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정상에서
* * *
고해는 귀빈 구역으로 뛰어갔다.
사방이 이미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귀빈석은 거리가 멀기에 짧은 시간 안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고해는 먼저 대장간에 들어섰다.
“다 완성되었나?”
고해가 침착하게 물었다.
“예? 대인, 어찌 이리 빨리 오셨습니까? 내일 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저, 저 지금 절반밖에 완성을 못 했는데,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
대장장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내가 준 순서대로 제작한 것은 맞지?”
“물론입죠!”
“그럼 됐네. 이리 주게.”
“네!”
고해는 만들어진 동관을 작은 공간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대장간을 나와 다음 대장간으로 향했다.
상관흔이 입구에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고해는 고개를 돌려 상관흔을 쳐다보았다.
“어느 정도 되었어? 내가 요구한 순서대로 만든 거지?”
“네, 대인. 절반 정도 만들어졌는데,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 오시는데 무탈하셨습니까?”
“됐어, 동관은 어디에 있나?”
동관을 챙긴 고해는 상관흔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가는 길 내내 대봉방 제자가 얼마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없지?’
상관흔은 호기심을 참으며 고해와 함께 신속하게 악인곡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고해는 악인곡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옆에 있는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악인곡는 원래부터 안개로 뒤덮였지만, 오늘은 날씨로 인해 안개가 더욱 짙었다.
산 정상에 올라간 고해는 손을 흔들었다.
화르르!
대량의 동관이 영패의 작은 공간에서 나왔다.
동관을 본 상관흔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관의 양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많았다. 아마 자신이 있던 곳 외에 다른 대장간에도 부탁한 것 같았다.
“같이 조립해. 내가 하는 걸 따라 하면 된다.”
고해가 말하고는 동관을 잡았다.
“예!”
상관흔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 답했다.
고해는 먼저 도자기 꽃병을 꺼내 가장 굵은 동관을 꽂아 넣었다.
“대인, 이 꽃병으로 뭘 하시려고요?”
상관흔이 망연하게 물었다.
“꽃병은 도자기 재질이니 절연체다. 전류가 흐르는 걸 막아주지.”
고해가 말하고는, 또 꽃병을 꺼내어 산 위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동관을 서로 연결하여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세웠다.
아랫부분은 산골짜기에 걸쳐놓았고, 그 위는 쇠사슬로 묶어놓았다.
그렇게 산골짜기 상공에서 수직으로 산골짜기 내부로 이어졌다.
“대인, 혹시 번개가 산골짜기에 맞을 수 있게끔 하여 저희들 봉인을 풀어주시려는 것입니까?”
상관흔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래. 산골짜기로 가자!”
“이, 이게 먹힐까요?”
상관흔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피뢰침이라는 것이다. 지금 한창 천둥 번개가 치고 있으니 언젠가는 이곳에 떨어질 것이다.”
상관흔은 고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번개가 정말 저곳에 떨어질까?
“대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도 된다. 일단 악인곡로 가자!”
산골짜기 입구에 도착한 고해는 검은 망토를 벗고 다시 상관흔에 의해 압송된 모습이 되었다.
“문 열어!”
상관흔이 소리쳤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경비병은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는 막 잠에서 깬 듯했다.
“방주님의 명이다.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이따가 나만 나올 거니까, 네가 문 열어주지 않아도 돼!”
“알았어. 비 오는데 더럽게 들락날락하네, 귀찮게.”
경비병이 투덜거리며 기관을 조정하자 파란 광막이 사라졌다.
고해와 상관흔은 산골짜기 내부로 들어섰다.
경비병은 다시금 파란 광막을 조정하고는, 골짜기 내부를 향해 욕하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고해와 상관흔은 산골짜기에 진입했다.
수많은 악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인, 하늘에서 내려온 쇠사슬은 대인께서 한 것입니까?”
고선무가 뛰어오며 물었다.
“그렇다. 모든 사람들을 소집하여 내가 말하는 대로 쇠사슬을 묶어놓고 봉인 해제할 준비를 하자!”
“예!”
고선무가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고해는 또다시 대량의 쇠사슬을 꺼내 사람들에게 묶는 방법을 알려주고, 또 다른 쇠사슬과 연결하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사대 부장은 고해의 설명을 듣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번개요? 종주도 감히 못 하는데, 아니, 원영경의 수련자도 감히 번개랑 연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는 아직 사람의 몸이고 수행도 깊지 않은데, 이건 그냥 죽으려는 것 아닙니까?”
진천산이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도파도 눈을 깜박이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대인, 번개의 힘은 저희가 견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고선무와 상관흔은 아무 말 없이 고해가 설명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도 걱정이 가득했다.
번개를 몸으로 버틴다고?
그게 말이 돼?
고해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걱정 마라, 우리는 총 삼천육백 명 정도이고, 내가 알려준 쇠사슬 묶는 방법은…….”
고해의 설명이 길어졌다.
“……!”
“……!”
“……?!”
“?!?!”
“후우우우.”
한숨을 내쉰 고해가 다시 말했다.
“좌우간 너희는 걱정할 필요 없다. 그냥 한 가지만 알아두어라. 번개를 이용한 이 실험은 내가 오래전에 이미 해본 바가 있다. 후천경에서 수련할 때 해봤지.”
그제야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해가 자기 몸으로 직접 해봤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거면 되었다.
다른 건 어차피 말해도 모르니까.
“때가 되면 내가 가장 먼저 할 것이다.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고, 지금부터는 내가 하는 말대로 쇠사슬을 묶어라. 명심해라. 착오를 범하면 정말 죽는다는 걸.”
“예!”
사대 부장이 동시에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쇠사슬 한쪽 끝부분을 상공에서 내려온 쇠사슬에 연결하고, 다른 한쪽 끝부분을 지면에 꽂아두었다.
