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지혼1
몽태가 급하게 소리쳤다.
“저희를 살려만 주신다면, 모든 것을 선배님께 드리겠습니다!”
“만약, 너희의 목숨을 원한다면?”
“예? 선배님은 고해를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고해와 원한이 있습니다!”
“그러했지. 아마 조금 전이었다면 내가 너희들을 도울 수도 있었을 것이야. 하지만 지금은 네가 와후를 죽였지 않느냐!”
몽태가 의아해하며 물어봤다.
“와후요? 무슨 와후를 제가……? 혹시 아까 그 뱀 요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 가닥 공작 깃이 채찍으로 바뀌더니 일품당 제자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청광이 일품당 제자들을 스쳐 지나간 듯했다.
퍼버버벅!
일품당 제자들의 운수가 폭발했다.
심지어 일품당 제자들은 허리가 끊어졌다.
퍽! 슈슈슉!
선혈이 허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일품당 제자들은 머리를 숙여 잘려 나간 허리 아랫부분을 내려다보았다.
“왜? 왜……?”
몽태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대명왕신을 바라보았다.
대명왕신이 눈을 부라렸다.
“작은 뱀 요괴? 나도 감히 와후를 그렇게 부를 자격이 없는데, 네놈 따위가 어디서!!!”
“와후? 와후라고……?”
몽태는 절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잘려 나간 그의 몸뚱이가 하늘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명왕신은 눈썹 한 올 흔들리지 않고 몸을 돌려서 진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소유가 눈을 떴었는데 어떻게 죽을 수 있어? 약이 부족한 게 분명해!”
고해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는 다시 백반도수를 하나 집어 소유 입 속으로 넣었다.
소유 눈이 떨리더니 입술도 움직였다.
“은공님…….”
마침내 소유가 입을 열었다.
“살았다! 살았어!”
고해가 기뻐하며 소유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유는 여전히 힘없는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은공님, 저를 살리려 하지 마세요. 소유는 살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 소리 마라! 지금은 괜찮은 거지?”
고해가 눈을 크게 뜨고 초조하게 물었다.
“아니에요. 저는 지금 저의 존재를 느낄 수가 없어요. 저승에서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그만 가봐야 될 것 같아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너 지금 깨어난 것이 아니더냐?”
“은공님, 너무 미안해요. 다음 생에 꼭 보답할게요. 꼭……!”
소유의 눈에 눈물이 맺혀서 흘러내렸다.
“소유야. 너 지금 살아 있잖느냐?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
고해가 안타까워하며 소유를 불렀다.
하지만 옆에 있던 진천산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타주, 소유의 피가 굳었습니다. 진짜 죽은 것 같습니다.”
“아니야. 그녀는 살아 있어! 이미 여섯 개 금반도를 먹였다. 육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거야!”
고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대명왕산이 고해의 곁으로 다가오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크험!”
고해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려 대명왕신을 바라봤다.
“그녀를 나에게 넘겨라!”
대명왕신이 낮게 말했다.
고해가 긴장하며 대명왕신에게 맞섰다.
주위의 장수들이 그가 탄 장수와 빠르게 합체되었다.
장수의 몸이 다시 커져서 수중의 방천화극으로 대명왕신을 가리켰다.
“소유에게 생기를 다시 만들어 줄 수 있나?”
“내 능력으로는 안 된다. 내가 수련한 것은 사(死)지 생(生)이 아니다.”
“네가 소유를 살릴 수 없다면 왜 소유를 넘겨준단 말이냐?”
대명왕신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내가 그녀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너와는 다른 방법을 쓸 거다.”
“다른 방법을 쓴다고? 그럼 살릴 수 있단 말이냐?”
“그녀의 ‘지혼’이 와후로 변했다. 와후가 이미 돌아왔지. 그리고 와후의 양혼칠백도 함께 있다. 그들을 다시 합체시켜야 한다.”
대명왕신이 말하며 멀리 있는 산을 가리켰다.
모든 사람이 고해와 함께 그곳을 바라봤다.
멀리 산봉우리 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근 천여 명에 달하는 흑포인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들 앞에는 거대한 관이 있었다,
“그녀를 와후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녀를 살릴 수 있다. 그녀를 나에게 넘겨라.”
대명왕신이 전과 달리 정중하게 말했다.
“지혼?”
고해의 얼굴빛이 미세하게 변했다.
한편, 광장에서는 대장로가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와후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와후가 어떻게 이 세계에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지혼을 떠나서 이 세계에 들어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병약한 청년, 병서생도 안색이 변했다.
“와후? 저 뱀 요괴가 와후의 환생이란 말인가? 콜록콜록.”
병서생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영생대사도 얼굴에 경악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와후라니. 고해가 마치 한 줄기 도천과 연결된 것 같구나. 하긴 지금 보니 작은 뱀 요괴의 얼굴이 와후와 닮긴 했어.”
고해는 대명왕신의 말을 듣고 경악했다.
“양혼칠백? 어떻게 와후의 양혼칠백이 기다린단 말인가? 지혼으로 전생한 후 천혼은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내가 너를 속여서 뭐 하겠느냐? 빨리 넘겨라. 시기를 놓치면 감당하지 못할 거야!”
“감당하지 못한다고? 뭘? 너는 아까 날 죽이려 했잖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흥! 난 널 믿을 수 없다!”
고해가 차갑게 말하며 거부하자, 대명왕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네놈이 어디서……!”
스무 가닥의 공작 깃이 하늘과 땅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파란 청광을 뿜어냈다.
“하아!”
장수가 크게 소리치고, 방천화극으로 대명왕신을 가리켰다.
