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풍령
몽태는 원형 격투장에 서 있었다. 이 순간 원형 격투장의 진법은 몽태의 무기와 같았다.
붉은 광선이 긴 채찍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대봉방 제자들은 그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이위, 왔느냐?”
몽태는 냉정하게 웃으며 하늘을 보았다.
월요도 이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고 말했다.
“이위 오빠! 저는 이위 오빠의 여자예요. 저는 월요예요!”
이위의 안색이 굳어졌다.
“몽태, 어떻게 나온 거냐? 바보 된 것 아니었어? 병신 된 것 아니었어?”
몽태는 이위를 보며 악에 받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나왔냐고? 하하하하. 나의 착한 사제야,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너희들을 업어 키웠다. 너의 수행도 전부 내가 가르쳐준 것이지!”
옆에 있는 월요가 놀라 온몸을 떨었다.
그걸 본 이위가 소리쳤다.
“월요한테서 떨어져! 월요한테서 떨어지란 말이야!”
“당황스러운가? 역시 월요가 명이 길군. 나한테 한 번 베이고 나서도 이렇게 살아 있다니. 비록 시체가 걸어다니는 것 같지만 말이야.”
몽태는 흉악한 모습으로 이위와 월요를 비웃었다.
하늘에 떠 있던 이위가 서서히 원형 격투장에 내려섰다.
붉은 광선은 이위를 막지 않았다.
이위는 몽태를 노려보며 고통스럽게 말했다.
“몽태. 그래, 당신이 우리를 업어 키웠지. 하지만, 하지만 그것 역시 당신이 우리를 이용해서 영석을 벌어들이려는 것 아니었나? 내가 대봉방에 있다는 것 역시 당신을 위해 돈을 벌어주는 것 아니었나? 나는 그저 당신의 도구일 뿐이었어!”
“도구? 내가 너희들을 그렇게까지 키워주고, 너희들한테 그렇게 많이 퍼부었으며, 너희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해주지 않았느냐? 그걸로 부족헸더냐? 월요가 만족하지 못했던 것처럼 너도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냐?”
이위는 이를 악물었다.
“좋아, 그때는 날 위해 영석을 벌어줬다고 하자. 지금 정예 그 미천한 년을 따르고 있는 건 또 뭐냐?”
“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난 상관없어. 당신이 뭘 하라고 하면 난 뭘 했고 예전에는 한 번도 당신을 거역한 적이 없었어. 하지만 월요는 당신도 알다시피 나의 약혼자였어. 나랑 결혼하기로 약속했던 사람인데 당신이 월요를 죽였어. 당신이 월요를 죽였다고!”
이위가 눈을 붉히며 말했다.
“그건 그 애가 자초한 일이다! 풍령은? 풍령은 어디에 감금했느냐?”
몽태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이위가 눈을 붉히며 자신의 가려진 짝눈을 가리켰다.
“내가 왜 짝눈이 되었는지 알아? 내가 직접 팠어! 내가 월요의 시체를 보는 순간 직접 팠어. 내가 얼마나 눈이 멀었으면 당신의 말을 들었던 것인가! 내가 얼마나 눈이 멀었으면 당신에게 충성을 다했던 것인가!”
이위는 몽태를 보며 미치광이처럼 소리쳤다.
“월요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나는 월요를 위해 복수할 거라 결심했지. 난 복수할 거야. 당신을 백번 천번 괴롭힐 거야!”
몽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미치광이가 된 이위를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월요를 죽인 건 내 잘못이다. 하지만 그동안 네가 나를 못살게 괴롭힌 걸로 충분해. 풍령을 풀어줘라. 풍령을 다시 돌려주는 것으로 너와 나 사이를 깨끗이 정리하자.”
“정리? 정리? 그럼 월요는 어떡하고? 월요는?!”
이위가 눈시울을 붉히며 소리쳤다.
몽태는 옆에 있는 월요를 쳐다보았다.
어리바리한 월요에게서 옛날의 밝고 활기찼던 모습을 찾을 순 없었다.
영혼 하나로 버티고 있는 그녀는 바보나 마찬가지였다.
“이위, 난 너와 협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풍령은 어찌했지?”
