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62화 (62/243)

62화 악인곡2

* * *

대봉방에서도 악인들을 지키는 걸 극도로 조심했다. 능력을 잃긴 했어도 항상 손과 발을 묶고 다녔다.

고해는 천천히 앞사람을 따라갔다.

그들은 산 밖으로 향했다.

산은 움푹 파인 형태였다.

문 하나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갔다.

내부는 서로 다른 용도의 방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열여섯 명은 각자 다른 방에서 대기했다.

감옥 안에는 작은 창문 하나가 있는데, 그 창문을 통해서 밖에 있는 거대한 골짜기 광장을 볼 수 있었다.

광장 위쪽에는 많은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말 크군.”

고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밖을 바라보았다.

감옥 안에는 작은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 위에는 소고기가 가득했다.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다. 내일은 싸워야 하니 많이 먹어라!”

쇠사슬을 풀어주던 흑의인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흑의인이 감옥 문을 닫고 나갔다.

악인 열여섯 명은 똑같은 대우를 받았으며, 각 방에는 똑같은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악인들이 빠르게 음식을 삼켰다.

한동안 쥐를 먹은 사람들은 앞에 있는 음식을 보고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내일은 생사가 결정되는 날이다.

체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기회가 있다.

일부 악인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또 한편으로는 이를 갈았다.

둘째 날.

“당신은 첫 번째야!”

흑의인이 고해를 보며 말했다.

열여섯 명 악마 중에서 고해가 첫 번째였다.

고해는 두말없이 수갑을 차고 감방에서 끌려 나왔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칼을 들고 있었다.

흑의인들은 악마를 인간으로 보지 않지만, 이들의 악성을 잘 알고 있기에 경비를 강화했다.

고해는 말없이 흑의인을 따라 거대한 출구로 나왔다.

쾅!

“엇? 나왔다!”

“첫 번째 악마다!”

거대한 무대 위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수련자들이 경기를 빨리 진행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출구에는 흑의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고해가 끌려 나오자 흑의인들이 유심히 지켜보았다.

“풀어라!”

맨 앞에 서 있던 자가 말했다.

“네!”

고해가 차고 있던 수갑도 빠르게 풀렸다.

고해는 손을 풀고 흑의인들을 응시했다.

“이놈, 잘 듣거라. 규칙은 너도 알고 있지? 잘 싸워 봐!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흑의인이 냉랭하게 말하고는 손을 휘저었다.

우윙.

순간, 원형 격투장 전체에 푸른빛이 솟아났다.

푸른빛을 보자 고해는 한 달 전에 봤단 광경이 떠올랐다.

푸른빛이 가면에 닿자 곧바로 머리가 터져버렸다.

고해는 호흡을 길게 내쉬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관중 구역과 원형 격투장 사이에 푸른 광막이 나타났다.

푸른 광막은 마치 죄수용 우리처럼 이들을 원형 격투장에 가둬버렸다.

순간, 주변의 벽에 진법 도안이 나타났다.

스윽.

진법 도안에서 빨간색 사슬이 나오면서 고해의 사지를 묶어버렸다.

고해의 표정이 변했으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진법 도안 중 하나가 갑자기 번개와 같은 빛을 발산하더니 이내 고해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퍽!

고해는 단전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이를 악물었다.

단전에서 심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고해는 안색이 변했지만, 빨간색 에너지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던져!”

흑의인이 말했다.

고해는 순식간에 원형 격투장으로 던져졌다.

쿵!

내팽개쳐진 고해는 단전에서 전해져 오던 고통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고해는 단전에 집중했다.

막혔던 단전이 풀리면서 고해의 배꼽 부근에서 기운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우윙!

단전에서 나온 진기가 고해의 몸을 한 바퀴 휘돌았다.

‘뭐야? 막힌 단전이 풀린 건가?’

고해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천천히 일어선 그는 자신의 몸이 정상으로 회복된 걸 알 수 있었다.

‘뭐야? 전기였어? 강력한 전기가 있으면 단전을 막은 제재를 깨버릴 수 있다는 건가?’

고해의 눈이 번쩍였다.

숨을 길게 내쉰 그는 고개를 돌려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

출구 쪽은 푸른 벽으로 막혀 있었고, 흑의인들은 반대편 벽에 있었다.

푸른 벽?

‘정말 세심하게도 막았군.’

고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푸른빛은 청동 가면을 폭발시킨다.

