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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85화 (85/243)

85화 분도(分刀)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이 노인은 위양이야.”

“위양이오? 대봉방 전 방주요, 몽태와 이위의 스승 말입니까?”

진천산이 놀라서 물었다.

고해는 확신에 찬 듯 형형한 눈으로 노인을 보며 말했다.

“맞아! 요즘 대봉방 전적을 보고 있었는데, 일부 전적에서 위양의 외모를 언급했지. 위양이야. 틀림없어!”

진천산은 고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위양은 죽었잖습니까? 그리고 몽태가 풍령, 이위, 월요를 키운 것 아닙니까? 위양이 살아 있다고요? 아니! 그럼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잔혹한 짓을 했단 말입니까? 눈까지 빼다니요?”

고선무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몽태?”

“설마? 몽태의 스승이고 풍령의 아버지였던 사람이야! 몽태의 장인어른이기도 하고. 그런데 몽태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진천산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진 부장님은 대지용맥의 진귀함을 모르니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상관흔은 답답한 듯 한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내가 뭘 몰라?”

“용맥이 있으면 천하를 제패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관기 노인도 용맥을 가지고 있었지요.”

“뭐?”

그때 고해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이 결계를 돌파할지를 생각해 봐.”

그러나 별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수하들을 시켜 전력을 다해 결계를 열어보려고도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워낙 견고하게 만들어진 탓에 결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상관흔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인,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관기 노인이 만든 것이라면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고해는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밑에 보물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가질 수 없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이 먼 노인과 황금색의 용 꼬리를 만질 수도 없다니!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진천산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고해는 잠시 생각하더니 묘한 웃음을 지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누군가 우리를 도와줄 거다.”

* * *

다음 날, 진천산이 악인들을 데리고 나오자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진천산은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흥! 너희들은 이걸 저기에 걸어라.”

악인들은 진천산이 건네준 팻말을 한쪽에 높이 걸었다.

[대진 안에 들어오는 자는 죽는다!]

팻말을 본 주변의 수련자들은 등골이 오싹한 한편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오만방자한 말투군!”

“흥! 고해가 정말로 우리랑 싸우려는 거야?”

“가당치도 않은 소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흥!”

수련자들은 팻말을 보며 수군거렸다.

구석진 곳에서 몽태가 풍령을 안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고해, 나 때문에 곤혹을 치른다고 생각하지 마라. 오히려 네가 지금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니까.”

한편, 귀빈 구역 근처의 한 산봉우리 위에는 금포와 은포를 걸친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금포를 걸친 사람은 얼마 전에 몽태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금각이었다.

은포를 걸친 남자가 그를 보며 말했다.

“형님, 이만 명 정도 모인 것 같습니다. 슬슬 시작할까요?”

“은각아, 조바심 내지 마라. 우리가 사람을 모으긴 했지만, 자칫하면 금반도를 저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떻게 빼앗아 올지, 그것부터 생각해 보자.”

금각이 그렇게 말했지만, 은각은 답답함을 참을 수 없었다.

“더 지체했다가 다른 원영경들도 오면 어떡합니까? 그땐 더 힘들어집니다.”

금각이 잠시 생각하더니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좋아, 오늘 저녁에 해보자.”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사람들한테 알리겠습니다.”

금각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 * *

진천산은 원형 격투장에서 도박을 관리하기도 하고, 돈으로 외부의 소식을 사기도 했다.

금각과 은각이 사람을 모았다는 소문을 듣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 진천산은 소식을 팔겠다는 사람과 만났다.

“금각과 은각이 이만 명을 모았다고?”

“그렇수. 듣기로는 오늘 저녁에 진을 공격한다던데. 내가 알고 있는 건 이게 전부요. 절대 내가 말했다고 하지 마쇼.”

그 수련자는 영석을 들고 진천산 앞에서 바로 사라졌다.

진천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부하들이 굳은 표정으로 찾아와서 상황을 전했다.

“부장님, 뭔가 수상합니다. 일부 도박꾼들이 중간에 자리를 떠났습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처럼 보입니다!”

진천산은 원형 격투장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악인들한테 말했다.

“됐다. 대인께서 명한 대로 우리는 적들을 맞이하러 간다.”

잠시 후, 악인들은 대봉방 부하들을 처리하고 난 후 진천산과 함께 진으로 향했다.

“시작된 건가?”

몽태는 그 광경을 주시하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진천산이 진을 친 곳으로 가는 걸 보고 수많은 수련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들이 대진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저놈들 따라 들어가자!”

금각이 소리쳤다.

진천산은 점점 더 많이 몰려오는 수련자들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주변의 수련자들 모두 금각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진천산이 대진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니, 금각과 은각을 우두머리로 오천 명에 육박하는 수련자들이 모여 있었다.

“너희들!”

진천산이 갑자기 뒤돌아서서 소리쳤다.

“뭐야?”

금각이 눈살을 찌푸리고 진천산을 쳐다보았다.

“이 팻말을 보았는가?!”

진천산이 오늘 아침에 걸었던 팻말을 가리키며 싸늘하게 말했다.

“너희들 여기에 있는 글씨는 알아보는 거지? 진으로 들어오려는 자는 죽는다!”

“네놈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은각이 냉랭하게 말하면서 칼을 빼 들고 진천산을 향해 달려갔다.

“진으로 들어가!”

진천산이 소리치자, 수백 명의 악인들이 대진으로 달려갔다.

스윽!

은각의 칼이 허공을 빗나갔다.

“지금이다! 공격!”

금각이 소리쳤다.

오천 명의 수련자가 거의 동시에 금각과 은각을 따라 진천산과 악인들을 쫓아갔다.

그와 동시, 다른 방향에 있던 수련자들도 공격에 나섰다.