“허, 허허, 풍령? 풍령은 죽은 지 오래야. 당신이 나의 월요를 죽였으니 나도 당신의 풍령을 죽였어. 그래야 공정한 거 아니겠어?”
“아니, 아니야. 네가 얘기했지. 풍령은 아직 살아 있다고. 내가 감금되어 있을 때 말이야. 나를 살려주지도, 죽이지도 않을 거라고. 내가 죽게 되면 풍령도 같이 죽일 것이라고. 내가 죽지 않으면 풍령도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몽태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원형 격투장 밖에는 수많은 대봉방 제자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이 순간 그들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불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위는 그들의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죽었어. 풍령 선배는 죽은 지 오래됐지. 죽은 지 오래됐다고!”
몽태의 눈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곧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아니야, 네가 그렇게나 나를 원망하는데 풍령을 죽일 수 없지. 풍령은 아직도 살아 있어, 무조건 살아 있어. 풍령을 풀어줘라. 안 그러면 내가 월요를 죽여버릴 것이야!”
몽태가 흉악한 표정으로 월요를 잡았다.
“아!”
월요가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당신은 이미 월요를 한 번 죽였어. 내가 얘기하잖아? 풍령은 이미 죽었다고. 나의 월요를 풀어줘, 나의 월요만 풀어주면 당신이 원하는 것들 내가 다 줄게!”
이위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몽태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꿇어라!”
이위는 몽태의 손에 잡혀 있는 월요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바보같이 월요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월요, 자기,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마도 이위의 위로가 먹힌 듯했다. 월요는 공포 속에서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
그도 이위를 바라보며 중얼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위 오빠, 저는 오빠의 여자 월요입니다.”
몽태는 이위의 무릎 꿇은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됐다. 이젠 알려줘라, 풍령은 어디 있지?”
“풍령은 죽은 지 오래야. 진짜 죽었어.”
이위가 고통스럽게 말했다.
“너는 내가 다시 월요를 안 죽일 거 같으냐?”
몽태가 조급하고 공격적인 어조로 말했다.
“대사형, 제발 부탁입니다. 월요를 풀어주세요!”
이위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흥, 풍령을 풀어주지 않으면 나도 월요를 죽여버릴 것이다! 어서 말해!”
몽태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말하는 사이 손을 내밀어 진법 기관을 움직였다.
붕!
원형 격투장 위가 파란빛으로 둘러싸였다.
빛은 서서히 하늘에서 내려와 원형 격투장 전체를 에워쌌다.
파란빛에 닿는 순간 월요 얼굴에 있는 청동 가면은 폭발하고 말 것이다.
“안 됩니다, 대사형, 안 됩니다!”
이위가 다급하게 말했다.
퍽!
몽태는 주먹으로 기관을 깨부수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봤느냐? 기관은 부서졌다.
파란빛은 조만간 여기를 에워싸게 될 것이고, 나도 막을 수가 없다. 파란빛이 월요한테 닿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너도 알지?!”
이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펑!”
몽태가 입으로 폭발 소리를 내며 공포감을 더했다.
“풍령을 돌려다오, 아니면 월요의 머리가 폭발할 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몽태가 이위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사형, 풍령은 진짜 죽었습니다. 진짜 죽었어요. 저의 월요를 풀어주세요!”
“난 안 믿는다, 난 안 믿어!”
몽태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먼 곳 구석진 곳에서 고해가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모든 것을 몽태한테 의지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애초부터 나를 도와 가면을 풀어줄 생각은 없었던 거지. 처음부터 계속 풍령만 찾고 있잖아? 흥!”
“이위 오빠, 저 무서워요!”
월요가 이위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금방이라도 파란빛에 머리가 닿을 듯했다.
“안 돼!”
이위가 급하게 소리쳤다.
몽태도 놀라며 온 힘을 다해 월요를 끌어당겼다.
월요가 죽으면 자신의 허약한 지금 상황으로는 더 이상 풍령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찌지직!
몽태가 잡아당기면서 월요의 소매가 찢어졌다.
순간 월요의 오른팔에 있는 복숭아 모양의 모반이 드러났다.
몽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 풍령 몸에 있는 모반이 월요의 몸에 있단 말인가?”
이위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화르르!
몽태가 월요의 머리를 만지니, 순간 대량의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두피가 드러났다.
