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66화 (66/243)

66화 악인왕

“무슨 일인가?”

“진심으로 고맙네.”

도파가 감격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말했다.

고해는 무릎을 꿇고 있는 도파를 보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단약 한 알을 주거라!”

“네?”

진천산이 화들짝 놀랐다.

이게 어떤 단약인데 외부인에게 준단 말인가?

도파는 진천산이 단약을 건네주기까지 움직이지도 않고 멍하니 있었다.

단약을 받은 도파는 깜짝 놀라 말했다.

“이건 삼품 치료단 아닌가?”

“복용하고 빨리 치료해.”

도파는 멈칫했지만, 곧 입 안에 넣었다. 그러고는 가부좌를 하고 상처를 치료했다.

단약의 효과는 최고였다.

눈 깜짝할 사이 상처에 딱지가 앉고 빠르게 회복되었다.

저녁쯤, 도파의 상처는 절반 가까이 아물었다.

도파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저기…… 어떻게……?”

“물어보지 말아야 할 건 물어보지 마라.”

도파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해는 뒷짐을 지고 악인곡을 훑어봤다.

사방이 검은 안개로 뒤덮였고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악인곡 구석구석에서 싸늘한 눈빛이 오고 갔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사람들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고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파, 여기 악인곡의 세력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 봐라. 세력 조직이나 내부 조직이 어떻게 되는지.”

“왜, 왜 그래? 설마……? 충돌하지 마. 여기 있는 자들, 비록 능력이 묶여 있긴 해도 전부 독한 놈들이야.”

“걱정하지 말고 말해 봐. 여기 대장이 누구야?”

“악인곡에 세력은 없어. 매번 끌려나가서 한 사람만 돌아오거든. 다만 매번 끌려나갔다 돌아오는 사람이 있긴 한데, 대장이라면 아마 그 사람이 아닐까?”

고해는 조용히 듣기만 하다가 악인곡에 있는 악인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여기서 기다려라.”

고해는 고개를 돌려서 진천산 등에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대인, 어디 가십니까?”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

“예?”

진천산과 도파는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을 뿐, 따라가지는 않았다.

고해는 천천히 여기저기를 둘러보면서 걸었다.

그의 행동은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천천히 산간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열 명 정도의 악인들이 모여 있었다.

모여 있던 자들은 고해를 노려봤다.

그중 얼굴에 살이 포동포동 찐 대머리 남자가 흉악한 눈빛으로 고해를 응시하며 말했다.

“새로 온 놈인가? 왜 여기에 왔지?”

“오늘부터 너희들은 내 말을 따라라.”

“뭐?”

열 명의 악인이 일어서서 고해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제부터 내가 이곳의 대장이다.”

“하하! 이 새끼가! 죽고 싶어?”

대머리 남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퍽!

고해는 주먹에 힘을 실어 대머리 남자의 배를 쳤다.

“푸헉헉!”

고해의 주먹 한 방에 대머리 악인은 위가 터질 지경이었다.

극렬한 고통을 느낀 대머리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주, 죽여라!”

나머지 아홉 명이 한꺼번에 고해를 덮쳤다.

고해는 민첩하게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악인들을 하나하나 물리쳤다.

퍽!

한 악인이 고해의 주먹 한 방에 뒤로 날아갔다.

다음에는 발로 한 악인을 차버렸다.

그리고 한 악인의 어깨를 잡고 마구 비틀었다.

드드득!

“으악!”

비명을 지르며 몇 사람이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졌다.

“없애버려!”

대머리 악인은 손에 석칼을 들고 고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이 석칼 때문이었다.

대머리는 뾰족하게 간 석칼로 고해를 공격했다.

고해는 몸에 힘을 주면서 대머리의 손목을 꽉 잡고는 대머리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대머리 악인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입에서는 이빨이 깨져서 튀었다.

“이런 젠장!”

옆에 있던 자들도 고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고해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잠시 후, 열 명의 악인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악인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웅성웅성.

악인곡의 모든 악인들이 일어나서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들 누구도 고해가 먼저 나서서 일을 만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놈아, 너는 뭐 하는 놈이냐?!”

저 멀리에 있는 악인이 소리쳤다.

삼천여 명의 악인들이 하나같이 고해를 바라봤다.

