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67화 (67/243)

67화 악인왕

* * *

악인곡 외부.

대봉방의 제자들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절벽 위에 서서 악인곡을 내려다보았다.

“왔어? 또 쥐야?”

한 경비가 말하자, 상자를 들고 있던 자가 조소를 지었다.

“저들에게 쥐를 주는 것도 언감생심이지. 백 번 죽어 마땅할 놈들은 먹을 것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해”

“던져.”

화라라라라라.

상자가 열리고, 수많은 쥐들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대봉방 제자들은 악인들이 미친 듯이 쥐를 빼앗아 먹는 광경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악인곡 악인들은 쥐를 빼앗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뭐야? 단식이라도 하는 거야?”

쥐를 잡고 있던 한 악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잠시 후, 악인들이 삼삼오오 쥐를 먹기 시작했지만 서로 싸우거나 빼앗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야? 왜 다들 조용하지?”

절벽 위의 대봉방 부하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어젯밤 늦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 뭐 한두 번도 아니고, 신경 쓰지 마. 먹든지 말든지, 어차피 도망도 못 가잖아.”

“맞아. 저들도 힘을 아꼈다가 싸울 때 써야지.”

대봉방 제자들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그 누구도 어젯밤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지 못했다.

악인들은 인간답지 않은 취급을 받고 있었기에 대봉방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젯밤 일을 대봉방 제자들에게 알릴 일은 없었다.

고해는 상처를 치료하는 단약 한 알을 먹고 악인들을 응시했다.

진천산과 도파도 공손하게 옆에 있었다.

어젯밤 싸움을 본 두 사람은 고해를 다시 봤다.

안인곡에 있는 악인들은 쥐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하나같이 고해를 훔쳐보고 있었다.

하루가 금방 흘러갔다.

저녁이 되자 고해는 목을 돌리며 천천히 일어섰다.

악인들은 하루 동안 휴식을 취했다.

복종하기 싫은 악인들은 맹목적인 공격보다 조직적으로 고해를 둘러쌌다.

“어제는 처음이었지만, 오늘은 두 번째다. 기회를 줄 때 무릎을 꿇어라. 날이 밝기 전까지 복종하지 않으면…… 죽는 수밖에 없다.”

고해가 싸늘하게 말했다.

하지만 독심을 먹은 악인들은 고해를 향해 달려들었다.

“덤벼!”

“놈을 죽여라!”

악인곡 안에서는 어제와 비슷한 규모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시각, 악인곡 밖의 경비병들은 여자들을 끌어안은 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 요염한 여자가 경비의 다리에 앉아서 말했다.

“안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설마 무슨 일 생기는 건 아니겠지?”

경비는 요염한 여자의 다리를 만지며 말했다.

“도망만 가지 않으면 돼. 신경 쓰지 말고…… 이리 와봐라. 흐흐흐흐.”

“아이, 정말 못됐어!”

여자는 속으로 싫었지만, 겉으로는 좋은 척하며 경비병의 품에 안겼다.

* * *

저녁에 시작된 싸움은 이번에도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삼천여 명의 악인들이 고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고해의 얼굴에 멍이 들인 했으나 아직도 눈빛은 흉흉했다.

삼천여 명의 악인들이 고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인께 인사 올립니다!”

고해가 악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 중에 아직도 굴복하기 싫은 놈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내가 너희들을 때려눕힌 것만 기억해라.

앞으로 이십 년 동안 내가 너희들의 대장이다. 이십 년 후에 남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 단, 이 이십 년 동안 아무도 도망가지 못하고 나의 말만 따라야 할 것이다.”

“네?”

“……?”

고개를 든 악인들은 고해를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해가 악인들을 둘러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있으면 죽는 일밖에 없다. 죽은 쥐들을 먹으면서 서로 싸우고, 이기면 살아남고 지면 죽는 것이 너희들이 원하는 인생이냐?”

