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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43화 (43/243)

43화 사합일

쿵!

굉음이 일더니 네 개의 바둑판이 합쳐져 하나의 바둑판을 이루었다.

그리고 열아홉 개의 선이 이어지면서 각각 서른여덟 개의 선이 있는 거대한 바둑판으로 변했다.

네 개의 바둑판이 맞붙자 일시에 천사백사십사 개의 자리가 있는 큰 바둑판이 생겨났다.

변수 역시 엄청나게 늘어나서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계속 이어지는 건가?’

고해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재미있는 것을 찾은 듯했다.

일반 바둑판 네 개가 합쳐져 사반합일(四盤合一) 하니 형세가 천지개벽이 일어난 듯 복잡하게 변화했다.

고해 역시 시야가 합쳐지며 넓어진 듯했다.

고해는 그 판을 보면서 자신의 영혼이 단숨에 승화된 느낌이었다.

아무렇게나 네 판을 묶어 합치는 것이 아니었다.

고해의 정신 상태가 반으로 나눠져 반은 합쳐진 판을 바라보고, 나머지 반은 그보다 작은 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은 판은 스물여덟 개의 선밖에는 없었지만, 마치 커다란 비밀을 숨겨놓은 듯했다. 반만 보았을 뿐인데 이미 고해는 많은 것을 얻은 느낌이었다.

뿐만 아니라, 작은 바둑판 위의 바둑알 움직임을 따라 기운이 조금씩 소모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이 판은 오늘이 아니면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몰랐다.

때문에 고해는 이번 기회를 매우 귀히 여겼다.

외부에서는 진천산, 고선무가 동굴 바깥을 지키고 있고, 소유는 동굴 안을 지키고 있었다.

소유는 고해를 지켜보다 지치면 조금 눈을 붙이고, 깨면 또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일을 조금도 지루해하지 않았고, 때로는 고해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은공님,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때 저는 아무도 저를 돕지 않아서 너무 절망스럽고 쓸쓸했어요. 그런데 힘이 없어서 곧 죽을 저에게 은공님이 다가오셨어요. 은공님께 후광이 비치는 것만 같았는데, 그 빛이 제게는 너무 따뜻했어요. 감사해요, 은공님!”

소유가 속삭이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한층 부드러웠다.

동굴 밖에서는 고선무가 긴장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백반도수가 있는 곳, 구두사가 다시 한 무리의 짐승 형상을 한 구름과 겨루더니 곧장 그 운수와 금색 바둑알을 삼켰다.

구두사의 몸집은 점점 커져 크기가 오백 장에 이르렀다.

크아아앙!

구두사가 크게 울부짖자 천지를 찢어놓을 듯한 외침이 천하를 뒤흔들었다. 상대는 도합 다섯이었는데, 곧장 다섯 개의 뱀 대가리에 물리고 말았다.

“우릴 놓아줘!”

“젠장, 좀 늦게 올 것을, 일찍 와버렸군!”

“아!”

운수를 조종하던 수련자들은 금색 바둑알과 운수를 버려두고 아래로 추락했다.

구두사가 크게 울부짖으며 다섯 마리의 운수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구공자는 가장 중앙에 있는 뱀 대가리 위에 서서 추락하는 다섯 명의 수련자를 냉랭하게 바라보았다.

“한심한 놈들, 힘이 다른 이들과 이렇게나 차이나다니. 흥!”

다섯 수련자들이 일시에 피를 토하며 내동댕이쳐졌다.

하늘에서의 싸움이 일단락됐다.

구공자가 사방을 굽어보았다.

“와 봐라! 백반도수를 원하지 않는 거냐? 원하는 놈들은 어서 와서 스스로 목숨을 바쳐라!”

저 먼 하늘에는 운수 열 마리가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구공자에게 달려들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들은 구두사에게 달려들기에는 너무 작았다.

고선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저 포악한 구두사를 응시했다.

그때, 수풀 속에서 진천산이 뛰쳐나왔다.

“진 선배, 어때요?”

고선무가 곧바로 물었다.

진천산이 깊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알아보니, 원주민의 거주지마다 금색 바둑알을 만드는 물건이 있고, 이백 년 전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우물에서 물이 솟아오르듯 금색 바둑알이 나타난다는군.”