고해는 한 바퀴 돌면서 산골짜기에 있는 삼천여 명의 악인들을 둘러보고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바로 악인곡의 대장이다! 너희들은 반드시 내 말을 따라야 한다!”

“뭐?”

“흥!”

악인곡에서 한차례의 소동이 일어났다.

모두들 미친놈 아니냐는 표정으로 고해를 지켜보았다.

“내키지 않는 놈은 나와라!”

고해가 소리치자, 몇 명이 고해를 향해 달려갔다.

“죽고 싶으냐!”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사람들은 눈을 부라리고 고해를 공격했다.

“없애라!”

“죽여버려!”

“놈을 죽여라!”

고해는 빠르고 강력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퍽! 퍼벅!

주먹에 맞은 자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나뒹굴었다.

어떤 자는 붕 떠서 날아가 떨어졌다.

일부 악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뭐야? 능력이 막힌 거 아냐?”

고해의 주먹은 강력했다.

그리고 악인곡의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할 만큼 빨랐다.

그게 바로 외공 수련자의 독특한 능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능력이 막히면 힘을 못 쓰지만, 고해의 몸은 강하고 단단했다.

내공 수련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고해는 외공으로 후천경을 넘은 사람이었다.

고해의 단전은 막을 수 있어도 고해의 육신은 봉인할 수 없었다.

물론 고해 역시 가끔은 악인들의 주먹에 맞았다.

하지만 상대방의 주먹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해는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퍼버버벅! 퍼벅!

고해가 주먹을 날릴 때마다 사람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점점 더 많은 악인들이 달려들었고, 고해는 냉혹한 표정으로 그들을 때려눕혔다.

철저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뼈가 부러지고, 이가 빠지고, 머리가 터져도 눈빛 한 점 변하지 않았다.

고해는 마치 싸우는 기계처럼 악인들을 물리쳤다.

냉혹하고 강한 고해를 보고 악인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악인곡에는 수천 명이 있었다.

또다시 한 무리의 악인들이 미친 듯이 고해를 향해 달려들었다.

고해도 많은 주먹에 맞았으나 신경 쓰지도 않고 더욱 강력하게 악인들을 상대했다.

그는 이곳에 있는 악인들보다 강해야만 이들을 굴복시키고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장이 되려면 반드시 이자들보다 강해야 했다.

너희들이 악독하냐? 내가 더 악독하다!

너희들이 강하냐? 내가 더 강하다!

너희들이 악질이냐? 내가 더 악질이다!

고해도 목숨 걸고 싸웠다. 아무리 그가 강해도 상대는 수천 명이었다.

악인들이 우르르 달려들더니 고해를 중간으로 몰아붙였다.

“저놈한테 공간을 주지 마!”

한 악인이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우와와와와!

악인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몰려들었다.

그때 고해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전부 죽어라!”

순간!

퍼버버버벅!

겹겹이 달라붙은 오십여 명의 악인들이 폭발하듯 튕겨 나갔다.

그리고 마치 함박눈이 쏟아져 내리듯 사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게 바로 외공으로 후천경에 이른 사람과 능력이 막혀서 본신의 기본적인 힘밖에 쓰지 못하는 자들의 차이였다.

수많은 악인곡들이 고해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이제는 함부로 달려들지 못했다.

눈에도 서서히 공포심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본 도파와 진천산은 침을 삼켰다.

고해의 주먹질에 사람들이 날아다녔다.

진천산은 마치 선천잔국계에서의 광경을 보는 것만 같았다.

“혼자서 몇천 명과 싸우는 일이 가능하구나!”

도파 역시 여기저기 나가떨어지는 악인들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악인?

다른 사람들이 악인이라면 고해는 악인왕이었다.

도파 역시 이런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죽음의 변두리에 오랜 시간 있었음에도 고해와 같은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도파는 혈전이 벌어지는 곳과 진천산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저기…… 저, 저 사람……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악다구니를 내지르는 악인들의 소리가 밤새 메아리쳤다.

이날은 악인곡에 특별한 밤이었고, 시끄러웠던 밤이었다.

싸움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싸움은 새벽의 첫 햇살이 비추면서 중단되었다.

사방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한 무리의 악인들이 시체처럼 늘어져서 첩첩산중을 이루었다.

고해는 악인들을 밟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과 몸 전체가 부어올랐고, 옷은 찢어져서 너덜너덜했다.

그런 고해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아무도 웃지 못했다.

