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56화 (56/243)

56화 계획하여 떠나다.

* * *

“미생인 선배님, 저희랑 같이 가시지요.”

고해는 미생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생인은 조용히 비녀만 바라볼 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고해는 인내심을 갖고 미생인을 기다렸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미생인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가는 길은 너희들이 갈 수가 없다.”

“예?”

고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생인을 바라보았다.

깊은 한숨을 들이쉬며 미생인은 대장로를 쳐다보았다.

“대장로님, 팔백 년 동안 제가 혁천각을 위해 한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다 합쳐도 제가 잃은 것보다 많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억울하게 죽은 걸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그 누구도 그녀를 죽일 수 없습니다. 저는 가야겠습니다.”

미생인의 목소리에서 싸늘한 살기가 느껴졌다.

대장로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끝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그동안 자네가 혁천각을 위해 한 일은 이미 충분하네. 자네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가 줄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해주겠네.”

“괜찮습니다!”

미생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앞쪽 허공이 살짝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잔잔한 물결이 형성되더니 파도가 넘실거렸다.

와르르!

수련자들은 파도를 피해 멀찌감치 비켜섰다.

미생인은 허공의 물결 속으로 걸어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허공은 서서히 조용함을 회복했고, 모든 것이 원상 복귀되었다.

미생인의 흔적만 없을 뿐이었다.

주변 삼림이 파괴된 흔적만 없었더라면 미생인이 애초부터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건 어떤 수법이지?”

고해가 경악하며 진천산을 바라보았다.

진천산은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도 모르는 것이다.

고해도 하늘을 떠났다.

구공자는 혁천각 제자들을 데리고 다시 하늘을 차지해 백반도수 지역을 지켰다.

“대장로님, 오늘 여러모로 무례를 범했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고해가 대장로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대장로는 고해를 한참 째려봤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우우!

고해는 천군만마를 조종하여 순식간에 삼림 속으로 날아갔다.

수련자들은 삼림 속에 들어갈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세 사람은 재빠르게 삼림 속을 헤쳐 나갔다.

나무가 울창해서 외부인은 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타주님, 안 가십니까? 뭘 또 찾으시는지?”

진천산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갈 수가 없다.”

고해가 고개를 저었다.

“예?”

진천산이 여전히 의아해하자 고선무가 말했다.

“타주님은 아까 미생인과 같이 가자고 했었지요, 미생인이 떠나는 걸 이용해서 이곳을 벗어나려 했던 것인데, 아쉽게도 미생인이 혼자 사라져 버려서 우리끼리 가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갈 수가 없습니다.”

진천산은 그제야 이해한 듯 안색이 변했다.

“우리 앞을 막으려는 자들이 있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타주님이 갖고 계신 금반도를 뺏기 위해서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수련자들이 천군만마에 의해 다치고 죽었습니까? 그들의 가족들은 복수하려 하겠지요. 선천잔국계에서는 타주님이 천군만마를 갖고 있기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지만, 선천잔국계를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진천산의 눈이 불안으로 흔들렸다.

그때 고해가 말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아, 우리는 임무를 완수했어.”

“타주님, 이것은 아까 몽태를 압송할 때 그의 몸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고선무가 손을 내밀어 영패를 건넸다.

영패의 형태는 고해의 수타 영패와 비슷했다.

다만 토타이다 보니 그림이 조금 다를 뿐.

“토타의 타주령?”

고해는 토타 영패를 건네받았다.

고선무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어떤 명령을 내리든 자신의 뜻을 눈치챘고 자신을 만족시켰다.

“몽태는 이미 죽었으니 이 영패의 공간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진천산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는 토타 영패에 자신의 피를 떨어뜨렸다.

순간 가로세로 십 장의 공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공간에는 백 개의 특급 영석와 몇백 개의 일반 영석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각종 병 속에 대량의 단약이 들어 있었고 약재와 잡동사니들도 있었다.

고해는 내부의 물건을 꺼내서 자신의 수타 영패에 넣었다.

고해는 진원의 기운으로 영패에 묻은 자신의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영패를 고선무에게 건네주었다.

“고선무, 이 영패는 네가 잠시 갖고 있어라. 내부의 물건을 내가 다 빼지는 않았다. 특급 영석 열 개를 남겨뒀으니 네가 쓰도록 해라.”

“네, 타주님. 감사합니다.”

고선무의 얼굴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천산의 눈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진천산, 이 열 개의 특급 영석은 네가 쓰도록 해라. 수고 많았다.”

고해는 진천산에게도 열 개의 영석을 건넸다.

“타주님, 감사합니다!”

진천산은 기뻐하며 영석을 받았다.

“타주님, 이곳을 어떻게 나갈까요?”

고선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급하게 서둘지 마라. 이틀만 더 버텨보자.”

고해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의 운수를 바라보았다.

* * *

“고해가 나갔으니 단단히 지켜봐야 한다!”

“흥, 나의 사제와 사형이 그로 인해 하늘에서 떨어졌어. 사형은 구했지만 사제는 다리가 절단됐지. 복수하고 말 것이야!”

“복수는 무슨? 그저 금반도가 탐난 거지.”

“그러면 어때?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어찌 됐든, 고해를 절대 도망 못 가게 할 거야.”

선천잔국계 외부를 천여 명의 수련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한 무리의 사람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그 사람의 정체를 확인했다.

수련자들은 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해 일행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 시각, 진천산과 고선무는 고해가 대량의 영석을 연못 구멍에 배열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주님, 지금 이건?”

진천산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우리가 전에 들어갔던 온천을 기억하느냐?”