“진천산, 멈춰라!”

은각이 큰 소리로 외쳤다.

사면팔방에서 수련자들이 달려들었다.

쩌정! 타다당! 쾅!

악인들과 수련자들의 칼이 부딪쳤다.

원영경 수련자만 아니면 악인들도 질 마음이 없었다.

생사를 넘나들며 이십 년을 버텨온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이를 갈고 칼을 휘둘렀다.

“개자식들아! 덤벼!”

“얼마든지 와라!”

“오냐! 죽고 싶다면 모조리 죽여주마!”

수련자들도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악인 놈들이 건방지구나!”

“어차피 죽여도 되는 놈들이다! 모두 죽여!”

사방이 온통 하얗게 뒤덮이면서 수련자들이 밀물처럼 진 안으로 몰려들어 왔다.

“하하하! 진천산! 고해가 어떻게 너를 구하는지 봐야겠다!”

은각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하더니 거대한 칼을 들고 달려왔다.

순간, 진천산의 손 위에 바둑알 모양의 영석이 나타났다.

스윽!

구름 속에 있던 칼의 기운이 은각의 검을 향해 날아왔다.

쿵! 쩌정!

은각의 검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뭐야?”

은각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고해의 목소리가 대진에 울려 퍼졌다.

“내가 팻말을 걸고 경고했잖느냐! 들어오면 죽는다고! 너희들 발로 들어왔으니 나를 탓하지 말거라! 천도들아! 공격하라!”

대진 안에 있던 수련자들은 불길한 징조를 예감하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머리 위에서 칼이 회전하고 있어!”

“뭐? 아니, 어떻게 천도를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지?”

“헉! 천도가 우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어!”

“막아라! 막아라!”

펑!

굉음과 함께 땅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다.

악인들이 천도를 조정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두 수련자의 몸이 절반으로 갈라졌다.

악인 하나가 바둑알 모양의 영석을 손에 들고는 흥분한 채 말했다.

“하하하하하! 역시 천도야! 너 이놈들! 덤벼라! 이게 바로 우리 대인의 천도생사국이다! 대인께서 우리에게 나눠주신 천도로 너희들을 죽여버릴 거다! 너희들이 원영경이 아닌 이상 오늘 우리 손에 죽는다!”

“모두 죽여!”

악인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쾅! 콰과광!

악인들은 바둑알 모양의 영석으로 천도를 조종해 수련자들에게로 향하게 했다.

“막아!!”

“막긴 뭘 막아! 선천경으로 천도를 어떻게 막아!”

펑! 콰광!

“으악!”

“도망가자!”

“얼른 도망가!”

삼천여 명의 악인 손에 천도가 있었다.

이를 본 수련자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다.

그러나 동서남북도 가릴 수 없는, 망망대해 같은 대진 안은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수련자들은 악인들의 천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강한 금각과 은각을 제외하고 모두 잔혹하게 죽어 나갔다.

그 광경을 본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런데 진천산과 스무 명의 악인들이 천도를 들고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은각아! 막아!”

“형님이 그쪽을 막으십시오!

두 원영경이 고함을 지르면서 천도를 막아섰다.

진천산이 소리 높이 외쳤다.

“흥! 저들은 신경 쓰지 말고 다른 놈들을 죽여라!”

원영경은 자신들이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예! 부장님!”

악인들이 대답하고는 방향을 틀었다.

“어딜 도망가!”

은각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은각아! 쫓지 마! 우린 저기로 간다! 저기에 고해가 혼자 있다!”

금각이 흥분한 채 말했다.

은각이 눈을 번쩍이며 고개를 돌렸다. 정말 고해가 혼자 서 있었다.

“예! 형님!”

두 사람은 대진 내부를 향해 달려갔다.

지금 펼쳐진 천도생사국은 영석으로 만들었기에 원영경을 막을 순 없었다.

금각과 은각은 원영경이기에 거침없이 용귀전을 향해 달려갔다.

사방에서 사람들의 잔혹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얼굴도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은각이 먼저 이상을 느끼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거리가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왜 아직도 도착을 못 하고 있지요?”

“사방이 구름 천지라 길을 잃은 것 아닌지 모르겠다.”

두 사람은 당황해서 걸음을 늦추었다.

“날아서 찾아보자!”

금각이 말하고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은각도 따라서 땅을 박찼다.

하늘로 날아오르자, 눈앞이 희미해지면서 동서남북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다.

“형님? 이상합니다!”

은각이 다급히 말했다.

금각도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냈다.

“나무를 보면서 방향을 찾아!”

“네!”

두 형제는 용귀전을 찾아 몸을 날렸다.

용귀전 입구.

백포를 걸친 고해가 영석으로 깔린 바둑판 앞에 앉아서 전체 대진을 조종하고 있었다.

“으악! 죽이지 마!”

“사람 살려!”

“으아아악!”

“천도가 날아온다! 크억!”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대진은 들어오는 순간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고해는 손을 쓰지 않아도 삼천여 명의 악인들이 일선에서 수련자들을 처참하게 짓밟아버리고 있었다.

악인들은 동서남북 가릴 필요도 없이 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전부 죽여버렸다.

“이미 경고를 헀거늘. 후우우,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구나.”

고해가 옅은 한숨을 쉬었다.

대진 밖에서 대기 중에 있던 수련자들은 안에서 들려오는 참혹한 비명을 들으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들어온 자들은 전부 죽인다고?”

“고해가 정말 전부 죽일까?”

안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비명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걸 보니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듯했다.

밖에 있던 수련자들은 금각과 은각의 대오에 참여하지 않기를 잘했다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대진 밖에 걸려 있던 팻말은 그들에게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닌 공포로 다가갔다.

[대진에 들어오는 자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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