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혈투
* * *
한편, 몽태는 피를 토하면서 거의 죽어가는 모습으로 풍령을 바라보았다.
풍령은 조금씩 다가가면서 고통스러운 표정를 지었다.
고해와 이위는 서로 싸우면서 이 둘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풍령! 넌 잊었어? 우리 사람 없는 곳으로 가서 함께 행복하게 살기로 했었잖아!”
“전 월요입니다. 이위 오빠의 여자란 말입니다!”
풍령은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며 말했다.
“기억해 낼 수 있을 거야! 넌 풍령이야! 풍령이라고! 맨날 내 뒤를 쫓아다니던 거 기억 안 나? 내가 너의 부군이라고!”
“전 월요……!”
풍령은 아픈 머리를 감싸고 인정하기 싫은 듯 고개를 저었다.
풍령은 눈을 깜빡이면서 몽태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몽태는 어디서 힘이 났는지 풍령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악!”
풍령은 화들짝 놀라면서 뒷걸음치려고 했다.
그러나 몽태는 손을 놓지 않았다.
푸헉!
몽태는 진붉은 피를 토해냈다.
풍령은 자신의 손에 피를 토해낸 몽태를 보면서 화들짝 놀랐다.
“풍령아! 미안하다! 나 안 될 것 같아! 넌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몽태가 죽어가듯이 말했다.
“안 돼! 안 돼! 죽으면 안 돼!”
풍령이 다급히 말했다.
몽태의 눈까풀이 떨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풍령의 손을 잡고 있던 몽태의 손도 힘이 빠지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간, 풍령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돼! 안 돼! 죽으면 안 돼! 상공! 상공!”
풍령은 몽태의 오른손을 잡고 울면서 다급하게 말했다.
몽태는 숨을 거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얼른 일어나요! 저 이제 기억났습니다. 얼른요! 흑흑흑, 저 풍령입니다. 상공, 저 픙령이라고요.”
풍령은 가슴이 찢어질 듯 울면서 말했다.
바로 이때, 몽태의 몸이 마구 떨리면서 천천히 눈이 떠졌다.
“풍령! 기억난 거야?”
몽태가 말했다.
풍령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몽태를 내려다보았다.
“흑흑흑흑, 상공!”
풍령은 몽태의 몸에 기대면서 눈물을 흘렸다.
“풍령아! 기억났다니 다행이구나!”
몽태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풍령을 안았다.
* * *
쿵! 콰과광!
저 멀리 안개 속에서 하늘이 터질 듯한 굉음이 울렸다.
“으악!”
겁에 질린 이위의 비명 소리도 들려왔다.
주변에 있던 도박꾼 수련자들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다.
이위는 몽태와의 혈투에서도 많이 다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원영경이었다.
원영경인 이위가 선천경에 당하고 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산봉우리에 있던 구공자는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정말 천도생사국이란 말인가? 천도생사국을 저자가 어떻게……?”
“구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한 부하가 궁금한 듯 물었다.
구공자가 곧 누군가를 떠올리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어쩐지 눈이 익은 모습이라 했어! 역시 그놈이었구나! 구오도에서 그렇게 많은 수련자들이 찾아 나서도 찾지 못한다 했더니, 여기에 숨어 있었던 거야? 역시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지!”
이위의 칼과 맞붙으면서 고해의 천도(天刀)도 위력이 약해졌다.
그럼에도 아직은 이위와 맞서서 밀리지 않았다.
이위는 천도 한 자루를 끊어버렸으나 고해의 천도는 끊임없이 나타났다.
고해의 두 눈이 날카로워지더니 온몸에서 별빛과 같은 점들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바둑알이 춤추는 것 같았다.
구공자는 천도생사국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해는 달랐다.
고해는 어디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 완전히 터득했고, 자유자재로 진을 움직일 수 있었다.
순간, 백 자루가 넘는 천도가 이위를 향해 돌진했다.
“으아악!”
한순간 비명과 함께 이위에 몸에 수많은 칼자국이 생기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고해가 친 진이었다.
고해는 이위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으나 이위는 고해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조차 없었다.
천 명이 넘는 악인들도 고해의 뒤에서 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악인들은 고해의 실력을 인정하고 충성을 바쳤지만, 솔직히 고해의 능력을 높게 쳐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악인들은 더 이상 고해를 얕잡아 볼 수 없었다.
원영경의 강자가 고해 앞에서! 그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천도에 당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위의 비명 소리를 들은 악인들은 고해를 보면서 침까지 삼켰다.
고해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슥슥슥슥슥!
무수히 많은 천도가 이위의 몸을 찌르면서 피가 여기저기 튀었다.
장검까지 놓쳐버린 이위는 궁지에 빠져서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았다.
“월요! 우리 애기!”
이위는 처량한 표정으로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해는 이위를 응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쾅!
천도생사국이 깨지면서 구름도 물러갔다.
고해의 거대한 주먹이 이위의 몸을 가격했다.
펑!
이위는 살이 찢기고 피가 터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슥!
“선천경이 원영경을 이겼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마지막 순간, 고해는 이위를 죽이지 않았다.
스으으윽.
악인들이 앞사람에게 대고 있던 손을 뗐다.
진기가 다시 악인들의 몸으로 들어가면서 악인들도 능력을 회복했다.
그들은 모두 고해를 경이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대인!”
고선무가 가슴 벅찬 목소리로 고해를 불렀다.
하지만 고해는 한시도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이위가 살아 있다. 고문을 해서라도 가면을 벗는 방법을 알아봐라.”
“예!”
악인들이 흥분해서 대답했다.
가면! 드디어 가면을 풀 수 있는 건가?
이위는 몽태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그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위는 풍령이 몽태의 몸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위가 말했다.
