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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47화 (47/243)

47화 진천산의 회한(悔恨)

* * *

천군만마가 백반도수를 둘러싸고 있고, 고해가 타고 있는 장군은 고해를 백반도수 위로 데려갔다.

“소유야, 그만 자고 얼른 일어나거라!”

고해가 안타깝게 소유를 부르며 깨우려 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의 복숭아를 땄다.

복숭아에서 눈부신 빛이 반짝였다.

고해는 그 빛을 신경 쓰지 않고 복숭아를 소유의 입가로 가져갔다.

“은공님…….”

소유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입 벌리고 먹어 봐!”

고해가 말했다.

소유는 눈을 감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복숭아는 순식간에 금색 액체로 변해서 소유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소유는 물 마시듯 복숭아 하나를 먹었다.

소유가 몸을 움찔하더니 몸에서 빛을 발산했다.

몽태가 답답한 나머지 가슴을 쿵쿵 쳤다.

“고해가 미친 거 아냐? 저 귀한 금복숭아를 저런 계집년한테 먹이다니!”

구공자도 다급히 소리쳤다.

“고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백 년에 열 개밖에 열리지 않는 반도다. 그런 반도를 가장 비천한 계집년에게 먹이다니!

“타주님, 그건…… 그건 백반도수의 금복숭아입니다.”

진천산이 멀지 않은 곳에서 다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고선무는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고해를 따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어.’

수많은 수련자들은 눈을 부릅떴다. 수많은 외부인은 눈시울까지 붉혔다.

반도는 수명을 늘리는 것이지 상처를 치료하는 영약으로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해는 소유가 반응을 보이자 웃음을 지으며 금복숭아 하나를 또 따서 소유의 입으로 가져갔다.

소유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또 입을 벌렸다. 금복숭아는 입에 넣는 즉시 녹아내렸다.

“고해! 이 미친놈아!”

몽태가 먼 곳에서 고해를 저주하듯 소리쳤다.

저 반도를 얻기 위해 온갖 수를 써가며 미친 듯이 싸웠다. 그런데 그런 귀한 반도를 천하디천한 요괴 계집년에게 먹이다니!

밑에 있는 수많은 수련자도 어이가 없었다.

* * *

“대장로님!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반도가 모두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대장로님, 나갑시다!”

“조용히 하게!”

대장로가 소리쳤다.

사람들은 입을 다문 채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백반도수의 금복숭아는 혁천각의 제자들도 먹지 못하는 것인데, 저렇게 없어지다니.

영생대사는 다른 이유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해. 마심(魔心)이 있는 사람이 자비까지 베풀다니. 정말 복잡한 사람이군.”

고해의 속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 *

“대명왕신 님, 고해가 구하려는 것 같습니다. 백반도를 아까워하지도 않습니다.”

“벌써 두 알, 아니 세 알이나 먹였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군요.”

“대명왕신 님, 정말 와후가 맞다면 저 사람은 정말…?”

흑포를 걸친 자들은 탄식하듯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명왕신은 하늘을 보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 어떤 대가도 없이 와후를 구한다? 저건 보통의 인정(人情)이 아니야.”

“와후? 정말 와후입니까?”

흑포를 걸친 자들이 기뻐하며 말했다.

대명왕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찾은 것 같다. 그런데 어떤 대가도 없이 와후를 구하니, 나도 저자를 어떻게 처리할 방법이 없구나.”

“예?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는데……?”

흑포인들의 질문에 대명왕신이 싸늘하게 말했다.

“죽일 생각이었지.”

* * *

금복숭아를 연속 세 알 먹은 소유가 천천히 일어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진천산이 울상을 짓고 있었다.

착!

갑자기 진천산이 자신의 뺨을 때렸다.

고선무는 그런 진천산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뭐 하시는 겁니까?”

“고선무, 소유는 타주님을 보호하려다가 다친 것이 분명해.”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유는 무유곡에서 타주님을 보호하려다가 저 모양이 된 걸 겁니다.”

짝!

진천산이 또 자신의 뺨을 때렸다.

“……?”

