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생생불식
수많은 운수가 포효했다.
엊그제의 전투보다 훨씬 더 살벌한 상황이었다.
운수들은 흉포하게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하늘로 올라갔다.
“죽여라!”
구름 속에서도 운수들이 울부짖었다.
쾅!
수만 마리의 운수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내부에서는 서로 죽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에서 지켜보던 수련자들도 참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혈투가 벌어졌다.
“죽여! 다 죽여버려!”
콰르르릉! 콰광!
격렬한 전투는 하늘을 찢을 것만 같았다.
바깥세상에서는 구름 속 상황을 볼 수 없고 싸우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천군만마와 수만 운수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듯했다.
구공자는 눈을 비스듬히 뜨고 전장을 주시했다.
“구공자님, 전투가 너무 치열합니다. 저렇게 많은 운수가 고해를 단번에 쓸어버리고 백반도수를 차지하는 거 아닙니까?”
“구공자님, 만약 백반도수가 다치기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흑의인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공자가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내 명령을 기다렸다가 전투에 투입하라고 전해라! 전장을 교란하다가 우리도 올라간다!”
“예!”
또 다른 산골짜기.
몽태가 일품당 제자들과 전장을 보고 있었다.
“타주님, 우리도 올라갑니까?”
한 일품당 제자가 말했다.
몽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고해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신중해야 해. 고해를 쉽게 봐서는 안 된다. 여기서 지켜보다가 고해의 약점을 발견하면 그때 공격해도 늦지 않아!”
몽태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예!”
일품당 제자들이 대답했다.
* * *
대명왕신은 오색 지팡이를 짚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명왕신 님, 구름 속을 꿰뚫어볼 수 있으시니, 지금 상황을 알려주십시오.”
흑포를 걸친 자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대명왕신이 웃으며 탄성을 발했다.
“하! 정말 정교한 진영이야! 보아하니 고해가 천지를 움직이는 수를 읽은 것 같군! 재밌군!”
“그럼 와후는요? 와후는 안전합니까?”
“안전해. 다만 좀 몸이 말랐을 뿐이야!”
“그럼 다행입니다!”
흑포를 입은 자들이 편한 표정으로 웃었다.
“신관(神棺)을 가져와라.”
“예!”
대명왕신의 말에 흑포를 입은 자들이 관을 들어다가 대명왕신의 뒤에 내려놨다.
그때,
“뭐? 생생불식?”
대명왕신이 눈을 번쩍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 * *
구름 속에서는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운수들이 밀려들어 갔다.
운수들은 천군만마의 장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개개인의 힘은 약했으나 수련자들이 뭉친 힘은 더할 나위 없이 강했다.
“죽이자! 죽여라!”
장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운수들을 죽였다.
운수들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쌍방 모두 많은 사상자를 발생했으나 전투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장군을 타고 있는 고해, 고선무, 진천산, 소유는 맨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았다.
밖에 있는 천군만마가 외부인을 물리치고 있었다. 네 사람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돌격하라! 고해의 병마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돌격하라!”
“고해 병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격!”
“고해! 이제 너도 끝장이!”
싸우면 싸울수록 외부인들은 승리를 직감하며 눈까지 빨개졌다.
고해의 병사는 후퇴하지 않았지만, 병력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외부인의 선두 무리는 백반도수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으악!”
“으아아악!”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추락했다. 그러나 밑에서 이들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어 죽지는 않았다.
그 수련자들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앞사람이 무너지면 뒤를 이어 싸우러 나갔다.
“돌격하라! 고해의 천군만마가 벌써 절반이나 죽었다! 저 끝까지 치고 들어가라!”
밖에 있던 수련자들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전부 돌격하라!”
구공자가 거대한 운수를 타고 달려왔다.
구공자 뒤에 있는 운수가 가장 강한 놈 같았다. 마치 신의 부대처럼 파죽지세로 전부 쓸어버렸다.
순식간에 백 명이 넘는 장수를 죽이고 고해를 향해 날아갔다.
“고해! 하하하하하! 너도 우리의 천군만마에 당해 보거라! 어떠냐? 하하하하하!”
구공자가 새롭게 머리가 달린 구두사를 조종하며 앞으로 돌진했다.
“전부 돌격하라! 고해를 죽여라!”
