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자유롭게 떠나다.
한편, 선천잔국계 안에서는 안개를 헤치며 천군만마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운수장군들은 손에 칼과 검을 쥐고 수련자들과 운수를 공격했다.
수천 명의 수련자들은 천군만마에 쫓겨서 밖으로 도망쳤다.
그들도 운수를 갖고 있었지만 쉼 없이 공격해 오는 천군만마를 막을 수가 없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안개 속에서 고해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흥!”
수련자들은 화를 내면서도 출구까지 쫓겨났다.
천군만마는 안개로 주변을 감싼 채 출입구를 둘러쌌다.
수련자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다.
선천잔국계에서 쫓겨난 수련자들은 욕을 퍼부었다.
“고해! 이 개자식! 두고 보자! 너 나오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라!”
“개새끼! 어디 한번 나오기만 해봐라!”
외부를 지키고 있던 수련자들도 상황을 정확히 인지했다.
고해는 아직도 안에 있었다.
게다가 천군만마로 대진을 배열하고 있었다.
쫓겨난 수련자들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간혹 고해의 의도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고해가 지금 뭐 하려는 거지?”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외부에 있던 수련자들은 내부로 발을 내딛는 순간 안개 속에 펼쳐진 천군만마의 대진을 보고 놀라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부에 있는 수련자들도 천군만마의 대진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 고해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천군만마는 그렇게 내부를 지킬 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또다시 이틀이 흘렀다.
천군만마의 대진은 조용하기 그지없고, 고해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외부에 있던 늙은 수련자 하나가 갑자기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큰일 났다! 빨리 들어가 봐야겠어! 우리가 그의 수에 놀아난 것 같다!”
“뭐? 무슨 소리야?”
수련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은 천군만마가 무섭지 않은 사람처럼 안으로 뛰어들었다.
“영석! 역시 이건 영석으로 만들어낸 진법이야!”
노인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그러고는 바닥에 깔려 있는 영석을 깨부쉈다.
와르르!
영석이 깨지자 천군만마가 돌연 사라져버렸다.
처음에는 진짜 천군만마로 만들어진 대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펼쳐진 것은 대진이 아니었다.
그저 영석으로 만들어낸 안개만 남아 있을 뿐.
텅 빈 주변을 보며 수련자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미치겠군.”
“이 사기꾼 놈이……!”
“고해가 안개로 우리를 속인 거야?”
“고해는 여기에 있지 않아! 벌써 밖으로 도망쳤어!”
사람들은 그제야 이해가 됐다.
고해는 처음에만 사람들에게 천군만마를 보여줬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준 후 안개로 대진을 만들고 천군만마를 회수시켰다.
그러고는 유유히 도망쳤다.
“고해는 안에서 쫓겨난 사람들과 함께 이미 선천잔국계를 떠났어!”
“으아아! 이 사기꾼 새끼를 진짜……!”
사방에서 분노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누가 알았겠는가? 고해가 이런 속임수를 만들어 모든 사람을 속일 줄.
진실을 알게 된 수련자들은 서둘러 선천잔국계를 빠져나왔다.
“고해가 도망갔다면 어디로 도망갔을 것 같아?”
“구오도?”
“설마? 고해가 다시 구오도로 돌아간다고?”
많은 사람들이 반도를 뺏기 위해 고해를 쫓아 나섰다.
선천잔국계를 벗어나면 고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점점 많은 수련자들이 고해를 잡기 위해 선천잔국계를 떠났다.
그렇게 선천잔국계 입구가 휑하니 비었을 때쯤, 선천잔국계의 작은 숲속에서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 사람의 얼굴은 초췌했으나 목소리만은 활기찼다.
“타주님, 처음에는 진짜 저들을 유인해 내고 도망치는 줄 알았는데, 우리를 이렇게 못 가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진천산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고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짜를 가짜처럼, 가짜를 진짜처럼 해야 사람들이 제대로 속는 법이다. 가자. 사람들을 만나면 목소리를 걸걸하게 깔아야 한다.”
“예!”
