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두선천(斗先天)2
고해는 도파가 뭐라 하든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스슥!
고해의 몸에 난 상처가 열 개를 넘어갔다.
시뻘건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도파가 그런 고해를 보며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감히 내 살을 뜯어내? 가만두지 않겠다! 천천히 포를 떠서 죽여주마!”
그러고는 또다시 칼을 들고 공격했다.
날카로운 칼의 기운이 순식간에 고해를 덮쳤다.
당연히 피할 줄 알았던 고해가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마주 달려들었다.
“지금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도파는 내심 화들짝 놀란 눈치였지만, 짐짓 큰소리치며 칼을 휘둘렀다.
쉬쉬쉭!
날카로운 도파의 칼이 세 개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고해의 몸을 베었다.
양다리, 등에 커다란 상처가 생기면서 고해의 몸이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고해는 왼쪽 겨드랑이에 도파의 화염 칼을 꽉 끼고 놓지 않았다.
그러고는 흉악한 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을 빼 들었다.
“뭐야? 이 힘은 뭐지?”
도파가 놀라서 칼을 빼내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칼이 빠져나오지 않았다.
고해가 오른손을 내밀자, 도파 역시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맞받아쳤다.
그의 주먹에서 대량의 진원이 흘러나오면서 주먹이 마치 거대한 불덩이가 된 듯했다.
주먹과 손바닥이 부딪치기 직전, 고해의 손바닥에서도 진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도파가 그걸 보고 코웃음 쳤다.
“흥!”
그때 고해의 손으로 주변의 무수히 많은 영기가 모여들었다.
그리고 고해의 손바닥에서 대량의 칼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천도생사국.
고해는 진기를 손바닥에 모아서 천도생사국을 펼쳤다.
칼의 기운이 고해의 손에서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그 칼의 기운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도파의 기운과 비교해 봐도 십분지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서 수천 자루는 될 듯했다.
마치 엄청난 벌떼가 고해의 손바닥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칼의 기운이 얼마나 많은지 두 사람 주위에서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뭐야?”
도파의 안색이 급변했다.
관중석에 있던 도박꾼들도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저, 저건 뭐지?”
“아니, 손에서 어떻게 칼의 기운이 나오지?”
송생평과 이위도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이위가 일어서면서 이위의 무릎에 있던 월요가 바닥에 팽개쳐졌다.
하지만 이위는 월요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원형 격투장이 먼지로 뒤덮였고, 사람들은 먼지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가며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온몸에 피범벅이 된 고해가 서 있었다. 다리와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깊게 난 상태였다.
그리고 도파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도파의 몸에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생겼는데,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수천 개의 칼 기운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천지를 다 뒤덮은 칼은 도파의 싸우려는 의지마저 한순간에 꺾어버렸다.
도파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고해가 도파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너무 방심했다. 누가 선천경으로 칼의 기운을 모을 수 없다고 했지?”
다리에 깊은 상처가 생긴 고해는 힘겹게 도파 앞으로 걸어갔다.
고해의 독기 가득한 눈을 본 도파는 정신마저 짓눌렸다.
“사, 살려줘! 제발! 아직 복수도 못 했어! 제발 죽이지 마!”
고해는 꿈틀거리며 애원하는 도파의 목을 밟으면서 싸늘하게 쳐다봤다.
“제발…… 살려줘! 나는 복수를 해야 해! 부모님, 여동생, 딸, 아내…… 내 가족의 복수를 한단 말이야! 제발 살려줘!”
도파가 다시 애원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고해는 한참 동안 도파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너도 참 불쌍한 놈이구나.”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고해는 발로 도파의 머리를 걷어찼다.
도파가 순식간에 쓰러졌다.
“일호 승!”
사회자가 외쳤다.
도박꾼들이 열광했다.
“일호! 잘했다!”
“와아아아! 일호가 팔호를 정말로 이겼어!”
“개똥 같은 팔호! 나가 죽어라!”
“금단경은 무슨! !”
“팔호를 죽여라!”
논할 가치도 없던 싸움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분노에 찬 욕설을 그치지 않았다.
대봉방 수하도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방주님, 적어도 삼 개월 치는 벌었습니다!”
“흥!”
짜증이 난 송생평은 콧소리를 냈다.
반면 대봉방 방주 이위는 불만스런 표정인 송생평을 보면서 크게 웃었다.
“와하하하하하하!”
“일호! 정말 멋졌다!”
“일호! 잘했어!”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고해도 이기긴 했으나 몸에 상처가 많았다.
고해는 관중들의 함성을 신경 쓰지 않고 진기로 상처부터 치유했다.
“이 방주, 저기 일호,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송생평이 화를 참으며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종주? 괜찮으시죠? 하하하하하!”
이위가 웃으면서 되물었다.
송생평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괜찮냐고? 흥!”
그러든 말든, 이 방주는 월요의 몸을 만지며 크게 웃었다.
“월요야! 우리가 또 이겼구나! 하하하!”
월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이 방주의 말에 대답했다.
이위는 월요를 어루만지며, 원형 격투장에 있는 고해를 바라보았다.
“일호가 잘해줬으니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단약 하나를 주거라!”
“예, 종주님!”
검은 옷을 입은 한 부하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고해를 보며 소리쳤다.
“일호! 방주님이 주신 약이다! 엎드려서 방주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거라!”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때 검은 흑포를 걸친 자가 작은 병 하나를 고해에게 건넸다.
주변의 도박꾼들이 그 모습을 보고 웅성거렸다.
