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53화 (53/243)

53화 지혼2

관 안에서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하얀 안개는 거대한 영기를 품고 있었고, 관의 한쪽에는 뱀의 몸뚱이와 머리가 있었다.

절세미인의 머리였다.

여인의 용모는 소유와 닮았는데 소유보다 성숙해 보였다.

두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허약한 소유를 보는 것 같았다.

소유도 허약한 몸으로 그 여인을 보았다.

소유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소유야, 어떠냐?”

고해가 걱정하며 물어봤다.

“은공님. 익숙한 느낌이 들어요. 이 관 안에 있는 게 바로 저예요.”

소유가 흐느꼈다.

“그래?”

고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관 안의 여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입 안으로 들어와 하나로 합체하라.”

여인의 머리가 갑자기 거대한 뱀의 머리로 변했다. 뱀이 입을 열어 단숨에 소유를 삼킬 것만 같았다.

소유는 그 입을 보며 다시 흐느꼈다.

“은, 은공님!”

소유가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소유야, 미안하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너를 구하지 못했구나.”

“은공님이 저를 입 속으로 넣어줘요.”

소유가 흐느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고해를 바라봤다.

소유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고해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고해는 머리를 끄덕이고, 큰 뱀의 입 안으로 천천히 소유를 넣었다.

그리고 뱀의 입이 천천히 닫혔다.

점점 입 안이 어두워지자, 소유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은공님!”

“말해라, 소유야!”

“만약, 만약 제가 나쁘게 변하면 꼭 알려주세요! 제가 예전에는 좋은 사람이었다고요!”

탁!

뱀이 입을 닫았다.

“은공님을 사랑했었어요!”

아쉽게도 뱀이 입을 이미 닫아 아무도 소유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마지막 말은 소유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고해가 소유를 방천룡의 손에서 구해줬을 때 그때부터 그녀의 마음은 이미 그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때의 절망과 슬픔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다 냉랭한 눈길로 자신을 볼 때, 오직 고해만이 하늘에서 내려와 자기를 구해주었다.

누구도 그때의 소유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 고해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고, 죽은 자신을 되살게 해주었다.

소유는 고해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고해가 자기를 버릴까 염려하여 내내 마음속에만 담고 있었다.

매일 고해의 옆에서 그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했다.

고해가 그녀를 향해 웃어 준다면 이번 생은 그걸로 만족할 터였다.

소유는 눈앞의 모든 것에 만족하여 이미 본인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고해만 따르면 되었으니까.

그런데 하늘은 왜 이 작은 소원도 들어주지 않는 것일까?

은공님을 너무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으로 변하면 그 마음도 변하는 것이 아닐까?

소유는 뱀의 입 안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에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소심하고 연약함이 미웠다.

죽을 때가 되어서도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하다니.

소유의 몸은 뱀의 입 안에서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눈물을 머금고, 슬픔을 머금고.

소유의 정신은 점점 몽롱해져 갔다.

점점 더, 점점 더……

결국은 아무런 느낌도 없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소유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소유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고해와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있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은공님, 만약 제가 나쁘게 변한다면, 꼭 저에게 제가 예전에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해줘요.

제가 그대를 사랑했었다고…….

* * *

십 장의 커다란 관이 떨리며 일어났다.

주위의 흑포인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대명왕신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관을 주시했다.

관 안에서 갑자기 흰 연기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흰 연기가 관 전체를 뒤덮으며 대량의 영기를 내뿜었다.

수련자들도 운수를 조종하여 산봉우리의 관을 바라보았다.

고선무와 진천은 고해 뒤의 멀지 않은 곳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영생대사도 고공에 서서 합장한 채 관을 바라보았다.

멀리서는 대장로와 병서생이 관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이 순간, 흰 연기에 뒤덮인 관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멈추고 결과를 기다렸다.

고해는 흰 연기에 뒤덮인 관을 바라보며 주먹을 주물렀다.

“내가 강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다. 또 한 번…….”

