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몽태. 풍령. 이위. 월요
정 타주, 송생평, 이위가 맨 앞에서 천천히 걸었고, 한 무리의 제자들이 그들 뒤에서 걸었다.
정 타주 부하들도 흑포를 걸쳤고, 고해도 모양이 다른 흑포를 걸치고 있었으나 그 어느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다.
정 타주 쪽 사람들은 고해를 대봉방 제자로 생각했고, 이위는 고해를 정 타주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들은 천천히 주거지를 지나갔다.
정 타주, 송생평, 이위는 높은 수준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연기가 흩날리고 비까지 내리니 그들도 짜증이 나던 터라, 그 어느 누구도 고해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산을 빙빙 돌면서 한 산골짜기에 도착했다.
산골짜기에 큰 동굴 하나가 있었고, 많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동굴은 용석으로 막혀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방주님을 뵙습니다.”
경비병들이 인사를 건네자, 이위는 슬쩍 고개만 끄덕이고 말했다.
“문을 열어라.”
“예, 방주!”
부하들이 즉시 동굴 문을 열었다.
드르르르륵!
동굴 문이 열리자 기다란 등나무 줄기가 보였다.
등나무 줄기가 어찌나 많은지 등나무 동굴이라고 해도 어울릴 것 같았다.
동굴 안쪽은 야광주가 비추고 있었다.
고해는 의아한 눈빛으로 동굴을 바라보았다.
동굴 안에는 등나무 줄기밖에 없었다.
동굴은 매우 깊었다.
사람들은 동굴 끝까지 들어갔고, 들어가는 내내 등나무 줄기가 뻗어 있었다.
동굴 끝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가 등나무 줄기에 걸려 있었다.
옷에 작은 구멍들이 나 있었는데, 마치 고문을 받은 죄수 같아 보였고, 몸은 독에 중독된 것처럼 어두웠다.
“정 타주님, 제가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 건 저놈의 몸에 독이 있어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내일에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위가 설명했지만, 정 타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깨워!”
“정 타주님, 강제로 깨우게 되면 그의 심신이 다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내 말 안 들려? 깨우라니까!”
“예…….”
이위도 할 수 없이 대답하고는, 부하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하들이 채찍으로 사내를 때렸다.
얼마나 때렸을까?
사내가 몸을 움직이며 천천히 일어났다.
“푸헉!”
사내는 검은 피를 토해내며 앞에 있는 사람들을 올려다보았다.
“또 왔나? 이위, 그냥 죽여라. 죽이란 말이다!”
사내는 독소도 채 가시지 않은 몸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이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으면 빨리 말해.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등나무 줄기를 썼는지 알아? 죽고 싶어? 어림도 없지!”
“그냥 죽여라!”
사내가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이위가 냉랭하게 말했다.
“정 타주님께서 오셨다.”
정 타주는 천천히 걸어가서 모자를 벗었다.
순간 늙은 할멈 얼굴이 나타났다.
사내는 늙은 할멈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하더니 이내 소리쳤다.
“정예! 이 늙은 할망구야! 용기가 있으면 날 죽여라!”
정예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십 년이야, 이십 년. 몽태, 정말 잘 견뎌내는구나.”
몽태?
사람들 뒤에 있던 고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품당 토타주 몽태는 선천잔국계에서 자신의 손에 죽었지 않은가?
하지만 곧 사내를 보고 눈빛이 달라졌다.
‘아니다! 저자는 몽태와 정말 비슷하게 생겼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야!’
고해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만약 저자가 진짜 몽태라면, 선천잔국계 안에서 자신과 기싸움 하던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이십 년? 벌써 그렇게 됐나? 허!”
몽태는 고개를 돌려 이위를 바라보았다.
이위를 바라보고 있는 몽태의 얼굴에는 뼈에 사무치게 원망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위가 비웃으며 말했다.
“저를 쳐다볼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얘기하면 풀어드리지요.”
“이위, 역시 자네는 날 너무 잘 알아. 하하하하, 그렇게나 나를 잘 아는 놈이 내가 말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송생평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역시 입이 무겁구먼. 정 타주, 아마도 또 헛수고인 것 같네.”
정예는 단호한 표정으로 몽태를 쳐다보았다.
“신기영의 이호연도 왔어. 우리는 기필코 이호연보다 앞서 찾아야 하니, 몽태는 오늘 무조건 입을 열어야 할 것이야!”
“응?”
“뭐? 이호연이 왔다고?”
모든 사람들이 정예를 쳐다보았다.
“계속 입을 열지 않고 있다가 이호연이 찾게 되면, 그럼 소용이 없어. 몽태는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앞으로 말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야.
그러니까 나는 더 이상 물러날 생각이 없어. 오늘이 지나고 나면 몽태는 철저히 망가지겠지만, 그것 역시 몽태 네가 자초한 거야!”
모든 사람들은 정예가 영패 하나를 꺼내는 것을 보았다.
‘화타주령?’
고해는 속으로 경악했다.
자신의 수타주령와 생긴 것이 비슷했다. 단지 문양만 불꽃 모양일 뿐이었다.
화타주령을 본 몽태의 안색이 변했다.
“신령이 꿈을 재촉한다?”
“아직도 기억하는구나. 몽태, 이 타주 영패는 보기 드문 보물이다. 너도 이것의 효능을 알고 있을 게야. 네가 지금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너의 꿈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퉤!”
몽태는 침을 뱉었다.
비록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네가 자초한 일이니 나를 원망하지 마라!”
정예가 냉정하게 말하고는, 손을 들어 화타주령을 흔들었다.
붕!
갑자기 불꽃이 동굴 안을 둘러싸더니 몽태를 향해 밀려갔다.
