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신기영
고해가 공손하게 인사 올리며 말했다.
“용완청 당주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이십 년 전에 돌아가셨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배님이 산을 나와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주시고,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해 주셨으면 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선배님이 산에서 나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생인은 눈을 치켜뜨고 고해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제대로 못 들었으니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그녀가 어떻게 되었다고? 그녀가 어찌하여?”
“그 비녀는 용완청 당주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자의 보존 상태만 봐도 당주의 어머니가 생전에 얼마나 소중하게 다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주의 어머니는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척이나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범인조차 잡지 못하여 할 수 없이 선배님한테 부탁하는 것입니다.
당주께선 어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주시고 복수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살해되었다고?”
미생인은 넘어질 것처럼 몸을 비틀거렸다.
* * *
망망대해.
두 척의 비주가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날았다.
앞에는 용완청의 백운호, 뒤에는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가득한 비주가 뒤따르고 있었다.
배 위에는 깃발 하나가 꽂혀 있었는데, 깃발에는 '신기영'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영호의 뱃머리에는 황금색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준수한 외모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훤칠한 체격에 지혜롭고 용감해 보였는데 두 손은 배의 난간을 잡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먼 곳을 바라보다가 가끔 백운호를 힐끔거렸다.
백운호 위의 뱃머리에는 용완청과 유년대사, 그리고 손에 지팡이를 쥔 노파가 서 있었다.
“선천잔국계가 아직 작동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용완청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당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일반적으로 모두 작동되려면 일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유년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용완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도 담담하게 말했다.
“당주, 걱정하지 말게나. 몽태가 한 무리의 토타 제자들을 거느리고 진입했다네. 비록 그가 일처리를 할 때 침작하지 못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보다 나으니 혹시 모르지,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미생인의 소식이 알아냈을지도.”
“화타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몽 타주 말고도 고 타주가 있지 않습니까? 고 타주가 소식을 접했을 수도 있지요!”
유년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노파가 듣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유년대사, 고해는 당주님이 한 번 만나본 것뿐인데 그대는 왜 그를 수타주가 되게끔 선동하는 것인가?”
“당주님은 결정할 권한이 있습니다.”
유년대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노파는 눈을 치켜떴다.
“당주님한테 결정권이 있는 건 사실이네, 하지만 당주님은 아직 어리지 않은가? 유년대사가 잘 이끌어줘야지. 일품당은 바로 윗대 당주 손에서 천하에 명성을 떨쳤네. 그런데 그게 새 당주님의 대에 와서 안……!”
“안, 뭐요?”
용완청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노파는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곧바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당주, 죄를 용서해 주시오. 늙은이가 노망났나 보오. 하지만 일품당이 오늘날 이름을 떨칠 수 있기까지 쉽지 않았소. 당주님이 신중했으며 하오.
늙은이 정예, 그리고 몇 타주들 모두 당주님이 매사에 신중하고 정확하게 대처하여 일품당의 위대한 명의가 훼손되지 않게 해주었으면 하오.”
“흥! 위대한 명의요? 제가 당주가 되면 그 위대한 명의가 없어집니까?”
용완청은 눈을 부릅뜨고 노파를 쳐다보았다.
“늙은이가 미안하오.”
노파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용완청은 정예를 한참 쳐다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마음속의 화가 조금 풀리는 듯싶었다.
“당주님, 동생분은 어떻습니까?”
유년대사가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용완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쁜 년, 혼자 죽을 길을 찾아다녔는데 지금 많이 좋아졌습니다. 비록 전부 제거는 못 했지만 외할아버지가 곁에 계시니 요괴들이 그 아이를 해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급히 돌아오지만 않았어도 그 나쁜 년을 내가 호되게 혼냈을 거예요.”
“외할아버지가 동생분을 많이 이뻐하는가 봅니다. 이번에도 동생분 구하러 가면서 외할아버지가 신기영을 다 끌고 가서 도와줬지 않았습니까?”
유년대사는 저쪽에 있는 배를 쳐다보았다.
용완청도 뱃머리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외할아버지가 시킨 게 아니라 그가 직접 끌고 온 것입니다.”
“이호연이? 그가 직접 끌고 온 것이라고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유년대사는 안색이 변해서 인상을 찌푸리며 신기영의 배를 쳐다보았다.
용완청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유년대사를 바라보았다.
노파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유년대사, 그러면 안 되지. 이호연도 당주님을 돕기 위해 하는 일인데 무슨 목적이 있다는 건가? 사람을 그렇게 편견을 갖고 보지 말게.”
용완청도 그녀를 거들어서 유년대사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유년대사님, 예전에 어머니가 이호연한테 은혜를 베푼 적도 있으니 다른 목적은 없을 겁니다.”
유년대사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저쪽 배에 있는 이호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 * *
“그녀가 살해되었다고?”
미생인은 몸을 휘청거렸다.
“이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천선잔국계에 진입하여 이같이 소란을 피우게 된 것도 선배님이 그녀를 도와 복수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대 당주님의 죽음을 그렇게 내버려두실 것입니까?”
“…….”
“선배님이 여기에 계시는 동안 팔백 년이 흘렀습니다. 윗대 당주님은 그동안 비녀를 계속 간직해 오셨고요. 어쩌면 전대 당주님도 선배님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니, 일평생 선배님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억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그녀가…… 죽었다고? 허허, 죽었다고?”
미생인은 몸을 휘청거렸다.
목소리는 큰 슬픔에 잠겼고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화르르르.
미생인을 중심으로 주변의 식물들이 점차 시들어갔다.
