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두선천(斗先天)1
이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고해요? 하하하하! 그걸 저에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안 그래도 여기 대봉방에서 오는 도박꾼들이 수없이 물어봅니다. 만약 고해가 여기에 있다면 아마 뼈까지 갈아 먹히지 않을까요?”
송생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고해 놈이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사라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수련자들이 찾고 있으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군요.”
“하하하! 여기에서 고해를 찾으려고 하다니. 저기서 싸우고 있는 놈이 고해가 아닌가 잘 보시지요. 하하하!”
이위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일호 승!”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호! 잘했다!”
“일호! 최고다!”
도박꾼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이긴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호를 외쳤다.
그리고 송생평은 또 돈을 잃었다.
“흥!”
송생평은 답답한 듯 콧소리를 냈다.
“고해를 여기에서 찾지 마십시오. 여긴 없으니까요.”
이위가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송생평은 원형 격투장에 있는 일호 악인을 보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저도 압니다. 고해가 여기 있을 리 없지요.”
고해의 두 번째 경기도 끝났다.
이번에는 절대 방심하지 않았고 큰 수준 차이로 상대를 죽여버렸다.
상대 역시 선천경 제육단계 정도의 수준이었다.
몸을 바짝 붙이고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양쪽이 함께 망하는 길을 걸으려고 했다.
그러나 고해는 마지막에 모든 힘을 모아서 상대를 때려눕혔다.
한쪽에서는 금단경의 도파가 승리를 챙겼다.
도파는 진원을 응집시켜 날카로운 칼날을 만들더니 망설이지 않고 상대를 찔러버렸다.
상대는 그의 날카로운 진기의 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짧은 휴식 후.
“여러분, 이번에는 마지막 대결입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사회자가 말했다.
“빨리 시작하시오!”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시작해!”
사방에서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러자 사회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마지막 대결, 일호 악인과 팔호 악인입니다. 승자는 누구일까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돈을 걸어주세요!”
“무조건 팔호야! 팔호는 금단경이라고!”
“나도 팔호! 일호를 죽여 버려!”
“팔호가 무조건 이겨!”
“만약 일호가 이기면?”
“시끄러워! 일호는 이길 수 없어!”
“지금까지 일호였으니 이번에도 일호!”
“나는 지금까지 일호였으나 이번에는 팔호야!”
“방주님, 이번에는 별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이위에게 말했다.
“응? 왜?”
이위는 월요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그 부하를 바라보았다.
“일호 악인이 강하긴 하지만, 팔호 악인은 금단경입니다. 열에 아홉은 팔호 악인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팔호 악인이 이기면 얻는 게 너무 적습니다.”
이위가 부하의 말에 웃으면서 말했다.
“적으면 어때? 잃는 것보다는 낫지. 그런 걱정 말고 싸우라고 해!”
“네!”
검은 옷을 입은 자가 할 수 없다는 듯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때 송생평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상품 영석 열 개를 팔호에게 걸겠네!”
상품 영석 열 개는 중품 영석 천 개, 하품 영석 일만 개와 비슷한 가치였다.
그런 송생평을 바라보는 이위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도박장에서는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영석을 한꺼번에 가져가겠다는 심보를 도저히 좋은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송생평이 이번에 일만 개의 하품 영석을 가져가려 한다고?
이 방주는 아니꼬운 눈으로 송생평을 지켜보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더 강력한 힘으로 월요의 엉덩이를 만졌다.
“아!”
월요는 아픈지 이마를 찌푸리며 소리를 냈다.
하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 앞에 있는 포도 한 알을 이위의 입에 넣었다.
고해는 능력을 회복하고 다시 원형 격투장으로 들어갔다.
도파가 한쪽에서 머리를 움직이며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팔호!”
“팔호! 일호를 죽여라!”
“너만 믿는다! 팔호!”
관중석 여기저기서 팔호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금단경이 무조건 선천경을 이길 거라 생각했다.
선천경인 일호가 금단경인 팔호를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팔호를 죽여버려!”
일호 악인을 응원하는 자도 있었으나, 그 소리는 바로 팔호 응원 소리에 묻혔다.
고해는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마침 송생평이 그를 보고는 냉랭하게 말했다.
“악인 따위가 감히 여기를 봐? 저 죽을 것을 모르나?”
“승부가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그리 확신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이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다리 위에 앉아 있는 월요를 바라보았다.
“월요야, 네가 말해 봐라. 일호가 이길까?”
월요는 싸움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위의 말에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이길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하! 잘 아네! 역시 우리 애기가 뭘 좀 안단 말이야.”
고해는 관중석을 응시했다.
귀빈석에는 송생평 외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남자의 무릎 위에 빨간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 여자의 턱에는 흉터가 있었다.
“대봉방 방주 이위?”
고해는 외눈의 남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만난 적은 없고 진천산의 말만 들었지만, 앞에 있는 제자들이 저렇게 공손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대봉방 방주가 분명해 보였다.
“퉷!”
맞은편에 있던 팔호 악인 도파가 갑자기 가래를 내뱉었다.
고해가 고개를 돌렸다.
“이놈아! 날 기억하지?”
팔호 악인은 흉악한 웃음을 지었다.
고해는 차가운 눈초리로 팔호 악인을 응시했다.
“도파(刀疤)?”
“알면 됐다. 악인곡에 있는 동안 너를 얼마나 죽이고 싶었는지 모른다. 흐흐흐, 오늘 드디어 네놈을 만났구나!”
“금단경인가?”
“무서우냐? 이미 늦었다!”
고해는 도파를 비웃었다.
금단경?
고해가 죽여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송청서가 바로 금단경이었으니까.
그리고 운수 전투에서도 수많은 금단경을 죽였고, 심지어 원영경이던 토타주 몽태까지 죽인 고해였다.