고해는 푸른빛을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그때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새로운 시합이 시작됩니다! 첫 번째로 나오는 사람이 ‘일호’입니다! 여러분, 보이십니까? 무고한 백성들을 죽여버린, 잔혹하기 그지없는 놈입니다! 이놈의 실력을 여러분이 평가해 주세요!”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원형 격투장의 맞은편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쿠우웩!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쿵쿵쿵!

그 안에 있던 일 장 크기의 멧돼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멧돼지는 피 묻은 송곳니를 보이며 괴성을 지르고 고해를 응시했다.

“여러분, 보셨습니까? 선천경 제오단계 멧돼지입니다! 비록 선천경 제오단계에 불과하지만, 멧돼지의 특징이 가죽이 두껍다는 것이지요! 멧돼지가 좀 못생기긴 했으나 그 실력 하나는 인정해야 합니다!”

사회자의 소리가 들렸다.

“일호 악인과 멧돼지의 싸움입니다.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지금부터 선택하시지요! 마지막에 누가 살아남을지,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시작하십시오!”

“또 이 멧돼지야? 하하하, 저번에 멧돼지한테 걸었더니 돈을 벌었지 뭐야! 벌써 악인 네 명을 삼켜버렸어!”

“난 멧돼지! 저 악인을 삼켜버려라!”

“난 일호 악인! 저 돼지를 죽여버려!”

“저 멧돼지가 악인을 잡아먹어! 얼른 걸어보라구!”

사방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대봉방 제자들의 도움으로 돈을 걸기 시작했다.

고해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죽일 악인이라고? 모욕도 유분수지!’

고해는 별다른 반응 없이 도박에 낀 사람들을 응시했다.

만 명이 넘는 관중 가운데서 도박에 낀 사람은 삼천여 명에 불과했다.

많은 자들은 시작부터 돈에 운을 맡기려고 하지 않았다.

“네, 여기까지입니다!”

또다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해는 주변을 살펴봤다.

원형 격투장 구조를 관찰하면서 가능성이 있는 모든 기회를 찾으려고 했다.

쿵!

멧돼지의 눈이 빨개지더니 고해를 향해 달려왔다.

멧돼지가 달려오자 고해는 재빠르게 몸을 피했다.

멧돼지가 달려오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고해도 놀랄 정도였다.

촤악!

멧돼지가 꼬리를 휘저었다.

생각도 못 한 공격이었다.

고해는 피할 틈도 없이 멧돼지의 꼬리에 맞았다.

쿵!

고해가 한쪽으로 나뒹굴며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벌떡 일어난 고해는 멧돼지와 함께 서로를 노려보며 천천히 움직였다.

바로 그때, 고해의 표정이 변했다.

‘송갑종주 송생평?’

저 멀리, 가장 넓고 큰 좌석에서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박하러 온 듯한 그 남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송갑종주인 송생평이었다.

고해는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송생평은 고해를 알아보지 못했다.

“얼른 죽여버려! 얼른!”

“돼지야! 그놈을 죽여라! 죽여버려!”

관중석에서 악을 쓰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송생평을 본 고해는 어두워진 얼굴로 멧돼지의 공격을 피했다.

고해가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하자 멧돼지도 당황한 듯했다.

쿵!

고해가 진각을 밟고 한 걸음 후퇴하자, 멧돼지도 움찔거렸다.

쿵쿵쿵.

쿠에에엑!

멧돼지가 울부짖더니 고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고해는 피하기만 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송생평을 발견한 이상 진용선천공을 쓸 수는 없었다.

그는 일단 평범한 수법으로 응수하면서 주변을 관찰했다.

쿵! 쾅!

고해가 도망치기만 하자 사람들은 당연히 멧돼지가 이길 거라 생각했다.

“하하하하! 얼른 삼켜버려라! 일호 악마를 죽여버려!”

“멧돼지야! 그 뿔로 그놈의 배때기를 받아버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멧돼지를 응원했다.

반 시간 동안 싸웠는데도 고해를 상처 입히지 못하자 멧돼지도 답답한 듯했다.

멧돼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천천히 고해를 향해 다가갔다.

고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뒤에 푸른빛의 띠가 있었다.

더 이상 피할 구멍이 없었다.

순간, 멧돼지가 고해를 공격했다.

“하하하하! 끝났다! 얼른 찢어버려!”

“더 이상 피할 곳도 없구만!”