산골짜기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고해가 바람을 타고 사람들 위에서 내려왔다.

“오늘부터 이곳의 대장은 나다! 불복하는 사람은 덤벼라!”

고해의 목소리는 뚜렷하지 못했다.

부어오른 입술 때문에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고해의 말을 들은 악인들은 화들짝 놀랐다.

불복하는 사람은 덤비라고?

악인들이 악인곡에 와서 들은 말 중 가장 섬뜩한 말이었다.

고해는 수많은 악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고해는 자신에게 맞아서 쓰러져 있는 악인들을 보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고해의 웃음을 본 악인들은 등골까지 오싹해졌다.

그가 바로 악인 중의 악인이었다.

악인왕!

* * *

구오도, 청하종의 한 대전 내부.

신기영주 이호연은 거대한 지도를 보고 있었다.

지도에는 산과 들이 있었고, 하천까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호연은 무슨 문제라도 있는 듯 보고 또 봤다.

“영주님, 이 구오도의 지도를 벌써 한 달째 보고 계시는데, 과거의 지형을 보고 싶으실까 봐, 제가 사람을 보내서 백 년 전의 산천 변화를 알아보게 했습니다.”

한 신기영 제자가 공손하게 말했다.

고개를 돌린 이호연이 그 제자를 보며 말했다.

“가져와!”

“네!”

바로 이때, 또 한 명의 신기영 제자가 들어왔다.

“영주님, 섬 서쪽에서 온 소식인데, 해수 패하(覇下)가 또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바다 괴물들까지 데리고 섬으로 들어오려는 것 같습니다.”

“뭐? 패하가 나타나? 섬으로 올라온다고?”

이호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 패하가 나타나면서 수면 위로 먹구름이 잔뜩 끼고, 폭풍우가 휘몰아친다고 합니다.”

“패하가 나타났단 말이지? 흥!”

“영주님, 해수는 감응(感應)에 따라 움직입니다. 지도를 보시면서 계산하기보다는 해수의 감응을 참고하면 영주님께서 찾고자 하는 물건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기영 제자의 말에 이호연이 눈을 빛냈다.

“흠, 그거 좋은 생각이군. 신기영 제자들을 부르거라! 지금 바로 섬 서쪽으로 간다!”

“네!”

* * *

구오도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들이닥쳤고 비가 미친 듯이 내렸다.

해안가 주민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해안가에 있던 배들이 전부 파도에 휩쓸려서 떠내려가고 있었다.

바다에는 거대한 용머리가 나타났다.

용머리에 거북이 몸을 가진 괴물은 예전에 고해가 만났던 패하였다.

패하 주변에는 거대한 몸집의 새우 병사들이 있었는데, 마치 패하를 위해 길을 안내하는 것 같았다.

삼천여 새우 병사들이 길을 안내하자, 패하는 천천히 해안가로 접근했다.

패하의 움직임에 먹구름도 함께 이동하는 것 같았다.

쾅!

순간, 먹구름이 잔뜩 몰리면서 거친 푹풍우가 휘몰아쳤다.

“바다 괴물들이 올라오고 있어! 얼른 도망쳐! 얼른!”

“무슨 비가 이렇게 내려?”

“우리 집 곡식들 어떡해! 어떡하냐고!”

여기저기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그사이 패하가 폭풍우와 함께 성큼성큼 해안가로 올라갔다.

우왁!

패하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쏴아아아아아!

폭우는 점점 더 거세게 내렸다.

도서 주변은 이미 폭풍우가 휘몰아쳐서 마치 종말이 올 것만 같았다.

* * *

대봉방, 악인곡.

고해와 격렬한 싸움을 벌인 몇천 명의 악인들은 새벽 즈음하여 전부 조용해졌다.

악인들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이미 많은 뼈들이 부러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둘씩 뼈를 교정하면서 살기 위해 애를 썼다.

하룻밤 동안 지옥을 경험한 악인들은 전부 고해가 있는 쪽을 보며 벌벌 떨었다.

저자도 능력이 봉인되었는데, 어찌 진기도 쓰지 않고 저녁 내내 싸울 수 있단 말인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토록 지독하게 싸워 본 적이 없는 악인들이었다.

일부는 두려워했고, 일부는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대다수는 고해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도 어제의 싸움을 떠올리면서 정신까지 말라버릴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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