“헛?”
옆에 있던 대장로가 놀라서 하늘로 솟아올라 미생인을 멀리했다.
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시들어갔다.
그 범위가 점점 커졌다.
얼마 안 지나서 산 정상의 식물이 전부 시들었다.
수련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나무들이 왜 다 시들었지?”
“야, 저기 봐봐, 저기!”
수련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산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표범 한 마리가 산골짜기를 서성이고 있었다.
식물이 시들어가는 것을 본 표범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외곽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식물이 시들어가는 속도가 수렵 표범의 속도를 앞질렀다.
표범은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표범의 털이 흰색으로 변하며 노화가 시작되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표범은 점점 말라갔고 늙어갔으며, 나중에는 뼈밖에 남지 않고 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저, 저건…… 늙어서 죽은 거야!”
사람들이 경악하며 말했다.
표범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동물 역시 노화가 시작되면서 점점 말라갔고, 결국은 죽어버렸다.
“안 돼, 살려주세요! 아!”
삼림 속에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한 젊은 남자가 삼림 속에서 뛰어나왔다.
하지만 얼마 도망치지 못하고 노화가 시작되었다.
그의 외침을 듣고 나서야 미생인은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미생인은 고개를 돌렸다.
진행 중이던 노화가 멈추었다.
하지만 그사이 주변의 산 열 개가 이미 푸르던 본모습을 잃고 전부 시들어버려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곳에 있던 동물도 모두 죽어버렸다.
게다가 불운한 젊은이는 노인이 되어 행동이 느려졌다.
“콜록콜록, 선배님, 다시 저의 모습으로 돌려주세요, 제발 돌려주세요. 콜록콜록!”
노인은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죽음이 임박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미생인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주변의 수련자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도망가기 바빴다.
그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산 정상에 서 있는 미생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공포 그 자체였다.
“사람이 늙었어. 수명을, 그는 수명을 파괴할 수 있어!”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빨리 그한테서 멀리 떨어져야 해!”
수련을 하거나 금반도를 뺏으려는 목적은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눈앞의 저 사람은 수명을 파괴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안 죽이는 게 죽이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그는 악마다! 그는 악마야!
모든 사람들이 기겁하며 미생인을 바라보았다.
미생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마치 마음의 분노를 식히는 듯했다.
“미생인, 예전에 각주랑 약속했었지 않은가. 자네는 여기를 떠날 수가 없어.”
대장로가 말했다.
미생인은 한참을 가만히 서 있다가 서서히 입을 열었다.
“대장로님, 저는 가야겠습니다. 제가 관기 노인한테 약속드리긴 했지만 안 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저는 일 초도 여기에 머물 수 없습니다. 단 일 초도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장로는 초조하게 말했다.
“하지만,이란 건 없습니다. 그대가 모르는 일들이 있고, 내가 무조건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녀가 죽었다고? 하하하! 그녀가 죽었다고? 하하하하!
애초에 관기 노인한테 약속드리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선천잔국계에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안 죽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 죽었을 수도!”
미생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대장로는 어떻게 타일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미생인은 이미 마음을 굳힌 듯했다.
대장로는 화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하늘의 대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해, 다 네놈 때문이다! 아직도 나의 혁천각의 백반도수를 자르고 싶으냐?”
고해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혁천각 대장로님, 저는 이제 미생인을 만났으니 백반도수는 자연히 무사할 것입니다. 지금 바로 혁천각에 돌려드리겠습니다.”
“응?”
대장로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저렇게 말이 잘 통했던가.
“하지만 여기 규칙에 의하면, 여기의 보물은 관기 노인이 저희와 같은 외래자 중 인연이 있는 사람한테 남겨주기로 한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금반도는 제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고해는 정중하게 말했다.
“흥!”
대장로는 콧방귀를 뀌었다.
복숭아에는 관심이 없었다.
복숭아나무만 있다면 백 년은 훌쩍 지나가 버린다.
“타주님, 전에 말씀하시기로는……!”
진천산은 머쓱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진천산과 고선무를 바라보더니 두 개의 상자를 꺼냈다.
“전에 너희들한테 약속했던 거다.”
고해는 두 개의 상자를 건넸다.
진천산은 기뻐하며 상자를 받아들었다. 열어보니 역시 복숭아가 들어 있었다.
진천산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고선무는 상자를 받자마자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복숭아를 먹어 치웠다.
고선무의 몸에서 금빛이 피어났다.
“고선무, 참으로 사치스럽구만.”
진천산은 경악하며 고선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고선무가 진천산을 힐끗 쳐다보고 오히려 이상한 소리를 했다.
“진천산 님, 너무 급하십니다.”
“뭐?”
“타주님이 저희한테 약속한 일은 무조건 해주십니다. 그런데 지금 달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어차피 주실 거, 지금 갖겠다는데 왜?”
진천산은 고선무의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고선무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가져도 상관은 없지만, 금반도를 청하종에 무사히 갖고 가실 수 있겠습니까?”
“응?”
진천산은 잠깐 머뭇거렸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니 수련자들이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천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그제야 고선무가 왜 급히 금반도를 먹어버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먹지 않으면 선천잔국계를 나갈 때 모두가 욕심을 드러낼 것이다.
수련자들이 능력을 모두 회복할 경우, 자신이 반도를 갖고 있는 것은 죽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았다.
착!
진천산은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그러고는 금반도를 꺼내 먹어버렸다.
그가 금반도를 다 먹고 난 후에야 주변 수련자들의 눈빛이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해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고해에게 마지막 금반도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