세 사람은 사람들이 간 방향을 따라갔다.
계속해서 삼 일을 따라가서 해변까지 갔다.
해변에는 마침 몇 척의 거대한 배들이 세워져 있었다.
배 위에는 대량의 진법이 있었으며 모두 항해하는 도구들이었다.
한 선주가 크게 외쳤다.
“배에 올라라! 구오도로 가서 고해 일행을 잡을 것이다!”
“고해는 배를 빌려 삼칠도로 갔어. 우리는 삼칠도로 갈 것이다. 사람이 차면 바로 떠날 것이다!”
연이어 선주들이 크게 외쳤다.
아무도 고해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는 모른다.
선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배를 타고 영석만 준다면 고해를 잡든 말든 상관없었다.
선천잔국계에서 쫓아온 수련자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모르겠다. 운에 맡기지 뭐. 난 구오도로 갈 거야. 빨리 출발해! 앞사람한테 뺏기면 안 돼!”
고해 일행도 일반 영석 삼십 개를 지불하고 구오도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게다가 방까지 얻었다.
구오도로 가는 배는 가장 인기가 많았다.
순식간에 사람으로 꽉 찼다.
“출발!”
선주가 크게 외쳤다.
배는 빠른 속도로 구오도를 향해 달렸다.
고해는 방에 앉아 여유롭게 기다렸다.
진천산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죽기 살기로 싸우면서 피바다를 건너 도망갈 줄 알았는데…….”
* * *
천도해에 한 척의 배가 떠 있었다.
고해는 방 안에서 가부좌를 한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흑돌은 여전히 천하의 제일 높은 곳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 아래의 공중에 하얀 수정체가 떠 있는데, 흑돌의 압박을 받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제일 밑에는 지난날의 십만 편 잔국이 사합일체로 짝을 맞추고 있었다.
수량이 너무 많아서 고해조차 한순간에 전부 짝을 맞추지는 못했다.
소리가 나자 고해가 눈을 천천히 떴다.
고선무와 진천산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떠냐?”
고선무와 진천산이 말했다.
“마음 놓으십시오. 배가 전력을 다해서 구오도로 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삼 개월 정도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고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도착할 때까지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자.”
“타주님, 우리는 이미 안전합니다. 구오도에 도착하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 말고 또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내가 운무진을 배치하여 많은 수련자들을 속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생각을 간파하는 자가 나올 수 있다. 해상에서 삼 개월은 너무 길어.”
고해가 마음속에 있던 걱정을 털어놨다.
고선무는 넌지시 물었다.
“타주님, 그들은 대부분 금반도를 빼앗기 위해 가고 있습니다. 타주께선 마지막 한 알을 왜 그때 안 드셨는지요?”
고해가 마지막 한 알을 마저 먹었더라면 아마 이 정도로 귀찮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한 개니까 귀한 거다. 이 하나가 전의 열 개보다 더 귀해. 왜냐하면 천하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거니까.”
“예?”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쌍날검이다. 잘 쓰지 못하면 자신을 해치지. 하지만 잘 쓰면……?”
고선무의 안색이 변했다.
고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무런 말도 더는 하지 않았다.
* * *
열흘 후.
천원도는 처음과 같은 상태로 회복되었다.
여전히 많은 수련자들이 선천잔국계를 드나들었다.
고해의 죽이려는 자들은 여전히 고해를 뒤쫓았다.
선천잔국계 안은 싸움이 대부분 멈춘 상태였다.
금반도는 이제 없었다. 하지만 백반도수가 남아 있었다.
나뭇가지 하나만 챙겨 돌아가서 천천히 배양하면 언젠가는 백반도수를 키워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 금복숭아도 얻을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수련자들이 단념하지 않고 선천잔국계를 찾았다.
하지만 구공자가 원주민 운수들과 함께 백반도수를 점령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출구 쪽에서 두 척의 거대한 배가 날아왔다.
용완청의 백운호와 신기영의 배가 도착한 것이다.
“일품당 제자들은 속히 떠나거라!”
