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금각
몽태가 웃으며 그를 반겼다.
“금각 방주님이셨군요!”
금각 방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몽태 선생의 말에 따라 나와 내 동생 은각이 수만 명의 수련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이번 싸움에 참여하겠다는 맹세도 받았습니다. 금반도를 뺏은 놈이 임자하기로 했고요.”
“그래요?”
“하하! 서로 잔혹하게 싸우지 말고 기회를 봐야지요.”
“굉장히 빠르게 처리하셨군요.”
“나와 내 동생도 원영경을 얻고 어제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몽 선생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진을 깨러 들어갈 뻔했지 뭡니까?”
금각이 어깨를 으쓱하고 웃었다.
“허허! 하마터면 이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뻔했습니다. 몽 선생의 말대로 근처에 있는 수련자들을 모으니 전부 고해를 잡고 금반도를 뺏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하더군요.”
“금각 형제가 고해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주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들도 혼란한 틈을 타서 금반도를 빼앗으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 금각 방주님께 더 많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 형제가 무조건 금반도를 얻을 것입니다. 하하하! 구오도에 오자마자 이런 큰 선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하!”
금각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몽태가 넌지시 물었다.
“언제쯤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지금은 만 명 정도밖에 모으지 못했습니다. 고해의 계략이 대단하다고 들어서 이만 명 정도 모으면 시작하려 합니다.”
몽태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더 기다려요?”
“몽 선생, 궁금한 점이 있는데, 왜 저를 도와주는 거죠? 몽 선생과 고해는 일품당 식구 아닙니까? 고해가 몽 선생을 구해주었지 않습니까?”
금각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몽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변 악인들의 시선을 느낀 그는 풍령을 보듬고 금각과 헤어졌다.
금각은 몽태의 뒷모습을 보면서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군.”
* * *
대봉방 용귀전에서는 고해가 큰 탁자 앞에 앉아 있고 사대 부장이 앞에 서 있었다.
진천산이 밖의 상황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대인, 밖에 있는 놈들이 난동을 부리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곧 쳐들어올 것 같습니다.”
“어떤 놈들이냐?”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제가 영석을 주고 얻은 소식인데, 두 형제가 꾸미고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한 명은 금각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은각이라고 하는데, 둘 다 얼마 전에 원영경에 들었다고 합니다.”
“원영경에 든 지 얼마 안 된다고? 그것도 괜찮군.”
고해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진천산은 그런 고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대인, 우리가 왜 저놈들이 조직적으로 공격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까?”
“나는 그들을 닭 쫓던 개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다.”
“네?”
진천산이 생각지 못한 대답에 멍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고선무가 말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찾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대인, 이번에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저들이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강력한 경고를 날려야 합니다.”
진천산은 여전히 걱정이 많았다.
“그렇지만 둘 다 원영경이라 걱정됩니다.”
고해가 그 말에 조소를 지었다.
“지금 막 입문한 원영경일 뿐이다. 그 정도는 별거 없다. 내가 배치한 진이 저번보다 더 강력하니 그런 자들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
진천산은 고해의 말을 듣고서야 걱정을 덜어냈다.
고해도 그때쯤 화제를 돌렸다.
“원형 격투장은 좀 어떠냐?”
“대봉방 부하들이 하나같이 울고 있어서 우리 부하들이 절반 정도 죽여버렸습니다.”
진천산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천 명이 넘던 대봉방 부하들이 하루 사이에 절반 가까이 죽었다.
이게 무슨 도박일까?
“죽었으면 됐어!”
도파가 말했다.
상관흔도 머리를 끄덕거렸다.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대인께서 원형 격투장을 개장한 원인도 우리 원한을 풀어주려고 그러신 것이잖습니까?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죽었으면 그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수련하는 데 걸림돌이 되겠지요.”
그때 고해가 말했다.
“내일 대진에 나갈 때 표지판을 하나 걸거라.”
“어떻게요?”
“대진에 들어오는 자는 죽는다!라고 적어.”
“예!”
진천산이 힘차게 대답했다.
고해는 고개를 돌려 고선무, 상관흔, 도파를 보며 물어보았다.
“수색은 어떻게 됐느냐?”
고선무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구석구석 수색했는데 별로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도파 역시 고개를 저었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해가 상관흔을 쳐다보자 상관흔도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부 수색한 거 확실해?”
고해가 다시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고선무가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해가 한숨을 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찾은 곳은 대봉방 부하들이 몇십 년 동안이나 살았던 곳이다. 뭔가 있으면 대봉방 부하들부터 찾아냈겠지. 내가 수색하라고 한 곳은 대봉방 부하들도 가지 않았던 곳이야.”
도파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그렇지만 그런 곳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선무와 상관흔은 생각에 잠긴 듯 바로 부정하지 않았다.
고해가 말했다.
“내가 이 전적을 봤더니, 대부분 지역에 사람들의 발자취가 있더군. 그러나 한 곳! 딱 한 곳만 사람들의 발자취가 없다. 너희들도 아는 곳!”
모두가 고해를 바라보았다.
도무지 고해가 어딜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해가 그들을 보며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쓰레기 더미는 수색했느냐?”
“예?”