그는 충혈된 눈으로 혼잣말을 했다.

쿵!

흰 연기 속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렸다.

어렴풋하게 관이 폭발하며 열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관은 폭발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폭발한 것처럼 자줏빛 영기를 사방으로 내뿜을 뿐이었다.

한 줄기 영기가 산봉우리 위를 파도처럼 휩쓸었다.

사람들이 영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보였다.

멀리 있던 병서생이 손수건으로 입을 감싸며 말했다.

“콜록콜록. 영모의 기운이 신관에 합체되었군. 육체를 윤택하게 하기 위함인가? 허허허, 정말 사치스럽구나.”

영모의 기운이 솟구쳐 고선무와 진천산, 그리고 고해를 향해 밀려갔다.

영기가 용솟음치며 밀집되더니 고해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고해는 냉랭한 눈빛으로 온 힘을 다해 그 영기를 배척했다.

“응?”

대명왕신이 그 모습을 보고 고해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반면 고선무와 진천산은 경지가 한 단계 높아지고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두 사람의 표정은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해는 그렇지 않았다.

영모의 기운은 고해에게도 필요한 것이지만 조금도 흡수하지 않았다.

“고해! 뭐 하는 거냐? 와후가 다시 태어나며 하사하는 상인데 왜 안 받아들이는 거지?”

대명왕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고해가 대명왕신을 보며 답했다.

“이것은 소유의 죽음과 바꾼 기운. 나 고해도 영모의 기운이 필요하지만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 오늘의 수치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흥! 소유는 이미 죽었다. 넌 그저 그녀의 삼혼을 묶어 놨을 뿐이야!”

대명왕신이 냉랭하게 말했지만, 고해는 대꾸하지 않았다.

고선무도 얼굴색이 변하더니 영기 흡수를 멈추었다.

진천산도 고해를 보고 고민하다가 결국 멈추었다.

쿵!

굉음이 들리고 영기가 폭발하며 흩어졌다.

하얀 안개가 모여 흰 구름이 되었다.

그 흰 구름 위, 눈부시게 빛나는 한 여인이 천천히 올라왔다.

관 안에 있던 여인의 얼굴이었다.

상반신은 여인의 모양을 하고 하반신은 긴 뱀의 꼬리를 하고 있었다.

여인은 눈을 감고 있었다.

주위로 내뿜는 영롱한 빛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천천히 여인이 두 눈을 떴다.

두 눈을 뜨는 찰나, 천지에서 제일 아름다운 빛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는 것 같았다.

수련자들이 호흡을 멈추고 그 절세미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상반신의 몸매는 극히 풍만하여 아름답고 긴 팔을 가지고 있었다.

몸에는 화려하고 긴 궁장을 걸쳤다.

비록 허리 아래는 뱀 꼬리를 하고 있지만, 수련자들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소유!”

고해가 외쳤다.

여인은 머리를 돌려 고해를 바라보았다.

눈빛은 이미 소유의 청순한 눈빛이 아니었다.

눈은 매혹적인 눈빛을 띠고 있었지만, 입꼬리에는 냉소가 맺혀 있었다.

그녀는 고해의 외침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축하합니다! 와후의 재탄생을 축하합니다!”

흑포인들이 일제히 경배의 절을 했다.

와후는 머리를 돌려 흑포인들을 보더니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찮은 것들!”

흑포인들이 머리를 숙이고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와후, 축하드립니다!”

대명왕신이 와후를 향해 인사했다.

와후가 대명왕신을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대명왕신. 너야말로 아주 용감하더군. 몽태가 날 죽이려고 할 때, 넌 능력이 있으면서 도와주지 않았어. 그리고 내가 죽은 다음 나타났지.”

“와후는 반드시 재탄생해야 합니다. 와후의 전생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부하에게는 돕지 않을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대명왕신이 정중하게 말했다.

대명왕신의 눈에는 소유가 반드시 죽어야 했다.

단지 자기 손에 죽을지, 아니면 몽태 손에 죽을지 하는 선택만 다를 뿐이었다.

