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역량에 따라 실행
대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칠십 세의 평범한 사람일세. 일품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걸로 아네. 나머지 능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
“각주 관 위에 있는 구오지위는 아무래도 그자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 공교로운 것 같군요. 일단 그자의 속내부터 알아봐야 합니다.”
“구오지위가 고해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그럼 얼른 잡아 와서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대장로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병약한 청년이 머리를 저었다.
“안 됩니다. 건드리지 마세요.”
“왜?”
“지금 건드리면 안 됩니다. 모든 바둑알의 힘이 축적되면 다시 보지요, 만약 고해와 연관이 없다면 건드려도 쓸모가 없습니다. 고해와 연관이 있다면 힘이 점점 더 축적될 것이고요.”
병약한 청년이 냉정하게 판단해서 말했다.
대장로도 잠시 생각해 보더니 머리를 끄덕거렸다.
* * *
셋째 날.
모든 외부인들이 전부 금색 바둑알을 찾았다.
금색 바둑알은 희귀한 존재여서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금색 바둑알을 찾긴 했으나 선천잔국계에 있는 사람은 만 명을 훨씬 넘었다.
천도해에 얼마나 많은 세력이 들어왔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찾은 금색 바둑알은 전체의 십분지 일도 안 되었다.
어쩌면 더 적을 수도 있고.
그런데 지금, 혁천각이 일부러 풀어놓은 듯 금색 바둑알을 찾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당연히 운수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고해의 천군만마도 적은 수는 아니지만, 새로 나타난 운수도 어마어마했다. 곧 천군만마를 뒤덮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수많은 수련자들은 하늘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고해의 천군만마를 지켜보며 약점을 찾으려고 했다.
진천산, 고선무, 고해, 소유는 진영 내부에서 바깥세상을 지켜보았다.
바깥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었으나, 내부에서는 바깥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진천산은 점점 더 많은 운수가 나타나는 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고선무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타주님,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갑니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금색 바둑알이 나타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닙니다.”
고해가 바깥세상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흥! 혁천각이 결국은 손을 쓰는구나.”
“저게 혁천각이 꾸민 일이란 말입니까?”
“그래. 혁천각이 외부인들을 부추기고 있다. 그들이 우리 천군만마를 공격할 거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상당수가 공격에 가담하겠지, 하! 혁천각도 이번에는 머리를 좀 쓰는군.”
진천산이 입을 쩌억 벌렸다.
“타주님의 말씀은, 이 수많은 수련자를 우리가 상대해야 한단 말입니까?”
네 명이 몇만 명을 상대한다고?
그건 그냥 죽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 *
수많은 운수가 고해의 천군만마를 주시했다.
백반도수의 유혹은 너무나 컸다. 게다가 사람들은 백반도수를 없애겠다는 고해의 말에 적개심마저 보였다.
구름 속 진영에서는 진천산과 고선무, 소유가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남은 금복숭아 일곱 알을 따서 영패를 넣던 옥합에 넣었다.
고해는 남은 한 알을 만지작거리다가 바로 입안에 넣었다.
반도는 입안에서 금방 녹아내렸다. 모공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고해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서는 대량의 영기가 고해를 밀려왔다.
쿵!
고해의 몸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침내 아홉 개의 진원이 하나로 모였다.
‘선천경 사단계를 넘어선 건가?’
고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금복숭아 한 알로 선천경 사단계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 외의 힘도 고해의 몸속에 담겼다.
고해는 생기가 넘쳐났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천경 사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고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옆에 있던 진천산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 선천경 사단계까지밖에 못 올라갔다고요?”
“왜?”
고해는 뭐가 문제냐는 얼굴로 진천산을 바라보았다.
진천산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백반도를 먹었는데 경지가 요만큼만 오른단 말입니까?”
고선무가 고개를 저었다.
“영주가 아니고 수주입니다. 진 선배도 말씀하셨잖아요? 수주는 사람의 능력을 별로 키워주지 못한다고요.”
진천산은 고해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타주님, 그건 백반도입니다. 겨우 그만큼의 능력을 올리려고 드신 겁니까? 그건 지나친 사치입니다.”
소유는 세 개를 먹고 목숨이라도 건졌지만, 겨우 그 정도의 성장을 위해 금복숭아를 낭비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자신의 영석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고해는 그와 생각이 달랐다.
“사치? 그럴 생각 같은 건 없다. 나는 내 능력을 키울 수만 있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이깟 물건이 뭐라고?!”
“네네! 반도가 많으시니 마음대로 하세요!”
진천산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고선무가 무안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화제를 돌렸다.
“타주님, 점점 더 많은 수련자가 모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공격해 오면 어떻게 막을 생각이십니까?”
고해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진영은 예전과 다르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막으면 큰일도 아니야.”
“우리 네 명이 몇만 명을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진천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의 눈에는 고해가 죽으려고 작정한 것만 같았다.
천군만마의 몇 배나 되는 적과 싸우려고 하다니.
“걱정 마라. 결과가 어찌 되었든 최선만 다하면 된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백반도 한 알씩 주마.”
고해의 말에 고선무의 눈이 번뜩였다.
“예, 타주님!”
진천산도 금방 눈빛이 달라졌다.
“정말입니까?”
조금 전의 억울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시 흥분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싸울 것입니다!”
고해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성격이 조금 급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때 고선무가 백반도수를 만지며 물었다.
“타주님, 정말 열흘 후에 미생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백반도수를 태워버릴 것입니까?”
그 순간,
윙!
고선무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정신이 흐려졌다.
팍!
고해가 손을 뻗어 고선무의 손을 내리쳤다.
흠칫한 고선무가 급히 정신을 차렸다.
“저……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진천산도 화들짝 놀라며 백반도수를 쳐다보았다.