세 부장이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고해가 음침한 얼굴로 세 사람을 보며 말을 이었다.
“더러운 곳이면 피해도 된단 말이냐? 더러운 곳일수록 더 주의해야 한다. 기억해! 눈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너희들의 주관적인 정서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알겠느냐?”
“예!”
그제야 부장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자! 도대체 얼마나 더럽길래 너희들도 피하는지 직접 봐야겠다!”
고해가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고해 일행은 용귀전에서 나와 쓰레기 더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쓰레기 더미에 도착하기도 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뒤에 따라오던 악인들은 저마다 코를 막았다.
하지만 고해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 듯 가만히 서서 쓰레기 더미를 응시했다.
산골짜기에 있는 쓰레기 위로 무수히 많은 쥐가 기어 다녔다.
쓰레기 더미는 원형 격투장에서 온 시체와 백골들로 가득했다.
“대인, 우리가 예전에 먹었던 쥐들이 이겁니까?”
도파가 구토를 참아가며 말했다.
다른 악인들도 토할 듯한 얼굴로 쥐들을 보고 있었다.
고해가 산골짜기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를 정리해!”
“네?”
악인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해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여기 산골짜기에 있는 쓰레기들을 전부 옆에 있는 산으로 옮겨라.”
악인들은 울렁거림을 참으면서 끝내 머리를 끄덕거렸다.
쥐까지 먹은 사람들 아닌가.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다만 그 한순간이 힘들 뿐.
악인들은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쓰레기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쓰레기 더미를 건드리자 십 년 묵은 악취가 진동했다.
악취를 넘어 공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악인들은 악취와 공포를 참아가면서 쓰레기를 옮겼다.
수많은 악인들이 힘을 합치자 쓰레기가 빠른 속도로 옮겨졌다. 쥐들도 놀라서 도망쳤다.
산골짜기의 쓰레기가 다른 곳에 첩첩이 쌓였다.
파면 팔수록 점점 더 깊어졌다.
이 산골짜기가 이렇게 깊은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대인, 파도 파도 끝이 없습니다. 벌써 쓰레기 더미 네 개를 파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선무가 놀라서 말했다.
“계속 파라!”
고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악인들도 악취에 익숙해진 듯 더 열심히 쓰레기 더미를 팠다. 얼마나 깊게 팠는지 밑에 들어간 악인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땅을 파는 소리만 들렸다.
고해와 사대 부장이 산골짜기에 서서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면 팔수록 어둡고 깊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두운 곳에서 반딧불과도 같은 반짝거리는 빛을 볼 수 있었다.
“뭔가 보입니다.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산골짜기에서 기쁨의 환호가 들려왔다.
“계속 파! 계속!”
악인들은 더 빠르게 땅을 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점점 더 많은 빛이 반짝였다.
산골짜기 안에서 반짝이는 빛은 산골짜기 내부를 환히 비춰주었다.
악인들이 쓰레기 더미를 전부 옮겨갔다.
쓰레기를 치우니 화산구를 가린 듯한 거대한 덮개나 나타났다.
“대인, 여기 밑에 사람이 있습니다.”
순간, 밑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고해는 사대 부장과 함께 재빨리 다가갔다.
모든 사람이 덮개로 가려진 안을 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산구 같았다.
화산구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에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순간, 황금색의 꼬리가 마그마 위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눈부셔서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건…… 대지용맥(大地龍脈)? 용맥의 꼬리가 왜 여기에 있지?”
상관흔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고해가 그를 보며 반문했다.
“용맥(龙脉)의 꼬리?”
정예, 몽태, 윗대 일품당주, 송갑종주가 찾던 물건이 설마 이거?
용맥이 대봉방에 있었어?
“저기 사람이 있습니다.”
진천산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정말로 밑에 한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수많은 황금색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쇠사슬이 살까지 파고들어서 꼼짝도 못 했다.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것 같았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인장!”
도파가 큰 소리로 불렀다.
노인은 듣지도 움직이지도 못했다.
상관흔이 이상한 듯 말했다.
“용맥의 꼬리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이럴 수는 없는데!”
“뭐?”
고해가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상관흔이 신중하게 말했다.
“대인, 일반적인 상황에서 대지용맥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용두는 괜찮으나 용의 몸체는 수시로 움직이고 있지요. 용의 꼬리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지용맥에서 용두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용의 꼬리는 여기에 갇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일까요? 누가 겁도 없이 대지용맥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고선무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위양이 이위한테 썼던 편지 기억하십니까? 이게 바로 대봉방의 비밀이 아닐까요?”
고해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대봉방. 봉(丰)? 아니, 봉(封)이어야 한다. 봉인할 때 봉! 풍은 같은 발음에 불과해. 종문이 여기에 있는 이유가 이 봉인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어!”
상관흔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지용맥을 봉인했다고요? 누가 감히요? 이건 원영경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만약 관기 노인이라면?”
고선무의 눈이 홉떠졌다.
“관기 노인? 그러고 보니 위양이 편지에서 부르던 그 각주가 관기 노인일까요? 대봉방이 혁천각의 일부?”
“그럼 이 노인은 누구일까요?”
도파가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고해가 눈먼 노인을 보면서 침묵하고 있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