전자는 소유를 살릴 수 있지만, 살리고 다시 죽이면 와후의 분노가 굉장히 클 것이다.

둘 중에 해로움이 적은 것을 선택해야 했다.

그렇기에 대명왕신은 몽태가 손을 쓰기를 기다렸다.

“좋아. 아주 좋아!”

와후가 냉랭하게 말하며 대명왕신을 응시했다.

대명왕신이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와후. 주상께서 곧 출관합니다. 와후가 하루빨리 돌아가 대국을 주관하기 바랍니다!”

“흥!”

와후가 냉랭하게 코웃음 쳤다.

그때 흑포인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중 한 사람이 손을 휘젓자 공중에 비주(飛舟)가 나타났다.

비주는 용완청의 백운호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웠다.

심지어 궁전보다도 몇 배나 더 컸다.

“와후, 오르시지요!”

흑포인이 공손하게 말했다.

와후 뒤의 구름이 천천히 비주를 향해 날았다.

한 무리 흑포인들도 함께 탔다.

곧 거대한 비주가 천천히 날아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와후는 고해 일행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다.

고해는 와후의 표정을 보고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그 도도한 표정은 소유가 따라서 하려고 해도 절대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와후, 가시지요.”

흑포인이 공손하게 말하자, 와후가 비주 위에서 대명왕신을 내려다보았다.

“왜? 대명왕신, 너는 안 가는가?”

“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습니다. 와후 먼저 가시면 제가 바로 뒤따라가겠습니다!”

“고해를 죽이려고?”

와후가 냉랭하게 말했다.

멀리서 고선무와 진천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해도 미간을 찌푸리며 와후를 바라보았다.

대명왕신은 침묵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예, 앞으로를 위해 미리 처리할까 합니다.”

와후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후우우웅.

하늘에 서리가 맺히고 눈발이 흩날렸다.

수련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맙소사! 저 눈과 서리가 모두 와후의 한기에 의해 생긴 건가?”

“조용히 해. 와후가 들을라.”

주위에서 감탄과 두려움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뒷일을 방지한다? 묻고 싶군. 무슨 뒷일이 있을지.”

와후의 냉랭한 말에 대명왕신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주상께서 당부한 일입니다.”

“호호호호! 작은 공작아, 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나를 대신하여 네가 결정하겠다는 것이냐?”

“저는 감히 그러지 못합니다.”

대명왕신이 급히 머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 너는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데? 나를 태와후 자리로 몰아내고 네가 주인질을 하려는 것이냐?”

와후의 목소리가 더욱 냉랭해졌다.

강한 살기가 대명왕신을 향해 밀려갔다.

흑포인들이 황급히 엎드려 절했다.

대명왕신도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어찌 감히!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 안 하는 게 제일 좋을 거다. 나의 일은 아직 네가 뒷수습을 할 자격이 없다. 알겠느냐?”

“예!”

대명왕신이 공손하게 답했다.

“앞에 가서 배나 끌어라!”

“예!”

대명왕신이 백 장 크기의 거대한 공작으로 변했다.

공작이 날개를 펼치더니 폭풍을 일으키며 앞으로 날아갔다.

무수히 많은 청색 빛이 사방으로 뻗치며 폭풍을 몰고 왔다.

나팔 소리가 들리자, 공작이 비주 앞으로 날아가 비주를 끌며 하늘로 날아갔다.

비주가 날자, 영생대사와 대장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와후에게 말을 붙일 용기가 없는 것 같았다.

고해는 멀어지는 비주를 보면서 선천잔국계 출구로 날아갔다. 날아가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와후? 하아아!”

고해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때 비주 위에서 거대한 뱀 꼬리 그림자가 나타났다.

길이가 천 장이나 되는 거대한 뱀의 그림자가 허공을 쳤다.

콰앙!

잔잔한 물결이 허공에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산봉우리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진동이 작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고해는 그 물결 속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를 본 것만 같았다.

“누구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