우아아악!
한 무리의 운수가 포효했다.
구공자의 대군이 강한 걸 본 고선무와 진천산, 소유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해를 쳐다봤다.
맨 앞에서 용맹하게 달려오는 구공자를 보고 고해는 쓴웃음을 지었다.
“구공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뭐라?”
맨 앞에서 달리던 구공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혁천각 제자라는 놈이 여기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으면서도 아직 모르겠느냐? 어찌 나와 같은 외부인보다도 천지의 법칙을 모르는 것이냐?”
“흥! 너의 대군은 곧 전멸될 거다! 무섭지도 않느냐? 감히 그딴 말을 하고 있다니!”
구공자는 냉랭히 코웃음 쳤다.
콰우우우!
구두사가 포효하더니, 머리 여덟 개가 순식간에 병마 운수를 하나씩 삼켰다.
천군만마의 숫자가 점점 더 줄어들어 이제는 열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 있는 운수들은 점점 더 용맹해지고 있다.
고해는 겁을 먹기는커녕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십팔 종횡 진영을 너희가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느냐? 천도(天道)만 무궁한 줄 아느냐? 내 바둑알도 무궁무진하다! 생생불식이란 말이다!”
쿠르릉! 쿠궁!
순간, 외부인의 공격으로 산산조각 났던 진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죽어 있던 말들이 살아나면서 힘차게 울부짖었다.
수련자들은 믿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고 눈을 부릅떴다.
죽었던 병마들이 다시 살아나서 구름을 뚫고 공격해 오는 것 아닌가!
“죽여라!”
천군만마가 부활하고 있다. 죽으면 살아나고, 죽으면 살아나고…….
생생불식(生生不息)하고 있다.
“뭐, 뭐야?”
“어떻게 부활할 수가 있지?”
“헉! 부활하다니! 믿을 수 없어!”
수많은 외부인들은 순식간에 천군만마에 의해 포위되었다.
“전부 죽여라!!!”
쿠궁!
천군만마가 함성을 지르고 내달리며 걸리는 건 모두 죽였다.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
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했던 수련자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도망가자! 얼른 도망가! 아아아악!”
“여기서 나가고 싶어! 으아악!”
괴성과 함께 운수들이 폭발했다.
수련자들은 금색 바둑알을 놓치고 하나둘 추락했다.
하늘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떨어지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은 잔뜩 겁을 먹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고해를 죽이자던 목소리는 어디로 간 거야?”
“왜 전부 다 떨어져? 저번보다 더 빨라!”
“도대체 무슨 일이야?”
무수히 많은 운수가 주저하고 있던 그때, 구공자도 한 무리의 부하들과 함께 황급히 도망쳤다.
구두사의 머리도 다시 잘려서 여섯 개밖에 안 남았다.
“생생불식이라니…….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
구공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승기를 잡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승부가 뒤집어졌다.
몽태 역시 펄쩍 뛰며 내부 상황을 궁금해했다.
“무슨 일이야? 얼른 추락한 수련자를 찾아서 상황 좀 알아보거라! 얼른!”
“예!”
일품당 제자들이 대답하고 달려갔다.
밖에서 마구 날아다니던 운수들이 지금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구름 속의 전투 현장은 그야말로 죽음의 장소였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으나 그때까지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은 천군만마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다.
그렇게 치열하던 전투도 시간이 지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곧 싸움이 끝났다.
도망치지도 못하고 구름 속에 남은 운수 중 살아남은 운수는 한 마리도 없었다.
안에 있던 고선무와 진천산, 소유는 밝게 웃었다.
* * *
대명왕신이 지팡이를 만지며 말했다.
“생생불식이라니. 점점 더 재밌어지는구나!”
“대명왕신 님, 천군만마가 다시 살아난단 말입니까? 그럼 고해라는 사람을 막을 자가 없지 않습니까?”
흑포를 입은 자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적수가 없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십팔종횡천지 진영이라…… 하하하! 재밌는 진영이군, 너희들은 와후를 받을 준비나 하고 있거라. 고해! 너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와후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 이상 반드시 죽어야 한다.”
스윽!
대명왕신이 일어서더니 하늘로 붕 떴다.
