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69화 (69/243)

69화 출곡2

대장장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이런 것도 못 만들면 대장간을 어떻게 운영합니까? 동관자들을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 어려운 일이 아니니 이틀! 이틀이면 가능합죠!”

“내가 수고비를 세 배로 주겠네. 대신 반드시 이 종이에 있는 순서대로 만들어야 하네.”

수고비를 세 배로 준다는 말에 대장장이 눈빛이 달라졌다.

“그렇다면야 하루면 됩죠!”

고해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상관흔은 고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세상 물정 많이 봐왔지만 고해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 도면으로 전기 법보를 만든다고?

가당치도 않은 소리!

“대인, 이제 어떻게 할까요?”

“넌 여기 남아서 만드는 거 보고 있어라. 착오가 없이 만들어져야 한다.”

“네?”

상관흔은 할 말을 잃었다.

“얼른 다녀오마. 너도 이 물건의 중요성을 알고 있겠지?”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상관흔도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해는 영석을 꺼내서 상관흔에게 주고 혼자 나가버렸다.

고해의 뒷모습을 본 상관흔의 표정은 복잡했다.

상관흔도 고해가 완전히 자신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요하다는 물건을 만드는데 자신에게 맡겨놓다니.

하지만 그 시간, 고해는 또 다른 대장간을 찾아갔다.

상관흔이 변심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번에도 대장장이에게 아까와 똑같은 도면을 주면서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후에야 고해는 기름을 파는 점포로 들어갔다.

“손님, 뭐 드릴까요?”

“등잔 기름을 사려고 하네. 많으면 많을수록 좋네.”

“등잔 기름요? 그 기름으로 뭐 하시려고요?”

“집에 몇 명이 있는지, 점심은 뭘 먹었는지도 알려줄까?”

고해의 말에 점포 주인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긴, 기름을 사 간 사람이 그걸 마시고 뒈지든, 그걸로 목욕을 하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네? 아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필요한 만큼 드리겠습니다.”

대량의 기름을 작은 공간에 넣는 걸 보고 점포 주인은 깜짝 놀랐다.

그런 공간이 있는 수련자들은 보통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대부분 성격이 고약했다.

‘휴우, 하마터면 말 몇 마디 잘못했다가 죽을 뻔했군.’

* * *

볼일을 다 본 고해는 천천히 대봉방 구역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를 살펴본 고해는 울창한 나무들이 많은 산림을 골랐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그는 영패 공간에 넣어둔 기름을 꺼냈다.

스르르륵!

고해는 산림 주변을 걸으면서 기름을 붓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해는 모든 기름을 산 전체에 쏟아붓고, 저 멀리 보이는 대봉방 구역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화섭자를 이용해서 불꽃을 일으킨 그는 그 불꽃을 산림에 던졌다.

화르르륵!

순간, 큰불이 산기슭을 따라 빠르게 번졌다.

비가 내리는데도 울창한 산림 속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다.

기름을 워낙 많이 부었는지라 지금 내리는 비로는 산불을 막을 수 없었다.

비에 젖어버린 나뭇잎들은 짙은 연기를 뿜어내며 산 전체를 뒤덮었다.

불은 점점 더 거세졌고 연기는 점점 더 짙어졌다.

“불이야! 불이 났다!”

누군가 소리 높이 외쳤다!

“뭐? 불이 났다고?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불이 나?”

* * *

대봉방에서도 소동이 벌어졌다.

대봉방 제자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산불을 끄려고 달려갔다.

“연기가 너무 짙어! 콜록콜록!”

“잔소리 말고 빨리 꺼! 콜록! 얼른!”

대혼란 속에서 대봉방 제자들은 산불을 끄기 위해 산으로 달려갔다.

고해는 그 틈을 타서 대봉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대장장이와 상관흔은 혼이 빠진 표정으로 산불을 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치솟는 불길은 하늘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산불로 피어난 짙은 연기는 순식간에 대봉방 일대로 퍼져 나갔다.

상관흔은 그 불이 왜 났는지 짐작하고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대인께서 지른 불이라고? 그런데 귀빈 구역까지 연기로 덮었잖아!’

대봉방 방주 이위도 월요를 쓰다듬으면서 싸늘한 눈빛으로 산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산불이 점점 커지자, 그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누가 감히 대봉방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철저히 조사해라!”

* * *

산불은 점점 더 거세졌다. 젖어 있던 나무들에서 짙은 연기가 피어올라 대봉방 전체를 뒤덮었다.

대봉방 제자들은 불을 끄려고 우왕좌왕하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짙은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코와 입을 막으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비까지 세차게 내리자 수련자들은 이래저래 힘들어져서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사이 고해는 거들먹거리며 대봉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일부 대봉방 제자들은 고해를 보고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봉방 안으로 들어가는 내내 제지하는 사람도 없어 고해는 조금도 어렵지 않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한편, 상관흔은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불을 꺼도 이 연기는 한동안 남을 텐데, 이 틈을 타서 대봉방 안을 오고 가는 건 일도 아니겠군. 대인은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사람이란 말인가?”

고해의 능력이 봉인되어서 영석을 쓸 수는 없으나, 이런 혼잡한 광경을 만드는데 그러한 능력은 필요도 없었다.