“선천경으로는 저 거리를 막을 수 없어!”

수련자들은 멧돼지의 승리를 확신한 듯 크게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 고해는 두 손을 내밀어서 멧돼지의 송곳니를 움켜쥐고, 오른쪽 발에 힘을 준 채 버텼다.

“뭐야? 제법인데?”

“그래! 이제 멧돼지를 죽여 버려라!”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고해는 이를 악물고 손에 힘을 주었다.

우으으으엑-!

멧돼지가 울부짖었다.

고해는 송곳니를 잡고 멧돼지를 들어 올렸다.

“뭐, 뭐야?”

주변에서 화들짝 놀라는 경악성이 들려왔다.

“으라차차차!”

고해가 기합성을 내지르며 모든 기운을 손에 집중시켰다.

쾅!!

멧돼지의 머리가 폭발했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멧돼지의 송곳니는 고해의 힘에 의해 부러졌다.

쿵-!

일 장 크기의 멧돼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머리는 깨져서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멧돼지에 돈을 걸었던 사람들은 멍하니 고해를 바라봤다.

고해를 선택한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서 환호했다.

“와아아아! 일호!”

“일호가 이겼다!”

“일호!!!”

그들은 고해가 마치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귀빈석에 있던 송생평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송갑종주님, 죄송합니다. 저 악인의 실력을 미처 몰랐습니다.”

흑의인 하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상관없네. 이 정도의 영석은 잃어도 괜찮아.”

송생평은 담담한 척하며 말했다.

“일호! 잘했다!”

“일호! 일호!!!”

주변에서 수련자들의 환호성이 계속 터져 나왔다.

송생평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일호!”

“일호!!”

“일호!!!”

무수히 많은 영석을 받게 된 수련자들은 미친 듯이 열광했다.

스윽! 스윽!

주위의 벽에서 진법 도안이 나오더니 붉은색 광선이 나타났다.

광선이 고해의 몸을 비추더니, 이내 고해의 몸을 꽉 묶어버렸다.

고해가 능력을 회복했으나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출구 쪽에 있던 파란색 빛이 사라졌다.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진법 도안을 조종하더니 붉은색 광선이 순식간에 고해를 진법 부문(符文)이 새겨진 석대에 묶어버렸다.

펑!

석대에서 회색 광선이 나타나더니 곧바로 고해의 단전을 직격했다.

고통을 느낀 고해는 다시 한번 진기를 상실했다.

단전에 있는 진기가 또 막히자, 고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순간, 붉은색 광선이 사라지고 수갑이 나타나서 고해의 손과 발을 억압했다.

“이놈은 데려가고 이호 악인 올려 보내!”

검은 흑포를 걸친 자가 말했다.

“네!”

고해는 또다시 감방에 갇혀버렸다.

감방에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앞서 싸웠던 멧돼지도 정리되었다.

이호 악인은 등장하자 마치 지인이라도 만난 듯 무대 쪽을 보면서 높이 소리쳤다.

“천우, 나야! 진원이!”

“흥!”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냉랭하게 코웃음 쳤다.

슈웅!

순간, 진법 도안에서 파란색 광선이 나오더니 이호 악인의 가면을 비추었다.

쾅!

이호 악인의 머리가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네, 여러분. 이호 악인은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군요, 오늘은 더 이상 싸울 수 없습니다. 아래 삼호 악인을 만나보시죠!”

또다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원? 그럴 리가! 그 사람이 정말 진원이라고?”

관중석에 있던 수련자가 경악해서 소리쳤다.

그러나 바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고해는 작은 창문을 통해 원형 격투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대봉방. 하아! 정말 비밀스럽게 일을 진행하는구나.”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전부 사람과 짐승의 싸움이었다.

열여섯 명이 돌아가면서 전투를 했고, 그중 일부 악인과 짐승들이 죽으면서 여덟 명의 악인만 남게 되었다.

고해는 그중 한 명을 보면서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로 악인곡에서 싸움을 걸었던 도파였다.

그 도파가 금단경 수련자였다니!

금단경을 회복하자 그의 기세가 엄청나게 강력해져서 순식간에 표범을 잡아버렸다.

도파는 팔번이었다.

관중석에서 팔번을 불러주자 그 기세는 더욱 흉악스럽게 변했다.

관중석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때 고해는 귀빈석에 앉아서 돈을 거는 송생평의 모습을 발견했다.

‘응? 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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