한 악인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 그건 아닙니다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내가 방법을 찾을 것이다. 대신 이십 년 동안 나를 따라야 할 것이다. 아직도 복종하기 싫으냐?”

“나간다고요? 어떻게 나갑니까?”

“나가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반드시 빠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최적의 시기가 아니니라. 우리 앞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그 말을 듣고 도파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봉인된 능력과 머리에 있는 가면을 말하는가? 봉인된 능력이야 강력한 전기가 있으면 풀 수 있는데, 원형 격투장에만 있잖아?”

고해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원형 격투장에 가지 않아도 전기를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가면이야.”

고해의 말에 악인들의 눈이 커졌다.

“예? 정말입니까? 정말 봉인된 능력을 풀 수 있습니까?”

“그래.”

조금 전까지 소란을 피우던 악인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낮에는 조용히 있어라. 그리고 한 사람씩 찾아와서 나에게 너희의 이름과 능력, 여기에 잡혀 온 이유를 간략하게 말해줘라.”

“예, 알겠습니다.”

고해는 악인들을 전부 만나보고는 임무를 배정해 줬다.

“오늘부터 너희들을 ‘천지현황’ 네 개의 부로 나눌 것이다. 각 부에 구백 명씩 둘 것이고, 백 명을 다스리는 백장, 열 명을 다스리는 십장을 둘 것이다. 백장은 내가 정할 것이니, 십장은 너희들끼리 정해라.

그리고 사대 부장으로는, 천부장 고선무, 지부장 진천산, 현부장 도파, 황부장 상관흔을 임명한다.”

악인들이 고해의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직 고선무가 돌아오지도 않았는데도 고해가 천부장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진천산과 칼자국(도파)은 금단경 수련자이니 당연히 위엄이 있었다.

상관흔은 고해 역시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악인들과 싸울 때에도 그렇게 눈이 가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자의 가장 큰 장점은 악인곡에서 삼십 년 동안 살았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악인이 죽고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중년 남자로 보이는 상관흔은 턱수염이 더부룩해서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눈매가 매우 날카로웠다.

자기소개에서 별다른 내용은 없었고, 본인의 이름과 악인곡에 삼십 년 살았다는 것만 말했다.

고해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했다.

성격이나 마음가짐은 천천히 알아 가면 되었다.

쾅!

굉음이 울리면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폭우가 오려는 건가? 갑자기 폭우가 내리다니…….”

악인들은 경악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고해 역시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고해는 얼마 전에 겪은 해난이 떠올랐다.

갑자기 하늘이 변하는 건 해수가 출몰했다는 말 아닌가?

* * *

이틀 후, 악인곡.

콰과광!

하늘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악인곡은 순식간에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고해는 깨끗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크지 않은 동굴이었는데 비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악인곡에서는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대 부장이 선정되었고, 백장 역시 고해가 결정했다. 그러나 십장은 악인들이 직접 선출해야 했다.

일부는 평화롭게 선출되었으나, 일부에서는 싸움이 벌어졌다.

그 때문에 십장 자리를 놓고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산골짜기 입구에서 채찍 소리가 들렸다.

“이런 벌레 같은 놈들! 왜 네놈들끼리 싸우는 거냐!”

분노의 목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싸우고 있던 악인들은 싸움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흑포를 걸친 대봉방 부하들이 고선무를 끌고 왔다.

고선무의 옷은 여기저기 찢겨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끝내 살아남아서 돌아왔다.

또 한 번의 혈투가 끝났다는 말.

또 다른 혈투를 시작될 것을 직감한 악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집합!”

흑포인 하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고해는 천천히 걸어갔다.

고선무의 수갑이 풀리고, 모든 악인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앞서 싸웠던 갑자호들 나와라!”

채찍을 들고 있던 부하가 싸늘하게 말했다.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도파와 함께 걸어나갔다.

착!

대봉방 부하가 채찍으로 도파를 때리며 말했다.

“넌 들어가!”

도파는 천천히 걸어서 들어갔다.

