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61화 (61/243)

61화 악인곡1

어두운 밤, 고해는 영패 속 작은 공간에서 음식물을 꺼내 고선무, 진천산과 함께 먹었다.

지닌 능력이 막혀서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신체가 강해서 한동안은 견딜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고해는 허약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

‘탈출하려면 강인한 체력이 있어야 해!’

둘째 날 새벽.

쾅!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쥐가 산골짜기에 떨어졌다.

찍찍찍찍찍.

순간, 사천 명 악인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달려갔다.

악인들이 도망치는 쥐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쥐를 잡은 자들은 급히 껍질을 벗긴 후 쥐를 입 안에 넣고 씹어 먹었다.

그 광경을 본 진천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악인들에게 음식으로 쥐를 주는 건가?”

고해가 소리쳤다.

“얼른 잡아!”

“예? 대인, 쥐를 먹으라고요?”

“먹는 것과 빼앗는 건 엄연히 다르다.”

쾅!

고선무는 고해의 명령을 받고 바로 쥐를 잡아 나섰다.

고해도 쥐를 잡으려고 일어섰다.

진천산도 마지못해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쥐를 먹기 시작했다.

살아 있어야만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에 체력을 유지하고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고선무는 한 움큼의 쥐를 잡아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퍽!

얼굴에 심한 칼자국이 있는 남자가 고선무를 가격했다.

갑작스런 충격에 고선무는 잡았던 쥐들을 모두 떨어뜨렸다.

칼자국 남자는 흉악한 얼굴로 떨어진 쥐를 덮쳤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고해가 주먹으로 그 남자를 내리쳤다.

“엇?”

칼자국 남자는 흉악하게 인상을 쓰며 고해와 맞붙었다.

퍽! 쾅! 퍼벅!

고해의 발밑에 있던 돌멩이가 부서졌다.

심하게 충돌하고도 고해는 몸을 안정시켰지만, 칼자국 남자는 고해의 주먹 한 방에 붕 떠서 뒤로 나가떨어졌다.

고해는 오랜 세월 외공을 익힌 사람이었다.

능력이 아닌 육체의 충돌에는 굉장히 강한 면모를 보였다.

“이 미친놈이! 진짜 죽고 싶어?”

엉거주춤 일어선 칼자국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고해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물건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될 수 없다. 이름이 뭐냐?”

다른 악인들은 고해의 강력한 주먹질을 보고 놀란 듯 달려들지 않고 구경만 했다.

칼자국 남자가 고해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새끼……! 나 도파다! 너를 기억해 두마!”

고해는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고해는 고선무와 함께 열댓 마리의 쥐를 다시 잡은 다음 자리로 돌아왔다.

고해는 조금 전의 그 칼자국 남자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쥐를 잡은 사람들은 하루에 한 번 있는 식사 의식을 조용히 치렀다.

지금 이 순간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 * *

점점 더 많은 강자들이 구오도에 모여들어 고해의 행방을 쫓았다.

그들은 구오도뿐만 아니라 인근 해역까지 낱낱이 훑었다.

개중에는 크고 작은 세력들을 동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하늘로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한 달이 지났음에도 고해의 뒤통수를 봤다는 사람조차 나오지 않았다.

많은 수련자들이 구오도에 몰려들자, 대봉방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대봉방은 주변 해역에서 유일한 도박장이었다.

수련자들은 고해를 찾지 못한 스트레스를 도박장에서 풀었다.

그들은 대봉방에서 도박을 하며 수많은 영석을 소모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수련자들은 자신들의 옆에 고해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봉방 악인곡.

고해와 고선무는 구석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달이 지났음에도 막힌 능력을 풀 방법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대인,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걱정할 것 같군요. 대인의 가족들은 피해를 보지 않았는지…….”

“우리가 나타나지 않으면 내 아들도 안전할 거다.”

고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인데도 고선무는 고해의 말을 이해했다.

수련자들은 고해를, 정확히는 금반도를 노리는 거지 고해의 아들을 노리는 게 아니었다.

금반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감시만 할 것이 분명했다.

혹시라도 납치를 하려는 자가 있다면, 다른 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탐욕에 젖은 수많은 수련자들이.

“소인은 혼자인 몸이라 걱정할 사람이 없습니다.”

“이러고 보니 가끔은 가족들이 위협을 받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야.”

고해의 그 말은 고선무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예?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만약 원수가 너를 괴롭힌다면, 그 원수를 너의 뜻에 맞게 이용해라.”

“예?”

고선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만약 나가게 된다면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어 봐라. 원수가 있으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지.”

고선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번쩍 뜨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위기가 닥쳤다고 떠난다면 진정한 가족이라 할 수 없다.

위기 속에서도 자신을 걱정하며 기다리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이 아니겠는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깊은 깨달음을 얻는 고해였다.

고선무는 그런 고해에게 진심으로 탄복했다.

“대인의 가르침 감사합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면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고해는 고선무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의 말로 고선무의 마음을 완전히 얻었다는 걸 안 것이다.

그때 고선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대인,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러다 원형 격투장에 끌려가서 죽도록 싸워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안 좋다. 혹시 악인곡에 있는 동안 이상한 것을 발견한 것이 있느냐?”

“전부 흉악무도한 사람들뿐입니다. 물론 그들이 전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주위 상황 때문인지 전부 흉악스럽게만 보입니다.”