“네, 당연히 기억합니다. 관기 노인 법보 중 진법으로 만들어진 영의 기체가 모인 곳 아니었습니까?”

“바로 이 진법이다.”

“네?”

진천산의 눈은 반짝거렸다.

“난 일 년이란 시간을 기다려 영의 기체를 만들어낼 인내심이 없다. 그래서 영석으로 영의 기체를 만드는 걸 시도해 보려는 것이다. 성공하면 함께 효능을 얻도록 하자.”

“타주님,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기뻐했다.

영의 온천을 만드는 진법이라니. 타주님이 그런 진법도 알았던가?

두 사람은 그때부터 고해가 하는 걸 뚫어지게 보며 속으로 진법의 배열을 외웠다.

진법의 배열이 끝나자 고해가 중앙으로 들어가 앉았다.

손(巽)의 진원이 크게 흔들렸다.

우르르릉.

저수지에서 서서히 영의 기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왔습니다! 영의 기체가 나왔습니다!”

진천산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후우웅.

대량의 영의 기체가 고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같이 해보자.”

고해는 말하자, 두 사람도 연못으로 들어갔다.

영의 기체가 세 사람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영의 기체들은 오래 있지 못하고 서서히 사라졌다.

관기 노인의 법보가 아니기에 끝까지 영의 기체를 붙잡아 놓지는 못했다.

세 사람은 그렇게 이틀 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진천산을 제외한 고해와 고선무는 모두 한계를 넘어섰다.

‘선천경 제오단계를 이루었다!’

고해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선무와 진천산도 연이어 깨어났다.

저수지에는 영의 기체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진천산은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

“마흔아홉 개의 특급 영석과 백 개의 일반 영석이 하루 만에 사라지다니…….”

고해가 웃으며 물었다.

“부족하냐?”

진천산이 씁쓸하게 답했다.

“이, 이건 너무 낭비입니다. 이 정도의 영석이면 저는 오랫동안 수련할 수 있습니다. 이 진법은 그다지 큰 효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한테는 매우 효과가 좋았다.”

몽태가 남긴 영석 중 절반을 한 번에 써버렸다.

영석에 대해서 고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영석은 이곳 세계에서 돈과 같았다.

돈에 큰 관심이 없는 고해에게 영석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돈은 그저 도구일 뿐이었다.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도구.

강해질 수만 있다면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상관없었다.

“타주님, 한 번 더 하시겠습니까?”

고선무가 기대하며 물었다.

“또? 너무 사치 아닌가?”

진천산은 쓴웃음을 지었다.

고해도 영석을 쓰는 건 이쯤에서 멈췄다.

남은 영석은 다른 곳에 사용해야 했다.

“나머지 영석은 우리의 앞길을 위해 쓰자. 이 영석이 우리를 구오도까지 돌려보내 줄 거다!”

“예?”

고선무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구오도로 돌아가는 겁니까? 영석을 이용해서요? 어떻게……? 설마 우리를 막는 자들을 영석으로 포섭할 생각이십니까?”

진천산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래, 입구에서 우리를 막는 자들이 우리를 구오도까지 보내줄 것이다.”

고해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진천산은 도저히 고해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선무는 고해를 굳게 믿었다.

“저희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첫 번째로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를 막게 해야 한다.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더 안전해질 거야.”

“예?”

진천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고해의 머리를 만져서 열이 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 * *

선천잔국계 입구 쪽에 만인에 가까운 수련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여러 세력으로 나누어져서 입구, 출구, 안개 속까지 포위했다.

고해가 어디에서 나오든 찾아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복수하기 위해서였지만, 대부분은 금반도를 얻는 게 목적이었다.

“나온다, 또 사람이 나온다!”

“잡아!”

“뒤져!”

와르르!

안에서 나온 사람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뭐 하는 짓이야? 왜 나를 잡아?”

“사형이 병을 앓고 있었는데 고해한테 중상까지 입었어. 상처가 더해져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지경이야. 우리는 섬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아야 해!”

“우리를 놔줘. 뭐 하는 짓이야?”

안에서 나온 사람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누군가가 그 사람들을 알아보았다.

“삼칠도의 제자군. 흥, 잘못 봤잖아? 그들은 고해가 아니야.”

“흥!”

김이 샌 수련자들은 콧방귀를 뀌며 물러섰다.

이와 같은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들어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나오는 자들은 꼼꼼하게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고해가 나오지 않자 사람들도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고해가 안 나오려는 건가?”

“며칠씩이나 기다렸는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

“우리가 여기서 지키는 것을 알고 무서워서 못 나오고 있을 게 분명해!”

수련자들은 굳은 의지로 입구를 지켰다.

특히 금단경 수련자는 선천잔국계에 진입해 봐야 힘을 억제당하기 때문에 차라리 입구에서 고해를 지키는 것이 나았다.

그런데 갑자기 안쪽에서 열 명 정도의 수련자들이 뛰쳐나왔다.

외부를 감싸고 있던 수련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그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해를 찾았다.

“큰일 났다! 고해가 온다. 고해가 와!”

뛰쳐나온 수련자가 소리를 질렀다.

수련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해가 온다고? 어디!”

“안에 있어! 그런데 고해가 미친 것 같아. 지금 안에서 천군만마를 조종하여 우리를 내쫓고 있어. 우리도 쫓겨서 나온 거야!”

“뭐? 천군만마를 조종하고 있다고?”

많은 수련자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들은 아직도 천군만마의 맹렬한 공격을 기억하고 있었다.

천군만마는 고해만이 소환 가능한 것이기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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