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대봉방(大丰帮)
청하종, 또 다른 대전에서는 정예가 지팡이를 짚고 송갑종주를 응시하고 있었다.
송갑종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 타주, 고해의 소식을 전부 퍼뜨렸습니다, 그런데 천원도에서 출발한 배도 도착했는데 고해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는군요.”
“천천히 찾아도 되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고해를 찾고 있어.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을 게야.”
정 타주의 눈에 한기가 가득했다.
“이미 사람을 보내서 고해의 가족을 감시하고 있소이다. 붙잡아 올까요?”
“아니네. 그들은 미끼에 불과해. 고해는 나타나게 되어 있어. 도망치지 못할 것이네.”
송갑종주는 정예의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정예가 다시 물었다.
“그리고, 그들을 잡아서 심문하라고 한 건 어떻게 됐나?”
“여전히 별다른 소식은 없소이다.”
송갑종주가 고개를 저었다.
정예는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차가운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유년대사는 가끔 자리를 비울 때가 있네. 그때 이곳을 정리해.”
송갑종주의 눈도 번들거렸다.
“부혈이 오면 시작할까 합니다. 청하종주는 멍청한 작자여서 자신이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할 거요.”
“용완청을 놓치면 안 되네.”
“저도 잘 압니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사악한 표정을 지었다.
* * *
많은 수련자들이 구오도로 몰려들었다.
구오도에 들어오는 자들은 또 다른 수련자들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고해가 천원도에서 도망친 이력이 있어 수련자들이 자세히 검사를 했으나 여전히 고해의 행방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고해는 이미 수십 일 전 구오도에 발을 들였다.
다만 그가 도착한 것은 모든 것이 비밀로 감춰졌다.
고해는 머리에 청동 가면을 쓰고, 손과 발은 쇠로 묶여 있었으며, 옷은 찢어져서 너덜너덜했다.
거기다 채찍을 맞아가며 걸어야 했다.
고해 옆에는 그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백 명도 더 되었다.
그들 모두 칼과 족쇄에 묶여 있었고, 코까지 내려온 청동 가면을 쓴 채 눈만 드러냈다.
스르르르륵.
칼과 족쇄가 땅에 끌리는 소리는 더없이 으스스했다.
“빨리 걸어라! 채찍에 맞고 싶으냐? 빨리 걸으란 말이다!”
흑의를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청동 가면을 쓴 사람을 때렸다.
“으악!”
채찍을 맞은 사람들은 흉악한 얼굴로 비명을 내질렀다.
“소리 지르지 마! 더 맞고 싶어? 걸어! 얼른!”
흑의인들은 화를 내며 채찍질을 해댔다.
고해는 그 어떤 발악도 없이 앞사람을 따라 걸었다.
“대인, 저의 신분이 노출되면 아마…….”
뒤에서 진천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천산과 고선무도 칼과 족쇄로 묶인 채 머리에는 청동 가면을 쓰고 있었다.
“신분이 노출되면 죽일지도 모릅니다.”
옆에 있던 고선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겁에 질린 진천산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조급해하지 말고 기회를 봐서 도망치자.”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진천산은 절망한 표정이었다.
“도망가지 못할 겁니다. 타주님, 도망치려 하면 머리에 있는 청동 가면이 폭발합니다. 억지로 벗으려고 해도 폭발하고요. 우리가 수련한 공력도 전부 대봉방의 독특한 수법에 묶여 있어서 평범한 일반인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입니다.”
“대봉방? 진천산,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고해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진천산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전에 한 번 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는 구오도입니다. 대봉방은 구오도 오대 종문 중 하나고요.”
“대봉방이 구오도 오대 종문 중 하나라고요?”
고선무가 의아한 듯 물었다.
진천산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대봉방은 구오도에서 가장 부유한 종문입니다. 영석도 끊기는 일이 없어서 영석을 채굴할 일도 없지요. 여기에는 고수들이 득실거립니다.”