맨 앞에 있던 흑포인이 고해와 고선무를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너네 둘이 손바닥에서 칼의 기운을 만드는 건 무슨 비결이지?”

고해는 그자가 저번 경기에서 자신에게 채찍질을 했던 자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결국, 고선무 역시 고해의 방법을 쓰면서 결과를 뒤집었던 것이다.

흑의인들 역시 군침을 삼키며 목숨을 지키는 비결을 알고자 했다.

고해가 정중하게 말했다.

“그건 우리 종가의 비밀입니다.”

채찍을 들고 있던 남자가 이마를 찌푸렸다.

“너네 종가? 여기까지 와서 종가 타령이야? 비결만 알려주면 반년 동안 시합에 내보내지 않으마.”

고해가 주변의 사람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 비결은 어렵지 않습니다. 쉽게 만들 수 있지요. 다만, 많은 사람이 알게 되면 비결이 아니지요. 여기서 말하기를 원합니까?”

“뭐? 쉽게 배울 수 있다고?”

“그래서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다 알면 비결이 아니지요.”

흑포인은 고해를 보면서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했다.

“하하하하! 비결이라고? 웃기지 마! 흥! 그만 가자!”

“네!”

흑포인들은 고선무를 버리고 순식간에 물러갔다.

“대인, 저놈이 또 찾아올 겁니다.”

고선무가 걱정스레 말했다.

고해가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렇지 않으면 나도 미끼를 던지지 않아!”

“또 찾아오면 그땐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고해는 천천히 동굴 쪽으로 걸어갔다.

고선무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만 고해가 걸어가자 악인들이 길을 내주는 것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모든 악인들이 고해의 뒤에서 공손한 자세로 뒤따라가고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겁니까?”

고선무가 진천산을 보면서 물었다.

진천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천부장, 진짜 재밌는 광경을 놓쳤네그려. 하하하!”

“예?”

고선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한 무리의 악인들이 고선무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천부장님께 인사 올립니다.!”

고선무는 뭔가를 눈치채고 고해를 바라보았다.

동굴 입구에서 고해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반 달 전에 큰 비가 내리면서 원형 격투장이 쉬었었는데, 오늘 또 이렇게 비가 내리다니, 정말로 하늘이 준 기회구나!”

“대인, 이제 어떻게 할까요?”

도파가 물어보았다.

“가면을 벗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늘 저녁을 지나 봐야 한다.”

* * *

채찍을 든 흑포인은 부하들에게 임무를 주고는 혼자서 악인곡으로 돌아왔다.

악인곡 앞에는 경비병이 있었다. 그러나 흑포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근처에서 비를 피했다.

“비밀인데, 배우기 쉽다고? 이 비밀을 알아낸 다음에 저 둘을 죽여버리면 그 비밀 능력은 내 것이 된단 말이지?”

밤이 깊어가는데도 빗줄기는 여전히 굵었다.

폭우가 내리자 경비병도 순찰을 하지 않고 안에서 향락을 즐겼다.

흑포인은 천천히 악인곡으로 들어갔다.

산골짜기 위에도 파란색 빛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입구에도 똑같은 빛이 있었다.

악인들은 그 빛이 무서워서 입구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흑포인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찾았다.

악인들이 흩어져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저기 있군.”

흑포인은 고해와 고선무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흑포인은 채찍을 살짝 휘두르며 득의양양해서 걸어갔다.

“이놈아! 내가 또 왔다!”

흑포인은 차갑게 웃으며 고해를 응시했다.

고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가 천천히 눈을 떠 흑포인을 바라보았다.

“왜 또 오신 겁니까?”

“얼른 그 비밀을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릴 것이야!”

흑포인은 싸늘하게 웃으며 고해에게 걸어갔다.

두텁게 깔린 나뭇잎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그의 얼굴에는 싸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고해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놈! 내 말 안 들리느냐? 아직도……!”

흑포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다그치는 순간, 발밑에 있던 나뭇잎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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