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바다의 난
배 주위에서 엄청난 파도가 일었다.
날아오르는 와중에 고해는 굉장히 큰 괴물을 발견했다.
흑색의 뿔 없는 거대한 용머리가 해수면 위로 떠올랐다.
크아아앙!
사악한 느낌의 용두가 눈을 부릅뜨고 포효했다.
용두의 왼쪽 눈에 커다란 상처가 있었다. 용두 괴물이 흉악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며 울부짖었다.
카아아악!
주위의 바닷물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고해는 괴물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괴물의 길이는 최소 삼백 장은 될 듯했다.
그나마도 괴물의 몸은 대부분 바닷속에 잠겨 있었다.
“교룡이다! 천도해의 해수! 교룡이 어떻게 여기 있을 수 있지?”
“큰일 났다, 큰일 났어! 교룡이야!”
주위에서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해 일행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괴물을 바라보았다.
교룡?
저것은 얼마 전에 본 그 운수 아닌가?
하지만 체형이 비슷하긴 해도 기세는 전혀 달랐다.
운수는 거대한 체형의 야수고, 눈앞의 것은 교룡이었다.
쿠앙!
교룡이 포효하며 하늘로 올라갔다.
배는 교룡 앞에서 더 이상 거대하게 보이지 않았다.
쿵-!
배가 해면 위로 떨어졌다.
배를 덮고 있던 파란색 광막이 강하게 흔들렸다.
이러다 깨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대부분의 수련자들의 얼굴이 해쓱하게 굳어졌다.
“젠장! 끝났어! 우린 여기서 죽을 거야!”
사람들이 절망감에 휩싸여서 소리쳤다.
크아아앙!
바다 밑에서 다시 한번 큰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해수면으로 떨어진 배가 다시 바닷물에 밀려 허공으로 올라갔다.
쿠과광!
먹장구름 속에서 천둥 번개가 쳤다.
배가 다시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 고해는 드디어 해수의 모양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한 마리의 거대한 거북이였다.
최소 이백 장 크기의 거북이.
하지만 이 거북이가 다른 거북과 현저하게 다른 것은, 거북이의 머리 위에 용뿔 한 쌍이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크아앙!
거대한 거북이가 크게 소리치자, 폭풍도 더욱 거세졌다.
바다 위에 엄청나게 큰 소용돌이가 형성되며 점점 회전하기 시작했다.
“패하(覇河)다! 이것은 패하야! 어떻게 이럴 수가? 패하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나?”
수련자들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예전 같았으면 한 마리만 만나도 끝나는데 지금 두 마리 흉맹한 해수를 모두 만나다니.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여 울 것만 같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고해를 쫓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쿵!
큰 배가 마침 두 해수의 중앙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두 해수는 큰 배를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교룡과 패하는 눈을 부릅뜨고 흉악한 얼굴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큰일 났습니다! 어떡하지요?”
진천산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빨리 구명조끼를 입어! 빨리!”
고해가 크게 소리쳤다.
말을 하면서 그가 구석에 있는 구명조끼 세 개를 꺼냈다.
자신이 살던 세계에 비하면 형편없는 구명조끼지만 일단 입고 봤다.
이런 조끼가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진천산, 고선무도 빠르게 조끼를 입었다. 그리고 밧줄로 서로를 묶었다.
교룡이 크게 포효하며 용꼬리를 거세게 흔들었다.
쿵!
용이 꼬리를 흔들자 큰 배가 거대한 힘에 이끌려 튕겨 나갔다.
“악!”
“살려주세요!”
“살려줘!”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심지어 우는 사람도 있었다.
눈 깜짝할 새에 파도 하나가 배를 집어삼켰다.
쿠왁!
패하가 포효했다.
쿵!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하고 번개가 내리쳤다.
거대한 파도가 일대의 바다를 뒤집었다.
수련자들은 뭘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바다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다당!
방 안에 있던 고해는 사방팔방에 부딪혔다.
선천경과 금단경의 고수가 바다의 두 해수 앞에서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었다.
쿵! 쿵! 쿵!
고해는 외공을 수련했는데도 얼마 견디지 못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 * *
몇 날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교룡과 패하가 모두 사라지고 먹구름도 흩어졌다.
바다 위에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언제 그런 격렬한 파도를 겪었냐는 듯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배는 두 해수의 싸움 와중에 철저히 부서진 상태였다.
배에 탔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배가 침몰한 그곳으로 한 척의 배가 다가왔다. 배 위에서 나부끼는 깃발에는 ‘풍(風)’ 자가 적혀 있었다.
뱃머리에는 몇몇 흑의를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교룡과 패하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데, 어떻게 여기서 싸웠지?”
“그 때문에 며칠을 기다렸잖아?”
“이번에 파도가 커서 몇 사람이 도망갔는데, 어떻게 방주에게 말하지?”
많은 사람들이 침묵했다.
“봐. 저기에 사람이 있어!”
그중 한 사람의 눈이 반짝거렸다.
멀리 수면 위에 고해 일행이 떠 있었다.
“건져 와!”
한 사람이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예!”
선원들이 고해 일행 세 사람을 끌어 올렸다.
변장했던 모습이 다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며칠 동안 물에 있으면서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구명조끼를 입고 줄에 묶여 있었다.
한 흑의인이 세 사람의 체내에 기를 주입시켰다.
“장로. 아직 죽지는 않았습니다. 둘은 선천경, 하나는 금단경 같습니다.”
“둘은 선천경이고, 하나는 금단경? 좋아! 아주 좋아!”
장로라는 자가 환한 표정으로 웃었다.
