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가면을 벗다
상관흔의 눈이 번쩍거렸다.
“이위가 남긴 거라고요? 이걸로 가면의 비밀을 풀 수 있을까요?”
진천산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지만 여기에 열한 개 자국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먼저입니까?”
고해가 손가락 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세 개는 첫 번째 진기의 자국이고, 이 네 개는 두 번째 진기, 이 네 개가 마지막 진기의 자국이다.”
“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멍해졌다.
그때 상관흔이 뭔가를 발견하고 물었다.
“대인, 가면에 기름이 묻은 것 같은데, 무슨 기름입니까?”
고해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만든 접착제다. 이런 접착제의 특성은 공기와 만나면 굳어버린다는 거다. 하지만 밖은 금방 말라도 안은 늦게 마르지.”
다른 사람은 고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선무는 눈빛을 반짝이며 고해의 말을 이해했다.
“이위는 그걸 모르고 가면을 잡아서 이 손자국을 만들었던 것이군요. 그리고 두 번째로 손을 댔을 때는 좀 마른 상태여서 자국이 조금 더 희미하고, 마지막으로 손을 올렸을 때엔 아주 옅게 나타났겠지요.”
고해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상관흔도 감탄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대인!”
고해가 냉소를 지으며 도파를 불렀다.
“도파!”
“예!”
“원형 격투장 창고에 가서 청동 가면을 들고 와! 대봉방 부하들 얼굴에 씌우고 실험해 봐야겠다!”
“예!”
악인들이 주먹을 퍽퍽 치며 감격스러워했다.
이제 곧 가면을 벗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듯했다.
몽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해를 보더니 이내 사색에 잠겼다.
도파가 수많은 청동 가면을 들고 왔다.
“안 돼! 나한테 씌우지 마!”
대봉방 부하가 소리쳤다.
“철컥!
고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가면을 씌웠다.
“싫어! 안 돼!”
대봉방 부하들은 겁에 질린 채 소리쳤다.
“움직이는 놈들은 전부 기절시켜!”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네!”
퍽!
도파가 손을 쓰자 소리를 지르던 대봉방 부하들이 기절했다.
우윙!
실패하게 되면 폭발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고해는 몸에서 진기가 내보내더니 이내 고해를 보호해 주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고해에게로 집중되었다.
악인들의 심장은 터질 것처럼 빨리 뛰었고 마른침까지 삼켰다.
고해는 몽태가 알려준 원리에 따라 손가락 세 개를 가면에 가져갔다.
우윙!
진기가 세 갈래로 나뉘면서 가면으로 흘러갔다.
스르르륵-
가면에서 미세한 소리가 났다.
“첫 번째 자리는 정확합니다.”
도파가 흥분하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고해는 이번에 손가락 네 개를 고정된 자리에 올렸다.
스르르르르륵-
가면에서 또 미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도 정확합니다.”
진천산이 흥분해서 말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몽태도 숨죽이고 지켜봤다.
산봉우리에 있던 사람들도 저 악인들이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고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 자리를 바꾸었다.
숨을 고른 그는 진기를 흘려보냈다.
우윙!
주변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주르륵!
꽤 큰 소리가 나더니, 청동 가면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스르르륵!
순간, 모든 악인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조용하던 원형 격투장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고, 악인들은 기뻐서 뛰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극도로 흥분했다.
“미쳤나?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산봉우리에 있던 수련자들은 악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고해 근처에 있던 몽태는 복잡한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운이 좋았군. 우리가 해냈어. 이제부터 순서대로 벗겨주겠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 대인!”
모두가 밝은 소리로 대답했다.
고해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첫 번째는 고선무였다.
고해는 조금 전에 하던 대로 손을 대고 있었다.
스르륵!
고선무의 가면이 뚝 떨어졌다.
고선무는 기쁨 가득한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비켜! 비켜!”
진천산은 기뻐하는 고선무를 밀치며 말했다.
스르르르륵!
진천산의 가면이 뚝 떨어졌다.
“비켜봐!”
도파는 진천산을 밀고 고해 앞으로 다가갔다.
고해는 진천산을 보면서 말했다.
“진천산, 가서 대봉방 구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불러와! 대봉방 부하들도 끌고 오너라!”
“네!”
진천산이 대답했다.
진천산이 물러나고 곧바로 도파의 가면을 풀었다.
도파 다음에는 상관흔 차례였다.
사대 부장의 가면이 풀린 후 백장들의 차례였다.
백장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고해가 가면을 풀어주기를 기다렸다.
“흑흑흑! 풀렸어! 풀렸어!”
악인들은 가면이 풀리자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즐거워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봉인 해제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봉인 해제를 넘어 가면까지 벗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고해가 준 것이었다.
악인들은 두려움, 존중, 숭배를 넘어 고마운 눈빛으로 고해를 쳐다보았다.
몽태는 풍령을 안고 휴식을 취하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고해, 제법이구나.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가면을 풀다니. 분명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야.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몽태는 눈을 끔뻑이며 고해를 지켜보고 있었다.
고해는 확실히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벗기는 것과 악인들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악인 스스로가 가면을 벗는 것은 염연히 달랐다.
감격스러워하는 악인들의 눈빛을 보면 고해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 *
대봉방 방내 구역.
대봉방 부하들을 감시하던 오백 명의 악인들은 저 멀리에서 울리는 굉음을 듣고 어딘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가면을 벗을 수 있을까?”
“모르겠어. 이위가 바보도 아니고 풀어주겠어?”
“이위는 원영경이라고!”
“대인께서 이위를 이길까?”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 중에 대인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그렇지만 원영경! 원영경이라고!!!”
모두가 답답한 마음이었다.
“봐봐! 누군가 오고 있어!”