그 이후, 삼천 명의 악인들이 설명을 듣고 식은땀을 흘렸다.
“저, 정말 번개를 유인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저희 모두 번개 맞고 죽는 건 아니겠죠?”
“죽으려는 건 아니겠죠?”
모든 악인들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여러 말 하지 않고 자신이 맨 앞에 가서 섰다. 혹시라도 번개를 맞으면 제일 먼저 고해가 맞게 될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악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젠장, 아직까지 한 번도 번개를 맞아본 적 없는데, 번개에 맞으면 어떤 느낌일까?”
“내가 여태껏 천도해에서 사는 동안 자신이 직접 번개를 유인해 맞는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 번개가 뭐 오란다고 오나?”
“번개야 이리 오거라! 내가 기다리고 있다! 대인께서 만약 나를 여기에서 구해낸다면 난 무조건 대인을 따를 것이야!”
악인들은 끊임없이 말하며 자신을 격려하고 공포심을 다스렸다.
지금까지 목숨을 걸고 싸운 것도 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번에는 죽으려고 작정하는 것 같았다.
고해가 이끌어서 하는 게 아니면 누가 또 이런 미친 짓을 하겠는가?
후우우우!
하늘에서는 구름이 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늘을 보던 고해가 침착하게 말했다.
“곧 올 것이다. 다들 준비하거라!”
산골짜기가 조용해졌다.
그때, 산골짜기 밖에 있던 경비병이 거처에서 걸어 나왔다.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 말이지. 사형이 분명 악인을 데리고 떠났는데, 왜 다시 데리고 돌아온 거지? 대체 뭔 꿍꿍이야?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경비병은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산골짜기 입구로 걸어간 그는 파란 광막을 사이에 두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뭐, 뭐야?”
경비병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천여 명의 악인이 모두 모여서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지?
“산 위에 뭐라도 있나?”
그때였다.
쾅!
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번개의 불빛이 온 천지를 밝히는 듯했다.
경비병의 눈이 커졌다.
거대한 번개가 마치 용처럼 꼬리를 틀며 악인곡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번개가 산 정상에 있는 기둥을 때렸다.
쩌저저저적!
번개의 푸른빛이 쇠사슬을 타고 악인곡으로 흘러내렸다.
산골짜기 안에 있는 삼천여 명의 악인이 조명처럼 밝아지며 한순간 산골짜기를 밝게 비췄다.
“뭐, 뭐야?”
경비병의 얼굴이 굳어졌다.
우르릉!
번개가 다시 떨어졌다.
“으아아!”
“아아아악!”
악인곡에서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놈들이 혹시 반역하는 것 아냐?”
한 무리의 경비병이 순간 방에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사제, 무슨 일이냐? 악인곡에서 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진 것이냐?”
경비병 무리 중 한 명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모든 것은 목격한 경비병은 산골짜기 내부를 가리키며 얼굴이 질려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입을 벌리고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마치 말문이 막힌 사람 같았다.
모든 경비병은 그가 가리킨 산골짜기를 바라보았다.
악인곡 내부에는 악인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온몸이 새까맣게 타버렸으며, 몸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저 사람들, 번개 맞은 것 아냐?”
“모두 죽은 건가?”
“가자, 들어가 보자!”
경비병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때였다.
탁탁탁탁!
맨 앞에 있던 악인 한 명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천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해가 첫 번째로 힘겹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폭발할 것 같은 기운이 들끓었다.
지지직!
그의 몸에서 전기가 흐르듯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선천경 제육단계를 돌파한 건가? 위험했어. 이번 번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했는데.’
고해는 천천히 일어서면서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지직! 지지직!
그 뒤에 있던 진천산, 도파, 상관흔 등 한 무리의 금단경 수련자들이 뒤이어 마비 속에서 깨어났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허허허허허!”
“히히히히히히!”
악인곡에서 온갖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귀신성의 지옥처럼 공포스러웠다.
막 안으로 들어가려던 경비병들은 그 웃음소리를 듣고 닭살이 돋았다.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골짜기 안을 바라보았다.
악인곡에서 귀신의 웃음소리와도 같은 음산한 웃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흘러나왔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경비병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악인들이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 아냐? 맞아, 번갯불! 저들이 번개를 맞고 봉인을 해제하면…….”
“이제 어떡할까요?”
“얼른 들어가서 전부 죽여버려!!”
경비병들이 악인곡으로 들어갔다.
“일어서는 놈들을 전부 죽여라!”
스윽!
장검이 두 악인의 목을 베려고 했다.
눈앞에서 날카로운 칼이 휘날리던 그 순간!
쿡! 쿡!
두 악인은 각자 오른손으로 장검을 꽉 잡았다.
츠으윽.
거대한 뇌전류가 칼을 통해 두 경비병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경비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두 악인은 순식간에 두 경비병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으악!”
골짜기 밖의 경비병들은 그 소리를 듣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어떡하지?”
“괜찮아! 가면을 썼으니 나오지는 못할 거야! 사방에 파란 광선이 있는데 어떻게 나오겠어?”
“빨리 방주님께 알려라!”
악인들은 서로를 살펴보았다.
도파가 절벽을 향해 뛰어가더니 갑자기 절벽에 몸을 부딪쳤다.
쿠앙!
금단경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도파의 몸이 바위 하나를 부숴버렸다.
절벽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다른 악인들도 하나둘 일어서서 진기를 내보내며 절벽에 몸을 부딪쳤다.
쾅! 쾅!
절벽이 부서지면서 순식간에 작은 굴 하나가 만들어졌다.
일반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악인들이 절벽을 들이받는 광경은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전부 토해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