“장로 뭐가 좋다는 겁니까?”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며칠 전에 다섯 명이 도망가지 않았느냐? 이 세 사람으로 보충해. 최소한 손실이 반은 줄었으니 방주도 책망하지 않을 것이야!”
그제야 장로라는 자의 말을 이해한 듯 다른 자들도 표정이 환해졌다.
“맞습니다! 역시 장로님은 영명하십니다!”
장로가 그들에게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의 일은 아무도 말하면 안 된다. 말하는 자는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넵!”
“속력을 올려라! 구오도로 가자!”
기분이 좋아진 장로가 명령을 내렸다.
“예!”
* * *
고해는 감각이 돌아오자 기침부터 했다.
“콜록콜록!”
바닷물을 토해낸 그는 얼떨떨하게 깨어났다.
고해는 손을 들어서 얼굴에 토해낸 바닷물을 닦아냈다.
츠르르륵.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났다.
고해는 놀라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양손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아니, 양손뿐만이 아니라 양발도 묶여 있는 상태였다.
얼굴에는 가면 같은 것이 씌워진 듯했다. 코 윗부분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고해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
* * *
금반도에 관한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천도해 여기저기에서 금반도에 관한 소문이 들렸다.
금반도 열 알이 있을 때와 한 알이 있을 때의 사람들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백년을 기다려야 또 열리는 금반도다. 이런 금반도가 한 알만 남았으니 더 귀할 수밖에 없었다.
선천경 수련자가 이 금반도를 가져갔다고 한다.
신천경 주제에!
선천잔국계에 들어가지 않았던 많은 금단경 수련자들이 구오도로 향했다.
구오도, 호뢰관 내부.
고진과 고한은 고부의 한 방 안에서 부하들이 가져온 소식을 들었다.
두 사람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심했다.
“형님, 점점 더 많은 수련자들이 우리 고부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감시하고 있고요, 상황이 점점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청하종과의 관계로 당주님께 부탁을 드렸어. 당주님도 우리 고부를 보호해 준다고 했으니, 밖에 있는 사람들도 감시만 하고 함부로 어떻게 하지는 못할 거다.”
“의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지만……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라. 의부님은 생각이 깊으신 분이시다. 밖에 저렇게 많은 수련자들이 득실거리고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돌아온다는 것이냐? 우리는 우리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걱정하지 말고, 저들은 없는 사람 취급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의부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그럽니다.”
“의부님 걱정은 하지 말라니까. 의부님은 용과 같으셔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고한은 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위로했다.
* * *
청하종에서는 용완청과 유년대사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
“대사가 보기엔 고해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당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천잔국계에서 고해의 실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 않습니까? 혼자서 몇만 명과 맞붙어도 끄떡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년대사가 웃으면서 바둑을 두었다.
“선천잔국계에선 모든 사람들이 선천경이지만, 여긴 선천잔국계와 다르잖아.”
용완청이 미간을 찌푸렸다.
“맞습니다. 하지만 고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의 두 의붓아들만 잘 지키십시오. 고해가 미생인을 찾아줬는데 당주님도 의붓아들은 지켜줘야지요.”
“정 타주가 몽태의 복수를 하겠다고 하는데…….”
“난처한가요?”
유년대사가 웃으면서 용완청을 바라보았다.
용완청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일품당에도 일품당의 규칙이 있다. 이번에 고해가 미생인을 찾았으니 큰 공을 세운 셈인데, 몽태까지 죽이고 말았다.
용완청으로서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난감했다.
“당주께서 질질 끌면 됩니다.”
“응?”
“정 타주가 고해를 죽이겠다고 하니, 그럼 고해와 정 타주를 한번 맞붙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유년대사의 말에 용완청의 안색이 변하더니, 이내 머리를 끄덕거렸다.
“아, 그리고 신기영주 이호연을 좀 멀리하세요.”
“왜? 그러고 보니 오는 길 내내 이호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 같던데?”
용완청이 미간을 찌푸렸다.
유년대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주,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한 말씀을 기억해요?”
용완청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하기 싫은 눈치였으나,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어머니가 대사의 말만 믿으라고…….”
용완청이 답답해하는 모습을 본 유년대사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호연은 야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예전에 당주의 어머님을 쫓아다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고요.”
“뭐? 우리 어머니를?”
용완청이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습니다. 이호연은 젊었을 때부터 엄청난 성과들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신기영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렇게 뛰어난 남자를 여자들이 가만 놔둘 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호연은 자만심과 야심이 강한 사람이었지요, 여자들에게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주의 어머니도 이호연과 함께 사는 여자는 절대 행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지요.”
“다른 사람들의 편견 아닐까?”
유년대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주님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전까지만이라도 이호연과 가까이 지내지 마세요!”
용완청은 유년대사를 보면서 한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천천히 머리를 끄덕거렸다.
“걱정하지 마.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전까지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그럼 다행입니다.”
* * *
청하종, 한 대전 내부.
황금갑옷을 입은 이호연은 커다란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지도에는 구오도의 지형과 주변 섬들의 지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의 앞에 서 있던 신기영 제자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
“영주님, 점점 더 많은 수련자들이 구오도로 오고 있습니다.”
이호연은 지도를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리저리 미쳐 날뛰는 자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예. 그리고 조금 전에 들어온 소식입니다. 지난 며칠간 북방 해역에서 교룡과 패하가 나타나 바다에서 수일 동안 싸웠다고 합니다.”
“응?”
이호연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지도에서 눈을 뗐다.
“그 두 짐승 놈들. 뭐라도 눈치챈 거 아니야?”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그 두 짐승을 지켜보라고 해. 그들이 나타나면 반드시 보고하고.”
이호연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