큰 소리가 배 쪽에서 들려왔다.
“일품당? 왜 또 일품당인가?”
사방에서 의아한 듯 의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배 위에 있던 용완청의 눈에 급박함이 가득했다.
“몽태와 고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야 해.”
화타주 정예가 크게 소리쳤다.
“몽태! 어디에 있느냐?”
정예의 목소리가 온 천하에 울려 퍼졌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조용하게 두 척의 배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머뭇거림, 막연함, 우울함이 담겨 있었다.
유년대사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뭔가 이상한데? 저 사람들 우리를 보는 눈빛이 어째……?”
“백반도수? 운수?”
다른 한 척의 배 위에서 신기영 영주 이호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운수의 소식은 그들에게 비밀이 아니었다.
백반도수도 비밀이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행을 기괴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몽태! 왜 안 나오느냐?”
화타주 정예가 냉랭하게 말했다.
주위는 여전히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삼림 중 한 궁전의 입구에서 대장로와 병서생이 다시 걸어 나왔다.
흑의를 입은 부하 몇이 그들을 뒤따라왔다.
“콜록콜록. 일품당인가요? 끝이 없군요.”
병서생이 기침을 하며 말했다.
대장로는 머리를 끄덕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두 척의 배 위에 있던 용완청과 정예, 유년대사, 이호연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구공자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또 일품당인가? 너희들은 도대체 왜 이리 몰려오는 거냐? 미생인은 이미 너희들에게 불리어 갔지 않느냐? 그런데 왜 또 왔는가?”
“뭐?”
용완청이 놀라 멍하니 있었다.
유년대사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미생인이 우리 때문에 불려 갔다고?”
노부인 정예가 말했다.
“보아하니 몽태군. 겨우 본분에 맞는 일을 했네!”
멀리서 한 운수 위의 수련자가 정예의 말을 듣고 얼굴이 점점 기괴해졌다.
유년대사는 이상함을 느끼고 멀지 않은 곳의 수련자들게 물어보았다.
“이보게! 우리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일품당 제자들은 어디에 있고, 고해는 어디에 있는가?”
“맞아. 몽태는 미생인을 데리고 어디로 갔지? 고해는 죽었나?”
정예도 물어보았다.
“고해……!”
한 사람이 기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응? 고해가 왜?”
“고해가 모든 일품당 제자를 죽였어요. 몽태도요!”
“……!”
“……!”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고해가 어떻게 몽태와 모든 일품당 제자를 죽여?”
정예가 눈을 부릅뜨고 물어보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제가 거짓말을 해서 뭐 하겠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고해가 강한 것을 알고 고해의 대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해는 진짜로 강했습니다. 저는 그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 수련자가 소리쳤다.
“무슨 대전?”
유년대사가 이상해서 물어보았다.
“보름 전에요. 아 보아하니 잘 모르나 보군요. 그대들은 늦게 왔습니다. 그때 고해는 혼자서 몇만 명이나 되는 사람과 싸웠습니다. 모든 사람들, 혁천각 제자들을 포함해서 모두 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습니다. 백반도수를 강탈해 가려는 자는 더욱 다가가지 못했지요!”
그 사람이 흥분하여 말했다.
“뭐? 잠깐만! 고해 혼자서 몇만 명을 상대해? 혁천각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고?”
정예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쓰며 물어보았다.
수련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지요! 몽태는 정말 사람 새끼도 아닙니다. 마지막에 결국 고해 손에 죽었지요!”
“뭐?”
“고해야말로 진짜 사나이입니다. 작은 뱀 하나를 치료하기 위해 금반도를 먹였지요. 그것도 한 번에 여섯 개나! 하하하, 정말 굉장하지 않습니까? 고해는 수타 타주인데 혹시 일품당에서 제자들을 받아들이나요? 저를 받아주세요. 저도 수타에 가입하여 고 타주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
“……!”
“무슨……?”
용완청과 정예, 유년대사, 이호연 등은 수련자들이 보름 전의 상황을 장황하게 말하는 걸 들었다.
용완청과 유년대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