“단약? 보아하니 대봉방이 돈을 억수로 벌었나 봐!”
“그걸 말이라고 해?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이 졌잖아.”
단약이 들어 있는 작은 병이 고해의 앞에 있었다.
고해는 눈을 감고 호흡을 하다가, 눈을 비스듬히 뜨고는 귀빈석을 바라보았다.
고해는 작은 병을 바로 받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이위가 준 상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원형 격투장에 있던 부하들이 눈을 부릅뜨고 분노를 터트렸다.
“이놈! 방주님이 주신 상인데 감사의 인사도 안 해?”
고해는 무시했다.
엎드려 인사하라고? 고해는 하늘에만 인사하노라!
“감히!”
흑포를 걸친 자가 노성을 내질렀다.
“아직도 인사를 안 올리고 뭐 하느냐?!”
채찍을 들고 달려올 기세였다.
고해는 고개를 돌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고해의 눈빛에 소리를 지르던 자도 등골이 오싹했다.
흑포를 걸친 자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고해는 이위 부하들의 말을 무시하고 가부좌로 앉아서 상처만 치료했다.
귀빈석의 이위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고해를 보며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많은 영석을 얻도록 해주었기에 별다른 추궁은 하지 않고 내려갔다.
“흥!”
“우리 그만 가자!”
이위는 월요를 끌어안고 내려갔다.
송생평도 일호 악인을 보며 화가 치밀었다.
“일호 악인, 저놈. 고해처럼 짜증 나는 놈이군.”
송생평은 씩씩거리며 떠나갔다.
휴!
순간, 붉은색 광선이 나타나면서 고해를 묶은 다음 출입구 쪽으로 끌고 갔다.
고해의 능력이 또다시 막히자, 조금 전에 소리를 지르던 흑포인이 채찍을 들고 달려왔다.
착!
“네가 그렇게 대단한 놈이냐? 그래서 방주님이 주신 상도 안 받는 것이냐? 건방진 놈! 아까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데, 어디 한번 죽여봐라!”
흑포인이 고해를 노려보며 채찍을 휘둘렀다.
착! 착!
채찍이 고해의 등에 떨어지며 섬뜩한 소리가 났다.
고해는 무심한 눈으로 흑포인을 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그럴 거다.”
“뭐라? 그럴 거다? 하하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구나! 어디 한번 죽여 봐라!”
흑포인은 고해를 다시 때리기 시작했다.
고해는 이를 악물고 채찍을 맞았다.
그 와중에도 입가에는 냉랭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형님, 저 팔호 악인이 아직 안 죽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흑포인이 소리쳤다.
“뭐? 팔호가 살았다고?”
채찍질하던 흑포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예! 그러나 곧 죽을 것 같습니다.”
“좋아! 덕분에 우리 대봉방이 큰돈을 벌었는데, 대결을 한 번 더 시켜야겠다. 복수혈전을 벌여서 떼돈을 벌어보자고! 저놈의 능력을 묶고 악인곡으로 데려가거라!”
채찍을 들고 있던 자가 명령을 내리자, 다른 자들이 달려들어서 도파를 끌고 갔다.
도파는 숨이 겨우 붙어 있었다.
흑포인들은 약으로 도파의 부상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찬물을 끼얹어서 정신을 차리도록 했다.
그러고는 악인곡으로 질질 끌고 갔다.
고해는 그걸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기…… 고맙네.”
도파가 머뭇거리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자신의 목을 짓밟은 고해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에 인정을 베풀어서 자신을 살려주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해는 도파를 슬쩍 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도파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네. 정말로 복수를 해야 하네. 하지만 복수도 살아 있어야 할 수 있지, 죽으면 기회조차 업잖아. 살려줘서 고맙네.”
고해는 의외라 생각하며 도파를 바라보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채찍을 맞으며 악인곡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이 악인곡에 도착하자, 흑포인이 악인들을 집결시켰다.
진천산이 고해를 보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대인께서 돌아오셨다. 그럴 줄 알았지. 무조건 돌아오신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두 사람이 돌아왔지?”
“원래 한 사람 남을 때까지 싸우는 거 아니었어?”
악인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흑포인이 악인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곧 새로운 시합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는 갑인열 전부 나와!”
웅성웅성.
악인들은 조용히 앞으로 나왔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갑인열에는 고선무가 있었다.
고선무의 안색이 변했다.
고해의 수갑이 풀렸고 천천히 걸어가면서 고선무와 어깨가 스쳤다.
“대인.”
고선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부르자,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천도생사국을 알려준 거 기억나느냐? 그걸로 목숨을 지켜라. 반드시 살아야 한다.”
“예, 대인.”
고선무가 대답했다.
열여덟 명이 전부 나오자, 흑포인이 명령을 내렸다.
“수갑을 채워라. 그만 가자!”
“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갑을 차고 흑포인들을 따라갔다.
모여 있던 악인들도 순식간에 흩어졌다.
“대인, 괜찮으십니까?”
진천산이 곧바로 고해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괜찮다. 별거 아니야.”
고해는 진천산과 돌덩어리 쪽으로 갔다.
고해는 수타주 영패에서 단약 일부를 꺼냈다.
애초 몽태가 남긴 단약이었다.
진천산이 있으니 어떤 약이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단약 한 알을 먹고 치료에 집중했다.
단약의 효과는 매우 빨랐다. 단 두 시간 만에 깊이 파였던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그때 거대한 돌덩어리 뒤에서 나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응?”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달가온 도파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