“뭐?”
“대봉방은, 정확히 말하면 큰 도박장입니다. 수련자들의 도박장이지요. 천도해 여기저기에 있는 수련자들을 초대해서 도박에 참여시키는데, 우리는 그 도박용 도구로 쓰일 겁니다.”
진천산의 말에 고해의 눈이 커졌다.
“도박용 도구?”
“예, 도박용 도구요. 원형 격투장은 대봉방 도박의 일종인데, 청동 가면을 쓴 사람들은 천도해에서 잡아온 흉악무도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형 격투장? 무슨 말이야?”
“한 광장에서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짐승이 싸우는 거지요. 약하게는 선천경, 강하게는 금단경을 넘은 사람들이 서로 물고 찢으면서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겁니다. 사람들이 돈을 걸지요, 저도 예전에 돈을 걸어봤는데, 제가 직접 싸워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진천산이 허탈해하며 말했다.
잠시 후, 청동 가면을 쓴 사람들은 거대한 산골짜기 입구에 도착했다.
산골짜기 주변은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악인곡? 여기가 악인곡이라고?”
진천산의 안색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 * *
청동 가면을 쓴 사람들은 흑의를 입은 사람들의 회초리를 맞으면서 악인곡으로 들어갔다.
진천산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악인곡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천도해의 악마들을 가두는 곳입니다. 여기서 갈기갈기 찢기는 혈투를 벌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진천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해는 침묵을 지켰고, 옆에 있던 고선무도 조용했다.
“대인, 이제 어떡합니까?”
진천산이 걱정하며 말했다.
“조용히 있어. 지금은 그냥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예…….”
진천산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 옆에 고해가 없었으면 진천산은 절망했을 것이다.
그는 청동 가면을 쓴 사람들의 최후를 잘 알고 있었다.
싸우다가 죽거나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고해는 산골짜기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가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산골짜기는 어두컴컴하고 거대했다.
주변에는 작은 산과 언덕들이 있었는데, 마치 삼삼오오 모여 청동 가면을 쓴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
청동 가면을 쓴 자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으나, 그들의 눈빛에서 악을 느낄 수 있었다.
고해가 속한 무리가 산골짜기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흉악한 눈빛이 쏟아졌다.
착! 착!
흑의인이 회초리를 휘두르며 말했다.
“다들 집합! 얼른 움직여라!”
와르르르르.
산골짜기에 있는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한곳에 모였다.
흑의인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순식간에 사천 명이 넘은 악마들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그런데 열댓 명이 느릿느릿 걸어왔다.
“흥! 천천히 걸어? 좋아! 너희들이 원형 격투장으로 가거라!”
“그게 아니라 제가 배가 좀 아픕니다.”
“저는 지금 막 원형 격투장에서 나왔습니다. 심한 부상을 입어서 좀 늦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상처가 깊어서…….”
악인들은 허리를 숙이고 싹싹 빌었다.
“흥! 수갑을 채워라!”
흑의인 중 맨 앞에 있던 자가 눈을 부라렸다.
그는 악인들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흑의인들이 달려들어서 그자들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악인들은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새로 들어온 자들의 수갑을 풀어라!”
맨 앞에 있던 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흑의인들이 새로 들어온 자들의 수갑을 풀었다.
고해 일행도 수갑이 풀렸다.
순간 몸이 가벼워졌다.
흑의인이 고해 등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대봉방에 들어온 이상 개처럼 우리의 말을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릴 것이다!”
흑의인의 말에 새로 들어온 자들이 분노했다.
“도대체 누가 개라는 것이야?”
새로 들어온 자 중 하나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전부터 있던 악인들은 냉랭한 표정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착!
채찍 하나가 그 사람을 때렸다.
채찍에서 대량의 진기가 나오면서 살이 찢어졌다.
시뻘건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새로 들어온 자들은 그제야 손을 모으며 싹싹 빌었다.