우르르!
사람들은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동굴 내부는 예전과 같았고, 모든 사람들은 거기에 가만히 서 있었지만, 그들의 정신 상태는 마치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간 것만 같았다.
불꽃이 하늘에 넓게 퍼져 있었고 사람들은 불꽃 주변에 서 있었다.
불꽃 속에는 몽태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몽태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아악!”
몽태는 고통스러운 불꽃 속에서 발버둥 쳤지만 쇠사슬을 벗어날 수 없었다.
“정예, 넌 일품당을 배신했어. 널 죽여 버릴 거야!”
불꽃 속에서 몽태가 원망하며 소리쳤다.
정예는 싸늘한 눈빛으로 몽태를 바라보며 말했다.
“몽태, 지금 이 첫 번째 꿈속에서 내가 너의 정신을 태워버릴 거야. 태워버린 정신은 너의 기억 중 일부겠지. 난 그것을 읽을 것이다. 정신을 전부 태워버리게 되면 넌 바보가 되겠지.”
곧, 정예의 옆에 잔잔한 물결이 나타났다.
“가자, 몽태의 두 번째 꿈 속으로. 그의 기억을 읽을 것이다.”
정예는 잔잔한 물결을 향해 걸어갔다.
고해가 맨 뒤에서 따라가며 경악한 눈빛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몽태의 첫 번째 꿈속에 서 있었다.
첫 번째 꿈속에서는 몽태의 정신을 불태워버렸는데, 두 번째 꿈속에는 몽태의 기억이 펼쳐졌다.
‘내가 타주 영패를 너무 만만하게 봤구나.’
불꽃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몽태를 보여 고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을 따라 몽태의 두 번째 꿈속으로 들어갔다.
한 발 넘어와 보니 대전 안이었다.
대전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 타주, 몽태의 두 번째 꿈속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 못하는 건가?”
송생평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이것은 그저 몽태의 기억일 뿐이고 우리는 그저 보고 있는 것뿐이니 직접 참여할 수는 없어. 똑똑히 봐둬. 사소한 것까지도 빼놓지 말고 봐둬야 할 거야. 몽태가 망가지고 나면 다시는 볼 수 없으니까.”
두 번째 꿈속은 혼인식장이었다.
주변은 모두 빨갛게 장식되어 있었다.
“빨리, 빨리, 신랑 신부 온다, 빨리빨리!”
누군가가 갑자기 기쁘게 소리쳤다.
꿈속에서 가장 기쁘게 소리치는 사람은 바로 이위였다.
그때의 이위는 아직 외눈이 아니었다.
두 눈을 갖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선배님들, 빨리요, 시간이 다됐습니다!”
이위는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쪽에서 신랑 신부가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서서히 대전 중심으로 걸어갔다.
신부는 빨간 면사포를 쓰고 있었다.
몽태는 신부와 팔짱을 끼고 기세등등하게 걸어왔다.
이위가 갑자기 나서서 모든 손님들은 향해 소리쳤다.
“손님 여러분, 조용히 해주세요. 제가 할 말이 있습니다. 조용히 해주세요!”
혼인식장이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은 이위를 바라보고 있었고 몽태도 흥미진진하게 이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위는 사람들 속에서 여자 한 명을 끌고 나왔다.
그 여자는 얼마 전 고해가 봤던 월요였다.
“이위, 너 뭐 하는 짓이야!”
월요는 쑥스러워 우물쭈물거렸다.
“월요야, 이리 와. 오늘이 대선배님들 결혼식인 만큼 선배님들의 경삿날이고 우리의 경삿날이야!”
이위가 소리쳤다.
월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형,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대사형이 저희 셋을 키워주셨습니다.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여태껏 서로 굳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대사형 덕분입니다.
저는 대사형한테 대단히 감사드리고 대선배님들의 운명 같은 인연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저와 월요가 대선배님들 결혼식 사회를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결혼식 사회자 말고 저와 월요가 사회를 맡아도 되겠습니까?”
이위가 갑자기 흥분하며 말했다.
월요도 호응해서 소리쳤다.
“맞습니다. 풍령 언니, 저와 이위가 사회를 맡겠습니다!”
“그리하거라!”
몽태가 웃으며 말했다.
“첫 절은 천지신께! 신이 좋은 인연을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위가 소리쳤다.
몽태는 신부와 함께 천지를 향해 절했다.
다음에는 월요가 말했다.
“두 번째 절은 친한 벗들께! 친한 벗들이 이 자리를 함께하고 인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몽태는 신부와 함께 벗들을 향해 절했다.
“신랑 신부 맞절! 한평생 헤어지지 않습니다!”
이위와 월요가 동시에 소리쳤다.
몽태와 신부는 서로를 향해 맞절했다.
“신혼 방에 보내드립시다!”
몽태와 신부는 사람들에게 이끌려 신혼 방으로 들어갔다.
신혼 방에는 몽태와 신부만 남겨졌다.
몽태가 천천히 면사포를 올리자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풍령아, 오늘 진짜 이쁘구나.”
몽태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신부 풍령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몽태를 바라보았다.
“대사형…….”
몽태가 짐짓 눈을 부라렸다.
“계속 대사형이라고 부를 거야?”
풍령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상공…….”
“령매.”
몽태는 사랑 가득한 표정으로 풍령을 끌어안았다.
기억은 계속 흘러갔고 가끔은 건너뛸 때도 있었다.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장면이었다.
생활상 사소한 일들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고해는 옆에서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몽태, 이위, 월요, 심지어 풍령까지 네 명이 사형제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한참 지나고 나니 기억은 점점 또렷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