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와후
허공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와후는 대꾸하지 않았다.
공작이 끌고 가는 비주가 안개 사이로 들어가더니, 선천잔국계를 넘어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졌다.
“와후가 미생인을 놀라게 한 건가?”
멀리 허공에서 구공자의 안색이 급변했다.
“역시 미생인인가?”
고해도 역시 맞춘 것 같았다.
고선무의 눈이 반짝거렸다.
“와후의 마지막 행동이 미생인을 찾는 타주를 도운 셈인가?”
위잉!
물결이 천천히 회복되고, 물결 중의 그림자도 사라졌다.
고해는 천군만마를 조종하여 다시 고공으로 향했다.
다시 백반도수를 점령한 그는 사방의 운수들을 내려다봤다.
“응?”
고해의 표정이 굳어졌다.
“타주, 왜요?”
고선무가 의아해서 물었다.
눈을 부릅뜬 고해가 삼림 속의 한 그림자를 가리켰다.
“몽태, 이놈. 명줄이 길구나! 대명왕신에 의해 허리가 잘렸는데도 안 죽었다니. 이놈! 내가 곧 죽여주마!”
* * *
고해의 명령하에 고선무는 금색 바둑알을 꺼내서 익룡을 소환했다.
익룡을 탄 그는 밑으로 하강했다.
운수들이 화들짝 놀라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지면의 한 산골짜기에는 일품당 제자들이 대명왕신의 공작 깃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져 고깃덩어리가 된 채 죽어 있었다.
하지만 피범벅이 된 그림자 하나가 이 순간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그는 몽태였다.
몽태는 끊임없이 단약을 먹으며 자신의 하반신 쪽으로 기어갔다.
단약을 삼키자 두 동강 난 몸이 다시 연결되었다.
하지만 허리가 끊어졌고 원기도 많이 딸린 상태라 힘겹게 숲속으로 기어갔다.
우르르.
문득 익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보였다.
고선무였다.
“안 돼!”
몽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콰우우우!
익룡은 발로 몽태를 집어 들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검은 안개가 가득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이거 놔, 이거 놔!”
몽태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지금껏 이렇게 나약해 본 적이 없는 그였다.
곧 몽태가 고해 앞에 놓여졌다.
“흥! ……몽 타주!”
고해의 눈에서 싸늘한 빛줄기가 번뜩였다.
“고해, 뭐 하는 짓인가? 나는 일품당의 토타주네. 자네가 나를 해친다면 자네도 해를 입게 될 것이야!”
몽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발악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고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되든, 그건 네가 얘기할 바가 아니다. 너를 잡아 온 것은 너한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다.”
“이, 이야기?”
“네가 저지른 모든 짓들을 나는 다 알고 있다. 송청서를 선동한 것부터 해서, 모든 짓들을. 내가 송청서에게 기회를 줬지만 그는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똑같이 나의 동료라는 이유로 너한테도 기회를 줬지만, 너 역시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련다. 죽어라!”
쩡!
장군의 방천화극이 맹렬하게 몽태를 향해 날아갔다.
칼날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안색이 창백해진 몽태가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자네 가족을 전부 죽이고 싶은가?”
“뭐?”
방천화극이 움직임을 멈췄다.
몽태가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동아줄을 잡기 위해 말했다.
“구오도의 송갑종이 우리랑 약속한 게 있다. 곧 일을 벌일 것이고, 구오도를 통일하려고 할 거다. 뜻에 응하는 사람만 살아남을 것이고, 뜻을 거역하는 사람은 죽을 거다. 청하종 역시 망하게 될 것이다. 내가 죽으면 너의 고씨 집안사람들 모두 죽을 거다!”
“뭐라?”
옆에 있던 진천산이 경악했다.
송갑종이 구오도를 통일하기 위해 청하종을 멸문시키려 한다고?
고해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몽태를 노려보았다.
“흥!”
방천화극이 갑자기 내리꽂혔다.
“안 돼!”
서걱!
몽태의 몸이 두 동강이 났다.
잘린 곳에서 피와 내장이 흘러나왔다.
퍽!
익룡이 몽태의 시체를 차버렸다.
몽태는 다시 부활할 가능성마저 없어져 버렸다.
쿵!
몽태의 시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해서 땅에 떨어졌다.
수많은 수련자들은 고해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구공자도 그 광경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다른 자들이 공격하면 함께 고해를 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이미 투지를 잃은 그는 혼자 나설 용기가 없었다.
혼자 나섰다가는 몽태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게 뻔했다.
일부당관 만부막개(一夫當關 萬夫莫開)!
고해의 대진은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인이 와도 뚫지 못한다.’는 말처럼 막강했다.
“타주님, 어떻게 할까요?”
진천산이 고해를 보며 물었다.
“거의 끝났다. 이곳 일이 끝나면 바로 구오도로 돌아가 송갑종주와 일품당 제자들의 음모를 막으라고 할 것이다.”
“예? 일품당이오? 그럼 당주는……!”
진천산의 안색이 흐려졌다.
“당주는 아직 그 일을 모를 것이다. 몽태와 그들이 사적으로 결정한 것이니 알릴 수 없었겠지. 어쩌면 구오도에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엉뚱한 욕심을 부리는 걸 보면.”
“구오도에 무슨 물건이 있다고……. 그런데 타주께선 왜 몽태를 죽이셨습니까? 그를 심문해서 알아냈으면…….”
진천산의 말에 고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몽태는 말해주지 않았을 거다. 더 들어봤자 그가 지어낸 거짓말뿐이었을 것이야. 안 듣느니만 못하지.”
“예…….”
비록 진천산은 믿기지 않았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영생대사님, 감사합니다.”
고해는 영생대사를 돌아보며 인사를 건넸다.