“어떤 자들인지 알겠는가?”

“진천산 선배의 말로는, 악인들 대부분이 천도해 주변에 있던 악질들이라고 합니다. 죄를 지어서 천도해 종문들에게 붙잡혔다가 이곳으로 팔려 왔다 합니다!”

“내가 봐선 종문과 대적했던 자들 같다. 평범한 악인이 아니란 말이지.”

“대인, 설마……?”

“조금 더 기다려보자. 사람들이 포악하고 고집이 센 사람들이라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만. 어쨌든 진천산이 오면 이야기 하자.”

고선무가 그 말을 듣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진천산 선배가 호명되어 갔는데,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라. 진천산은 금단경에 복숭아까지 먹었다. 그 복숭아의 효과를 너도 봤지 않느냐?”

“예, 소인도 느꼈습니다. 그 복숭아는 생기를 북돋아 주더군요. 진천산 선배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고해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고선무가 슬쩍 한쪽을 보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대인, 저 남자가 또 이쪽을 보고 있습니다.”

고해가 고개를 돌려 고선무가 말한 쪽을 바라봤다.

“도파라고 했던가?”

“예. 전에 우리가 잡은 쥐를 뺏으려고 하던 그놈입니다. 한 달 동안 우리와 맞섰는데 대인의 상대가 되지 못하자 한이 쌓였나 봅니다.”

고해는 저 멀리에 있는 도파를 보며 찬웃음을 지었다.

얼굴에 칼자국이 많아서 ‘도파’라고 불리는 듯했는데, 그만큼 쌓인 것도 많은 자 같았다.

“괜찮아. 일을 벌이지는 못할 거다,”

그때였다.

산골짜기 입구에서 쇠사슬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흑의인들이 산골짜기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진천산 혼자만 따라오고 있었다.

진천산은 쇠사슬에 묶인 채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양손은 찢겨서 하얀 뼈마저 보였다.

“풀어라!”

선두의 흑의인이 말했다.

진천산의 몸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렸다.

“집합!”

선두의 흑의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늦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고해와 고선무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진천산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고해와 고선무가 있는 쪽으로 왔다.

“대인,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진천산의 눈에서 절망과 괴로움이 묻어났다.

고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명이 갔는데 혼자만 살아남았으니 정말 다행이다.”

“저들 모두 선천경이라 하마터면 돌아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살아서 돌아왔으면 됐다 이제 몸의 상처를 돌보는 일에 전념해라.”

진천산이 힘없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때, 맨 앞의 흑의인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든 ‘갑자(甲子)’호들은 나와 함께 움직인다!”

“뭐?”

고선무와 진천산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해의 청동 가면 위에 ‘갑자’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에는 고해가 선택되었다는 말이었다.

고해는 두 눈을 가늘게 좁혔다.

가면에 ‘갑자’라고 쓰인 사람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그 누구도 반항을 하지 않았다.

“대인.”

고선무가 다급하게 불렀다.

고해는 고선무 옆을 지나가면서 작은 병 하나를 건넸다. 순식간에 지나가다 보니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상처를 잘 치료하면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려라.”

고해가 빠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앞으로 나온 ‘갑자’호는 모두 열여섯 명이었다.

흑의인들이 나서서 그들에게 족쇄를 채웠다.

“하하! 이놈아! 나를 기억하지?”

고해의 옆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도파였다.

고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진 놈은 꺼져라.”

도파가 눈을 치켜떴다.

“흥! 어떻게 죽는지 두고 보마!”

휘익, 찰싹!

채찍이 날아와서 칼자국의 등을 때렸다.

“구시렁거리지 말고 따라와!”

흑의인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도파는 고개를 숙였다. 반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열여섯 명이 한 줄로 서서 산골짜기를 걸어 나갔다.

흑의인이 떠나간 후, 고선무는 진천산을 부축하여 구석진 곳으로 갔다.

진천산은 고해가 걱정되었다.

“큰일이군. 그곳에 가면 선천경과 금단경이 섞여 있어. 대인께서 남보다 강하다지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고선무는 그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작은 병을 진천산에게 건넸다.

“선배님, 이건 대인께서 주신 겁니다. 복용하고 상처를 치료한 다음 대인을 기다리지요.”

진천산은 두말없이 작은 병에 담긴 단약을 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천산의 안색이 좋아졌다.

그제야 고선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금단경과 선천경이 섞여서 싸운다고 하셨습니까? 능력이 전부 막힌 것 아닌가요?”

“그곳에 가면 능력이 풀려.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뒤섞여서 싸우네. 다행히 나는 다른 사람들이 전부 선천경이어서 겨우 살아남은 거네.”

고선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금단경인데도 선천경한테 당했단 말입니까?”

“그래. 여기에는 전부 악인들만 있네.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해야 하네. 저들은 기회만 되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갈기갈기 찢어 먹으려 할 거야.”

고선무는 눈을 부릅뜨고 악인들을 바라보았다.

순한 양처럼 생긴 사람들이 밖에 나가면 악마로 변하는 모습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대인께선 별문제가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선무의 말에 진천산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저기 들어가면 전부 쓸모없어지네. 어차피 들어온 이상 아무 일도 없기만 바라는 게 우선인 것 같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