한 악인이 원형 격투장 쪽을 보며 말했다.
악인들은 저 멀리에서 걸어오는 진천산을 발견했다.
악인들은 무기를 들고 진천산을 막아섰다.
진천산이 버럭 소리쳤다.
“뭐야? 내가 누군지 몰라?!”
악인들은 진천산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부장님? 부장님의 목소리야!”
“부장님 맞습니까? 가면 벗으셨습니까?”
“가면을 벗으셨다고요?”
악인들은 눈을 번쩍 뜨고 놀라서 소리쳤다.
“뭘 봐! 얼른 애들을 끌고 대인께 가서 너희들의 가면도 풀어! 서둘러!”
진천산이 소리 높이 말했다.
“네!!”
악인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 * *
악인들은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천여 명의 대봉방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누가 움직이기라도 하면 혼내주려고 했다.
한쪽에서는 악인들이 봉인 석대를 가져와 대봉방 부하들의 능력을 봉인해 버렸다.
“너도 이 기분을 느껴 봐! 하하하하하!”
악인들이 바빠졌다.
고해는 악인들의 가면을 직접 하나씩 풀어주었다.
마지막 악인의 가면을 풀었을 때, 고해의 앞에는 커다란 거울이 놓여 있었다.
고해는 거울 앞에 서서 오른손을 자신의 가면 위에 올렸다.
모든 악인들은 두 손을 모으고, 자신들이 믿고 숭배하고 존경하는 대인의 얼굴을 보려고 기다렸다.
주변에 있던 도박꾼 수련자들도 도대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했다.
몽태 역시 고해를 응시하고 있었다.
스르르르르륵!
고해의 가면이 벗겨졌다.
한 성숙한 남자의 모습이 모든 사람의 앞에 공개되었다.
“아니? 저 사람은?!”
산봉우리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흐어어억!
산봉우리에 있던 수련자들은 주머니에서 한 장의 초상화를 꺼내 고해의 얼굴과 비교해보았다.
“고해다! 고해야!”
한 도박꾼 수련자가 소리쳤다.
산봉우리 위는 폭발이 일어난 듯 소란스러웠다.
정말 고해라고?
자신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고해가 악인왕이었다니!
“찾았어! 찾았어! 고해를 찾았어!”
“고해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하하하!”
도박꾼 수련자들은 눈이 충혈될 정도로 고해를 노려보았다.
이번에 구오도에 온 이유도 고해를 찾는 것이었다.
선천경의 그 고해 말이다.
그 고해한테 금반도가 있었다.
수련자들은 고해의 정체를 알고 바빠지기 시작했다.
스으윽.
고해의 얼굴이 나타나자 근처에 있던 수련자들이 소란을 피웠다.
귀빈 구역에 있던 수련자들도 왁자지껄한 소리를 듣고는 전부 방 안에서 나왔다.
“고해가 나타났다!!!”
“고해를 찾았어! 빨리 와!”
“원형 격투장으로 와! 여기 고해가 있어!”
발자국 소리와 환호 소리,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전부 원형 격투장으로 향했다.
풍령을 끌어안은 채 그 소동을 지켜보고 있던 몽태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무슨 상황이지?
고해가 무슨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인가?
진천산과 고선무는 쓴웃음을 지었고, 나머지 악인들은 전부 어리둥절해 있었다.
대체 대인이 누구기에 조용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소란을 피우는 거지?
수련자들은 소란만 피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불을 켜고서 칼을 빼 들고 고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로 고해야?”
귀빈 구역에 있던 빨간 옷을 입은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다른 사람이 곧바로 그를 제지했다.
“형님! 잠시만요!”
빨간 옷을 입은 남자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뭘 기다려? 저놈이 고해라며? 붙잡아야지!”
“형님이 안 계실 때 고해가 원영경인 이위를 죽였습니다. 아! 아직 숨이 붙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빨간 옷을 입은 남자가 멈칫하더니 불신의 눈빛으로 동생들을 돌아다보았다.
“무슨 헛소리야? 선천경이 원영경을 죽이다니?”
“정말입니다! 여기 있던 사람들 다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달려왔다.
그러나 고해의 잔혹함을 본 수련자들은 망설였다.
저들을 잘못 건드렸다가 오히려……?
망설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일부는 앞뒤 분간도 않고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삼천여 명의 악인들은 재빨리 고해를 둘러싸고 보호했다.
그들에게는 고해를 해치려는 자들이 바로 원수나 마찬가지였다.
악인들의 중간에 서 있던 고해는 싸늘한 눈빛으로 수련자들을 응시하며 비웃었다.
더 이상 도망만 치던 어제의 고해가 아니었다.
“고해! 금반도가 아직도 너의 손에 있지?”
한 수련자가 소리 높이 외쳤다.
누군가 소리치자 전부 멈춰 서서 고해의 대답을 기다렸다.
맨 앞에 있던 수련자는 흉악한 악인들의 모습을 보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고해의 입에서 없다,라는 말이 나왔으면 싶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금반도? 그래, 나한테 있지!”
“뭐?”
수련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갖고 싶어? 그럼 가지러 와!”
고해가 말하고는, 작은 영패 공간에서 옥함을 꺼내 들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옥함을 열더니 이내 빛이 반짝거리는 금반도를 보여주었다.
금반도를 본 수련자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일부 사람들은 흥분한 와중에도 망설였다.
고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만약 먹어 치우기라도 한다면 싸워도 의미가 없잖아!
고해는 차가운 눈빛으로 모든 사람들을 응시했다.
금반도를 자랑하려고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자랑할 나이도 지났다.
그럼에도 금반도를 보여준 이유는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뺏는 놈이 임자다!”
“빼앗아라!”
무수히 많은 수련자들이 고해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