“고 타주가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와후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중에 알게 될 거요. 나 역시 그의 후배지요. 허, 나는 이미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을 가졌으니 선천잔국계를 떠나야겠습니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될 거요. 그때도 역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고 타주한테 부탁해야겠습니다.”
빙그레 웃은 영생대사는 두 손 모아 인사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구려.”
영생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득 생각난 듯 고해가 물었다.
“아, 영생대사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대사님과 대명왕신은 어찌하여 운수의 도움도 없이 날 수 있는 것입니까? 설마 수행이 선천경의 구속을 받지 않는 경지에 오르신 겁니까?”
영생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수행도 선천경입니다.”
“예?”
고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영생대사를 바라보았다.
대명왕신의 전투력이 얼마나 강력했던가.
그런데 그게 선천경이라고?
“대명왕신은 모든 힘을 다 쓰지 않았지요. 그의 수행은 선천경이지만 그대와 싸울 때 사용한 것은 수행이 아니라 신통입니다. 신통 역시 일종의 실력이지요.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영생대사는 출구 쪽으로 날아갔다.
“신통(神通)?”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고 진천산을 바라보았다.
진천산은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종주한테서 들었던 것 같기는 한데, 요괴들이 선천적으로 신통을 갖고 있다는 것 빼고는 저도 잘 모릅니다!”
고해는 고개를 끄덕인 후 이십팔천지종횡 대진을 펼치라 명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미생인을 기다렸다.
* * *
대장로와 병서생은 아까의 광경을 떠올리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와후가 어찌하여 이곳에 있었던 걸까요?”
“모르겠네. 지금부터 낱낱이 파헤쳐 봐야겠어.”
대장로가 청년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병서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들고 하늘의 구름을 보며 두 눈을 찡그렸다.
쿠르르릉.
갑자기 먼 곳의 산 정상이 흔들리더니 잔잔한 물결이 퍼졌다.
병서생은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변했다.
“미생인이 나타난 것인가?”
“그대는 따라오지 말게!”
대장로가 그리 말하고는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대장로는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서 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때 산 정상의 허공이 흔들리더니 한 사람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장포를 입고 있었다.
장포는 좌우로 나뉘어서 절반은 검은색, 절반은 흰색이었다.
얼굴도 모자로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의 두 손은 주위의 수련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검은색인 오른손은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마치 노인의 손 같았고 위에는 검버섯이 가득 피어 있었다.
흰색의 왼손은 윤기가 넘쳤다.
마치 갓난아기의 손 같아서 윤기가 나고 탱글탱글했다.
흑백 옷을 입은 사람이 나온 후 허공의 잔잔한 물결이 사려져버렸다.
그때, 대장로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미생인, 왜 나왔는가?”
흑백 옷을 입은 자는 하늘의 구름 대진을 보고 대장로에게 물었다.
“대장로님, 저를 찾는 사람이 있는데, 왜 저한테 이야기를 안 해주신 겁니까?”
흑백 옷을 입은 자가 그리 말하자, 주변의 수련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두 사람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갓난아기의 목소리였고, 하나는 늙은이의 목소리였다.
“미생인?”
누군가가 반응을 보이며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방에 있던 수련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고해의 천군만마 대진의 최종 목적이 이 사람을 찾는 것 아니던가?
하늘에서도 고해와 진천산, 고선무의 눈빛이 반짝였다.
“타주님, 진짜 와후의 마지막 행동이 미생인을 깨어나게 한 것일까요?”
고선무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진천산이 기뻐했다.
“드디어 찾았군요!”
미생인을 찾았으니 이제 구오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대장로가 말했다.
“자네도 자네만의 일이 있을 테니 방해하고 싶지 않았네.”
“나의 일을 그대들이 결정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흑백 옷의 미생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말하는 사이에 미생인은 고개를 들고 하늘의 대진을 바라보았다.
대진은 내부를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해는 미생인의 두 눈이 대진을 뚫고 들어와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백반도수로 협박해서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냐? 너는 누구냐? 어떻게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냐?”
미생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노인과 아기의 소리가 중복되어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저는 일품당 수타주 고해입니다. 당주를 대신하여 미생인 선배님을 찾아왔습니다.”
고해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일품당 당주? 허, 그가 직접 나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시켜서 나를 찾아오게 했다고?”
미생인의 목소리는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저와 선배님이 알고 계신 일품당 당주가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해가 깊은숨은 들이쉬며 말했다.
“응? 지금은 누구야?”
“용완청이라고, 선배님이 얘기하신 당주의 딸입니다. 지금은 용완청이 새로운 당주가 되었습니다.”
“딸? 용완청? 하, 하하! 그녀가 끝내 시집갔나 보구나. 그녀의 남편은 누구냐?”
미생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고해는 갑자기 침묵했다.
“왜? 말하면 안 되는 것이냐?”
미생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용완청이 저더러 선배님을 찾으라고 한 것은 선배님이 나가서 도와줬으면 해서입니다! 저더러 이것을 갖고 가서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고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작은 상자를 꺼냈다.
작은 상자는 미생인을 향해 날아가 미생인의 손에 떨어졌다.
“나가서? 불가능한 일이다. 미생인, 자네 각주랑 약속했잖은가?”
대장로가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생인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속에는 평범한 비녀가 놓여 있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고 아무런 법력도 없었으며 심지어 낡아 보이기까지 했다.
“이것은 내가 예전에 그녀한테 선물했던 것이구나. 그녀가 버리지 않았다니. 그녀가 여태껏 이걸 갖고 있었다니. 허허!”
미생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가득했다.
“선배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해가 깊은 한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비녀를 잡고 있던 미생인은 몸이 얼어붙어서 고해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