“아!”

“소문이 새어나가서 사람들이 원주민의 거주지로 쫓아가 금색 바둑알을 얻으려 한다는군. 금색 바둑알을 가진 사람이 많아질수록 저 운수도 점점 늘어날 거네.”

고선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저 하늘 위에 있는 구두사와 그 근방의 운수 열 마리를 응시했다.

진천산이 조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선무, 내가 아직도 기다려야 할까?”

고선무는 자신의 금색 바둑알을 꺼내 보고는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저 운수가 힘을 겨루는 것은 바둑의 힘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과연 혁천각의 소세계답게 모든 것이 바둑과 관련이 있군요. 그런데 우리가 구공자를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 나서지 않는다면, 저 구두사의 힘이 점점 세질 것 아닌가?”

고선무가 동굴을 바라보았다.

진천산이 다시 그를 설득했다.

“타주는 지금 폐관수련 중이시고, 문을 열고 나온다고 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네. 백반도수를 얻는 일 아닌가!”

고선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회가 왔으니 그냥 지나치면 분명 후회할 겁니다.”

진천산이 눈을 빛냈다.

“그럼 지금 시작할까?”

“아니, 기다리세요. 타주가 계시는 동굴을 잘 숨긴 다음 시작합시다.”

“그것도 좋지!”

두 사람은 동굴을 잘 숨긴 후, 소유에게 당부했다. 소유는 고해를 돌보는 것에 조금의 이견도 없이 동의했다.

고선무는 진천산을 데리고 무유곡을 떠나 금색 바둑알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진천산도 눈을 감은 채 바둑알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진기를 끌어올렸다.

우우웅!

별안간 구름이 용솟음치고, 구름과 안개 속에서 백 장이나 되는 큰 운수가 튀어나왔다. 커다란 소였다.

우어엉!

큰 소가 우는 소리와 함께 진천산의 반신은 이미 소의 머리 위에 올라 있으니 온몸이 홀가분했다.

“이런 느낌이었군. 매우 강해!”

진천산이 흥분해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고선무를 쳐다보았다.

펑!

구름과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고선무가 있는 곳에서 이백 장이나 되는 커다란 용이 튀어나왔다.

용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날개가 뻗어 있으니 흉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허, 응룡인가?”

진천산은 고선무가 불러낸 운수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선무는 용의 머리에 서서 강대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고선무의 바둑 실력이 진천산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그래서 불러낸 운수 또한 진천산보다 배는 더 컸다.

“고선무, 백반도수를 빼앗으러 가자! 남쪽에서 공격해! 나는 북쪽에서 공격할 테니!”

진천산이 흥분해 말했다.

그런데 고선무가 별안간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우리는 백반도수를 빼앗으러 가는 게 아닙니다.”

“뭐?”

“지금 출발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 건 구두사에게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가장 먼저 금색 바둑알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한발 빨랐지요.”

“백반도수에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간단 말이야?”

“다른 운수를 삼켜 몸집을 키우는 겁니다!”

“아!”

“우리가 지금 구두사에게 간다는 것은 곧 죽으러 간다는 뜻이고, 저 뱀이 운수를 삼키며 몸집을 키울 수 있다면 우리는 왜 못하겠습니까? 우리가 구두사보다 커지게 되면, 그때가 바로 백반도수를 탈취할 수 있는 때가 될 겁니다.”

“그렇군!”

진천산이 고선무의 말을 듣고 눈을 빛냈다.

“우리는 동맹이니 더욱 빨리 다른 운수를 삼켜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자네 말대로 하지!”

“갑시다!”

고선무가 크게 소리쳤다.

응룡의 날개가 펼쳐지고 큰 소의 발이 바닥을 구르니 구름과 안개가 하늘의 운수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 시각, 무유곡의 주변은 이상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알 수 없는 향기가 천천히 무유곡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향기는 매우 담담하고 기이하여 고선무와 진천산도 느끼지 못했다.

큰 나무 아래, 한 무리의 개미가 먹이를 물고 줄지어 걸어가던 중 향기가 불어왔다.

모든 개미가 몸을 한 번 떨었다. 고개를 돌린 개미들은 입에 있는 음식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향기가 나는 곳을 향해 기어갔다.