“고 타주!”
그때 아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해는 머리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영생대사 아닌가?”
아래쪽 삼림 속에서 영생대사가 천천히 날아오르고 있었다.
“고 타주. 대명왕신의 말이 맞습니다. 소유는 와후의 지혼이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시간을 끌면 위험합니다.
반도로 인해 소유의 삼혼이 묶여 있는데, 지체하면 소유의 삼혼이 금반도의 힘에 의해 녹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삼혼이 상처를 입으니 빨리 결정을 내리십시오.”
그때 고해의 품속에서 소유가 나직이 말했다.
“은공님,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목소리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고해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영생대사님, 무슨 뜻입니까? 그럼 제가 소유를 건네주면 살릴 수는 있는 겁니까?”
그때 대명왕신이 영생대사를 흘깃 보고 인사를 건넸다.
“영생, 그대도 왔군.”
“무량수불. 대명왕신, 오랜만입니다. 여전하시지요?”
영생대사가 말하며 합장했다.
대명왕신이 이마를 찌푸린 채 말했다.
“그대가 저자에게 설명해 주게. 금반도를 더 복용시켰다가는 와후의 지혼도 상할 수 있네.”
고해도 다시 물었다.
“영생대사님, 소유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영생대사가 소유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삼혼이 흩어지지 않아서 다시 살아나기는 어렵진 않습니다. 뛰어난 영약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 금반도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약의 힘도 너무 강합니다.
소유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몸에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 타주, 소유의 지혼은 여전히 와후입니다. 어차피 와후로 복귀해야 합니다. 이렇게 된 김에 이 기회에 그녀를 복귀시킵시다.”
영생대사가 간곡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는 영생대사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숨을 기이 들이마시면서 마음속의 화를 가라앉혔다.
고해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왜 그의 말을 못 알아듣겠는가.
“지혼이 다시 태어난다고? 소유의 지혼이 와후로 환생한다면 그 소유가 원래의 소유입니까, 아닙니까? 인혼은요?”
그에 대해서는 대명왕신이 대답했다.
“소유의 지혼, 인혼 모두 와후에게로 합체된다. 와후가 되는 것이지. 하지만 지혼은 변하지 않는다.”
영생대사가 합장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고해가 영생대사를 바라보았다.
“지혼이 변하지 않는다고? 소유는 예전의 것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까?”
영생대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소유의 기억은 와후의 기억입니다. 와후가 과연 잊을까요? 소유의 모든 것은 단지 한쪽의 기억일 뿐입니다.”
고해는 소유를 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원하지 않는 눈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소유를 구할 수 없었다.
구할 수는 있었는데, 구하지 못했다.
예전의 부인 진선아처럼.
그리고 지금 또 그러고 있었다.
“빨리 넘겨주게. 와후의 지혼이 상처를 입었어!”
대명왕신이 초조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고해는 대명왕신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허약한 소유를 내려다보았다.
“소유야, 저 사람들의 말이 들리느냐? 너도 다른 사람이 되고 싶으냐? 기억은 남아 있지만 의지는 이미 사람으로 변할 텐데?”
“그걸 그녀한테 물어서 뭐 해?”
대명왕신이 재촉했지만, 고해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보내 줄게.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도와 해탈하게 해줄게.”
고해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가 감히!”
대명왕신이 소리쳤다.
주위에 무수히 많은 공작 깃이 나타났다.
고해가 앉아서 장수의 방천화극으로 대명왕신을 가리켰다.
고해는 냉랭한 눈빛으로 대명왕신을 노려보았다.
대명왕신이 강한 것을 알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때 소유가 몸을 떨며 말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요? 그럼 계속 은공님을 볼 수 있고, 은공님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럼 할게요! 다른 사람으로 변할게요!”
“후우우.”
대명왕신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소유를 품에 안은 고해의 눈에 복잡함이 가득했다.
이윽고 머리를 돌린 고해가 영생대사를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영생대사님, 저를 속이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무량수불, 빈승이 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영생이 합장하며 말했다.
“길을 안내하라!”
고해가 대명왕신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흥!”
대명왕신이 콧방귀를 뀌며 머리를 돌려 산봉우리를 향해 날아갔다.
쿠구구궁!
천군만마가 고해의 조종하에 산봉우리를 향해 날아갔다.
영생대사가 고공에 서서 고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고해, 나도 그대를 위해서입니다. 오늘 와후가 부활하지 못하면, 앞으로 그대가 마주할 이는 대명왕신뿐만이 아닙니다. 아마 하늘과 땅에 그대를 죽이려 할 사람이 가득하여 도망갈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천군만마가 백반도수를 떠나고 백반도수 곁에는 영생대사만 서 있었다.
주위 수련자들의 눈에 활기가 돌았다.
“지금 뺏을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겁이 나서 침입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자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그 사람은 급박한 표정으로 백반도수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 허공을 가르며 공작 깃이 지나갔다.
펑!
그 사람은 운수와 함께 두 동강이 나서 지상으로 떨어졌다.
“흡!”
주위에서 냉기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로 향하던 대명왕신이 머리를 돌려 냉랭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나 아직 여기 있다. 누구든 엉뚱한 욕심을 내는 자는 모조리 죽일 것이다!”
굉장히 나직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귀에 얼음송곳처럼 박혔다.
수련자들은 머리부터 발까지 다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고해 일행은 빠르게 산봉우리 꼭대기에 도착했다.
흑포인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와후의 복귀를 환영합니다!”
“관을 열어라!”
대명왕신이 명을 내렸다.
흑포인들이 십 장 크기의 거대한 관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