운수도 없었고 법보도 없었다. 마치 천지의 제약을 받지 않는 듯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한 사람이 백 장 크기의 운수 앞에 있으니 이보다 더 작아 보일 순 없었다.
한편, 사람들은 한 사람이 천천히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그자는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더니 점점 이십팔종횡천지 진영과 가까워져 갔다.
* * *
이십팔천지종횡 진영하의 고해 대군은 파멸당하더라도 전군 부활하여 적의 진영을 돌파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적들을 포위하여 공격했다.
운수들은 줄줄이 말 아래로 떨어졌다.
외곽에 있던 운수들은 겁에 질려서 황급하게 도망쳤다.
순식간에 이십팔천지종횡 진영 수련자들이 포위되자 모두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그들은 불안에 떨며 다시는 고해의 진영 안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진영 안에는 고해의 뒤에 고선무와 진천산, 소유가 서 있었다.
모두 역전된 상황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타주님. 이 진영, 굉장하군요!”
“타주님, 이런 건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이제 진천산의 마음은 고해에게로 완전히 돌아섰다. 고해의 강대함이 너무 멋있고 마음에 들었다.
소유는 좋아서 바보같이 웃었다.
고해는 사방을 둘러보다가 크게 소리쳤다.
“혁천각 제자들이여, 듣거라! 육 일 남았다! 육 일 후 내가 반드시 백반도수를 없애버릴 것이다!”
장수가 고해를 따라서 크게 소리치자, 수련자들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고해는 도대체 어디서 왔기에 저리도 강하단 말인가!
몽태가 멀리서 보고 탄식하듯 말했다.
“고해. 그대는 어떻게 이런 진영을 배치할 수 있단 말이냐.”
구공자는 더욱 분노했다.
이번에는 경솔하지 않았고, 수많은 수련자들을 이용해서 진영을 공격했는데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고해!!!”
* * *
대장로 옆에는 병약한 청년이 서 있었다.
“콜록, 콜록.”
병든 청년은 손수건으로 입을 감싸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대장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십팔천지종횡진. 저건 각주가 예전에 배치한 것 아니던가? 그런데 고해가 어떻게 알고 있지?”
병든 청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결국 실패하였군요. 고해는 정말 다루기가 어려운 자입니다.”
“이 일은 모두 사람으로 인해 일어난 일인데…… 만약 아니라면……!”
병약한 청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은 혁천각을 협박해서 타협할 수 있다는 전례가 생겨서는 안 됩니다.”
“응? 그럼……?”
“다른 사람이 해결해 주길 바라기에는 이제 늦었습니다. 제가 나서지요. 콜록콜록.”
대장로가 갑자기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 저걸 보게나!”
고개를 든 병약한 청년의 동공이 흔들렸다.
“대명왕신?”
멀리서 흑포를 입은 사람 하나가 하늘로 천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어떠한 것도 의지하지 않고, 금색 바둑돌도 사용하지 않은 채 날고 있었다.
주위의 수많은 수련자들이 놀란 눈길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뭘 하려는 거지? 사람이 어떻게 날아다녀?”
백장 운수들 앞에 선 대명왕신의 몸집은 굉장히 작아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수련자들을 놀라게 했다. 저렇게 날 수 있는 사람은 최소 원영경만이 가능했다.
대명왕신이 도착하자, 한 무리의 운수들이 모두 길을 비켰다.
연쇄반응처럼 주위의 수련자들이 모두 비켜서자 대명왕신은 진영과 점점 가까워졌다.
대명왕신이 진영의 밖에서 멈춰 섰다.
미풍이 불어오고 흑포가 휘날렸다.
대명왕신은 조용히 서서 차분하게 진영을 바라보았다.
진영 안의 고해는 안색이 변했다.
대명왕신은 흑포에 감싸여 있어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다.
고해는 한 쌍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말한 위치로 모두 돌아가!”
고해가 무겁게 말하자, 고선무와 진천산, 소유, 삼대 운수가 신속하게 흩어져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고해는 굳은 표정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대명왕신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고해, 괜찮군. 이십팔천지종횡 진영이라…….”
그의 웃음소리는 작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사람들의 귀에 들렸다.
고해가 대명왕신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군가? 혁천각 제자인가?”
대명왕신이 답했다.
“만약 네가 내 손에서 살아 나간다면 알려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