개미는 매우 작으나 그 수는 매우 많았다.

향기는 매우 담담했지만 개미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으로 다가왔다.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면서 점점 더 먼 곳에 있는 개미들을 끌어들였다.

개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끊임없이 고해가 있는 동굴을 향해 기어갔다.

아주 작은 개미는 고선무와 진천산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개미가 위협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먼저 도착한 개미는 고해의 동굴로 들어가는 대신 서로 물어뜯고 싸웠다.

무유곡에 오고자 하는 개미는 점점 많아졌다.

동굴 주변은 고선무와 진천산에 의해 숨겨져 공기구멍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개미에게는 그 구멍이 뻥뻥 뚫린 대로나 다름없었다.

동굴 안.

고해를 보살피고 있던 소유는 즐겁기만 했다.

소유는 고해의 주변을 맴돌다 머리를 고해의 다리에 기대기도 하며, 고해의 미간에서 풍기는 향기에 도취되기도 했다.

고해의 영혼은 미간 사이에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십만 잔국이 끊임없이 합쳐져서 네 개의 작은 판이 하나의 커다란 바둑판으로 변하고 있었다.

미간 사이의 흑돌은 높은 곳에서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고해의 영혼은 흑돌 아래의 하얀 수정체를 바라보고 있었고, 수정체 위에 있는 바둑판에서는 바둑알이 점점 더 빠르게 움직였다.

‘바둑으로 진을 만든다는 건가?’

고해의 정신에서 영혼의 눈이 빛났다.

‘이번 바둑은 바둑으로 어떻게 진을 만드는지 보여주기 위한 건가? 진법의 도는 복잡하여 양음으로 나뉘니, 백돌은 양이니 생을 뜻하고, 흑돌은 음이니 죽음을 뜻한다. 바둑의 도는 바로 진법의 도. 바둑을 진법과 비교하다니. 그럼 관기 노인의 바둑은 결국 진법인 건가? 바둑의 힘이 강하니, 그 진법은 또 얼마나 강할까?’

고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진짜 진법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의 바둑판은 고해에게 독특한 방식의 포진법을 보여주었다. 이는 음양대진일 뿐 아니라 생사대진이었다.

바둑의 힘이 곧 진의 힘인 것이다!

고해에게는 바둑의 힘을 전투의 힘으로 바꾸는 진법이 그 어떤 공법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고해는 강력한 바둑의 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는 스스로 즐기고 지혜롭게 계산하여 사용하거나, 특별한 환경에서 사용하는 것일 뿐이었다.

반면 눈앞의 바둑판에서는 고해에게 이 힘을 어떻게 파괴력 있는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바둑의 힘이 강할수록 파괴력도 커진다!

그에 대한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는 방법이었으니, 과연 바둑이 이토록 신묘한 것인가 싶었다.

“이 바둑은 바둑의 수와 전쟁의 균형을 보여준다. 예전부터 관기 노인이 바둑에서 천하제일이라고 했는데, 이 역시 천도의 일종이었구나.”

고해는 단 하나의 착수도 그냥 넘기지 않으려는 듯 바둑판에 더욱 집중했다.

고해처럼 바둑 실력이 좋은 사람이야 보는 것만으로도 그 뜻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보통 바둑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바둑판의 바둑알이 날뛰고 미약한 향기가 솟아나니 소유는 향기를 맡으며 고해를 넋 놓은 채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

소유는 꼬리에 통증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살펴보니 꼬리에 상처가 난 것처럼 피가 흘렀다.

소유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악!”

소유는 뒤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꼬리 부분에 선혈이 낭자했고, 피가 흐르는 곳에는 수천 마리의 개미가 선혈을 헤집고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동굴 속 천장까지 전부 개미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소유가 놀라 소리쳤다.

소유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자 수많은 개미가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 정도는 많은 것도 아니었다.

동굴 밖은 온통 시커멓게 변해서 마치 검은 물이 고인 듯했다.

그 검은 물을 구성하고 있는 물체는 엄청난 수의 개미였다. 수없이 많은 개미 떼가 꾸물대며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

소유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동굴 밖 무유곡의 검은 바다는 소유의 마지막 기대마저 꺾었다.

마치 온 세상이 개미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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