.
고해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전의 폭발에 미간이 움직였을 뿐이었다.
고해는 자신의 실력으로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를 없애버렸다. 꼭두각시는 폭발되어 완전히 사라졌다.
꼭두각시가 복제한 사만여 편의 잔국도 역시 흩어져서 하나도 남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꼭두각시가 폭발한 후, 고해의 미간에 있는 흑돌에 흡수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주위의 모든 구름이 혹돌 속으로 흡수되었다.
구름을 흡수한 흑돌은 서서히 검은빛을 내보냈고, 십만 잔국이 움직이는 속도도 배로 빨라졌다.
고해는 화들짝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이지?’
고해의 표정이 변했다.
흑돌과 멀지 않은 곳에 흑돌의 천분지 일 정도 크기의 하얀색으로 된 작은 수정체가 보였다.
작은 수정체가 움직이면서 신비한 힘을 내보내는 것 같았다.
고해는 작은 수정체를 응시했다. 수정체에는 아주 미세한 바둑판 하나가 있었다.
미세한 바둑판에도 가로세로 스물여덟 개의 선이 그어져 있어서 고해가 두었던 대국의 바둑판과 같았다.
바둑판 위에서는 바둑알들이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마치 한 판의 바둑을 두는 것만 같았다.
이십팔 종횡 바둑판에 있는 바둑알이 움직일 때마다 신비한 힘이 느껴졌다.
“저건…… 혹시 꼭두각시? 나와 대국을 둔 백발노인이 바로 저것이었던 건가?”
고해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작은 수정체에 있는 바둑판과 움직이고 있는 십만 잔국. 그리고 구름을 흡수한 흑돌을 번갈아 보면서 고해는 꼭두각시와의 바둑이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꼭두각시에 자신이 모르는 거대한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순간, 고해는 눈을 번쩍 떴다.
“타주님!”
고선무가 반사적으로 고해를 불렀다.
고해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바닥에 금색 바둑알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금색 바둑알도 고해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내가 집중해서 생각할 것이 좀 있다. 그러니 방해하지 마라. 어쩌면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예, 타주.”
고해의 말에 진천산과 고선무가 대답했다.
말을 마치고 고해는 바로 미간에 집중했다.
고해의 정신은 꼭두각시와 둔 바둑판에 집중되었다. 관기 노인이 남긴 꼭두각시라면 반드시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해가 바둑판에 몰두하자, 고선무와 진천산, 소유는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천산이 당황해서 물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고선무도 고개를 흔들고는 소유를 바라보았다.
“소유야, 아직도 냄새가 나느냐?”
소유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예, 향긋한 냄새가 나요. 조금 전에 깨진 그 조각 냄새와 똑같아요. 은공님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분명해요.”
진천산이 고선무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후우,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타주님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미생인은 어떡하고?”
“타주님도 서두르지 않으시는데, 저희가 서두를 필요 있겠습니까?”
“뭐?”
고선무의 말에 진천산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선무가 쓴웃음을 지으며 몇 마디 덧붙였다.
“외부인들이 혁천각에 들어와서 보물을 빼앗아가려고 난리입니다. 이 판국에 우리가 미생인을 찾으러 다닌다 해서 당장 찾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혁천각 제자들이 우리를 가만 놔둘까요? 일단 타주님이 깨실 때까지 기다리지요.”
그 말에 진천산이 생각을 좀 해보더니, 이내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선무가 이번에는 소유를 보며 말했다.
“소유가 타주님의 미간에서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시간 난 김에 이 향긋한 냄새가 도대체 어떤 작용을 하는지 한번 연구해 보지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소유는 두 사람이 뭘 하든 고해한테 기대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해만 바라보았다.
* * *
선천잔국계.
흑포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산봉우리에 서 있었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 그리고 맨 앞에는 오색 지팡이를 짚고 있는 대명왕신이 서 있었다.
대명왕신이 흑포인들을 보며 물었다.
“또 다른 소식은 없는가?”
“예, 선천잔국계가 워낙 크다 보니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혁천각 제자들을 붙잡아서 물어봤더니 그들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대명왕신 님, 혁천각 본부에 가서 장로님들께 물어볼까요?”
흑포인이 그리 말하자, 대명왕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와후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용하다면 들끓게 만들어야지.”
대명왕신이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이곳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 반년 내에 반드시 와후를 찾아와라.”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보물이 무엇이지?”
“백반도수입니다. 그렇다면……?”
흑포인이 뭔가를 짐작하고 눈이 커졌다.
대명왕신이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그래. 백반도수를 찾았다.”
“예?”
“너무 깊이 숨겨져 있어 찾기가 쉽진 않았지만, 결국은 내 눈을 피하지 못했어!”
대명왕신이 하늘을 보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신광! 나와서 파괴하거라!”
대명왕신이 말하자,
스으윽!
지팡이에서 오색 무지개가 나타나더니, 하늘로 솟구쳐서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오색 빛이 비추는 하늘 아래의 수많은 수련자들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 * *
몽태는 일품당 제자들과 함께 한 산골짜기에서 부상을 치료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치료한 끝에 이제는 제법 많이 회복된 상태였다.
“타주님, 저 무지개 좀 보십시오!”
일품당 제자 하나가 몽태에게 말했다.
쿵!
순간 굉음이 들리더니, 무지개가 거대한 구름과 부딪쳤다.
펑!
구름이 폭발하면서 사방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련자들은 이제 더 이상 무지개와 빗줄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저건……?!”
몽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름이 폭발한 후, 공중에 십 장 크기의 거대한 복숭아나무가 드러났다.
나뭇가지는 울창했으며, 그 가지에 사람 머리 크기의 금색 복숭아가 달려 있었다.
그 거대한 복숭아나무는 공중에 떠 있었고, 뿌리가 공중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는 것 같았다.
“백반도수?”
한 일품당 제자가 말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 작은 세계 안에 있는 모든 수련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백반도수다!”
“그동안 구름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어쩐지 찾기 힘들다 했더니!”
“구름 속에 숨어 있는 걸 누가 찾아?”
“금반도 한 알만 먹어도 백 살까지 장수한다고 하던데……!”
수련자들의 눈이 욕망으로 충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