후웅!
순간, 도파가 기를 모았다.
거대한 화염이 도파의 몸을 두르고 피어났다. 마치 화염이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도파는 그 상태에서 기세등등하게 고해를 향해 달려들었다.
표정이 차가워진 고해가 손을 뻗어 날카로운 발톱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달려드는 도파를 노려보았다.
도파가 냉랭히 소리쳤다.
“제법이다만, 나에겐 쓸모가 없을 거다!”
윙!
오른손에 진원을 모으더니, 화염을 토해내며 날카롭고 기다란 칼을 뽑아 들었다.
슥!
긴 칼날이 바닥을 스윽 쓸었다.
바닥에 도파가 생기면서 바닥 위에 있던 흙까지 검게 타올랐다.
칼날은 날카로웠고, 화독은 지독했다.
“선천경으로는 절대 금단경을 이길 수 없다! 더군다나 나는 더더욱 이길 수 없지!”
도파가 소리치며 고해를 공격했다.
고해는 몸을 돌려 피하고는, 곧바로 도파를 향해 쇄도했다.
쉬아악!
빠르게 도파에게 다가간 고해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도파의 허리를 잡아버렸다.
도파는 발을 들어 고해의 날카로운 손톱을 차냈다.
칼의 기운이 또다시 바닥에 부딪치고, 고해 역시 도파의 발에 차이면서 튕겨 나갔다.
“흥! 이놈아! 오래전부터 네놈을 지켜봤다! 속도와 힘만 좋을 뿐 별거 없더군. 너의 선천경으로는 나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거다!”
도파가 냉랭히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사이, 고해가 또다시 그를 공격했다.
도파는 고해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그의 눈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좋아! 힘도 좋고 속도도 좋아! 근데 이를 어쩌나? 아직 나보다 한참 부족한걸? 그렇게 평범하고 쓸모없는 능력으로 나와 싸우겠다는 거냐?”
도파가 싸늘하게 웃더니 온 힘을 다해 고해를 차버렸다.
쿵!
힘을 가득 실었던 탓에 고해는 저 멀리 튕겨 나갔다.
“팔호! 잘한다!”
“팔호! 놈을 죽여!”
도파가 유리한 걸 본 관중들은 더욱 열광했다.
송생평의 얼굴에도 희열이 떠올랐다.
반면 이위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주변의 함성 소리가 마치 자신의 돈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들렸다.
도파의 발길질에 차인 고해는 저 멀리 튕겨 나갔고, 옷도 여기저기 찢어졌다.
도파가 냉랭하게 웃으면서 칼을 들고 고해에게 달려들었다.
쉬잉!
고해는 날아드는 칼을 피한 후, 손톱을 모으고 도파를 향해 달려갔다.
“하하하! 어림없다, 이놈!”
도파가 냉랭하게 웃으며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백발백중이던 그의 주먹이 이번에는 목표물을 빗나갔다.
그때, 고해의 손톱이 순식간에 몇 배로 쑥 자랐다.
그 모습을 본 도파가 흠칫했다.
고해의 손톱은 일반적인 손톱이 아니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워서 스치면 위험했다.
“이, 이놈이……!”
사악!
날카로운 손톱이 도파의 목을 향해 그어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도파도 그제야 자신이 방심했다는 걸 깨닫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고해가 일부러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고해는 상대에게 맹목적인 자신감을 얻게 한 다음 자신을 만만하게 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을 노렸다.
쉬익!
고해는 빠른 속도로 도파를 압박했다.
금단경의 도파도 생각지 못한 고해의 공격에 당황했다.
처음 몇 번은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막기가 힘들어졌다.
도파는 고해의 공격을 정신없이 피하며 전력을 다해 고해의 공격을 막았다.
고해의 손톱은 도파의 목을 조르지 못한 대신 도파의 가슴살을 뜯어냈다.
서걱!
두 사람은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도파는 옷이 찢어지고 가슴이 손톱에 긁히면서 피범벅이 되었다.
고해는 뜯어낸 살을 바닥에 던지고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헉!”
“뭐야?”
관중석에 있던 도박꾼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들은 불신의 표정으로 고해와 도파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팔호의 살이 순식간에 뜯기자, 팔호를 선택한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반면 일호를 선택한 사람들은 환호했다.
귀빈석도 어수선해졌다.
송생평의 안색 역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지? 어떻게 된 거야?”
“뭐긴 뭐야? 실력을 감춘 거지. 하하하하하! 좋아!”
이위는 기뻐서 싱글벙글 웃었다.
월요의 엉덩이를 만지는 손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월요는 고통스러웠으나 표를 내지는 않았다.
도파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해를 노려보았다.
“감히 날 속여? 실력을 숨겨?”
고해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도파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염도법!”
도파가 높은 소리로 외쳤다.
쉬쉬쉬쉭!
날카로운 칼이 순식간에 다섯 자루로 변하더니 화염을 토해냈다.
고해는 재빠르게 도파의 공격을 피했다.
도파는 고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며 폭풍우와도 같은 화염을 쏘아댔다.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선천경이 저게 가능해?”
귀빈석에 있던 송생평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해가 밀리는 모습을 본 이위도 짜증이 났다.
관중석에서는 팔호를 연호하며 응원했다.
도파의 칼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의 기운은 대단했다.
칼날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불꽃이 튀고 연기와 먼지가 사방에 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해의 어깨를 베어냈다.
스윽!
뒤이어 고해의 오른쪽 다리도 칼날에 베어졌다.
베인 다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도파는 칼을 빙빙 돌리면서 날카롭게 고해를 노려보았다.
“흥! 너의 재주로는 나의 칼을 막을 수 없다! 천천히 죽을 때만 기다려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