맨 앞에 선 흑의인이 냉소를 지었다.
“흥! 내가 너희들을 개라고 부르는 것도 나름대로 너희들을 대우해서 하는 말이다!”
아무도 더 이상 대들지 않았다.
“모든 개들에게 번호를 줄 것이다. 번호가 불리면 나오면 된다.”
맨 앞의 흑의인이 말했다.
“그만 가자!”
흑의인들과 늦게 모였던 열댓 명의 악인들이 천천히 계곡을 걸어 나갔다.
새로 들어온 자들은 사천 명의 악인을 보면서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질서정연하게 서 있던 사천 명의 악인들은 흉악하게 쳐다보기만 하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새로 들어온 백 명은 서로 마주 보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자리를 찾아 휴식을 취했다.
고해와 고선무, 진천산은 구석진 곳에 앉았다.
“이 사람들이 왜 건드리지 않는 걸까요?”
진천산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었다.
고해가 그 말에 반문했다.
“왜 건드려야 하느냐?”
“예?”
진천산은 의아해했지만, 고선무는 고해의 말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익을 얻을 것도 없고, 모두 능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여기서 싸워봐야 좋을 것도 없지요.”
“아!”
진천산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세 사람은 구석진 곳에 앉아서 주변 사람들을 응시했다.
그 누구도 선의의 눈빛을 보내지 않았고, 악만 남아 있었다.
“역시 악인곡이군.”
고해가 혼잣말로 속삭였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선무, 토타주 영패 아직 있지?”
고선무가 나직이 대답했다.
“네, 대인. 다행히 신발 밑창은 검사하지 않아서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고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일단 잘 보관해. 잃어버리지 말고.”
“예.”
“대인, 제가 듣기로는, 악인곡에 들어오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진천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봉인을 잘 봐라.”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기운을 단전에 집중했다.
뿌연 무언가가 단전으로 기운이 오가는 걸 가로막는 것 같았다.
고해는 결국 단전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고, 단전 내의 진기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잠시 후, 눈을 뜬 고해의 안색은 무척 어두웠다.
진천산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타주님, 저는 금단경인데도 단전을 열 수 없습니다.”
고선무의 표정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단전을 여는 것과 청동 가면, 이 두 가지가 문제군요.”
고선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때 진천산이 한쪽을 보며 말했다.
“저기 보십시오. 누군가 도망치려고 합니다.”
새로 온 악인 하나가 저 멀리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지니고 있던 능력은 막혔으나 제법 빠르게 달렸다.
그자는 재빠르게 산봉우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계곡의 악인들은 그자가 도망치는 것을 보고도 제지하지 않았다.
제지하기는커녕 묘한 표정을 지으며 멀뚱멀뚱 보기만 했다.
그사이 도망치던 자가 산봉우리 중간 정도까지 올라갔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파란 물결이 나타나더니 산골짜기를 뒤덮었다.
쾅!
그 악인이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청동 가면이 폭발하면서 머리가 터져버렸다.
쿵!
머리 없는 시체가 산 아래로 떨어졌다.
우웩!
새로 온 사람들 중에는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구토를 하는 자도 있었다.
아연실색한 진천산의 눈동자가 떨렸다.
“청동 가면을 한 번 쓰면 벗을 방법이 없습니다. 억지로 벗으려고 해도 폭발합니다. 우리 이제 도망갈 수 없는 겁니까?!”
“조용히 해!”
고해가 다그쳤다.
진천산은 보기보다 흥분도 잘하고 겁도 너무 많았다.
나이만 많지 꼭 애처럼 행동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마음이 순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고해도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대인?”
진천산이 울 것 같은 얼굴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침착해. 방법이 있을 거야. 죽으면 기회가 없지만, 살아 있으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온다.”
고해가 진천산과 고선무의 눈을 똑바로 번갈아 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예.”
진천산과 고선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