고해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무유곡의 동굴에 있던 원형 옥판을 기억하느냐?”
“예. 영생대사가 그건 전술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원형 옥판을 만지자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고요, 마지막에 타주님이 만지시고 나서 그 원형판이 깨졌지요.”
고해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 백반도수도 똑같다. 만약 내가 너의 손을 치지 않았더라면, 너 역시 몽환 상태에 빠졌을 거다.”
“몽환에 빠져요?”
진천산이 커진 눈으로 묻자, 고해가 무겁게 말했다.
“내 생각엔 백반도수도 원형 옥판처럼 관기 노인의 작품인 것 같다. 좌우간 몽환 상태에 빠져서 좋을 건 없다.”
“예?”
고선무와 진천산의 표정이 변했다.
고해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관기 노인의 속셈은 모르겠으나, 우리한테 유리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는 죽으면서도 이렇듯 기괴한 일을 남겨두었다. 아마 백반도수에도 엄청난 계략이 숨어 있을 것이다. 나는 후퇴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를 얻을 생각이 없다. 갖고 싶어도 실력과 지위, 세력이 하늘을 찌를 정도가 아니라면 여기서 욕심을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고선무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고선무. 내 충고를 명심해라. 자신을 바로 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해야 한다. 너의 능력 범위를 초과하는 순간, 너의 생사는 남의 손에 달려 있게 될 것이다.”
고선무의 표정이 엄숙해지더니,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사합니다. 타주님!”
옆에 있던 진천산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타주님, 백반도수를 태우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
진천산이 아쉬운 듯 말했다.
고해가 웃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워? 하! 백반도수를 주면 가져갈 수는 있겠어?”
“예? 저한테 준다고요?”
진천산의 눈에서 빛이 났다.
“살아서 이 천원도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진천산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귀신에 홀렸었나 봅니다.”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상황을 알아야 해. 아무리 귀중한 물건이라도 보호할 능력이 없으면, 그건 보물이 아니라 화근이다. 화근 하나가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아갈 수 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고선무와 진천산이 대답했다.
고해가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진영에 있던 장수들이 말을 타고 나오더니 천천히 변형되면서 튼튼한 갑옷까지 입었다.
장수들은 점점 더 강하게 변했고, 손에 들고 있던 무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상산 조자룡, 패왕님께 인사 올립니다!”
한 운수가 소리쳤다.
“고선무, 너는 이 운수를 타라! 이건 진영의 운수를 병합한 장수 조자룡이다. 장창을 즐겨 사용하니, 장창이 향하는 곳마다 무너질 거다!”
“네!”
고선무가 대답했다.
자신의 금색 바둑알을 손에 들고 조자룡 운수의 머리에 몸을 넣었다.
휘리리링!
조자룡의 몸에서 돌풍이 터져 나오더니 사나운 기운을 내뿜었다.
“해량 관운장, 패왕님께 인사 올립니다!”
또 다른 운수가 울부짖었다.
“진천산, 너는 관운장을 타거라! 관운장은 청룡언월도를 즐겨 사용하지, 칼이 향하는 곳마다 무너질 거다!”
“네!”
진천산이 대답하고 관운장의 머리에 올라타서 몸을 관운장 운수의 머리에 집어넣었다.
쿵!
관운장은 긴 수염을 흩날리며 사나운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타주님, 이 운수 장수의 기세가 대단합니다. 전에 타던 거대한 소보다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진천산이 기뻐하며 말했다.
고해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변형된 마지막 운수를 보고 있었다.
“연인 장익덕, 패왕님께 인사 올립니다.”
변형된 운수가 울부짖었다.
“소유야, 너는 장익덕을 타거라. 장익덕은 사모(蛇矛)를 즐겨 쓰니, 사모가 향하는 곳을 무너뜨리거라!”
고해가 말했다.
“예!”
소유가 흥분하여 말했다.
드디어 은공님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에 소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운수 머리에 올라탔다.
쾅!
소유는 사모를 조종해 보았다. 마치 장익덕 손에 거대한 뱀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고, 그 살기는 사납기 그지없었다.
“이건 이십팔종횡천지 진영이다.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사면팔방에서 오는 수련자들을 막는다. 기억해라! 최대한 직접 나서지 말고 대군을 조종하거라!”
고해가 진지하게 말했다.
“예, 타주!”
세 사람은 숙연하게 대답했다.
고해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의외의 사태가 없는 한 너희 세 사람의 운수는 나서지 않아도 된다! 내가 있는 한 저들이 쉽게 공격하지 못할 것이야!”
“네!”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서 고해는 세 사람에게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와 병력 배치에 대해 알려주었다.
세 사람은 설렌 마음으로 고해의 말을 들었다.
쿵! 콰르릉! 콰광!
구름 속에서 거대한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바깥세상에 있는 수련자들의 눈도 충혈되었다. 이제 한계에 도달한 듯싶었다.
구공자는 숲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뒤에는 흑의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구공자님, 준비 끝났습니다. 외부인들의 욕심도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바로 하늘로 올라가서 저들과 싸우도록 만들겠습니다!”
흑의인의 보고를 받으며, 구공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해! 고작 그 정도의 천군만마로 이 수만 명의 수련자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두고 보겠다!”
구공자가 냉랭하게 명령을 내렸다.
“총공격하라!”
* * *
“운수가 많은들 무슨 소용이야? 우리가 사람이 훨씬 더 많아!”
“백반도수를 없애버리겠다는 자가 무슨 자격으로 백반도수를 지키고 있어? 우리 저 진영을 파괴해 버리자!”
“내 형제를 위해 복수할 거야! 저 진영을 없애버릴 거야!”
“뺏는 사람이 임자야!”
“죽이자!”
“죽여라!”
사방에서 굉음이 울리고, 무수히 많은 운수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