“내가 너무 바보였어! 백반도 세 알이야! 자그마치 세 알이라고! 그렇게 빼앗으려고 했는데도 실패하고 죽을 뻔했지, 그런데 소유는 타주님을 보호해 주고 백반도 세 알을 먹었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귀신에라도 홀린 건가?”

짝!

진천산이 또 자신의 뺨을 때렸다.

고선무는 눈을 깜박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

“내가 욕심내지 않고 타주님을 보호하고 있었으면 나도 백반도를 먹을 수 있었잖아. 안 그래?”

고선무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은공님,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흑흑흑. 소녀의 목숨은 비천하여 귀한 반도를 써서 저를 구할 가치가 없어요.”

소유는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판단한다. 네가 나를 살려주었는데 나도 너를 살려야지 않겠느냐? 나 고해는 이까짓 복숭아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은공님!”

소유는 입술을 깨물며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자신처럼 비천한 사람에게 이토록 잘해 주다니.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목이 메인 소유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고해는 소유를 운수 장군의 머리에 앉히고 백반도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것이 백반도수구나.”

백반도수는 혁천각의 보물이다.

그런데 왜 다들 가만히 있는 거지? 혁천각 사람들은 왜 아무 반응도 없지?

고해는 고개를 숙이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 멀리에 있는 구공자가 목청 높여 소리쳤다.

“고해! 백반도수는 우리 혁천각의 보물이다! 백반도수를 더 건드렸다가는 여기를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고해는 고개를 숙여 구공자를 내려다보았다.

“보아하니 혁천각에서 이 백반도수를 신경 쓰고 있군, 그렇다면 좋아!”

고해는 입가에 냉랭한 웃음을 띠었다.

고개를 숙여 구공자를 본 그는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어디가 혁천각 본부인지 구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혁천각의 위치가 아니었다.

고해는 손을 뻗어 백반도수 나뭇가지를 잡고 소리쳤다.

“혁천각 제자들은 듣거라!”

고해가 입을 열자 그의 운수들도 일제히 외쳤다.

“혁천각 제자들은 들으라!”

운수 장군이 하늘을 찢을 것처럼 울부짖자 모든 사람이 고해를 응시했다.

“오늘부터 혁천각에 열흘의 시간을 주겠다! 만약 열흘 후에도 내 앞에 ‘미생인’이 없다면, 이 백반도수를 뿌리째 뽑아서 전부 태워버릴 것이다!”

운수 장군이 울부짖자 그 소리는 저 하늘 끝까지 울렸다.

“뭐라고?”

구공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몽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해! 미친 거야?”

진천산이 펄쩍 뛰었다.

“그건 수주란 말입니다, 타주님! 수주라고요!”

여기저기서 경악을 금치 못한 자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고해가 미쳤군! 온 세상에 몇 그루 안 되는 반도를 없애겠다고?

그것도 뿌리를 뽑아서 불에 태운다고?

* * *

“고해! 너 감히!!!”

구공자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노성을 내질렀다.

고해는 구공자를 보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백반도수를 만지면서 숨을 깊이 들이쉰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바둑의 실력에 따라 법치의 힘도 변한다고 했지? 이렇게 된 이상 천지의 힘을 빌려 관기 노인의 진법으로 재배치해야겠어!’

우우우웅.

하늘에 수많은 구름떼가 몰려왔다.

구름이 몰려들자 천군만마가 흩어지면서 가로세로 스물여덟 개 선으로 된 거대한 바둑판을 형성했다.

천군만마들은 각기 하나의 바둑알이 되어 순식간에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거대한 바둑판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반 바둑판이 아니라, 엊그제 고해의 미심 공산에서 보이던 그 수정바둑판, 바로 이십팔 도의 바둑판이었다.

수백 리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어졌고, 구름 속에서 웅장한 소리가 울렸다. 마치 웅혼한 기운이 사면팔방을 억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천산과 고선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이런 일이! 타주님이 우리와 함께 들어왔는데, 벌써……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진천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고선무는 감탄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정말 멋지군요! 타주님은 최고의 재능을 지니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기회가 없으셨을 뿐이시지요.”