월요의 두피에는 모란화 모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몽태는 휘청거리며 넘어질 것만 같았다.
몽태는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경악한 눈으로 월요의 두피에 있는 문신을 살펴보았다.
월요의 턱에 상처가 있었다.
상처는 턱에서부터 위로 이어져 있었고 마치 얼굴 전체를 한 바퀴 두른 것 같았다.
“설마… 풍령? 너 풍령이야?”
몽태는 순간 놀라서 소리쳤다.
월요는 어색한 표정으로 이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다.
“너 풍령이야? 얼굴은? 너의 얼굴이 왜 월요의 얼굴이 되어 있는 거냐? 얼굴을 바꿔치기한 거야? 네가 풍령의 얼굴을 바꿔치기했느냐! 이 여자는 풍령이지? 풍령 맞지!”
몽태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부우웅!
멀지 않은 곳에서 파란빛이 다가오고 있었다.
몽태는 경악하며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이위, 이 여자가 풍령인가? 빨리, 빨리 가면을 해제해 주게. 얼른!”
몽태는 미칠 것 같았다.
이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걸어왔다.
“이 여자는 월요예요, 이 여자는 월요라고요!”
“이위 오빠!”
월요는 이위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망연하게 소리쳤다.
“이제 알겠다, 이제 알겠어. 네가 풍령을 데려가서 얼굴을 바꿔치기한 것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였군. 월요는 죽은 지 오래지. 역시 너는 강시술을 할 줄 몰랐던 거야. 너는 그저 풍령을 데려가서 월요랑 얼굴을 바꿔치기하고, 매일 풍령을 괴롭히고, 그녀를 이용해서 나를 괴롭혔던 거였어.”
몽태는 미칠 것 같았다. 온몸에 힘이 풀렸다.
“얘기했잖아! 그 여자는 월요야! 그 여자는 월요라고!”
이위가 눈을 벌겋게 뜨고 소리쳤다.
“이위야, 나의 사제야. 부탁이다, 풍령을 구해줘, 부탁하마!”
몽태는 파란빛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자신이 기관을 깨부쉈으니 멈출 방법이 없었다.
풍령은 곧 자신의 실수로 죽게 될 것이다.
몽태는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그 사실을 빨리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너무 어리석기만 했다.
“무릎 꿇어!”
이위가 소리쳤다.
털썩!
몽태는 망설임 없이 바로 꿇었다.
이위가 다가오고 있었다.
몽태는 반항하지 않았다.
쿵!
이위가 힘껏 몽태의 몸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순간 날아간 몽태의 몸이 원형 격투장 벽면에 부딪혔다.
원래 몸에 중상을 입고 있던 몽태는 이번 공격으로 인해 다리가 부러졌다.
푸허헉!
몽태는 피를 토하며 겨우 숨을 쉬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일어나 입을 열었다.
“풍령을 구해주게, 빨리!”
“이위 오빠!”
월요는 어벙한 표정으로 이위를 바라보았다.
이위는 초조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 월요의 가면 위에 올렸다.
손바닥이 미끄러웠지만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바닥에 온 힘을 다했다.
철컥!
가면이 떨어져 나갔다.
펑!
가면은 버려졌고, 파란빛이 월요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이위 오빠!”
월요는 망연하게 이위를 바라보았다.
“월요야, 나의 월요야!”
이위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월요를 꽉 끌어안았다.
“나의 풍령이다, 그 아이는 나의 풍령이야! 이위, 대체 풍령을 얼마나 더 괴롭힐 셈이냐? 이위!”
피바다 속에 쓰러져 있는 몽태가 분노의 어조로 소리쳤다.
원형 격투장 외부에 숨어 있던 고해의 눈은 이위가 버린 청동 가면을 향해 있었다.
‘풍령의 의식은 이십 년 동안 최면에 걸려서 이젠 완벽하게 월요의 의식으로 채워졌어. 자신이 풍령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월요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이위는 이십 년간 풍령에게 최면을 건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최면을 건 걸까?
이위는 누가 월요이고, 누가 풍령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최소한 몽태가 풍령에게 죄를 진 것은 분명하네.’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더 이상 지켜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곧 소식을 들은 모든 대봉방 제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악인들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