“월요! 우리 월요!”
몸태의 몸에 엎드려 있던 풍령은 고개를 돌려 이위를 보더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월요! 우리 월요야!”
이위가 처량한 웃음을 지으며 불렀다.
풍령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울면서 말했다.
“이위 오빠, 이위 오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몽태가 말했다.
“풍령, 넌 풍령이다! 속지 마, 풍령아!”
“난 풍령이야!”
풍령이 머리를 감싸고 말했다.
“아니야! 넌 월요야! 우리 월요라고!”
이위가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월요라고?”
풍령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니야! 넌 월요가 아니다! 내 말 들어! 월요는 죽었어!”
몽태가 말했다.
풍령이 머리를 감싸면서 말했다.
“내가 풍령이야? 월요야? 풍령? 월요?”
“우리 애기! 네가 누구든 괜찮아! 그러니 아파하지 마!”
이위가 슬프게 말했다.
몽태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면서 흉악한 표정으로 이위를 노려보았다.
“네가 우리 풍령이를 이렇게 만들었어! 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말을 마친 몽태는 이위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더니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이위를 내려다보았다.
“안 돼! 우리 이위 오빠 죽이지 마! 안 돼!”
풍령이 겁에 질린 채 소리 질렀다.
“풍령! 네가 착각하고 있는 거야! 이위가 죽어야만 네가 풍령으로 돌아올 수 있어!”
몽태가 말했다.
척!
순간, 고해가 몽태의 앞을 가로막았다.
“몽 타주, 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럼 이제 저와의 약속을 지킬 차례 같습니다만. 가면 벗는 방법을 찾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몽태는 고해를 보며 안면 근육을 씰룩였다.
그때 뒤에서 풍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공, 저 기억났어요. 저는 월요가 아니라 풍령입니다. 월요는 이미 죽었잖아요!”
몽태는 풍령을 보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풍령, 이제 기억 난 거야? 풍령!”
“네!”
풍령은 울고 웃으면서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몽태는 풍령을 와락 끌어안았다.
“풍령, 기억하고 있었구나, 다행이야!”
“상공!”
두 사람은 꽉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한쪽에서 그 모습을 본 이위는 처량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는 절망과 답답함, 그리고 단념이 묻어 있었다.
마음이 죽은 것보다 더한 슬픔은 없었다.
“하! 하! 월요야!!”
이위는 죽을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윙!
이위의 몸에서 형광색 빛이 나오더니 칼에 찔린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피부는 점점 노화되었고, 머리도 순식간에 백발이 되었다.
상관흔이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소리쳤다.
“대인, 이위가 원영을 녹이고 있습니다. 죽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앞으로 달려가더니 손가락으로 이위를 찔렀다.
쿡쿡쿡!
이위는 몸에 열댓 개의 구멍이 뚫리면서 순식간에 기절하고, 약한 호흡만 남았다.
몽태는 풍령을 끌어안고 있었으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는 풍령이 없어지기라고 할까 봐 더욱 힘주어 풍령을 끌어안았다.
“어떠냐?”
고해가 낮은 소리로 상관흔에게 물었다.
상관흔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이위의 목숨은 구했으나, 이위가 죽으려는 마음이 워낙 강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식물인간이라도 된단 말인가?”
고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다른 방법은 없어?”
상관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습니다. 마음이 죽은 사람을 구할 방법은 스스로 깨어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강제로 외력을 가하면 더 빨리 죽을 수도 있습니다.”
몽태의 품에 안긴 풍령도 몸을 덜덜 떨었다.
몽태는 더 세게 끌어안았다.
고해는 몽태를 돌아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죽은 척하더니 지금은 다 나은 것 같았다.
“고 타주, 정말 미안하네. 나도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이렇게 되었네. 가면은 오십 년 후에 자연스럽게 벗겨질 거야.”
몽태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악인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가면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다니?
고해는 악인들을 위로하지 않고 깊은 한숨만 내쉬면서 몽태한테 말했다.
“오십 년? 저는 못 기다립니다!”
“뭐?”
몽태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가면을 풀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고해는 고개를 돌리고는 더 이상 몽태를 보지 않았다.
“뭐라고?”
몽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악인들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정말입니까? 대인, 방법이 있습니까?”
고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몽태의 눈동자가 순간 더욱 세게 흔들렸으나 반대로 악인들의 눈빛은 번쩍이고 있었다.
조금 전의 혈투를 본 악인들은 고해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해만큼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가면을 어떻게 벗긴단 말인가?
고해는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원형 격투장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고해는 무너진 돌덩어리를 하나씩 치웠다.
“대인, 우리가 돕겠습니다.”
주위에 있던 악인들이 말했다.
“아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악인들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한쪽에서 몽태는 풍령을 끌어안고 고해를 응시했다.
자신도 풀지 못하는 가면을 고해가 어떻게 푼단 말인가?
‘절대 풀 수 없어!’
고해는 조심스럽게 돌멩이들을 치웠다. 그리고 한순간 고해의 눈이 번쩍이더니 이내 엄숙해졌다.
그가 조심스럽게 주변에 묻은 흙을 털어내자, 가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몽태는 그 가면을 알아보았다.
“아니, 그건 풍령 얼굴에 씌웠던 가면 아닌가?”
몽태와 악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도박꾼 수련자들도 고해의 행동을 예의주시했다.
고해는 조심스럽게 가면을 들었다.
고선무, 진천산, 도파, 상관흔은 빠르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비록 가면 위에 많은 흙이 묻어 있었으나 손자국은 선명하게 보였다.
“엇? 이 손자국들은?”
진천산이 놀라서 말했다.
고해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비록 희미해지긴 했으나, 이건 이위가 남긴 손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