고해는 고문으로 알아낸 대봉방 내부의 한 대전 앞으로 걸어갔다.

한 대전 입구.

송생평이 놀란 눈으로 산불을 보고 있었다.

옆에는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흑포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마치 일부러 얼굴을 가린 것 같았다.

그런데 서 있는 자세를 보아서는 늙은 할멈 같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게야?”

흑포를 걸친 노파가 묻자, 송생평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위는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곧 정 타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일을 만들다니.”

그때 저 멀리 고해의 모습이 보였다.

고해는 숨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걸어갔다.

“뭐지?”

흑포를 걸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도 흑포를 걸친 채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대봉방에서는 아무나 흑포를 입을 수 없었다.

더욱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송갑종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방주님께서 이번 화재는 사고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고해가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송생평이 싸늘하게 말하며 웃었다.

“사고? 하하하! 대봉방에는 사고가 차고 넘치는구나!”

“죄송합니다!”

고해가 다시 정중히 사과하자, 이번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던 늙은 할멈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됐다! 이위한테 가서 내일까지 기다리기 싫으니 지금 바로 준비하고 있으라고 전하거라.”

곧 간다고? 어디를?

고해는 움찔했으나 일절 내색하지 않았다.

“방주님께서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내일까지 기다리시지요!”

“내 말 안 들리느냐?”

늙은 할멈이 나직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고해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닙니다. 어찌 소인이 대인의 말씀을 무시하겠습니까. 다만 이미 결정한 일이라 방주님께서 저의 말을 믿지 않으실까 봐 그럽니다. 대인께서 믿을 만한 증표를 주시면 제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늙은 할멈이 영패를 던지며 말했다.

“이건 이위가 내게 준 영패다! 이걸로 대봉방 제자들을 거느릴 수 있을 것이야! 이 영패를 이위한테 보여주면 믿을 것이야!”

“예!”

고해가 대답했다.

고해는 영패를 줍고는 인사를 마치고 천천히 물러났다.

밖으로 나온 고해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손에 있는 흑철 영패를 바라보았다.

정면에는 풍(風) 자가 적혀 있었고, 뒷면에는 거북이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가? 말아??’

고해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생각을 정리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고해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이 일은 너무 위험한 일이어서 최대한 조심해야만 했다.

고해는 마음을 가다듬고 이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위의 거처에 이르자 점점 더 많은 경비병들이 보였다.

“누구냐? 모자 벗어!”

한 경비병이 말했다.

고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영패를 보여주었다.

“헛?”

경비병이 깜짝 놀라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고해가 그 경비병의 뒤통수를 보며 말했다.

“방주님을 찾아뵈러 가자!”

“예!”

경비병 둘이 고해를 안내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쉽게 들어갔으나 이번 일은 워낙 위험했다.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고해도 잘 알고 있었다.

점점 더 검문이 심해졌지만, 고해는 늙은 할멈이 준 영패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전 밖에서 한 무리의 제자들이 보고를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주님! 조사를 해보았사온데 누군가가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른 것 같습니다!”

대전 안에서 이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알아냈느냐?”

“아직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런! 빨리 가서 철저히 알아 봐!”

이위가 짜증을 내듯 소리치자, 대봉방의 부하들이 황급히 대답했다.

“네!”

“그리고 송갑종주한테 가서 이번 산불은 사고라고 말해!”

“예, 방주!”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뭐야?”

대전 안에서 이위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렸다.

대전 밖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흑포인, 고해를 쳐다보았다.

텅!

고해는 흑철 영패를 대전 앞에 던졌다.

영패는 대전 안에서 데굴데굴 굴러갔다.

“뭐야?”

이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위는 월요를 옆구리에 끼고 빠르게 걸어 나왔다.

고해는 두 번째로 월요와 마주쳤다.

월요 턱 밑에 있는 상처는 흉측했으나, 이위는 월요 옆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았다.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숙께오서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 없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이위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라? 정 타주가 너의 사숙이라고?”

“방주, 불필요한 건 묻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고해의 말에 이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고해를 노려보았지만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정 타주님께 곧 간다고 말씀드리거라!”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요? 사숙님은 기다리시는 걸 질색하십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흥!”

이위는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돌린 이위가 월요를 보면서 말했다.

“애기야, 금방 다녀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거라.”

“저…… 저…….”

월요는 이위에 대해서 두려움과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출했다.

이위가 부하들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

“우리 애기 잘 지켜라. 털끝 하나 건드리기라도 하면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야.”

“예,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방주님.”

이위는 여섯 명의 제자들과 함께 송생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해도 뒤따라 걸었다.

그들 중 고해만 모자를 쓰고 있었으나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들은 빠르게 송생평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송생평과 정 타주는 이위가 일곱 명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해는 맨 뒤에서 걸었다.

두 사람과 만날 때에는 일부러 이위와 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정 타주, 큰불은 생각지 못했던 사고입니다.”

이위가 어색한 웃음을 보이자, 정 타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일은 더 이상 말하지 말게!”

정 타주의 말은, 조금 전에 고해가 이미 한번 말을 했는데, 똑같은 말을 반복하니 재미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위는 정 타주가 노한 거라 생각했다.

“정 타주, 화를 참으시지요. 지금 바로 가십시다.”

“그러지!”

정 타주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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