한쪽에선 몽태가 화들짝 놀라서 눈을 치켜떴다.

“천군만마보다 더 강한 것을 불러낼 수 있다는 건가?”

“진영을 배치하다니. 금색 바둑알의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힘으로 진영을 배치한다고? 어떻게 저럴 수가!”

구공자는 넋이 반쯤 빠진 표정이었다.

그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서 그 내부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고선무, 진천산, 들어와라!”

구름 속에서 고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응룡이 날개를 한 번 움직이더니, 두 사람을 태우고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하늘 밑에서는 수많은 수련자가 그 모습을 응시했다.

“열흘 후에 정말로 백반도수를 태워버릴까?”

“고해가 누구야? 저 개자식이 누구냐고?! 언제부터 저런 인간이 나타난 거야?”

“미생인을 찾는다고 했는데, 미생인이 누구지?”

* * *

“허허허, 보아하니 혁천각이 곤란하게 되었군요.”

영생대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장로는 하늘을 응시하며 침묵을 지켰다.

“대장로님, 열흘 후에 백반도수를 없애버린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계실 겁니까?”

“대장로님, 백반도수는 각주님께서 직접 심으신 나무입니다!”

“대장로님, 미생인이 누구입니까?”

장로들 모두 초조한 표정이었다.

“지금 바로 구공자를 불러들여라!”

대장로가 화를 삭이며 말했다.

“예!”

* * *

다음 날, 어느 한 대전 내부.

대전 북쪽 위치에 의자 두 개가 있고, 대장로가 왼쪽, 오른쪽에는 병약한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병약한 청년은 붉은 모란이 수놓아진 백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잘생긴 외모는 구공자와 약간 비슷했다.

그는 대장로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딱히 공손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손에 손수건을 든 그는 음침한 얼굴로, 맞은편에 서 있는 구공자를 응시했다.

“콜록콜록!”

병약한 청년은 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연신 기침을 했다.

구공자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대장로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대장로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도 안다! 그렇지만 네가 백반도수를 지키지 못한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고해가 미생인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병약한 청년이 구공자를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멍청이! 콜록콜록!”

그러고는 이내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해댔다.

구공자는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말대꾸를 할 수 없었다.

대장로가 병약한 청년을 보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좀 긴급한 상황이라 부탁 좀 해야겠네. 몸은 좀 어떤가?”

“이백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현상인데요, 뭐. 곧 괜찮아질 겁니다.”

병약한 청년은 말을 마치고 구공자를 응시했다.

구공자는 병약한 청년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병약한 청년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백반도수를 잃었으니 책임지고 찾아와! 혁천각 제자들은 절대 손을 써서는 안 된다! 이건 각주님의 규칙이야! 백반도수라고 해도 절대 안 돼.”

“그렇지만 저……!”

구공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병약한 청년이 다시 말했다.

“혁천각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든 움직여도 좋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제자들도 평범한 백성으로 강등해서 네 마음껏 쓰도록 해!”

그제야 구공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떻게 할 생각이냐? 콜록콜록!”

병약한 청년의 질문에, 구공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반드시 고해의 진영을 파괴해서 백반도수를 찾아올 생각입니다.”

병약한 청년이 싸늘하게 다그쳤다.

“어리석은 놈! 콜록콜록!”

“네?”

“함부로 덤비면 안 된다! 생각해 봐라!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외부인들이 백반도수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느냐? 방대한 외부인들의 힘을 이용할 줄도 모르는 것이냐? 콜록콜록!”

“예…… 알겠습니다.”

구공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됐다! 가보거라!”

병약한 청년이 낮은 소리로 말하며 손을 저었다.

대전에 대장로와 병약한 청년만이 남았다.

대장로가 말했다.

“움직임이 이렇게 큰데, 미생인이 알까?”

병약한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생인이 알려고 하면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미생인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일에는 관심 없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우리가 잃은 물건을 어찌 미생인한테 부탁드린단 말씀이십니까?”

“으음…….”

“그건 그렇고, 이 고해라는 사람은 누구길래 규칙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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